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록담을 중심으로 한 한라산덩어리와 해안가에 펼쳐진 초원 그리고 3백60여개의 원추형 기생화산들은 유례가 별로없는 특이한 형상이다.
한라산(漢拏山, 1950m)은 마치 커다란 가마솥의 뚜껑을 엎어 놓은듯한 형상으로 제주도의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다.
세계에서도 드문 3백60여개의 기생화산들
한라산이 제주도이고, 제주도가 한라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제주도를 조금만 유심히 살펴보면 세가지 특징적인 지형으로 이루어져있음을 알 수 있다. 첫째로 눈에 들어오는 것이 섬의 중앙부분에서 갑자기 경사가 급해져 백록담 정상에 이르게 되는 한라산 덩어리다.
다음은 섬의 해안가에 펼쳐진 대지로서 이곳은 완만한 경사를 갖는 편평한 지세를 이루고 있다. 제주 사람들의 생화터전으로서 농원과 목장이 많은 곳이다.
마지막 하나의 특징적인 지형은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에서도 보기 힘든 것으로서 보통 기생화산(寄生火山)이라고 부르는 것들이다. 높이 1백50~2백m의 원추형 화산들이 무려 3백60여개나 산재해 있는데, 멀리서 바라다보는 이 기생화산군은 신비로운 장관을 연출한다.
동서로 80km, 남북 약 40km인 달걀모양의 제주도는 이처럼 특이한 지형으로 자연의 신비를 느끼게 해줄 뿐 아니라 화산폭발이라는 지구의 대드라마의 흔적을 생생히 엿볼 수 있게 해주는 지질학의 보고(宝庫)이기도 하다.
제주도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제주도는 전체가 화산분출물에 의해 만들어진 섬이다. 따라서 제주도는 많은 시간에 걸쳐 여기저기서 반복하여 분출된 화산 물질이 한켜한켜 쌓여서 이루어진 섬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은 야외에서 수십층의 용암이 포개져서 쌓여 큰 화산덩어리를 이루고 있는 모습을 실제로 관찰하면서 확인할 수 있다. 남쪽 해안가 절벽에서도 여러층의 용암이 반복해서 덮혀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제주도 전체모습에서 보이는 지형적인 특징, 즉 해안가의 편평한 해안저지대, 섬 중앙의 한라산덩어리 및 기생화산군 등은 대체적으로 제주도의 형성과정을 암시하는 것이다. 즉, 섬의 전체적인 외형을 보이는 해안저지대가 형성되고 그후 중심분야에서 한라산덩어리가 만들어지면서 최종적으로 기생화산의 지형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할 수 있다.
마그마의 점성도가 다양한 지형을 만들어
그러면 어떻게 어느 화산은 편평한 대지의 지형을 만들고 또 어느 화산은 경사가 급한 화산체를 만들게 되는가?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제주도의 어떤 화산은 분출물이 편평한 대지의 지형을 만들고 또 어떤 화산은 한라산덩어리, 원추형의 기생화산 또는 종모양의 용암돔을 만들었다. 즉, 화산마다 그 활동하는 모습이 제각기 다른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 화산마다 활동모습을 서로 다르게 하는 요인은 무것일까? 이 문제는 화산학자들에게는 매우 흥미있는 문제거리였다. 그러나 이 의문은 마그마의 화학성분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면서 그 열쇠가 마그마의 점성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점성은 유체가 운동할 때 나타나는 성질로서 유체의 내부마찰을 일의는 성질이라고 정의할 수가 있다. 끈끈한 타르와 같이 점성도가 극히 높은 유동체는 내부마찰이 크기 때문에 흐름이 극히 완만할 수 밖에 없다. 반면 물과 같이 점성도가 높지 않은 유동체는 그 흐름이 수월하고 원활하다. 이것은 그 내부에 있는 입자 하나 하나가 대부분 서로간에 거의 마찰을 일으키지 않고 쉽게 통과해가기 때문이다.
마그마속에 가장 많이 함유되어 있는 성분은 실리카(이산화규소)이며 지질학자들은 지각물질이 무게로서 50% 이상이 실리카로 조성되어 있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또한 실리카는 대부분의 암석과 모든 마그마의 기본적인 조성성분이다. 마그마에 대한 계속적인 연구는 마그마에 실리카가 얼마나 함유되어 있는가에 따라 마그마의 점성이 결정됨을 알았다. 즉 실리카함유량이 많으면 많을수록 마그마의 점성은 높아진다.
그리고 실리카가 혼합물의 70% 내지 그 이상을 차지하게 되면 그 마그마의 농도는 높아서 끈끈한 풀같이 된다. 이런 마그마로부터 형성된 암석은 많은 장석과 석영을 함유하기 때문에 규장질마그마라고 부른다. 반면 실리카 함량이 50% 이하인 마그마는 그 함유량이 60%, 70%인 마그마보다 점성이 낮아 더욱 더 물과 같은 성질을 갖는다. 이런 마그마는 그 형성하고 있는 광물의 성분인 마그네슘과 철을 의미하는 고철질마그마라고 불리운다.
