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연 다큐멘터리를 보면 사자나 치타 같은 맹수가 얼룩말이나 영양 같은 초식동물을 잡아먹는 약육강식의 장면들이 종종 나온다. 동물들의 먹고 먹히는 관계를 흥미롭게 다루지만 실은 자연생태계가 순환되는 과정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보다 훨씬 작은 곤충의 세계에서도 먹고 먹히는 생존경쟁이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다. 최근에는 곤충의 약육강식 생태가 우리의 밥상을 안전하고 건강하게 지키는 데 활용되고 있다.
천적, 해충 생길 때 방사해야
먹이사슬에서 보면 풀 또는 나무는 생산자, 이것을 먹고 사는 진딧물과 같은 곤충은 1차 소비자, 진딧물을 먹고 사는 무당벌레(포식자)나 진딧물에 기생하는 진디벌(기생자)은 2차 소비자다. 극소수이기는 하지만 2차 소비자를 포식하거나 몸속에 기생하는 3차 소비자도 있다.
곤충의 세계에서 ‘천적’은 1차 소비자인 초식성 곤충을 먹이로 살아가는 곤충을 말한다. 무당벌레 같은 포식자, 진디벌과 같은 기생자가 그들이다. 또 곤충에 감염해 병을 일으켜 죽게 하는 곰팡이, 바이러스와 같은 병원성미생물들도 엄연히 천적에 들어간다.
사람 사는 주변에 파리나 모기가 들끓듯이 딸기, 토마토, 고추 등 작물을 재배하면 여러 종의 해충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이 녀석들은 작물의 양분을 빨아먹어 말라죽게 만들거나 식물 병을 옮겨 병에 걸려 죽게 한다. 수확한 농산물의 품질을 떨어뜨려 가격을 제대로 받지 못하기도 한다.
이러한 해충들의 종류는 진딧물류, 가루이류, 응애류, 총채벌레류, 잎굴파리류, 작은뿌리파리류, 나방류 등 다양하다. 크기는 나방류(4cm 내외)를 제외한 대부분이 0.4~2mm 정도다. 이렇게 작은 벌레들이 작물에 막대한 피해를 일으키고 있다. 비닐온실에서 농작물은 6~10개월 동안 자라면서 해충에 시달린다. 이런 해충을 방제하지 않고 농사짓기는 불가능하다.
지금까지 해충방제는 화학농약인 살충제를 살포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우리나라 비닐온실에 살포되는 살충제 비용은 2006년 한해에만 2,766억 원에 이르렀다. 살충제는 해충 방제를 목표로 살포하지만 해충 몸에 닿는 양은 1%뿐이며 나머지 99%는 원치 않은 다른 곳에 뿌려진다. 그 결과 토양이나 지상부에 있는 수많은 생물들을 죽인다. 해충의 자연 천적들도 치명적 영향을 받는다. 게다가 농작물에 남아있는 잔류농약을 사람이 먹을 수도 있다.
천적에 대한 연구는 서양에서 100년 전부터 시작했고 현재까지도 많은 과학자들이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특히 농업해충 방제를 위해 자연적 메커니즘을 농장에 도입하는 연구가 활발하다. 천적을 미리 대량으로 사육해 해충이 발생한 농장에 방사하면 퇴치하려는 해충만 죽일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을 ‘생물적 방제’(biological control)라고 한다.
해충은 천적들에 의해 밀도가 줄거나 없어질 수 있어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도 농사를 지을 수 있다. 그러나 해충의 밀도가 아주 높을 경우에는 천적으로 방제하는 데 한계가 있으므로 저독성 살충제를 함께 써야 한다. 따라서 효과적인 생물적 방제를 하려면 해충발생 시작점에 천적도 같이 있어야 한다. 사람이 인위적으로 시점을 맞춰 방사시켜주는 이유다. 그러나 자연 상태에서 천적출현은 해충 피해가 많이 나타난 이후에 발생하는 경향이 있다. 자연의 섭리만 기다렸다가는 농작물이 초토화된 뒤일 것이다.
생물적 방제에 활용되는 천적은 기능에 따라 3가지로 나뉜다. 먼저 기생성 천적으로 생활주기의 대부분 또는 일부분동안 기생 생활을 하며 결국 기주(해충)를 죽인다. 주로 기주의 체표면 또는 체내에 산란된 알은 기주의 영양분을 먹고 유충 또는 번데기 단계까지 발육해 성충이 된다. 여기에는 기생벌, 기생파리가 속한다.
다음으로 포식성 천적은 해충 또는 다른 곤충류를 먹고 산다. 영양을 잡아먹는 사자처럼 먹이가 되는 곤충보다 덩치가 크고 힘도 세다. 생활사의 형태는 일반 곤충과 같으나 애벌레시기에만 포식성을 나타내는 종류와 애벌레부터 성충까지 모든 발육단계 기간에 포식성을 나타내는 종류로 나뉜다. 칠레이리응애, 진디혹파리, 무당벌레, 풀잠자리, 포식성 노린재류 등이 있다.
