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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의 프리즘

개그맨이 배워야할 웃음의 이론들

개그맨은 시청자에게 웃음을 선사하기 위해 다양한 작전을 구사한다. 어른이 젖병을 빠는 어린이처럼 행동하거나 상식 밖의 잘난 체를 하기도 한다. 때로는 독특한 유행어를 만들어내기 위해 애를 쓴다. 1970년대 코미디 프로그램은 온 국민의 사랑을 받았으며 시청률이 30%대를 웃돌았다. 지금도 주간 평균 시청률을 살펴보면 KBS의 ‘개그콘서트’는 21%, SBS의 ‘웃음을 찾는 사람들’(이하, 웃찾사)은 14%로 상위권을 기록하고 있다.

시대에 따라 개그맨들은 웃음을 주는 작전이 달랐다. 1980년대에는 과장된 몸짓으로, 1990년대에는 말로 웃음을 줬다. 잔뜩 긴장된 상황에서 시종일관 “두 번 죽이는 일”같은 얼토당토않은 대사를 사용했다. 그러나 의미없는 대사에 시청자는 싫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1990년대 말부터는 줄거리 없이 빠른 템포의 리듬감 있는 개그가 시청자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개그콘서트와 웃찾사로 주로 젊은 세대들에게 호응을 받고 있다. 반면 MBC는 복고 코미디를 지향하며 지난해 ‘코미디 쇼 웃으면 복이와요’를 신설했으나 낮은 시청률 때문에 몇 개월 지나지 않아 종영했다.

웃음 작전이 성공하려면 사람들이 웃는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다. 예전부터 웃음의 원인을 심리학, 신경학, 병리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연구해왔다. 미국의 과학저널리스트 대니얼 맥닐은 그의 저서 ‘얼굴’에서 웃음을 만드는 이론을 7가지로 소개하고 있다.

바보가 만드는 웃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손에 넣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런데 어딘지 모르게 모자라 보이는 인상이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자신이 판 함정에 빠지고 만다. 이런 연기를 펼치는 대표적인 배우가 로완 앳킨슨(미스터 빈 역)이다.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보면 웃음이 나온다. 이것이 우월주의 이론이다.

우리나라에도 코미디언 배삼룡의 개다리춤, 심형래의 “영구 없~다”, “띠리리~띠리리~”에서부터 최근 개그콘서트 ‘사랑의 가족’에 이르기까지 우월주의 이론을 바탕으로 한 웃음은 코미디에서 쓰이는 전통적인 작전이다.

영국 맨체스터대의 사회학자 제이슨 루터 교수는 “주변 부족보다 우수하다는 사실은 생존에 필수적이며, 웃음은 그 우월함의 표현 방식”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핀란드 사람은 일본 사람보다 인접국인 스웨덴 사람에 대해 농담할 때 크게 웃는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스웨덴은 핀란드를 점령한 역사도 있다. 이 때문에 일부 연구자들은 우월주의 이론이 인류의 가장 원시적인 웃음 전략이라고 주장한다.

아기도 웃는 웃음

얼마 전 MBC에는 이경규의 ‘돌아온 몰래카메라’가 오랜만에 부활했다. 인기 연예인에게 돌발 상황을 연출시켜 갑자기 놀라게 해 웃음을 선사한다. 이것이 ‘놀람 이론’으로 발생하는 웃음이다.

이때는 대뇌가 아닌 소뇌가 활성화되는데, 소뇌는 생존을 하는데 필요한 인체의 평형기능을 유지하는 영역이다. 갑자기 물에 빠지거나 불이 나는 돌발 상황은 생존을 위협하기 때문에 놀람 이론에 의한 웃음은 소뇌에서 반응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놀람 이론이 주는 웃음은 특별한 지식이나 논리적 사고가 없어도 발생한다. 부모가 “까꿍”하면 아기는 상황판단이나 인지적 습득능력이 개발되지 않았어도 웃는다.
 

'더듬이춤'으로 웃음을 줬던 리마리오(본명 이상훈)는 개그맨 데뷔 전 '느끼남'이 아닌 '바보' 캐릭터를 준비했었다.