점성은 또한 온도의 변화에 의해서도 혹은, 마그마속의 개스나 주위의 암석 또는 커다란 결정체의 파편 등 고체물질이 함유된 경우에도 영향을 받게 된다.
이처럼 마그마의 실리카 함유량, 마그마의 온도 또는 함유되어 있는 개스의 양 등에 의해 점성의 차이가 있음이 밝혀짐에 따라서 각 화산마다 활동하는 모습이 저마다 다른 이유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제주도의 경우, 경사도가 각각 다른 화산지형을 이룬 것은 그 지형을 이룬 마그마용암의 점성도가 달랐기 때문임을 짐작할 수가 있다. 즉 해변가의 해안저지대를 만든 화산의 용암은 그 점성도가 매우 낮아서 물과 같이 자유롭게 흘러 넓은 화산지대를 만들었을 것이다.
반면 한라산 덩어리와 같이 경사를 가진 화산체는 여러번의 분출물이 쌓여져서 이루어진 것이지만 이때에 용암의 점성도는 해안지대를 이룬 용암의 점성도보다는 컸을 것이다. 그래서 주로 한라산 주변에 쌓여서 어느 정도의 경사도를 가진 산덩어리를 만들었을 것이다.
특히 한라산 정상의 백록담부분은 경사가 매우 급하다. 이것은 백록담화구를 이루고 있는 용암이 점성도가 매우 커서 분출후에 얼마 흐르지 못하고 마치 돔형태로 화구부분을 메웠기 때문이다. 이러한 광경은 한라산 정상 부분의 절벽을 이루고 있는 여러곳에서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영실절벽, 왕관절벽, 천왕사 부근의 구십구 계곡 등이다. 제주도 남해안에 있는 산방산 범섬 숲섬 문섬 등도 점성이 높은 용암의 분출로 이루어진 경사가 급한 돔 지형의 예가 된다.
한편 기생화산은 대부분이 화산쇄설물(부스러기)로 이루어졌다. 이 화산쇄설물은 화학성분으로는 해안저지대를 이루고 있는 용암의 성분과 유사하다. 그러나 지하내에서 지표로 분출하기 전에 마그마내에 개스물질이 많이 함유되어 폭발을 하면서 분출하였기 때문에 부스러기 상태의 물질로 된 것이다.
이와 같이 제주도에서 화산지형의 여러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은 화산활동 방법이 저마다 달랐기 때문임을 암시한다. 그리고 화산활동방법을 저마다 다르게 한 요인은 마그마(용암)의 성분 즉 점성오의 차에 의해서 좌우됨을 알 수 있다.
최소한 75만년전부터 분출시작
지질학자들은 지구의 역사와 그 연령을 밝히기 위해서 여러가지 궁리를 하였다. 그 중 하나로서 지표를 이루고 있는 암석이 액체 상태에서 굳은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했다. 이러한 노력은 19세기말 프랑스의 '베크엘'이 자연계에서 일정한 양으로 스스로 붕괴하는 방사성 원소를 발견함으로써 그 결실을 보게 되었다. 암석속에 있는 방사성 원소의 연구는 훌륭한 지질시계의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용암내에 들어있는 방사성 원소를 이용하여 용암의 연령을 측정할 수 있다. 다행히도 제주도의 용암의 연령이 이방법으로 몇개 측정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제주도 화산이 적어도 언제 활동을 시작했는지를 말할 수 있다.
남쪽 해변가에 있는 산방산의 용암은 약75만년의 연령을 나타내고 한라산 정상의 백록담 용암은 약 2만5천년의 연령이 나온다. 물론 더 많은 용암의 연령을 측정하여 보면 위의 연령과 다른 것이 많이 나올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두 용암의 연령값을 가지고 제주도의 화산활동이 언제 있었는지에 대해서 적어도 몇가지는 이야기할 수가 있다. 그 하나는 제주도의 화산이 적어도 75만년전부터 분출을 시작하였으며, 약 2만5천년전까지 활동이 있었음을 말할 수 있다.
그리고 75만년의 연령을 보이는 산방산용암이 해수면 바로 위에 있는 것이므로 최초의 화산활동은 75만년 전보다 훨씬 전일 것은 확실하다. 제주도의 최고봉인 백록담용암의 연령이 약 2만5천년을 보이므로, 제주도의 현재와 같은 전체 모습은 약 75만년 ~ 2만5천년 사이에 만들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제주도는 화산분출물이 한겹한겹 쌓여서 이루어진 섬이기 때문이다.
현재와 같은 제주도의 모습이 완전히 만들어진 후에도 화산활동이 역사시대(1002년, 1007년)에 있었던 기록이 고문헌에 있다.
위와 같은 사실은 제주도는 한반도에서 울릉도 독도 추가령지구대의 현무암 및 백두산 등과 함께 가장 젊은 세대에 속하는 지질임을 알려준다.
1백km 지하에서 솟아오른 마그마
20세기에 들어와서 화산에 대한 중심적인 의문은 화산 자체의 활동보다는 오히려 지구중심부에 있는 화산의 근원에 관한 것이었다. 즉 화산분출물인 마그마가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지며, 또 그것이 어떻게 지구표면까지 운반되는가 등이었다.
