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속으로 들어간 산소는 생활에 필요한 에너지를 만들어낸다.그런데 이 산소가 미토콘드리아에서 빠져나오면 세포의 단백질이나 지질 등을 파괴하는 악동으로 변한다.이름하여 '활성 산소'.호흡에 꼭 필요한 산소가 노화의 원인으로 지목된 이유는 무엇일까.
등반가나 잠수부는 고압의 산소가 담긴 무거운 금속통을 메고 다닌다. 여기서 산소통은 호흡을 위한 생명줄 역할을 한다. 일산화탄소가 포함된 연탄가스에 중독됐을 때 깨끗한 산소는 가장 효과적인 치료제로 쓰인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아무런 맛도 없지만 산소는 없어서는 안되는 아주 중요한 화학물질이다.
호흡으로 마시는 산소는 ${O}_{2}$라는 산소 분자다. 사람은 하루에 5백g 이상의 산소를 마셔야 한다. 심한 운동을 하면 더 많은 산소가 필요해진다. 아마도 섭취하는 화학물질 중에서 산소는 물 다음으로 많은 분자가 아닐까. 그래도 다행인 것은 전세계의 인구가 공짜로 산소를 마실 수 있다는 점이다. 산소가 공기 중에 20%나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산소 앞에 ‘활성’이란 이름이 달라붙으면 산소의 이미지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습이된다. 몸 속의 활성산소를 없애야 한다는데 도대체 활성 산소란 무엇일까. 활성 산소는 ‘고반응성 산소종’(reactive oxygen species, ROS)을 줄여서 부르는 이름으로 다양한 과산화물이 여기에 포함된다. 활성 산소의 대표적인 물질은 ‘초과산화물’(superoxide, ${O₂}^{-}$)이라고 부르는 라디칼 형태의 불안정한 것으로 산소보다 산화력이 더 큰 화학종이다. 산화력이 큰 과산화수소${H}_{2}{O}_{2}$)와 수산화기(${OH}^{-}$), 알킬 과산화물, 할로겐 산화물 등이 모두 활성 산소로 분류된다.
생체 에너지 만드는 필수품
이름의 이미지와는 달리 활성 산소는 몸의 노화를 일으키는 주범으로 확인되고 있다. 따라서 뭔가 활력을 불어넣어줄 것 같은 ‘활성 산소’라는 명칭보다는 ‘고반응성 산소종’ 또는 ‘ROS’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활성 산소는 세포 안에서 일어나는 산화반응 중에 잘못 만들어진 것인데, 그 반응성이 크기 때문에 세포에서 어렵게 만들어낸 단백질이나 지질 분자는 물론 중요한 유전정보를 담은 DNA까지도 못쓰게 만들어버린다. 그래서 결국 우리 몸을 늙게 만든다는 것이다. 힘(산화력)이 너무 넘쳐 파괴자로 변한 셈이다. 이 주장은 1950년대부터 제기됐다.
산소는 이미 알려져 있듯이 다른 물질을 쉽게 산화시킨다. 휘발유를 산소와 함께 높은 온도로 가열하면 휘발유에 들어있는 탄화수소는 산화돼 물과 이산화탄소를 만든다. 이 과정에서 탄화수소에 저장돼 있던 화학에너지가 방출된다. 자동차는 이러한 산화반응에서 나오는 에너지로 움직인다. 몸 안에서 산소는 포도당과 같은 물질을 산화시켜 화학에너지를 방출시킨다. 이것이 생활의 원동력인 셈이다. 인체는 자동차 엔진과 달리 산화반응이 매우 복잡한 과정을 거치면서 정교하게 조절된다.
미토콘드리아 공장의 사고
코로 들여 마신 공기 속의 산소는 허파의 작은 돌기를 통해서 피 속으로 녹아 들어간다. 그 후 적혈구의 헤모글로빈과 결합해 몸의 각 부분에 있는 세포로 운반된다. 세포는 운반된 산소 분자를 받아들여서 세포 안에 있는 미토콘드리아로 전달한다. 이곳이 바로 생활에 필요한 모든 에너지를 생산하는 발전소다.
미토콘드리아에서는 음식물에서 섭취한 포도당을 산화시키는 매우 복잡한 화학반응이 진행된다. 이 과정에서 산소 분자(O₂)는 유비퀴논과 같은 전자운반물질로부터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4개의 전자를 전달받는다. 이때 2개의 물분자(H₂O)로 환원되면서 ATP라고 부르는 에너지 전달물질이 만들어진다. ATP는 3개의 인산기(${PO₄}^{3-}$)가 결합되어 있는 분자로 인산기 하나가 떨어져 나가면 ADP가 되면서 체내에서 실제로 소비될 수 있는 에너지가 나온다. 아무튼 미토콘드리아는 산소를 이용해 포도당을 산화시키면서 에너지를 얻는다고 요약할 수 있다.
그런데 사람이 하루에 들여 마시는 산소 분자의 수는 무려 ${10}^{25}$개로 엄청나다. 한마디로 미토콘드리아는 바쁘게 돌아가는 에너지 생산 공장인 셈이다. 이렇게 바쁜 공장에서 사고가 일어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유비퀴논과 같은 전자운반물질로부터 한 개의 전자를 전달받은 산소 분자가 더 이상의 반응에 참여하지 않고 미토콘드리아 바깥으로 빠져 나오면 초과산화물(${O₂}^{-}$)이 만들어진다. 활성 산소가 만들어진다는 말이다.