부조화가 만드는 웃음

기대와 달리 엉뚱한 상황이 연출됐을 때도 웃음이 나온다. 가령 웃찾사의 ‘4가지 합창단’이란 코너에서 개그맨들이 노래를 한 소절씩 부르고 해석을 시도한다. 가수 동방신기의 ‘허그’(Hug)란 노래의 한 소절인 “하루만 네 방의 침대가 되고 싶어 오~ 베이비”를 부르고 난뒤 해석이 이어진다. “뭔 짓거리여”, “남자가 왜 여자 방의 침대가 되고 싶대”, “네가 침대가 되고 싶어도 될 수가 없어”, “왜 그런 줄 알아?”, “침대는 과학이니께.”

남자가 여자 방의 침대가 될 수 없는 이유가 ‘침대는 과학’이기 때문이라는 예상치 못한 대답에 우리는 모순된 상황에 빠지면서 웃게 된다. 이것이 부조화 이론이다. 개그콘서트의 ‘착한사람만 보여요’도 좋은 예다. 사장님으로 열연하는 개그맨 유세윤은 극중 부하 직원 김병만과 함께 마임형식으로 대화를 진행한다. 사장이 사우나에 들어간다며 옷을 벗기 시작한다. 그러나 부하직원은 “아직 밖입니다”라고 답한다. 이에 사장은 얼른 옷을 주워 입으며 “행동 하나 하나가 마음에 안 들어”라고 투덜댄다. 이처럼 앞뒤 상황이 논리적으로 충돌하면 재미를 느끼게 된다.

고려대 심리학과 김성일 교수는 “모순된 상황을 통해 재미를 느끼면 눈에 보이는 정보와 갈등구조를 해결하는 뇌 부위인 전대상회에서 반응이 활성화된다”고 설명한다.

타이밍이 만드는 웃음

웃찾사의 ‘따라와’ 코너에서는 인질범, 강도, 경찰이 대치하고 있는 극한 상황에서도 강도로 변한 자식 앞으로 달려간 아버지가 아들에게 농담을 던진다. 웃음은 기쁠 때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슬픔 감정이 공존할 때도 나온다는 것이 반대감정 병존이론이다.

흔히 너무 슬플 때 웃음이 나오는 사례도 여기에 해당하다. 이런 개그가 관객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서는 기쁨과 슬픔이 전환되는 바로 그 때 어색함을 없애야 한다. 즉 타이밍이 중요하다.

고조된 긴장을 없애는 웃음

개그콘서트의 ‘괜찮은 명훈이’ 코너에서는 친구의 질문에 명훈이가 매번 허탈한 답변을 한다. 예를 들어 친구가 “어제 네 홈페이지에 괜찮은 심령 사진이 올라왔던데 진짜 귀신같다”라고 이야기하면 명훈이는 “응, 그거 우리 누나야”하는 식이다. 관객들은 기대했던 걱정이 한 번에 해소되면서 웃게 된다. 긴장된 상태가 사라진다는 뜻에서 ‘해소 이론’이라 불린다.

알아야 이해할 수 있는 웃음

최근에는 좀더 많은 시간을 투자한 관객만 웃게 하는 새로운 작전이 나왔다. KBS ‘해피선데이’의 ‘여걸식스’란 코너를 보면 ‘쥐를 잡자’라는 게임이 있다. 출연자들이 둥그렇게 둘러 앉아 옆 사람들과 손뼉을 치면서 시작한다. “쥐를 잡자, 쥐를 잡자” 모두들 “몇 마리”라고 물으면 처음 시작하는 사람이 “세 마리”를 이야기한다. 그러면 돌아가며 “잡았다”(1), “잡았다”(2), “놓쳤다”, “잡았다”(3), 모두들 “만세”를 외친다. 도중에 틀리면 벌칙을 받는다.

