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를 읽다 보면 흥미로운 기록이 나온다. 촉나라의 재상인 제갈공명이 위나라와 전쟁을 치를 때 ‘목우유마(木牛流馬)’를 만들어 군량을 나르는 데 썼다는 내용이다. 목우유마는 나무로 만든 소와 말이라는 뜻이다. 살아 있는 소나 말과 비슷하게 생겼는데, 먹지도 마시지도 않으며 밤낮없이 군량을 실어 날라도 지치지 않는다고 한다. 과연 고대 중국에 로봇이 있었던 걸까. 우리가 흔히 읽는 삼국지의 바탕인 ‘삼국지연의’는 정사인 ‘삼국지’와 달리 작가의 상상이 가미된 소설이다. 당시 기술 수준으로 미루어 봐도 목우유마는 과장이거나 상상일 가능성이 크다.
2000년 가까이 지난 오늘날 이 이야기는 현실이 됐다. 게다가 목우유마와 달리 현대의 군사용 로봇은 수송은 물론 감시, 정찰, 전투 등 다양한 임무를 수행한다. 활동하는 지역도 지상만이 아니다. 하늘에는 무인정찰기와 무인전투기가, 바다에서는 무인잠수정이나 무인전투함이 활약하고 있다. 이런 변화는 지난 10년 사이에 두드러졌다. 2003년 이라크를 침공할 때만 해도 미군은 지상로봇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2만 대에 가까운 공중, 지상 로봇을 사용하고 있다. 무인정찰기로 지상공격이 가능한 ‘프레데터’, 병사 한 명이 짊어지고 다닐 수 있는 다용도 정찰로봇 ‘팩봇’, 소총이나 소형 로켓으로 전투를 할 수 있는 ‘탈론’ 등이 널리 알려져 있다. 이들은 실전에 투입돼 병사를 대체하고 있다.
육군 장성 출신의 이원승 KAIST 국방무인화기술특화센터 교수는 “로봇을 쓰면 수많은 병사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며 인명을 보호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적 점령지나 지뢰 매설 지역, 화생방 오염지역처럼 위험한 장소에서 작전을 펼칠 때 로봇을 먼저 투입하면 소중한 인명을 보호할 수 있다. 로봇은 사람이 오래 견디기 어려운 환경에서 꼼짝 않고 적의 움직임을 감시할 수도 있다.
세계 각국은 군용 로봇을 개발하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국은 2003년부터 미래전투시스템(FCS; Future Combat System) 계획을 시작했다. FCS에 따르면 1개 여단은 병사가 직접 운전하는 차량과 무인항공기, 지상로봇, 무인지상센서 등으로 이뤄진다.
무인정찰기는 하늘에서 적진을 감시해 정보를 지상에 전달하고, 소형지상로봇은 하늘에서 보이지 않는 건물 안으로 먼저 들어가 적의 배치를 파악한다. 나노기술, 입는 로봇과 같은 첨단 기술로 무장한 병사는 로봇이 보내는 정보를 받아 위험을 최소화한다. 무기를 갖춘 지상전투로봇은 직접 전투를 수행한다. 이들을 모두 네트워크로 연결해 신속하게 상황을 파악한다. 이스라엘, 프랑스 등도 이에 뒤따르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2005년 ‘무인전투체계’를 발표하고 다양한 군용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
군용 로봇은 크게 공중로봇, 지상로봇, 해양로봇으로 나눌 수 있다. 공중로봇은 무인항공기를 말하며 크기와 고도, 목적에 따라 종류가 다양하다. 스스로 목표를 찾아 날아가는 크루즈 미사일도 무인항공기와 원리는 비슷하지만 다시 쓸 수 없기 때문에 로봇으로 분류하지는 않는다.
지상로봇에는 바퀴를 사용한 차륜형, 캐터필러를 쓴 궤도형, 해양로봇에는 수상정형, 잠수정형, 수륙양용형 등이 있다. 초기에는 주로 정찰용이었지만, 요즘에는 전자전, 화생방 탐지, 장애물 제거, 수송 전투 등 다양한 임무를 수행한다.
