d라이브러리









현대고등학교 자동차·항공기 연구반

경차보다 가벼운 1인승 3륜자동차를 고등학생들이 만들었다. 그들이 만든 것은 자동차만이 아니었다. 자신감이란 텃밭에 꿈을 현실로 만드는 열매를 맺은 것이었다.

1백30kg의 초경량자동차인 이 자동차의 연비는 L당 50-60km로 L당 20km인 일반 경차보다 좋다.
 

여기저기 널려진 철판, 줄, 톱, 나사, 연장들. 다 뜯겨나간 자전거 바큇살이 시커먼 바닥 위를 나뒹굴고 있다. 언뜻 보면 고물상처럼 보이는 이곳은 교육열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서울 압구정동 현대고등학교의 기술 작업실. 평상시에도 늘 북적거리던 곳이지만 지난 5월 8일에는 유독 많은 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곧이어 문이 열리더니 4명의 학생들이 자동차를 들고 나온다. 승용차로 보기에는 너무 작다. 더구나 바퀴는 3개뿐. 그렇다고 장난감 자동차는 아닌 것 같은데···

설계에서 제작까지 내 손으로

그랬다. 이 작은 삼륜 자동차는 한 학생을 태우자마자 자랑이라도 하듯 굉음을 내며 멋지게 운동장을 돌아왔다. '설계에서 제작까지 내손으로'란 구호로 뭉친 현대고등학교 자동차·항공기 연구반(일명 FETS, FromEarth ToSky)소속 23명(남학생 14명, 여학생 9명)이 지난 20개월 동안 방과후나 주말, 방학을 이용해 만든 초경량 자동차가 주행하는 순간이었다.

학생들은 마치 우주에서 귀환하는 우주비행사를 지켜보는 듯한 표정이다. 차체 디자인에서부터 제작과정 100%를 모두 자신들의 손으로 직접 했으니 그도 그럴만하다. 학생들의 머릿속에서는 나사, 엔진, 바퀴를 구하러 청계천과 을지로 일대를 뒤지고 다녔던 순간, 밤새작업하고 학교 작업실에서 학교 교실로 등교하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치는 것일까. 모두 힘들었지만 지금 이 순간이 너무 행복하다고 외쳐댄다.

실제로 시내 주행이 가능한 이 자동차는 세계 모터쇼의 한 조류를 형성하고 있는 초경량 컨셉트카에 초점을 맞춘듯 1백30kg의 날씬한 몸매를 자랑한다. 여기에 연비는 L당 50-60km로 L당 20km인 일반 경차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배기량 80-90cc, 최고속도 시속 80km, 높이 1백10.8cm, 폭 1백19cm, 길이 2백cm인 이 자동차는 일명 버블카(유럽에서 이 차처럼 생긴 차를 일컫는 말)로 불린다. 또 70년대 잠시 선보인 3륜 용달차와 달리, 앞바퀴가 2개, 뒷바퀴가 1개인 후륜 자동차로 국내에서는 처음 시도된 디자인. 이 학교에서 기술과목을 가르치면서 FETS를 지도하는 구기복(50) 교사가 2년 전 러시아 모스크바 국립항공대학 등에 연수갔을 때 아이디어를 얻었다. "이런 구조 덕택에 회전할 때 안쪽 바퀴와 바깥쪽 바퀴의 회전수를 달리하는 차동장치가 필요없었기 때문에 부품 수를 대폭 줄일 수 있었다"고 설명하면서 "이런 경험이 물리 공식 수십개를 외우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학생들에게 체득하게 해준다"고 덧붙였다.

이론보다는 실제

실제로 FETS의 팀원들은 이론보다 실제에 강하다. 서클에 가입하는 순간 자동차 운전법을 터득하는 것을 시작으로 각종 부품의 조힙과 원리를 몸으로 깨우치기 때문에 웬만한 오너들보다 자동차에 관한한 선배격이다. 그래서인지 이 서클 출신의 학생들은 자동차와 관련이 깊은 기계공학과, 자동차학과, 디자인 과련 학과 등으로 진학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동차학과를 지망하고 있는 서클 대표인 차윤석(2학년)군은 "자동차를 내 손으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세상에 둘도 없는 기회다"라며 "개성이 다른 친구들과 작업을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거기서 배운 것도 많다"고 말한다. 자동차에 관한 것뿐만 아니라 사회생활에 필요한 의견조율까지 터득했다는 얘기다.

학생들의 기쁨 뒤에는 구기복 교사의 노력이 밑거름이 됐다. "학생들은 고정관념에 지배를 받기보다 생각이 유연하고 창의적이다. 하지만 끝을 맺는데 부족한 점이 많고 공동작업에 익숙하지 않다. 하지만 자동차라는 완성품을 만듦으로써 자연스럽게 모자란 점을 스스로 보충해간다." 자신을 비행기광이라고 소개한 구교사의 말이다. 늘 위험한 도구들을 다루기 때문에 작업 중에는 학생들 곁을 한시라도 떠날 수 없어 힘들 때도 많지만, 학생들이 완성된 자동차를 타면서 느끼는 환희를 생각하면서 그 자신도 점점 집착하게 된다고 한다. 다른 학교에서 이런 활동을 원하면 얼마든지 도와줄 용의가 있다고 덧붙인다. 혼자하는 1등은 재미가 없다는 말이다.


현대고등학교 자동차 항공기 연구반 학생들과 구기복(원안) 지도교사. 학생들은 자동차를 더 좋아하고 구교사는 비행기 광이어서 자동차와 비행기를 번갈아 만든다고 한다. 자동차·항공기 연구반이란 이름이 붙은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실패를 다독일 줄 아는 지혜

이제 초경량 자동차를 만든 학생들은 비행기를 만들기 위해다시 아이디어 작업에 들어간다. 여기에 앞으로 만들 솔라보트, 맨파워 잠수함, 맨파워 비행기 등을 위해 열심히 문헌조사도 해야 한다. 수시로 바뀌는 교육정책이 난무하는 이 시대에 한 고등학교의 특활반 계획은 10년 앞을 내다보고 있다는 사실이 반갑다.

정고운(2학년)양은 신입생을 면접할 때 성실성과 성격을 제일 중요시한다고 귀띔한다. 힘든 작업인 만큼 서로에게 힘이 돼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공부만 잘하는 학생들은 대접받기 어렵다는 얘기도 된다. 실제로 이 서클의 학생들은 수업시간에 눈에 띄지 않는 학생들이 더 많다는 게 구교사의 지적이다. 공부는 조금 뒤지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진로를 결정하고, 새로운 목표가 생겨 공부를 더욱 열심히 하게 되는 학생이 많다. 이 때문에 학부모들이 서클 활동에 적극적인 후원자로 나섰다. 학생들과 교사, 학부모가 삼위일체가 된 교육 현장을 일궈내고 있는 것이다.

FETS의 팀원들은 자동차의 뼈대까지 만들어놓고 안정성 테스트를 하다가 과속 때문에 차체가 뒤집어지는 사고를 겪었다. 하지만 그들은 좌절하지 않고 서로 다독이며 다시 조립해 완성품을 만들어 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학생들의 마음속에 자리잡은 것은 내일을 향한 꿈과 그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1999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장경애 기자
  • 사진

    최문갑 기자

🎓️ 진로 추천

  • 기계공학
  • 자동차공학
  • 항공·우주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