개그콘서트의 ‘집으로’라는 코너에서 이 게임을 패러디한 대사가 나온다. 손자와 할머니의 대화는 이렇다. “할머니, 밥줘요”, “쥐가 다 갉아먹었네”, “쥐, 몇 마리?”, “두 마리”, “잡았다. 놓쳤다. 잡았다. 만세!” 여기서 쥐를 잡자 게임을 본 적이 있는 시청자는 웃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시청자는 영문을 모를 것이다.

개그콘서트와 웃찾사의 신세대 개그맨들은 다른 코너나 CF, 심지어 다른 방송사의 코너까지 패러디하기 때문에 ‘예비지식’이 없으면 웃을 수 없다. 이처럼 예비지식을 바탕으로 한 탄탄한 구성 덕분에 웃게 되는 것이 ‘구성주의 이론’이다.

세대에 따라 동일한 개그 프로그램을 보면서도 누구는 웃고 누구는 웃지 못한다. 이에 대해 성신여대 심리학과 김명선 교수는 “개인마다 같은 사건을 두고 재밌다 또는 불쾌하다 등의 감정을 판단하는 ‘인지틀’이 다르기 때문”으로 분석한다.

모두가 공감하는 웃음
 

“사람들은 혼자 있을 때보다 여러 사람과 함께 있을 때 30배는 더 잘 웃는다”고 미국 신경과학자 프로바인 박사는 말한다.


오감으로 인식한 정보는 뒷통수에 있는 후두엽에서 인식돼 이마 쪽의 전두엽으로 전달된다. 전두엽은 개인이 살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만지고 있는 물체가 황토색이다. 냄새가 야릇하다. 똥이다”라고 식별한다. 이것만으로는 자신이 처한 상황이 웃긴지 슬픈지 판단을 내릴 수 없다. 머리 중앙의 편도체가 자신이 살아온 경험과 지식, 즉 ‘인지틀’을 바탕으로 최종 해석을 내린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똥을 만지고도 웃을 수 있고, 다른 사람은 울음을 터뜨릴 수 있다.

전남대 심리학과 김문수 교수는 “코미디나 개그 코너가 다양한 형식으로 변화해온 것은 웃음이 사회적, 시대적 맥락에 좌우됨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결국 어떤 웃음의 이론으로도 모든 사람을 한번에 웃길 수 있는 완벽한 웃음의 기술은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개그 프로그램의 코너별로 여러 가지 웃음의 이론을 적용해 웃을 수 있는 대상을 차별화한다면 온 가족이 함께 보는 개그 프로그램도 가능할 것이다.

거짓 웃음은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미국 빙엄턴대 저바이스 교수팀은 유인원의 얼굴근육을 분석해 웃음의 역사를 추적했다.

인류의 사촌격인 유인원은 숨을 헐떡일 때 단일음 ‘하’를 한번 밖에 내지 못하지만 인간은 ‘하-하-하’하고 웃는다. 미국 볼티모어대의 신경과학자 프로바인 박사는 “침팬지가 헐떡이며 내는 소리는 인류가 웃게 된 선행단계”라고 주장해왔다. 저바이스 교수팀은 더 나아가 유인원의 헐떡임을 약 700만 년 전에 발생한 것으로 밝혀냈다. 결국 그때까지 유인원의 웃음은 원시적인 외침에 불과했던 것.

200만~400만 년 전 인류는 방귀를 뀌는 등 어색한 상황에 대한 반응으로 웃기 시작했다. 얼굴 표정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근육이 200만 년 전 발달했다는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따라서 연구팀은 이때부터 진정한 의미의 웃음이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인류는 웃기지 않는 상황에서도 얼굴 근육을 움직일 수 있어 마음에도 없는 거짓 웃음과 비웃음 같은 표정을 연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연구팀은 이 연구결과를 ‘쿼터리 리뷰 오브 바이올로지’ 최신호에 발표했다.

또한 저바이스 교수는 “자발적으로 웃을 때는 뇌의 중앙에 있는 뇌간이 활성화되며 거짓된 웃음을 지을 때는 이마 쪽의 전두엽이 활성화된다”고 덧붙였다.
 

침팬지는 상대방을 간지럽혀 웃길 수 있어도 유머로 웃기지는 못한다.
 

2006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서금영 기자
  • 진행

    임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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