미국의 아이로봇이 만든 팩봇은 어떤 장비를 장착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다. 팩봇 기본형에 폭발물제거장치를 단 팩봇EOD는 폭탄을 찾아내 제거한다. 팩봇 해즈맷은 공기를 분석해 화학물질이나 방사능물질을 조사한다. 스나이퍼 감지 장치를 장착한 팩봇은 총소리를 분석해 저격수의 방향과 고도, 거리를 알아내기도 한다. 포스터-밀러의 탈론도 여러 가지 장비를 바꿔 달면 정찰부터 전투까지 다양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부상자를 후방으로 운반하는 로봇도 등장했다. 미국의 베크나 테크놀로지가 만든 ‘베어’는 몸을 최대한 낮춰 전쟁터에서 쓰러진 부상자를 안전한 곳으로 옮긴다.
특수 임무 수행하는 다양한 로봇 등장
이와 같은 로봇은 대부분 원격 조종으로 움직인다. 병사들은 로봇이 찍어 보내는 영상을 보며 로봇을 조작한다. 간단하고 병사들이 익숙한 조종 장치를 만들기 위해 게임기인 엑스박스(XBOX)360의 패드를 이용해 팩봇을 조종하기도 한다. 전용 소프트웨어를 이용하면 게임기 패드로도 로봇을 정교하게 조종할 수 있다.
무인항공기도 대부분 이착륙 과정에서 인간 조종사가 개입한다. 프레데터가 실전에 처음 쓰였을 당시 조종사는 활주로 근처에 있는 특수 차량 안에서 조종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통신기술이 발달하면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 예를 들어 미국 본토에서 이라크에 있는 프레데터를 조종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최근 경향은 자율주행기술을 개발하는 쪽으로 흐르고 있다. 목적지를 정해 주면 스스로 장애물을 피해 길을 찾아 움직이는 기술이다. 이를 위해서는 자기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는 항법시스템, 주변 환경을 파악하고 장애물을 찾아 내는 장애물인식시스템,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가장 효율적인 경로를 결정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미국이 이 분야에서 가장 앞서 있지만, 아직 완전한 자율주행기술은 완성하지 못한 상태다.
로봇의 형태도 다양해지고 있다. 전투로봇이라는 말을 들으면 흔히 터미네이터와 같은 인간형 로봇을 떠올린다. 하지만 현재 쓰이는 전투 로봇은 기존의 무기와 모양이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손웅희 지능형로봇연구부장은 “전투 로봇은 병사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병사들이 사용하는 무기 체계를 대체하는 것이기 때문에 굳이 사람을 닮을 필요는 없다”며 “오히려 특수 목적에 맞는 다양한 형태의 로봇이 개발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보스턴 다이나믹스가 개발한 ‘빅독’은 개의 움직임을 본떠 만든 네발 로봇이다. 산악과 습지, 빙판, 계단 같은 험한 지형에서도 거뜬히 움직일 수 있다. 빅독은 몸체 안에 있는 자이로센서와 가속도센서를 비롯한 각종 센서로 몸의 자세를 파악하고 균형을 잡는다. 차량이 움직일 수 없는 지형에서 정찰과 수송 등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곤충을 흉내 낸 마이크로 로봇도 개발 중이다. 곤충 로봇은 작은 몸을 이용해 적의 눈에 띄지 않고도 정찰할 수 있으며, 좁은 틈이나 구멍을 통해 건물 안으로 잠입할 수도 있다. 팩봇을 만든 아이로봇은 고체로 된 구동부가 없는 ‘켐봇’을 고안하기도 했다. 켐봇은 전기가 흐르면 수축하는 물질인 유전탄성체를 이용해 만든 로봇으로, 필요에 따라 자유롭게 모양을 바꿀 수 있다.
게임처럼 변한 전쟁
로봇의 활약이 커지면서 전쟁의 양상도 바뀌었다. 가장 큰 변화는 병사들이 직접 전장에 가지 않고도 게임하듯이 전쟁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 게임기 패드로 팩봇을 조종하는 병사의 모습은 이 점을 생생히 보여 준다.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의 군사전문가 피터 싱어 연구원은 2009년 한 강연에서 이라크 전쟁에 참가한 프레데터 조종사의 말을 인용해 로봇이 일으킨 변화를 설명했다. 그 병사는 이라크에는 가지도 않은 채 미국에 있는 부대에서 “12시간 동안 적을 향해 사격하며 전쟁을 치른 뒤,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 저녁을 먹으며 아이들에게 숙제는 다 했냐고 묻는다”면서 전쟁처럼 느껴지지 않는 전쟁을 묘사했다. 싱어는 이런 병사를 칸막이 안에서 일하는 직장인에 빗대 ‘칸막이 전사’라고 불렀다.