지구내부에서 마그마가 생성되는 정확한 구조는 여전히 수수께기로 남아 있으나 그 이론적 필요조건은 잘 알려져 있다. 마그마란 지구내부의 물질이 부분적으로 녹아 지표로 나온 것이다. 그런데 지구내부의 물질이 녹기 위한 조건으로는 온도상승, 압력감소 혹은 용융점을 저하시키는 어떤 구성물의 첨가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조건이 만족되어 그곳의 물질을 녹일 수 있게 되었을 때 마그마가 생성되는 것이다.
지진파 연구는 지표로부터 1백km에서 3백20km 사이에 지진파의 속도가 저하되는 저속도층이 있음을 밝혔다. 그리고 이 저속도층은 중앙해령, 대륙의 지구(地溝), 그리고 잠입해구 근처에도 있으며 그곳에서는 그보다 훨씬 얕음을 알았다.
이러한 현상은 아마도 이 층에 있는 암석이 앞에서 지적한 3요인중 어느 것이 만족돼 용융점에 가까와져서 부분적인 용융이 일어난 곳일지도 모른다. 지구과학자들은 이러한 곳을 마그마의 생성장소로 생각하고 있다.
그렇다면 제주도의 마그마는 적어도 1백km 이하에서 그곳의 물질이 부분적으로 녹아 만들어진 것일 게다. 지구심부에서 부분적으로 녹은 물질은 액상이므로 주위의 암석보다 상대적으로 가볍고 부력이 있어 점차적으로 모여 거대한 마그마덩어리를 만든다. 맥상의 마그마덩어리는 그 크기가 커지면 더욱 위쪽으로 상승하기 쉽게 된다. 그래서 지표로 올라오는 도중에 지각과 맨틀의 경계 부분인 약 30km 깊이의 지역에서 일단 머물게 되어 그곳이 마그마저장소가 된다. 그후 그곳에서 마그마는 순차적으로 지각의 약한 틈을 따라서 지표까지 나오게 된다. 그러는 사이에 마그마저장소는 심부에서 다시 공급된 마그마로 채워지게 된다.
마그마가 저장소에 채워지는 동안은 화산활동이 잠깐 뜸할지도 모른다.
이러한 일련의 지구내부에서의 대드라마를 우리는 제주 화산도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최상의 지질학 야외연구실
한마디로 화산은 지구의 내부에서 지표면으로 통하는 창구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화산의 분화야말로 지표면의 자연현상중에서 가장 장엄하고 아름다운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화산의 분화는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많은 물질을 지구내부로부터 운반하여 지구표면의 모습을 계속 바꾸어온 근원이 되었다. 또한 분화구의 지표에 쌓인 화산재는 바로 비옥한 토양이 되어 인류의 삶의 터전을 제공해주기도 하였다.
화산에서 분출하는 물질은 지구상의 생명체의 생존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서기79년에 있었던 폼페이의 비극은 인간에게 재난을 가져다준 예이다. 이처럼 화산은 아름다움과 두려움을 함께 안겨주는 두 얼굴을 가진 자연현상으로 인간사회와 밀접하게 얽혀있다.
지구상의 대기권 수권 생물권 등은 지구가 생성된 이후 계속해서 화산활동의 영향을 받으며 변해왔다. 화산학자들은 지구상의 생물권내의 원소들의 많은 부분은 그 근원이 화산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사실 지구상의 대기권과 수권의 중요한 근원은 화산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뭏든 화산으로부터 분출된 물질은 지구내부의 상태를 엿보려는 사람에게는 더없이 좋은 연구대상이 된다. 이런 의미에서 화산은 지구내부로 통하는 유일한 창구가 되는 셈이다.
이런 까닭에 지구과학자들은 화산이라는 창구를 통해서 지구내부를 살펴보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제주도는 화산이 분화할 때의 모습이 그대로 많이 보존되어 있어서 화산학자에게는 더 없이 좋은 야외연구실이 되고 있다.
그 좋은 예가 송악산의 경우이다. 제주도의 남쪽 모슬포에서 서귀포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유명한 산방산과 산방굴사가 있어 관광지로 돼있다. 이곳에서 남서쪽을 바라다보면 송악산이 눈에 들어오는데, 지구과학자들은 송악산을 주목하고 있다.
즉, 송악산에도 제주도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화산분화구가 있는데, 특이하게도 그 분화구에서는 식물이 자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학자들은 이로 미루어 아마도 송악산이 가장 최근에 있었던 화산활동의 결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아직 식물이 자랄 수 없으리라고 생각하고 있다. 따라서 이 지역일대를 보호지구로 지정해 원형을 보존하고 학자들의 연구대상으로 널리 활용할 수 있는 조치가 시급하다고 하겠다.
마지막으로 한라산일대를 중심으로 하는 제주도의 동물상을 살펴보면 곤충류가 1백37과 8백73종, 거미류와 다족류가 27과74종, 척추동물은 아종까지 포함하여 양서류 8종, 파충류 8종, 조류 1백98종, 포유류 17종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