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기념관 건축 「졸속은 금물이다」

독립기념관 화재 계기로 알아본다

기념관은 시대정신을 반영해야 될뿐더러 방재대책이 철두철미하게 마련돼야 한다. 국민적 합의, 설계, 시공까지 미국 독립기념관은 1백여년이 걸렸다.
 

화재가 난 독립기념관 본관


독립기념관 화재사고는 우리 모두에게 깊은 충격과 분노를 안겨 주었다. 1982년 2월 독립기념관 건립발표 때 보여주었던 국민들의 성원과 열의 이상으로 이번 화재에 관심이 쏠려있다.
 

이는 그당시 기념관 건립에 쏟았던 국민들의 정성어린 성금의 액수보다 훨씬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독립기념관 화재 현장


기념관은 시대의 반영물
 

기념관은 단지 시각적 효과만을 고려하는 일개의 물리적 상징성(physical simbol)만을 갖춘 조형물은 아닌 것이다 .건축물은 그 사회의 건축생산기술, 건축자재의 이용도, 건축물에 특정한 이미지를 부여하려는 건축가의 창의성 등이 내포되어 있는 사회 생산력수준의 산물이며, 사회의 지배적 이데올로기를 건축적 창작과정을 통해 구현하여 그 시대를 내비추어 보이는 반영물인 것이다. 독립기념관도 우리사회의 소산이기 때문에 이와같은 인식의 범주에서 포착될 수 밖에 없다. 굳이 양식상의 범주로 분류한다면 후기 근대주의(Lata-modernism)혹은 신근대주의(Neo-modernism)라고 불리우는 경향속에 독립기념관을 포함시킬 수 있다.
 

이 점에서 덧붙혀야 할 것은 독립기념관은 전통건축을 현 시대에 재창조하려는 노력을 기울인 건축물이라는 것이다. 건물의 축을 궁궐이나 사찰건축물에서 발견할 수 있는 1차축을 본떠 만든 점이나, 탑과 광장을 지나 본관건물에 접근할수록 건물의 상승효과와 공간의 점이성(Sequence)을 부각시키려 한 점에서 엿볼 수 있다.
 

또한 독립기념관 건물은 도시내에 무수하게 세워진 빌딩들과 건립의 목적을 달리한다. 높이 치솟아오르는 많은 건물들이 차액지대의 증대만을 주요목적으로 고려된다면, 독립기념관 건물은 국민들의 성금에 의해 애초부터 국민계도의 장으로 이용하려고 구상되었다. 건립의 배경을 달리하고 그 목적이 다른, 기념관 건축물 등장의 사회적 배경을 일반론적인 근거에 기초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기념관적 성격을 갖는 건축물이 사회적 기반을 갖고 근대사회에서 기능의 일익을 담당하며 제도적으로 보장받는 것은 근대적 국가체제의 확립과 함께라고 할 수 있다.

 

 

3가지의 주요기능
 

기념관 건축물의 고유한 기능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자료를 수집·정리하고 보존·관리한다(수집·보관). 둘째 자료의 가치를 존중하고 연구를 한다(조사·연구). 셋째 자료를 공개하고 교육한다(공개·교육). 그러나 위 3가지 기능이 기념관 건축물의 전부는 아니다. 자료를 모아서 연구하고 전시 보존하는 것은 인간의 사회생활과 더불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기념비적 건축물이 상대적으로 독립된 목적과 기능을 가지고 등장한것은 인간이 물질에서 자립되고 독립된 관계로서 해방되어지는 것이 가능했을 때 부터이다.
 

자립된 인간이 물질과 분리되어 상호독립하는 대응관계는 근대와 더불어 시작되었다. 이는 바로 인간이 물질과의 신비적관계에서 해방되고 역으로 그것을 인식하는 인간이 사회적인 계획성을 가지고 조직화하는 결과를 낳게된다.
 

흔히 전체주의국가에서 사람을 압도하는 웅장한 기념비적건축물의 출현과 개인을 우상화하는 유품의 전시를 통해 사회구성원의 통일된 조직화를 기하는 노력을 목격할 수 있다.

 

1세기에 걸친 미국독립기념관
 

기념관 건축물은 그 성격에 따라 크게 2가지로 대별할 수 있다. 전시를 위한 기념관과 기념비적인 기념관이다. 전시를 위한 기념관으로 대표적인 것은 멕시코 인류학기념관, 이스라엘 유태인 기념관을 꼽을 수 있다. 기념비적 기념관으로는 인도네시아 독립기념관, 프랑스 레지스탕스 기념관, 미국독립기념관, 대만의 중정기념관을 열거할 수 있다.
 