그렇게 잘못 사용되는 산소의 양은 무려 5%에 이른다. 몸에 있는 화학공장의 효율이 그렇게 나쁠까하고 생각하겠지만 사람이 만든 자동차 엔진이나 발전소 같은 공장의 효율이 기껏해야 30%를 넘기 어렵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불량률이 5%에 불과한 미토콘드리아는 훨씬 효율적이고 정교한 공장인 셈이다.
활성 산소 제거하는 비타민 C와 토코페롤
대부분의 원자나 분자에 들어있는 전자들은 2개씩 짝을 지어서 하나의 전자 오비탈을 차지한다. 짝을 짓지 못하고 홀로 전자 오비탈을 차지하고 있는 전자를 가진 원자나 분자를 라디칼이라고 부른다. 일반적으로 라디칼은 반응성이 매우 커서 다른 원자나 분자와 쉽게 반응한다. 세포에서 만들어지는 초과산화물도 짝짓지 않은 1개의 전자를 가지고 있는 라디칼의 일종이다. 그런데 몸 속에서 만들어지는 초과산화물은 두 분자가 서로 반응해서 하나는 산화되고, 다른 하나는 환원되는 독특한 ‘불균등화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이밖에도 초과산화물은 생체 내에서 철이나 구리 이온과 반응하거나 일산화질소와 반응해서 반응성이 훨씬 큰 라디칼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과산화수소나 다른 라디칼들은 초과산화물보다도 반응성이 커서 몸에 직접적인 피해를 준다.
생체 내 이런 물질들의 역할에 대해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69년에 멕코드와 프리도비치가 초과산화물의 분해를 촉진시키는 ‘초과산화물 불균등화 효소’(superoxide dismutase, SOD)의 존재를 확인하면서부터였다.
초과산화물에서 만들어진 과산화수소를 포함한 반응성이 큰 활성 산소들은 DNA, 단백질, 지질 등을 부분적으로 산화시키므로 상당한 피해를 줄 수도 있다. 지금까지 활성 산소는 동맥경화, 악성 종양, 관절염 등의 퇴행성 질병을 일으키는 원인의 하나인 것으로 알려져 있고, 질병은 아니지만 인체의 노화와도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인체는 그런 문제에 대한 준비를 갖추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SOD이다. 우리 몸에는 구리(${Cu²}^{+}$)와 아연${Zn²}^{+}$)또는 망간(${Mn²}^{+}$)을 포함한 SOD 덕분에 초과산화물은 빠르게 분해된다. 초과산화물이 분해돼 만들어진 과산화수소H₂O₂)는 카탈라아제와 글루타치온 항산화 효소라는 두 가지 효소에 의해 제거된다. 이밖에도 빌리루빈이나 요소산, 비타민 C와 비타민 E (알파-토코페롤이라고도 함)도 체내의 활성 산소를 제거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병원균 제거하지만 노화 촉진
사람의 몸은 참 특이하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유용하게 활용할 줄 안다. 독과 같은 활성 산소를 약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1973년 초과산화물이 생명을 구한다는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백혈구와 같이 면역작용을 담당하는 포식세포들이 의도적으로 많은 양의 초과산화물을 만들어낸다. 백혈구가 인체에 치명적인 피해를 주는 박테리아나 곰팡이를 만나면 백혈구의 막에 결합된 ‘NADPH 산화효소’가 활성화된다. 그러면 혈액 속에 녹아있는 산소를 이용해서 초과산화물(${O₂}^{-}$)이 대량으로 만들어진다. 초과산화물 자체는 병원체에 대한 저항력이 그렇게 크지 않지만, SOD에 의해서 과산화수소H₂O₂)로 바뀌어진 후에 다른 효소에 의해서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하이포아염소산(HOCl)이 돼 병원체를 제거한다. 백혈구는 활성 산소를 만들어 본래의 임무(면역기능)를 완수하는 셈이다. 초과산화물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다른 라디칼들도 비슷한 방법으로 면역 효과를 나타낸다.
또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초과산화물과 과산화수소(H₂O₂)가 신호전달 물질의 역할도 한다. 이런 활성 산소들은 단백질의 산화 또는 환원에 관여함으로써 단백질의 특성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근래 일산화탄소처럼 인체에 치명적인 독성을 가진 일산화질소도 중요한 신경 전달물질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인체가 활성산소를 제거하는 메커니즘이 있지만 완전하지는 못하다. 따라서 장기간에 걸쳐 축적된 활성 산소에 영향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것 때문에 생기는 대표적인 것이 노화다. 체내에서 산소 소모량이 줄어들면 활성 산소가 발생할 가능성도 줄어든다. 실제로 음식물 섭취를 줄이거나 냉혈 동물의 경우 낮은 온도에서 키우면 수명이 더 길어진다. 또 운동을 하면 활성 산소의 양이 늘어날 것 같지만, 적당한 운동은 항산화 메커니즘을 촉진시키므로 활성 산소를 줄여 노화 방지에 도움이 된다. 이밖에도 녹차나 적포도주에 들어있는 폴리페놀 계통의 항산화 물질이 노화 방지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아직까지 확실하게 검증된 것은 아니다.
세포의 항산화 물질 중의 하나인 SOD가 너무 많은 것도 부족한 경우만큼이나 위험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에는 각종 식품이나 심지어는 화장품에까지 SOD를 첨가해서 노화 방지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인체의 화학 작용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기 때문에 단편적인 지식만으로 '영원한 청춘’을 꿈꾸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