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분자생물학과 유전자연구는 인류의 기원에 대해 전혀 새로운 가설을 내놓아 인류기원론에 대 혼란을 가져왔다.
그것은 진화론의 혁명이다. 일부생물학자들과 진화학자들이 고생물학자들의 통설을 모조리 뒤집어 버렸다. 우리 '호모사피엔스'는 검은 이브에게서 태어났을 것이며, 침팬지는 우리인간에게서 갈라져 나갔을 것이다.
북경의 중국인, 아프리카의 흑인, 뉴기니아의 원주민, 쿠웨이트의 아랍인, 스톡홀름의 코카서스인, 미국의 인디언들에게도 마찬가지로 그녀는 우리 모두의 할머니이다. 그렇다, 지구상의 모든 종족들은 20만 년 전 아프리카에 살았던 한 여인으로부터 유래한다. 그 검은 이브는 그녀보다 나중까지 살아 남았던 두 딸을 낳음으로써 모든 인류의 시조가 되었다. 근거없는 단정이 결코 아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의 기원에 대한 이제까지의 시나리오를 뒤집어버리고 고생물학에 의해 구축되어 있던 세계를 뒤흔들어 놓은 심각한 학설에서 말미암은 것이다.
10 년쯤 전부터 이전까지의 원칙과는 전적으로 어긋나는 과학적인 이론이 나타나 주목을 끌었으며 잠잠하던 화석 연구가들은 새로운 발견에 의해 커다란 충격을 받게 되었다. 그러한 혼란은 '엘런 윌슨'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요즈음 그는 인류의 출현이라는 신비를 벗기려는 학자들 가운데 선두주자처럼 생각된다. 그는 인류는 아프리카에서 태어났으며 또 단 한 사람의 어머니를 갖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그는 인류와 원숭이가 서로 갈라진 분기점이 언제인가에 대한 이제까지의 이론을 뒤집어 버렸다. 그는 천백만 년 전으로 이야기되던 그 분기점을 5백만 년으로 끌어 내렸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고생물학이란 일반생물학의 도움이 없으면 되지않는다고 강력히 주장하기도 한다.
생명의 발생에 대해서는 거의 다 의견이 일치하여 35억 년 전 쯤 최초로 생명체가 나타났으며, 당시에는 바다밑에 단지 녹색말류의 형태로만 존재했을 것이라 한다. 그것들은 고정된 형태로 존재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생물체를 지탱해 주는 유전물질은 불안정한 상태였다. 그러다가 필요에 의해서였건 우연이었건 간에 기후가 변화하거나 혹은 생존 환경이 변화함에 따라 DNA가 변형, 전이되고 또 그로 말미암아 새로운 형태의 생명체가 탄생하였다. 까마득히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분자구조가 바뀌어 갔으며 그리하여 차츰 복잡한 생물체가 나타나게 되었다. 드디어 7천만년 내지 7천 5백만 년쯤 전 고생물의 마지막 시기에 우리의 조상인 영장류가 나타났다. 훨씬 나중에야 영장류의 한 가지에서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나타났으며 그로부터 인간이 진화해 나왔다. 이러한 진화 체계와 인간의 출현 시기에 대한 획기적인 주장은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화석과 유골을 추적하여 연구하는 전통적인 고생물학자들은 벌써 오래 전부터 확고하게 주장하기를, 우리의 가장 먼 조상은 천만 년 내지 천오백만 년 전에 나타났던 지능이 낮고 몸집이 큰 원숭이의 한 종류인 '라마피테쿠스'였다고 했다.
프랑스의 생화학자 '에밀 쥥케르캉'과 역시 생화학자로서 노벨상 수상자인 '라이너스 파울링'은 이 문제를 깊이 연구하였다. 60 년대에 두 과학자는 여러 종류의 포유류에서 추출한 인슐린의 구조에 초점을 맞추었다. 돼지와 양, 소가 주된 대상이었다.