독립기념관 건립에 가장 오랜 시간을 소요한 것으로 유명한 것은 미국의 독립기념관이다. 기념관 건립과정에서부터 완공에 이르기까지 1백년이란 긴 세월을 소요했다. 건립을 결정한 때가 1783년이었고 여러 설계대안을 가지고 논쟁을 벌이며 최종결정을 하기까지에만도 15년여의 기간을 소모했다.
 

또한 건물을 짓는동안에도 건축계획을 여러번 수정하여 시간이 더 소요됐다. 높이 1백50피트의 이 기념탑이 완공된 것은 1885년이고 그로부터 일반에게 공개된 것은 3년이 지난 1888년이었다. 장장 1세기에 걸쳐 설계에 관한 국민적인 논쟁을 거친 이 기념관은 완공 후 아무런 하자보수없이 5백 55피트 높이의 하얀대리석을 자랑하며 워싱턴의 역사적 명소가 되었다.
 

선조들의 많은 유품, 예술품들을 보관, 관리 전시하는 기념관들을 건립에서부터 운영까지 안전관리에 가장 많은 예산과 노력을 투입하고 있는 나라는 프랑스이다. 10여년의 공사 끝에 1977년에 개관한 퐁피두 센터는 건물보존 기준이 까다롭고 시설관리가 철저하기로 유명하다. 이 건물의 실내온도는 섭씨 20도, 습도가 45~55%를 항상 유지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자유중국은 장개석총통의 중정기념관을 지어 미국의 워싱턴, 제퍼슨, 링컨 기념관이나 심지어 인도 타지마할묘와 견줄만하다고 자부하고 있다. 4년 6개월여의 기간을 걸려 완공해서 1980년 4월에 개관했으나 한 건의 화재사고도 없었다.
 

스페인의 경우는 1936~1939년까지 4년간 계속된 내전에서 희생된 총 1백만명의 희생자묘지 건립을 국가적인 사업으로 추진해서 17년만에 완성시켰다.

 

무리한 공기는 화를 부른다.
 

독립기념관 화재사고는 무자격 전공의 실수로 돌려지고 있다. 그러나 권한과 책임이 없는 미숙한 기능인의 탓으로 돌리기에는 엄청난 화재이다. 그 건물의 시공과 설계감리및 건립에 관계하는 책임질 수 있는 사람들의 감독소홀과 안일에 책임의 화살을 돌려야만 하겠다. 오히려 단순한 전공의 실수에 앞서 내실없는 겉치레와 업적위주의 무리한 공기단축이 화를 불러들였다고 할 수 있다. 간략하게나마 단순 전기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살펴보겠다.
 

전기로 인한 화재 사고는 누전과 합선, 과부화와 과전압으로 구분된다. 독립기념관의 천장은 1백10V를 사용하여 천장을 간접조명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러나 독립기념관의 전기설계는 3상4선식으로 3백80V와 2백20V가 들어오게 되어 있었다. 즉 1백10V전구에 3백80V를 연결하여 화재가 발생했다면 과전압이나 단락현상이 생겼다고 볼 수 있다.
 

단락현상은 필라멘트가 녹아붙어 과전류가 흘러 전선에 열이나서 피복이 탈 정도라면 그 이전에 휴즈가 끊어지므로 대형화재는 불가능하다. 과전압 현상은 규정치보다 큰 전압이 흘러들며 전구 필라멘트가 끊어지고 아르곤에 의해 방전되면서 스파크가 일어나 전구가 터지고 불똥이 튀는 경우이다. 이때에도 인화성물질이 닿아야 화재가 발생하게 된다. 그렇다면 화재원인은 전기보다는 현장에 있었던 발화성 물질이라고 볼 수 있다. 과전압으로 불똥이 튀긴 주위에 착화하기 쉬운 개스나 가연성물질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예를들면 천장을 단청할 때 신나와 같은 발화성 개스가 증발된 상태로 남아 있을 수 있고, 방수를 위해 바른 콜타르 등에서도 발화하기 쉬운 개스가 발생, 천장에 차있다가 전구가 터지며 튕겨져 나간 불똥이 바로 이 가연성 개스에 불을 당겼을 가능성을 점쳐볼 수 있다. '펑'소리는 바로 이 개스에 불이 붙었을때 난 것으로 볼 수 있다.
 

