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일대가 지진 다발지역이라는 보고가 잇따르고 있다. 특히 동강댐 건설 예정지역에서 불과 20km 떨어진 곳에 활성단층이 존재할 가능성이 크다. 동강댐은 지진으로부터 과연 안전할까.
동강댐 건설 예정지역에 지진이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 4월 초 기상청은 최근 들어 한반도에 지진이 발생하는 횟수가 부쩍 늘었고, 동강댐 예정지가 포함된 강원도 일대 역시 예외가 아니라고 설명했다. 한국 지질학계 역시 비슷한 의견을 제시함에 따라 동강댐 건설을 둘러싼 찬반양론이 지진 발생 여부에 대한 새로운 논쟁으로 이어지는 양상이다. 과연 동강은 지진의 위협에 둘러싸여 있을까.
기상청 지진 정보에 따르면 올들어 국내에서 모두 17차례의 지진이 일어났다. 이 가운데 주목을 끄는 사실은 강원도에서만 9회의 지진이 발생했다는 점이다. 특히 4월 7일부터 9일까지 태백시 북서쪽 약 10km 지점에서 모두 4차례에 걸쳐 땅이 흔들렸다. 비록 사람이나 건물에 위험한 수준(규모 5.0 이상)이 아닌 규모 3.0 내외의 미미한 지진이었지만, 비슷한 장소에서 3일 간 4회나 지진이 발생했다는 점에서 큰 관심을 끌었다.
땅도 한번 아픈데 또 아퍼
사실 영월 지역은 지난 1996년 12월 13일 규모 4.5의 강진이 발생해 당시 세간을 크게 놀라게 한 곳이다. 영월 지역에서는 지붕의 기와나 슬레이트가 떨어졌으며, 멀리 제주도에서도 아 파트 창문이 흔들릴 정도였다. 지진이 발생한 지점은 현재의 동강댐 예정지역으로부터 동쪽으로 불과 29km 떨어져 있었다.
‘지진은 한번 일어난 곳에서 다시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현재 지질학계의 통설이다. 지진이 일어났다는 것은 땅 속이 불안정해져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사람이 몸의 어느 부위가 아픈 경험이 있으면 그곳의 기능이 약해진 탓에, 이후에는 다른 부위보다 자주 그곳이 아픈 것과 비슷한 이치다. 여기서 땅 속이 불안정하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땅 속에는 다양한 크기의 수많은 암석들이 존재한다. 어떤 원인에 의해 암석이 균열돼 두 돌덩이가 서로 어긋나는 형태인 단층(斷層)이 만들어지고, 이 균열면을 따라 암석이 이동하면 땅이 흔들린다. 이것이 지진이다.
이때 흔들림의 정도는 다양하다. 정밀한 기계나 예민한 몇사람에 의해 겨우 포착될 수 있는 정도의 미미한 흔들림도 있고(규모 2.0 이하), 지난 95년 1월 일본 고베를 강타해 막대한 피해를 입힌 무시무시한 지진도 있다(규모 7.2). 즉 모든 단층이 인간에게 위협적인 존재는 아니다.
또 지구에는 수많은 단층이 존재한다. 사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가 밟고 있는 땅 속 곳곳에서 미미한 흔들림이 발생하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문제의 핵심은 단층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단층이 얼마나 불안정하게 움직이고 있는가를 알아내는 일이다.
그렇다면 동강댐 건설 예정지역의 땅 속은 어느 정도로 불안정한 것일까. 과거 강원도 지역에서 지진이 발생한 횟수가 적지 않다는 점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로부터 현재나 가까운 미래에 그것도 규모가 큰 지진이 발생할지 모른다는 예측은 ‘가설’에 불과하다. 이 가설이 옳다는 점이 과학적으로 증명되려면 댐예정지 인근에 지진을 일으키기 쉬운 ‘활성단층’의 존재 여부가 파악돼야 한다.
활성단층이란 말 그대로 단층 가운데 지금 당장 활동을 하고 있거나 멀지 않은 장래에 활동할 가능성이 있는 단층을 말한다. 그런데 단층이 활성이냐 아니냐의 기준은 다소 다양하다.
이진한교수(고려대 지질학과)는 “활성단층의 정의는 학술적인 정의와 산업적인 정의로 구분된다”고 말한다. 이교수에 따르면 학술적인 의미에서의 활성단층은 최근 1백만년 이내에 1회 지진활동이 있었던 단층이다. 규모가 5.0 정도 이상의 강진인 경우다. 이에 비해 산업적 정의는 원자력발전소나 핵폐기물처리장, 그리고 댐을 건설할 때 적용된다.
산업적 정의는 나라마다 다르다. 예를 들어 미국의 경우 과거 5만년 이내에 1회, 또는 50만년 이내에 2회의 지진이 발생한 지역을 활성단층 지대로 규정한다. 이에 비해 일본은 신생대 제4기 (1백80만년 전 경) 이후 활동한 단층을 모두 활성단층으로 파악한다. 이런 지역에 원자력발전소나 댐을 짓는 일은 당연히 피한다.