당시에는 그 구조가 비슷하리라 생각되었지만 그것은 빗나간 예상이었다. 세 동물의 인슐린 단백질은 똑같지 않았던 것이다.
인슐린을 구성하고 있는 상당수의 아미노산 사슬은 순서가 전혀 달랐다. 그 차이는 그 동물들이 갈라져 나왔던 시기만큼이나 컸다. 파울링과 쥥케르캉은 진화의 과정을 추적할 수 있는 효과적인 장치인 분자시계의 존재를 확인하였다. 분자시계는 생물들이 갈라져 나온 시기를 생화학적으로 추적할 수 있게 해 준 것이다.
'앨런 윌슨'교수는 "그 연구에 대한 고생물학계의 반응은 냉담했읍니다."라고 말했다. 그 분야의 최고 권위자들은 그 이론을 거부하였다. 분하긴 했지만 두 과학자는 그저 감수할 수 밖에 없었다. 나중에 윌슨 교수는 자존심이 상해서 그 이론을 면밀히 검토하려고 마음먹었다. 버클리 연구소의 동료 연구원이었던 '벵상 사리쉬'의 도움을 받아 그는 여러 동물들을 대상으로 알부민을 주로한 몇 가지 단백질의 연구를 시작했다. 그 결과 그는 '파울링'의 연구가 옳았음을 확인하였다. 종이 가까울수록 그들의 단백질이 서로 비슷하였던 것이다. 예를 들어 얼룩말과 말의 단백질 구조는 아주 비슷한데 그들은 고생물학의 입장에서는 아주 짧은 기간인 겨우 3백만 년 전에 갈라졌기 때문이다. 사람과 말의 헤모글로빈은 18개의 아미노산이 서로 다른데 이는 사람과 말이 7천만 년 전에 갈라졌기 때문이다. 말과 도마뱀의 아미노산 사슬은 64군데가 다른데 이는 그들이 3억 5천만 년전에 갈라졌기 때문이다.
그들의 연구를 토대로 생화학자들은 이제까지 아주 관계가 먼 것으로 믿어졌던 종들 사이에 긴밀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사이렌의 전설을 낳았던 바다의 포유류 바다소는 실은 코끼리와 사촌간임이 밝혀졌다.
단백질이 보여준 증거
생물학적 방법론으로 주장한 이 새로운 연대 측정가들은 인간이라는 아주 최근에 성립한 종의 발생 시기를 거슬러 추정하려 들었다. 진화학의 전문가인 '메리 클레어킹'의 도움을 받아 앨런 윌슨은 인간과 침팬지의 단백질을 비교하였다. 그 결과는 99%가 비슷하다는 것이다. 이전까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비슷하다는 것이 명확히 드러난 셈이다. 그렇다면 이 분자시계는 무엇을 말해 준 것일까? 침팬지는 고릴라와 함께 5백만 내지 7백만 년 전에 인간과 갈라져 나갔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어떻든 그보다 이전은 결코 아니다. 오랑우탕은 그보다 한참 앞인, 적어도 1천만 년 이전에 큰 줄기에서 갈라져 나갔다. 이런 주장은 고생물학자들과의 격렬한 논쟁을 야기하였다. 그들의 진화이론 전체를 뒤흔들어 놓았던 것이다. 그들은 열심히 되풀이 계산하고 화석을 면밀히 검사하고 형태적인 차이를 분석하였다. 마침내 그들은 1980년대 초반에 들어와 자신들이 오류를 범했으며 라마피테쿠스는 인간의 조상이 아니라 오랑우탕의 할아버지였음을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파리 퀴리연구소의 '베르나르 뒤트리요'와 엥세르므연구소장'쟝 드 그루쉬'도 두 종류의 침팬지와 사람, 고릴라, 오랑우탕에 대해 단백질이 아니라 염색체에 대한 연구를 통해 같은 결론에 도달하였다. 그들은 오랑우탕에게는 나머지 네 종에 나타나고 있는 다섯군데의 염색체 구조 변화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그것은 오랑우탕이 다른 네 종보다 큰 줄기에서 훨씬 먼저 갈라져 나갔다는 증거였다. 그러나 그들의 연구는 신빙성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베르나르 뒤트리요는 이렇게 말했다. "대략 1, 2백만 년마다 염색체 변화가 한 번씩 일어난다고 믿어진다. 