독립기념관 사고원인을 몇가지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보조 조명용 1백10V회로를 강압기를 통하지 않고 3백80V동력을 전원에 직접연결한 배선잘못을 사고의 첫번째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배선잘못으로 발생한 불이 큰불로 번진 원인으로는 가연성 내장재 사용을 지적할 수 있다. 천장에 설치한 40여개의 아이빔에 가연성 FRP를 입혔고 거기다 천장표면에 송판과 루핑 등을 깐 것이 큰 불로 번진 것으로 보여진다. 높이 45m, 길이 1백26m, 폭 67m에 달하는 기념관과 같은 대형건축물의 천장에 설치한 아이빔에는 화재를 위해 콘크리이트하거나 시멘트를 입혀야 하는데도 이같은 가연성 물질을 설치한 것은 건축상식에 어긋나는 일이다.
 

다음으로 지적할 수 있는 근본원인은 무리한 공기단축이라고 할 수 있다. 총 면적 1백21만평, 연건평 6천5백25평, 전시관 6개 동 원형극장및 15동의 부속건물이 포함돼 있는 동양최대의 건축물 건립을 3년미만에 끝내려한것 자체가 무리였다.
 

외국의 기념관 건물에서보듯이 최소한도 5년이상의 공기와 긴 세월의 토론과정을 거쳐 결정한 예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애초에 흙기와를 덮기로 설계됐으나 철골구조가 기와의 무게를 오랫동안 버틸 수 없다는 공학적 판단으로 건설 도중에 동기와로 설계변경했음에도 설계변경에 뒤따르는 후속조치를 취하지 않고 공기를 단축해 야간작업까지 감행시킨것은 화를 자초한 것이나 다름없다.

 

화재는 문화재의 천적
 

독립기념관 화재에서 보여지듯이 화재에 대한 대책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화재는 문화재를 소멸시킨다는 점에서 가장 치명적인 재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화재에 대비한다는 일은 발화의 원인이 된다고 보여지는 불씨의 불완전한 뒷처리라든지 누전, 자연발화 더 나아가서 방화 등 최악의 사태까지 전제로 하여 불연성 자재를 사용하여야한다. 특히 화재의 위험이 많은 공작실이나 창고, 겨울철의 난방 문제에 유의하여야 한다. 불행한 경우에 대비해서 각 평면을 분명하게 구획하는 것도 방재의 중요한 요건이 될 수가 있다.
 

또한 소화를 위한 기구도 갖추어야 하나 유의할 점은 스프링클러나 화학용액의 사용은 피해야 한다. 물이나 화학용액에 의한 화재의 진압은 자료에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시품이 있는 전시실에는 액화개스로 소화시설을 마련하고, 수장고에는 이산화탄소개스, 할론개스의 자동설비가 적당하리라 보여진다. 또한 전기화재는 할로겐 개스 등으로 소화하지만 독립기념관 화재처럼 전기화재가 목재나 강화플라스틱에 불이붙는 일반화재로 발전한 경우에는 스프링클러와 같은 일반 소방시설도 필요하다.

 

양식과 재료의 불일치
 

앞에서도 밝혔듯이 독립기념관 건립은 단순히 건립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9백여 차례나 국난을 겪은 우리나락 외국의 지배를 받지않기 위해 민족적각성이 절실히 요구되는 싯점이기 때문일 것이다. 건물양식 또한 전통건축의 형태(form)를 구현하려고 신경을 썼다. 그러나 형태나 조형적인데만 신경을 썼지, 건축내부설비에는 등한히 한 흔적이 역력하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스타일은 전통건축양식을 따랐으나 각 부분은 철물, 플라스틱 등의 일반적인 건축재료를 사용하여 양식과 재료의 불일치를 안게되었다. 전통적양식에 합당한 현대적 재료 디테일에 관한 연구가 부족했다고 볼 수 있다.
 

기념비적 건축물은 공간의 이용성과 관람하는 이용자들에게 얼마나 정확한 역사적의미를 전달했느냐로 평가될 수 있다. 또한 건축물은 건물의 예술성못지않게 건축공학적인 기능성과 안전성도 심각히 고려되어야 한다. 예술성 못지않게 다수가 출입하는 건축물이므로 건축공학적 측면을 소홀히해서는 안되며 이에따라 자연히 재해예방 등 안전도 문제도 고려되어야 한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1986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조재성

🎓️ 진로 추천

  • 건축학·건축공학
  • 미술사학
  • 역사·고고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