그렇다면 동강댐 건설 예정지역의 땅 속에는 활성단층이 존재할까. 최근 동강댐 건설 반대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인터뷰에서 단층이 육안으로도 관찰될 정도로 확연하게 드러난다고 주장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하지만 단층이 존재한다고 해서 그것이 활성단층이라는 보장이 없다.
댐건설 위한 활성단층 조사 없어
그런데 최근 김소구교수(한양대 지구해양과학과·한국지진연구소장)가 다소 충격적인 발표를 했다. 그는 지난 4월 21일 지구의 날 기념 행사로 열린 ‘동강댐 대토론회’에서 “1404년부터 1998년까지 영월·평창·정선 등을 중심으로 인접 지역의 지진 활동을 보면 규모 2.0 이상 2백42회, 규모 4.0 이상 2백4회, 규모 5.0 이상 1백35회, 규모 6.0 이상이 19회나 된다”고 밝혔다. 몇만년은 커녕 불과 5백년 이내에 규모 5.0 이상의 강진이 1백50여차례나 발생했다는 의미다.
만일 이 데이터가 정밀한 기계로 측정한 것이라면 동강댐은 물론 한국 전체가 ‘지진 비상체제’에 돌입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김교수의 발표는 기계 측정과 함께 역사적인 사료를 근거로 작성됐다. 한국에서 기계를 통해 지진을 측정한 시기는 일제시대부터다. 그 이전의 경우는 ‘조선왕조실록’과 같은 사료를 통해 추측한 것이다. 즉 집이 어느 정도 움직였고, 땅이 얼마나 기울어졌는지에 대한 묘사를 통해 지진의 규모를 추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료를 작성한 사람의 주관적 판단이 개입됐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1900년대 이후 기계로 측정된 규모 5.0 이상의 강진은 한반도 전역에서 몇차례 안된다.
또하나의 문제점은 지진이 관측된 지역과 활성단층이 존재하는 지역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영월 지역에서 지진이 관찰됐다 해도 처음 지진이 일어난 장소가 이보다 멀리 떨어진 전라도 지역일 수도 있다.
따라서 보다 확실한 증거를 잡기 위해서는 동강댐 건설 예정지역의 땅 속을 직접 조사해 그곳에 활성단층이 존재하는지 알아봐야 한다. 하지만 그런 ‘시도’가 없었다. 한국의 경우 원자력발전소나 핵폐기물폐기장을 건설할 때는 미국이나 일본처럼 지하에 활성단층이 존재하는지 조사한다. 만일 사고가 나면 단지 한 나라에 피해가 머물지 않기 때문에 안전성에 대해 세계적으로 관리규제를 받아야 한다. 실제로 지난 95년 굴업도에 핵폐기물장을 설치하려 할 때 활성단층이 발견돼 계획이 전면 취소된 경험이 있다.
그러나 댐에 대한 조사는 없다. 한국이 비교적 지진이 없는 편이기 때문에 정부에서는 별다른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은 듯하다.
그런데 최근 ‘우연하게’ 동강댐 건설 예정지 근처에서 활성단층이 존재한다는 점을 시사하는 강력한 증거가 학계에 보고됐다. 올해 3월 ‘대한지질학회지’에 게재된 이희권교수(강원대 지질학과)의 논문 ‘강원도 정선군 문곡지역 단곡단층대의 전자자기공명 절대연령 측정 및 지질구조 연구’가 그것이다.
이교수는 지난 97년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문곡 지역에 대한 단층 조사를 벌이기 시작했다. 그는 단층암 시료 5개를 채취하고 전자자기공명법을 이용해 각각의 절대연령을 측정했다. 그 결과 동강댐과 관련해 특기할만한 결과가 제시됐다. 한개의 시료에서 약 20만년 전에 규모 5.0 이상으로 단층이 활동했음을 알려주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원래 이 지역은 활성단층이 없다고 알려져 있었다. 동강댐 건설 예정지역으로부터 최단 거리로 불과 20km 떨어진 곳이다.