인간이 속한 줄기에는 네 번의 변화가 있었다. 이는 생화학자들의 추정과 비슷하다." 쟝 드 그루쉬는 그의 저서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라퐁이 말한 <;종의 기원>;에 대해 각 염색체의 진화 계통도를 그려 내고 또 점차 인간과 세 원숭이들의 조상이 가지고 있었던 완전한 염색체를 재구성해 낼 수가 있었다. 그가 정확히 누구인지 그의 모습이 어떤지 어디서 살았는지는 잘 모르지만 수 백만 년 전에 살았던 우리조상의 염색체를 어느 정도 알아 낸다는 것은 생각만해도 신나는 일이다." 윌슨 교수는 동료 고생물학자들과의 논쟁에서 이겨야 했을 때를 유감스럽게 돌이켜보며 말했다. "그들은 그저 단순하게 우리가 그 짐승들과 그토록 가까운 친척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최근 들어 분자생물학은 눈부신 발전을 거듭했다. 오늘날엔 유전자를 직접 추적하는 정도에 이르렀다. 어떤 유전자들은 특히 연구가 손쉽다. 우리의 세포핵 주위를 선회하면서 세포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미세한 물질인 미토콘드리아의 유전형질이 그것이다. 그 DNA는 구조가 비교적 간단하다. 사람은 물론 그 친척간인 침팬지, 고릴라, 오랑우탕에게서도 그 DNA를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것은 네 종 사이의 유전적 차이를 잴 수 있는 훌륭한 척도가 될 것이다. 앨런 윌슨은 그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그는 놀랍게도 사람이 속해있는 가지가 고릴라와 침팬지가 갈라져 나오기 이전인 3백만 년 전쯤에 큰 가지에서 갈라져 나왔음이 틀림없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말하자면 인간이 어떤 원숭이들의 조상이라는 희한한 결론이 내려지는것이다. 두 발로 걷는 것은 영장류 진화의 마지막 단계에서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여성과 미토콘드리아
인간의 미토콘드리아는 여성들에 의해서만 유전된다. 그들의 연구는 과학계를 놀라게 하는데 그치지않았다. 각기 다른 종족에 속하는 1백47명의 여성들에게서 추출한 태반의 세포에 들어 있는 DNA의 작은 조각들을 면밀히 조사한 결과 윌슨 교수와 그의 여섯 명의 동료들은 우리 모두의 조상은 아프리카에서 태어났음을 발견하였다. 흑인, 유럽인, 아시아인, 뉴기니아 원주민, 오스트렐리아 원주민 할 것 없이 여성들은 모두 다 아프리카 여성에게서만 발견할 수 있는 유전자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윌슨 교수는 이렇게 설명하였다. "더구나 이 DNA의 돌연변이율은 1백만년에 2~4%라는 것이 알려져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인류를 낳은 한 여성으로부터 시작된 미토콘트디라의 갖가지 변화가 언제 일어났는가를 쉽게 거슬러 올라가 계산할수 있었다"
여러 차례 윌슨 교수는 인류학자들에게 엄청난 문제를 내어 놓았다. 다음과 같은 그의 이론은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던 가설을 논박하였다. 여러 종족들이 호모 에렉투스에서 갈라져 나왔으며, 호모 에렉투스는 50만 년 이전에 중국과 유럽, 오스트렐리아로 퍼져 나갔다. 50 만 년 묵은 화석으로 입증된 북경원인과 그와 사촌간인 쟈바원인등이 포함된 이 방계 종은 상당히 오랫동안 존재했었다. 그 후 그들은 아프리카에서 나온 새로운 호모 사피엔스종에게 자리를 넘겨 주었으며 이 새로운 종이 세계를 지배했다고 한다.