끝으로 곤충병원성 미생물 천적은 병원성 세균 또는 포자로 해충의 먹이나 체표면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체내로 침입하고 독소를 분비해 기주의 조직을 파괴한다. 체내 영양성분을 이용해 급속도로 증식하면서 결국 해충을 죽인다. 곤충병원성 세균, 바이러스, 사상균 등이 대표적인 천적 미생물이다.
진딧물 머미, 1마리에 40원
진딧물은 대표적인 해충이다. 농장에서 진딧물은 꼭 잡아내야 하는 벌레다. 그런데 진딧물을 천적으로 전환시키면 1마리 가격이 40원인 ‘상품’이 된다. 진딧물 2500마리면 10만원으로 금 3.75g 가격과 맞먹는다. 해충이 어떻게 천적으로 변할까?
물론 40원짜리 진딧물은 그냥 진딧물이 아니다. 진딧물 몸속에서 기생벌의 애벌레가 양분을 다 먹고 나면 번데기가 된다. 이때 진딧물은 외견상 갈색 또는 검은색 형태의 껍데기만 남게 되는데 이것을 ‘머미’(mummy)라고 한다. 기생벌 종류의 천적은 대부분 머미 속의 번데기 상태로 농가에 공급된다.
천적을 공급하는 회사는 농부와 반대되는 일을 한다. 농부는 해충을 잡아내는 데 주력하지만 천적회사는 해충을 잘 키워내야 천적을 많이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mm 크기의 콜레마니진디벌 암컷 1마리가 평균 400여 마리의 머미를 생산할 수 있다. 이렇게 생산된 살아 있는 천적을 받으면 농가는 즉시 천적을 온실에 방사시켜야 한다. 만일 잊어버리고 수일을 그냥 두면 천적이 포장용기 안에서 모두 죽기 때문이다. 천적을 방사시키는 요령은 매우 간단하다. 천적이 묻어 있는 종이카드를 일정간격으로 농작물에 걸어주면 그것으로 천적방사는 끝난다. 반면 농약은 2명이 함께 마스크나 방독면을 착용하고 우비를 입고 몇 시간을 살포해야 한다. 농약의 위험성 때문에 어른들만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천적방사는 아무런 보호 장비 없이 안전하게 어린이도 할 수 있다.
천적들의 수명은 대부분 2주 내외이고, 무당벌레는 2~3개월 산다. 수명이 다하기 전 해충들을 열심히 잡아먹거나 기생시켜 자손들을 계속 번식시켜 놓는다. 방사된 머미 한 마리에서 나온 기생벌은 평균 400여 마리의 진딧물에 알을 낳아 그 만큼의 머미가 만들어진다.
이렇게 천적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 생태계가 교란되지 않을까. 다행히 천적은 먹이가 특별히 정해져 있다. 예를 들어 잎굴파리고치벌은 해충인 아메리카잎굴파리의 애벌레만 공격한다. 다른 벌레는 절대 공격하지 않는다. 무당벌레는 진딧물을 가장 좋아한다. 만일 진딧물이 없다면 다른 해충을 일부 먹을 뿐이다. 다시 말해 천적별로 먹이 대상이 되는 해충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해충이 없어지면 천적도 굶어 죽는다. 정해진 자기 먹이 이외에는 잡아먹는 일은 좀처럼 없다. 이러한 것을 먹이에 대한 ‘기주특이성’이라고 하며, 이것 때문에 생태계가 균형잡힌 안정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천적이 해충을 없애거나 줄이기까지는 시간이 다소 걸린다. 보통 2주~1개월이 지나야 한다. 이 기간은 천적의 생활사가 1~2회 순환되는 기간을 의미한다. 반면 살충제 농약은 살포하는 즉시 해충이 죽어가는 모습을 눈에 보게 돼 ‘즉시 방제’라는 심리적 만족감을 한껏 주는 대신 그에 수반되는 부작용을 감수해야 한다.
이와 같이 생물적 방제는 농민의 건강을 지켜주고, 육체노동을 줄여줄 뿐만 아니라 안전한 농산물을 생산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더 나아가 농약 남용으로 오염된 토양과 하천의 수질을 살려내 생태계를 복원시켜 주는 친환경 농법으로 공익적 기능도 매우 크다.
영국에서는 1926년 해충방제에 천적을 사용한 적이 있다. 유럽의 국가들은 40년 전부터 안전한 농산물을 생산하기 위해 온실에 천적을 활용하고 있다. 오늘날 온실에서 천적 사용률은 95~100%에 이른다. 반면 우리나라는 2003년부터 천적이 상업화 되면서 농가에 보급되기 시작했다. 현재 국내온실재배 면적 중 천적을 사용하는 비율은 약 2%에 불과하다. 앞으로 생물적 방제가 널리 보급돼 ‘천적이 지켜낸 안전한 농산물’을 주위에서 쉽게 만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