이교수는 “연구를 시작할 때 동강댐을 염두에 두지는 않았다”고 말하고 “하지만 그간 안정하다고 여겨진 인근 지역의 단층대가 가까운 과거에 간헐적으로 활동을 계속했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지진으로부터 발생하는 재해를 감소시키는데 신경을 써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이 활성단층이 동강댐 건설 예정지역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연구가 시급하다. 하지만 정부는 이에 대한 심각성을 별로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올해 1월 말 동강댐 건설에 대한 반대 여론이 거세지자 정부는 동강댐을 건설했을 때 주변 자연 생태계에 미칠 영향 등을 조사하는 평가단을 구성하고 ‘환경영향평가’를 다시 시행해 8월에 보고서를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또 댐이 지진에 견딜 수 있는 확실한 내진 설계를 갖추겠다는 다짐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한국에서 댐을 지을 때 활성단층에 대한 조사는 없었다. 따라서 정부가 재검토하고 있는 사안 가운데 과연 지진에 대한 대책이 반영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특히 이진한교수(고려대 지질학과)는 “제대로 활성단층에 대해 연구하고 내진설계를 하려면 다양한 전문가들이 집중적인 지원을 받으며 매달려도 최소 1년 이상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평가단의 구성 역시 그렇게 믿음이 가지 않았다. 임지해 팀장(환경운동연합)은 “시민단체들이 평가단을 민관 합동으로 구성하자고 제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단지 정부가 지정한 전문가들이 ‘건설을 전제로’ 타당성에 대해 검토를 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외국 평가단 등장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최근 정부는 다소 ‘부끄러운’ 결정을 내려야 했다. 지난달 4월 29일 이정무 건설교통부장관은 “현재 활동중인 합동평가단에 대해 환경단체 등 사이에서 부정적인 여론이 많다”며 “이같은 부정적인 인식을 없애기 위해 외국 평가회사에 사업에 대한 종합적인 점검을 받기로 했다”고 밝혔다. 국내의 주요 사안에 대한 타당성 조사를 외국업체에 의뢰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동강댐 건설을 둘러싼 논쟁은 이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외국 평가회사는 동강댐을 건설했을 경우의 안정성과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 건설하지 않을 경우 발생할 수 있는 홍수방지 기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할 계획이라고 한다. 조사가 착수되기 시작하는 시기가 올해 하반기부터라고 하니 결과가 나올 때까지 당분간 동강댐 건설 계획은 연기된 셈이다.
하지만 과제는 많이 남아있다. 건설교통부는 평가기관를 선정할 때 환경부와 같은 관련부처와 환경단체 실무자들의 의견을 모으겠다고 밝혔다. 다른 문제는 물론 새로운 평가단이 과연 활성단층에 대한 조사를 제대로 수행하는지 눈여겨 봐야 한다.
한반도는 지진 불안전 지대 - 몇천만년 후 지진다발지역으로 변할지도
한국은 일본에 비해 지진이 별로 발생하지 않는다. 가장 큰 이유는 일본이 지진의 방패막이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지진이 일어나는 이유를 설명해주는 보편적인 이론은 1960년대에 정립된 '판구조론'에 기반한 대륙판끼리의 충돌이다. 판구조론에 따르면 현재 지구는 7개의 주요판(유라시아판, 오스트레일리아-인도판, 태평양판, 남극대륙판, 북미판, 남미판, 아프리카판)과 여러개의 작은 판으로 나뉘어져 있고, 이들 간에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판과 판이 만나는 경계부에서는 한쪽 판이 다른쪽 판으로 밀려들어가 '단층'이 형성됨으로써 지진의 발생이 빈번해진다. 지진의 90% 이상이 여기서 발생한다.
일본은 서쪽으로 유라시아판, 북쪽으로 북미판, 동쪽으로 태평양판, 그리고 남쪽으로 필리핀판이 만나는 '판의 접경지대'다. 이에 비해 한국은 유라시아판 안에 속해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지진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 있다.
하지만 대륙판 내에 있다고 해서 완전히 안전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1556년 중국 장안의 지진은 대륙 한가운데에서 발생해 80만명의 인명을 앗아갔다. 더욱이 판 경계부에 비해 지진의 주기성을 찾기 어려워 예측과 대비가 쉽지 않다.
판 내부에서 지진이 발생하는 이유 역시 단층에서 찾을 수 있다. 정확한 메커니즘은 알 수 없지만 학자들은 대체로 판 경계부의 단층 운동이 영향을 미쳐 판 내부에서도 지진이 일어나는 활성단층이 만들어진다고 본다.
그런데 최근 일본 열도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일본이 설치한 지구위치정보시스템(GPS) 최근 자료에 따르면 일본 열도는 해마다 서쪽 즉 한국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원래 일본은 3-4천만년 전까지 한국 남동부에 붙어 있다가 떨어져 나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지질학계의 한 이론(윌슨 주기)에 따르면 멀어진 대륙판들은 일정한 주기(약 2억년)를 따라 다시 모인다고 한다. 혹시 일본의 최근 움직임은 윌슨 주기에 맞춰 한반도로 다가오는 것이 아닐까. 또 한반도 역시 동쪽으로 밀려가는 것이 아닐까. 만일 그렇게 된다면 미래에 한반도 동해 지역은 현재의 일본 동해 지역처럼 지진이 다반사로 발생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이를 확실히 알기 위해서는 한국에도 GPS를 이용한 데이터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그런 자료가 거의 없다. 국내의 경우 GPS 설치는 건설교통부, 자원연구소, 천문대, 기상연구소 등에서 시행하고 있지만, 의미있는 자료가 나오기까지는 몇년을 기다려야 한다. 만일 한반도와 일본의 거리가 가까와지고 있다면 비록 몇천만년 이후겠지만 한반도는 지진다발지역으로 변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