이처럼 앨런 윌슨은 자기와 다른 학설을 뒤흔들었기 때문에 동료들을 얻지 못했다. 스스로 그 점을 알고 있었으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도 그들은 악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고생물학자들은 수없이 자신들의 오류를 드러냈다. 그들은 그들의 계통발생수 위의 어디에다 화석을 갖다 놓아야 하는지 전혀 모른다. 발굴된 뼈는 줄줄이 새겨진 종의 이름과 함께 그저 출토된 지형에 따라 분류된 것 뿐이다."
최근 분자생물학의 '앙팡 테리블'(무서운 아이) 격인 윌슨은 또 다시 두 가지의 이론을 내어 놓아 더욱 심한 신성모독죄를 범하고 있다. 우선 그는 그의 생물학적 연대 측정 장치는 보편적임을 주장하고 있다. 다윈이 다시 무덤으로 돌아가야 할 판이다. 다윈은 어떤 우월성을 부여해 주는 돌연변이에 의해 각 종들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다른 종에 대해 우월한 자리를 차지한다가고 주장했었다. 이 원리의 유효성을 전체적으로 부인하지는 않으면서 앨런 윌슨은 두뇌의 크기가 중요한 변수로 작용함을 주장한다. '렉스프레스' 지와의 회견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조류와 포유류, 특히 영장류는 몸집에 비해 커다란 뇌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모방하고 창조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어떤 종 가운데 한 개체의 머리 속에서 모종의 혁신이 일어나면 그것은 종족들에게 급속도로 확산되어 나가며 또 그 종의 습관으로 굳어진다. 그리하여 개체의 유전적 형질은 그로 말미암아 변화한다. 예를 들면 이제까지 일어났던 가장 중대한 혁신들 가운데 하나는 동물들 특히 소와 염소를 길들인 것으로서 어른들도 덕택에 우유를 마시고 있다. 그렇게 사육이 시작되면서부터 90% 이상의 성인들이 유당을 소화시킬 수 있는 유전자를 소유하게 되었다. 그 유전자는 애초에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유전적인 형질이 변형되기에는 5천 년이 걸렸다." 뇌가 작은 개구리 등의 양서류 같은 하등동물에게는 모방하거나 창조하는 능력이없다. 그래서 그것들은 원시적인 채로 남아 있다. 그러나 인간의 경우에는 문화적인 혁신의 속도가 워낙 빨라 유전형질 속에 채 새겨지기도 전에 곧 바로 새로운 혁신이 뒤따른다. 윌슨은 "오늘날 우리는 수많은 형질변화의 독촉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성모의 이름으로 선동?
그가 제기한 아프리카의 최초의 미인이라는 주장은 신비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어서 더욱 난처한 면을 가지고 있다. 그 주장에는 전문가들에 의해 면밀히 검토되기전에 여러 사람들의 반감을 사거나 혹은 사람들을 유혹할 위험이 다분하다. 그리하여 확신에 가득찬 훌륭한 교수에 대한 맨처음의 반응은 "그토록 요란하게 성모라는 주제를 갖고 선동하는 그 뉴질랜드인은 계시라도 받은 사람인가?"라는 것이었다.
꼴레쥬 드 프랑스의 교수로서 인간 박물관 책임자를 지냈으며 직접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여러 고대 인류의 화석을 발굴해 낸 적도 있는 '이브 코팡'은 이렇게 인정했다. "처음으로 인류학과는 완전히 별개의 분야에서 인간의 기원에 대한 해답을 과감히 제시한 것이다. 더 이상 고생물학자들만의 고대 세계를 장악할 수는 없게 되었다."
유전학자들은 사람을 속인 셈이다. 황야를 파고 들어가고 철광 속을 더듬으면서 바윗돌에서 새로운 뼈조각을 찾아내려고 곳곳에서 피와 땀을 쏟고 있던 사람들로 전혀 자기 영역의 침범을 달가와하지 않았다.