병사가 전쟁을 전쟁답게 의식하지 못하는 반면 오히려 최전선과 가정은 더욱 가까워졌다. 로봇은 자기가 보는 장면을 모두 영상으로 기록할 수 있다. 인터넷으로 세계가 연결된 지금 로봇이 촬영한 전투 영상을 일반인이 여과 없이 보게 되는 일도 흔하다. 싱어는 “로봇은 전쟁과 대중을 갈라놓는 게 아니라, 둘 사이의 관계를 새롭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이런 변화로 우리가 전쟁에 무감각하게 될지, 전쟁에 대한 경각심이 커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로봇은 앞으로도 전쟁에 여러 변화를 가져올 전망이다. 로봇을 만드는 데는 원자폭탄이나 항공모함처럼 거대한 과학과 산업이 꼭 필요하지 않다. 가격도 저렴해 마음만 먹으면 개인도 충분히 위력적인 무기를 만들 수 있다. 목표까지 스스로 날아가는 작은 무인항공기에 폭탄만 달아도 멀리서 안전하게 공격할 수 있다. 이런 특성은 부대끼리 맞붙는 정규전보다는 테러 분야에서 더욱 유용하다. 로봇은 대테러 전투에도 새로운 국면을 가져올 전망이다.
로봇 공격에 대항하는 전략도 새롭게 고안해야 한다. EMP폭탄(전자폭탄)이 한 예다. EMP폭탄은 순간적으로 강력한 전자기파를 발생시켜 일정 범위 안에 있는 전자회로를 망가뜨린다. 전자회로가 망가진 로봇은 한순간에 고철덩어리가 된다. EMP폭탄은 로봇뿐 아니라 전자회로를 사용한 모든 무기에 효과적이기 때문에 개발할 수만 있다면 매우 강력한 무기가 된다.
로봇에 대항하는 또다른 무기는 해킹이다. 미래 전쟁에서는 여러 대의 다양한 로봇이 인공위성과 네트워크를 이뤄 움직인다. 따라서 해킹으로 이 네트워크를 장악한다면 적의 병력을 무력화하는 동시에 우리 편으로 만들 수도 있다.
앞으로 벌어질 전쟁에서 로봇의 비중이 점점 커질 것은 분명하다. 이원승 교수는 “우리나라의 경우 출산률이 낮아 앞으로 군대에서 활용할 수 있는 병력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에 하루빨리 로봇을 개발해 활용해야 한다”고 군사 로봇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가까운 미래에 다가올 로봇 전쟁이 전쟁과 전쟁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어떻게 바꿔 놓을까.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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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장성 출신의 이원승 KAIST 국방무인화기술특화센터 교수는 “로봇을 쓰면 수많은 병사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며 인명을 보호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적 점령지나 지뢰 매설 지역, 화생방 오염지역처럼 위험한 장소에서 작전을 펼칠 때 로봇을 먼저 투입하면 소중한 인명을 보호할 수 있다. 로봇은 사람이 오래 견디기 어려운 환경에서 꼼짝 않고 적의 움직임을 감시할 수도 있다.
세계 각국은 군용 로봇을 개발하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국은 2003년부터 미래전투시스템(FCS; Future Combat System) 계획을 시작했다. FCS에 따르면 1개 여단은 병사가 직접 운전하는 차량과 무인항공기, 지상로봇, 무인지상센서 등으로 이뤄진다.
무인정찰기는 하늘에서 적진을 감시해 정보를 지상에 전달하고, 소형지상로봇은 하늘에서 보이지 않는 건물 안으로 먼저 들어가 적의 배치를 파악한다. 나노기술, 입는 로봇과 같은 첨단 기술로 무장한 병사는 로봇이 보내는 정보를 받아 위험을 최소화한다. 무기를 갖춘 지상전투로봇은 직접 전투를 수행한다. 이들을 모두 네트워크로 연결해 신속하게 상황을 파악한다. 이스라엘, 프랑스 등도 이에 뒤따르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2005년 ‘무인전투체계’를 발표하고 다양한 군용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
군용 로봇은 크게 공중로봇, 지상로봇, 해양로봇으로 나눌 수 있다. 공중로봇은 무인항공기를 말하며 크기와 고도, 목적에 따라 종류가 다양하다. 스스로 목표를 찾아 날아가는 크루즈 미사일도 무인항공기와 원리는 비슷하지만 다시 쓸 수 없기 때문에 로봇으로 분류하지는 않는다.
지상로봇에는 바퀴를 사용한 차륜형, 캐터필러를 쓴 궤도형, 해양로봇에는 수상정형, 잠수정형, 수륙양용형 등이 있다. 초기에는 주로 정찰용이었지만, 요즘에는 전자전, 화생방 탐지, 장애물 제거, 수송 전투 등 다양한 임무를 수행한다.
미국의 아이로봇이 만든 팩봇은 어떤 장비를 장착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다. 팩봇 기본형에 폭발물제거장치를 단 팩봇EOD는 폭탄을 찾아내 제거한다. 팩봇 해즈맷은 공기를 분석해 화학물질이나 방사능물질을 조사한다. 스나이퍼 감지 장치를 장착한 팩봇은 총소리를 분석해 저격수의 방향과 고도, 거리를 알아내기도 한다. 포스터-밀러의 탈론도 여러 가지 장비를 바꿔 달면 정찰부터 전투까지 다양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부상자를 후방으로 운반하는 로봇도 등장했다. 미국의 베크나 테크놀로지가 만든 ‘베어’는 몸을 최대한 낮춰 전쟁터에서 쓰러진 부상자를 안전한 곳으로 옮긴다.
특수 임무 수행하는 다양한 로봇 등장
이와 같은 로봇은 대부분 원격 조종으로 움직인다. 병사들은 로봇이 찍어 보내는 영상을 보며 로봇을 조작한다. 간단하고 병사들이 익숙한 조종 장치를 만들기 위해 게임기인 엑스박스(XBOX)360의 패드를 이용해 팩봇을 조종하기도 한다. 전용 소프트웨어를 이용하면 게임기 패드로도 로봇을 정교하게 조종할 수 있다.
무인항공기도 대부분 이착륙 과정에서 인간 조종사가 개입한다. 프레데터가 실전에 처음 쓰였을 당시 조종사는 활주로 근처에 있는 특수 차량 안에서 조종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통신기술이 발달하면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 예를 들어 미국 본토에서 이라크에 있는 프레데터를 조종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최근 경향은 자율주행기술을 개발하는 쪽으로 흐르고 있다. 목적지를 정해 주면 스스로 장애물을 피해 길을 찾아 움직이는 기술이다. 이를 위해서는 자기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는 항법시스템, 주변 환경을 파악하고 장애물을 찾아 내는 장애물인식시스템,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가장 효율적인 경로를 결정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미국이 이 분야에서 가장 앞서 있지만, 아직 완전한 자율주행기술은 완성하지 못한 상태다.
로봇의 형태도 다양해지고 있다. 전투로봇이라는 말을 들으면 흔히 터미네이터와 같은 인간형 로봇을 떠올린다. 하지만 현재 쓰이는 전투 로봇은 기존의 무기와 모양이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손웅희 지능형로봇연구부장은 “전투 로봇은 병사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병사들이 사용하는 무기 체계를 대체하는 것이기 때문에 굳이 사람을 닮을 필요는 없다”며 “오히려 특수 목적에 맞는 다양한 형태의 로봇이 개발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보스턴 다이나믹스가 개발한 ‘빅독’은 개의 움직임을 본떠 만든 네발 로봇이다. 산악과 습지, 빙판, 계단 같은 험한 지형에서도 거뜬히 움직일 수 있다. 빅독은 몸체 안에 있는 자이로센서와 가속도센서를 비롯한 각종 센서로 몸의 자세를 파악하고 균형을 잡는다. 차량이 움직일 수 없는 지형에서 정찰과 수송 등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곤충을 흉내 낸 마이크로 로봇도 개발 중이다. 곤충 로봇은 작은 몸을 이용해 적의 눈에 띄지 않고도 정찰할 수 있으며, 좁은 틈이나 구멍을 통해 건물 안으로 잠입할 수도 있다. 팩봇을 만든 아이로봇은 고체로 된 구동부가 없는 ‘켐봇’을 고안하기도 했다. 켐봇은 전기가 흐르면 수축하는 물질인 유전탄성체를 이용해 만든 로봇으로, 필요에 따라 자유롭게 모양을 바꿀 수 있다.