케냐에서 연구하고 있던 영국의 인류학자 '루이스 리키' 부부가 1959년 인간에 속하는 것 같은데 아직 확실히 인간은 아니고 곧바로 서고는 있으나 채식을 주로 한듯한 어떤 열대 아프리카 생물의 두개골을 발견하지 않았더라면 이 모든 혼란은 아마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진잔드로푸스라고 이름붙여졌다. 계통수가 너무 간단하여 보잘 것 없었던 당시에 진잔트로푸스는 인간의 직계 조상이며 그들이 올두바이계곡의 석기제조자라고 믿어졌다. '아가다 크리스티'소설의 등장 인물들처럼 집요했던 리키 부부는 1961년 '포타슘-아르곤' 측정법이라라는 새로운 연대 측정법을 통해 그들이 발굴한 두개골을 측정해 모았다. 결과는 1백75만 년이었다. 그 떄 사람들은 인간의 기원을 발견해 낸 것으로 믿었다. 진잔트로푸스에는 '진잔'이라는 별명이 붙었고 마침내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사이에 자리를 잡았으며 나아가 자취를 감춰버린 노이세이의 가지에 놓였다. 한편 '리키'가 발견한 그 까마득히 오랜 진짜 두개골은 미국의 학자들에 의해 논란거리가 되고 유럽인들의 눈총과 멸시를 받았다.
'루시'라 이름붙여진 작은 여인-
2년뒤 '뼈다귀 소동'(bone rush)이 일어나 다들 다투어 유골을 수집하게 되었다. 유럽과 북미, 일본 등지의 대학들은 화석이 풍부한 아프리카의 계곡으로 우수한 연구원을 보냈다. 대륙의 동부를 가르는 거대한 단층에서 그들은 광물화되어 버린 지층에 접시처럼 차곡 차곡 포개어진 인간의 역사가 기적같이 떠오르는 것을 보았다. 책을 펼치는 것처럼 진화를 읽어내는 데엔 죽 포개져 있는 것들을 늘어 놓기만 하면 되었다. 이디오피아와 탄자니아에서도 그들은 무수한 조각들과 규석을 수집하고 도표를 그리고 사진을 찍었다. 턱뼈, 대퇴골, 이빨, 발굴된 석기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분석할 시간조차 없을 정도였다.
1974년 11월30일 클리브랜드의 국립역사 박물관에서 일하고 있던 젊은 인류학자 '로널드 요한슨'은 이디오피아 한 구석에서 이제까지 발견된 어떤 유골보다도 상태가 잘 보존되어 있는 키 1m 남짓한 작은 여인의 유골을 발견했다. 그녀는 2백50만 년 전 호수가 평야로 범람했을 때 물에 잠긴 뒤 그 때까지 줄곧 잠겨 있었다. 그녀는 인간처럼 똑바로 서서 걸었지만 뇌는 인간이라고 하기엔 너무 작았다. 그녀에게는 비틀즈의 노래에 따라 루시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드러나지 않은 연관성'을 찾으려는 열띤 노력은 벌써 한 세기 동안이나 계속되고 있다. 그 노력은 고생물학자들에게 자극을 주었으나 그들은 70년대 말까지도 유전학자들이 그들에게 하려는 말을 들을 시간도 의도도 갖고 있지 못했다. 인간과 원숭이의 중간 단계에 해당하는 영장류를 추적하는것은 마치 성배 찾기와 비슷했다. 새로운 뼈가 발굴될 때마다 희망에 부풀었다가 방사능 검사가 끝나면 금방 실망에 빠져버리곤 했다. 하나씩 하나씩 인류의 조상 후보들은 탈락해 갔다. 선두주자들은 프로콘술, 케냐피테쿠스, 드리오피테쿠스였다. 그러나 어떤 영장류도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두 가지의 대립된 견해가 인류학자들을 유인한다. 원시인류가 1천5백만년 쯤 전 원숭이로부터 갈라져 나왔다는 것이 하나이고, 원시 인류가 직접 원숭이들로부터 발전해 나왔다는 것이 또 하나이다.