게임처럼 변한 전쟁
로봇의 활약이 커지면서 전쟁의 양상도 바뀌었다. 가장 큰 변화는 병사들이 직접 전장에 가지 않고도 게임하듯이 전쟁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 게임기 패드로 팩봇을 조종하는 병사의 모습은 이 점을 생생히 보여 준다.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의 군사전문가 피터 싱어 연구원은 2009년 한 강연에서 이라크 전쟁에 참가한 프레데터 조종사의 말을 인용해 로봇이 일으킨 변화를 설명했다. 그 병사는 이라크에는 가지도 않은 채 미국에 있는 부대에서 “12시간 동안 적을 향해 사격하며 전쟁을 치른 뒤,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 저녁을 먹으며 아이들에게 숙제는 다 했냐고 묻는다”면서 전쟁처럼 느껴지지 않는 전쟁을 묘사했다. 싱어는 이런 병사를 칸막이 안에서 일하는 직장인에 빗대 ‘칸막이 전사’라고 불렀다.
병사가 전쟁을 전쟁답게 의식하지 못하는 반면 오히려 최전선과 가정은 더욱 가까워졌다. 로봇은 자기가 보는 장면을 모두 영상으로 기록할 수 있다. 인터넷으로 세계가 연결된 지금 로봇이 촬영한 전투 영상을 일반인이 여과 없이 보게 되는 일도 흔하다. 싱어는 “로봇은 전쟁과 대중을 갈라놓는 게 아니라, 둘 사이의 관계를 새롭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이런 변화로 우리가 전쟁에 무감각하게 될지, 전쟁에 대한 경각심이 커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로봇은 앞으로도 전쟁에 여러 변화를 가져올 전망이다. 로봇을 만드는 데는 원자폭탄이나 항공모함처럼 거대한 과학과 산업이 꼭 필요하지 않다. 가격도 저렴해 마음만 먹으면 개인도 충분히 위력적인 무기를 만들 수 있다. 목표까지 스스로 날아가는 작은 무인항공기에 폭탄만 달아도 멀리서 안전하게 공격할 수 있다. 이런 특성은 부대끼리 맞붙는 정규전보다는 테러 분야에서 더욱 유용하다. 로봇은 대테러 전투에도 새로운 국면을 가져올 전망이다.
로봇 공격에 대항하는 전략도 새롭게 고안해야 한다. EMP폭탄(전자폭탄)이 한 예다. EMP폭탄은 순간적으로 강력한 전자기파를 발생시켜 일정 범위 안에 있는 전자회로를 망가뜨린다. 전자회로가 망가진 로봇은 한순간에 고철덩어리가 된다. EMP폭탄은 로봇뿐 아니라 전자회로를 사용한 모든 무기에 효과적이기 때문에 개발할 수만 있다면 매우 강력한 무기가 된다.
로봇에 대항하는 또다른 무기는 해킹이다. 미래 전쟁에서는 여러 대의 다양한 로봇이 인공위성과 네트워크를 이뤄 움직인다. 따라서 해킹으로 이 네트워크를 장악한다면 적의 병력을 무력화하는 동시에 우리 편으로 만들 수도 있다.
앞으로 벌어질 전쟁에서 로봇의 비중이 점점 커질 것은 분명하다. 이원승 교수는 “우리나라의 경우 출산률이 낮아 앞으로 군대에서 활용할 수 있는 병력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에 하루빨리 로봇을 개발해 활용해야 한다”고 군사 로봇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가까운 미래에 다가올 로봇 전쟁이 전쟁과 전쟁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어떻게 바꿔 놓을까.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다가온다.
▼관련기사를 계속 보시려면?
이제는 로봇이 싸운다
스스로 싸우는 전투 로봇 가능할까
“10년 후, 로봇이 한반도 지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