그 마지막 단계가 언제 일어났느냐가 중요한 문제이다. 최근의 추정에 의하면 4백만 년에서 8백만 년 사이에 분리가 일어났던 것으로 생각된다. 고고학자들에 의해 파헤쳐진 흙 속에는 뼈나 돌 이외에 화석이 되어 버린 무수한 식물의 씨앗이 지층을 따라 연속해 있어서 식물계의 분포와 기후를 추정할 수 있게 해 준다. 2백만년 전과 3백만년 전 사이에 아프리카의 단층 지에는 급격한 지리적, 기후적 변동이 있었다. 그래서 단층의 양쪽은 자연 경치가 서로 다르다.서쪽의 숲은 열대림으로서 아주 무성하다. 그러나 동쪽에선 나무 사이로 잡초가 자라는 사바나가 펼쳐진다. 원시인류들은 그런 환경에 적응하거나 사라져야만 했다.
팀 화이트와 이브 코팡은 인류가 그런 환경의 변화로 말미암아 출현하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고양이과의 맹수들을 피하기위해 그 새로운 종들은 펑퍼짐한 관목 숲속에서 똑바로 서서 주위를 살피고, 또 잘 생각해 보아야 했다. 또 한데 모여 뭉쳐서 자식들을 기르고 보호해야 했다. 2백만 년쯤전부터는 해부학적응로 볼 때 그 인간적인 모습이 명확히 드러난다. 뇌수가 들어차도록 관자놀이뼈와 두정골이 발달하여 경뇌막에 관개를 해 주고 있는 듯하고 두개골 아래 부분이 변형되어 아래턱이 얼굴 안쪽으로 들어가 있으며 말하는 데 필요한 기관들도 갖추어져 있다.
환경에 의한 선택
코팡은 현재의 인류는 틀림없이 똑바로 서고 잡식성이며 편리한 생활을 추구하고 사고 능력을 갖춘 그들로부터 말미암았을것이라고 한다. 침팬지와 고릴라에 속하는 종들은 울창한 수풀 속에 남아 있었지만 우리의 조상인 원시인류는 길다란 풀로 뒤덮인 건조한 초원에서 태어났다. 그들은 사회생활을 했으며 도구를 만들고 말을 했다.
그러부터 인간은 다른 종들과 현격하게 달라져 세계를 정복해 나가게 되었다. 그러나 그 진화 과정이 어떤 경로를 거쳐서 어떤 방향으로 또 어느정도의 속도로 진행되었으며, 여러 방계 종들과의 관계는 어떠한 가에 대해 아직도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선사 인류학자들이 할 말이 많은 이 분야에 대해 생물학자들은 더 이상 크게 기여할 바가 없을 것이다. 호모 하빌리스 잔재는 그런대로 상태가 좋으며 또 고대 세계전반에 걸쳐 두루 흔적을 찾을 수 있다. 1백50만 년쯤 전 그 뒤를 이어 더욱 민첩하고 균형잡힌 호모 에렉투스라는 또 다른 인간이 나타났으며 그들은 불을 지피고 도구를 만들어 냈다. 어떤 전문가들은 오늘날의 인류가 직접 그들로부터 진화해 나왔다고 한다.
오늘날과 아주 가까운 10만 년에서 30만년전 사이에 호모 사피엔스는 본격적으로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들의 출현 과정은 현재로선 그들 이전의 원시인류의 출현 과정보다 더 불투명하다. 그러나 오늘날 고생물학자들이 흔히들 말하는 진정한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보다는 덜 불투명하다.
만약 정말 우리와 비슷한 모습을 한조상이 아프리카에서 나왔다면 윌슨의 말이 맞는 셈이다. 증거가 될 새로운 화석의 출현을 기다려 보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