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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고도의 베일을 벗겨야

경주고분발굴단장 조유전

경주고분발굴단장
 

꽃삽으로 고분을 파헤치며 무더위와 씨름해온 조유전씨(46·경주고분발굴조사단장)는 7월의 어느날부터 갑자기 유명해졌다. 수십명의 기자들이 몰려들고, 장관을 비롯한 고위관리들이 찾아왔는가 하면 신문 TV는 대대적으로 '경주현장발' 기사를 취급했다.
 

신라시대 사람들의 모습으로 빚은 토용(土俑)이 화제를 불러 일으킨 것이었는데 이밖에도 토제마(土製馬)가 나오고 고분의 주인이 왕일지도 모른다는 설이 나오는 등 화제가 잇따랐다.
 

아뭏든 조유전단장은 '아침에일어나고보니 유명해진' 셈이다. 용강동고분발굴이 대강 마무리단계에 접어든 시점에서 조단장을 찾아 궁금한 뒷얘기를 들어보았다.
 

-올 여름에 큰일 하시느라 고생이 많았는데, 이제 고분발굴작업은 마무리된 겁니까?
 

"사실 금년 여름은 장마비가 올 듯하면서 오질 않아 제대로 쉬지도 못한채 작업만 한 셈입니다. 더구나 작업도중에 토용이 출토되는 바람에 혼란도 있었구요. 이제 고분의 석실내부조사가 끝날 단계에 있읍니다만, 어떻게 보면 진짜 중요한 조사 작업은 지금부터입니다.

고분에 매장된 사람이 몇사람인가, 원래부터 이곳에 매장한 것인지 아니면 2차 매장한 것인지도 규명해야지요. 또 고분의 통로가 어떤 공법으로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당시의 축조기술은 어떠했는지도 연구과제입니다."
 

'진짜 조사는 이제부터' 라고 강조하는 조단장은 일반사람들이 '어떤 비까번쩍한 것'만 나오면 흥분들 하지만 그보다는 고분의 구조랄까 공법 매장과정 등에 더 관심을 갖고 있는 듯 했다. 그렇더라도 채색토용이 국내최초로 쏟아져 나온 것은 분명 커다란 사건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발굴당시의 상황과 그 의의를 물어봤다.
 

"시상(屍床)을 처음 조사해보니까 도굴범에 의해 너무나 훼손이 심한 상태였어요. 그래서 유물이 나오리라고는 기대를 안했읍니다. 처음 토용을 발견했을 때도 머리부분이 떨어진 상태여서 무언지 잘 몰랐어요. 다음날 다시 세밀하게 조사하자 여러점이 계속 발견돼 이때부터 흥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토용은 출토예가 없었던 것으로 신라사연구에 큰 보탬이 될 것임에 틀림없읍니다. 흔히 벽화고분을 중요시하지만 이것은 평면적인 그림일 뿐입니다 그러나 토용은 입체적이고 실제모습을 나타낸 것이므로 이를 확대시키면 결국 당시 사람들의 모습을 재현하게 되는 것입니다. 국보가 되든 보물이 되든 문화재로 지정돼 분야별로 연구가 이루어져야겠지요. "
 

-이번 발굴과정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실어나를 차 한대 없이 어려움을 겪었다는 신문보도도 있었고, 문공장관은 문화재 발굴에 필요한 첨단장비를 도입하겠다는 뜻도 밝혔는데, 이런 면에서 애로점은 없었읍니까?
 

"20년간 땅만 보고 살아왔는데 새삼스레 애로점만 털어놓을 수 있겠읍니까. 차량이 한대도 없는 건 사실이지만 필요할 때마다 렌트카를 부르곤 합니다. 발굴과정에서 물론 첨단장비가 필요할 수는 있겠지만, 제생각으로는 발굴작업 자체는 가장 원시적으로 해야 된다고 봅시다. 신라고분이면 신라시대의 분위기로 돌아가서 작업을 해야지요. 그래서 주로 꽃삽과 붓만을 가지고 조심스레 정성껏 발굴을 해들어가는 겁니다. 이래야만 무언가 텔레파시도 느껴져 귀중한 유물을 찾아내곤 하지요."
 

-무슨 얘긴지는 알겠읍니다만 아무래도 과학적인 조사를 하려면 적지 않은 장비들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물론이지요. 발굴작업은 원시적으로 하더라도 그 해석만큼은 과학적으로 해야 합니다. 유물의 재질에 따라서는 쉽게 변질되기도 하므로 즉각적인 응급처리를 해야 하고 염분제거 녹제거 접합 복원 등이 과학적으로 이루어져야지요."
 

-고분발굴을 담당하면서 가장 절실하게 느껴지는 문제점은 무엇인가요.
 

"무엇보다도 도굴이 근절돼야 합니다. 각지의 대부분이 유적지가 도굴된 형편인데, 조상의 무덤을 파헤치는 일제시대의 악습을 아직 버리지 못하고 있으니 문제입니다. 지역주민 모두가 솔선해서 지키는 수밖에 없읍니다."
 

-현재까지 얼마나 많은 도굴이 이루어졌는지는 파악이 되고 있읍니까.
 

"정확하게는 모릅니다만, 상당히 많은 도굴이 있었던 것은 틀림없읍니다. 경주만 해도 사람의 눈이 많은 시내 한복판은 도굴하기가 쉽지 않지만 외진 곳은 대부분 도굴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또 한가지 우려되는 것은 이번 고분발굴을 통해 토용 등 유물이 많이 나왔기 때문에 전에 도굴된 곳이 다시 도굴될 가능성이 큽니다. 용강동고분도 전에 이미 도굴됐던 곳이 아닙니까"
 

화제가 도굴문제에 이르자 조단장은 목소리에 힘을 주어 이를 개탄하고 또 우려했다. 그러면서 모조품의 등장 가능성도 경고했다.
 

"아마 틀림없이 이번에 발굴된 토용 등의 모조품이 골동품상에 나돌게 될 겁니다. 만에 하나라도 이에 속는 일이 없어야겠지요"
 

현재 문화재연구소의 학예연구관으로 있는 조단장은 경남 마산출신. 서울대 고고학과를 졸업한 후 지금까지 20년간 고분발굴이라는 외길을 걸어왔다. 천마총 황남대총 안압지 황룡사지 무령왕릉(공주)등을 발굴해온 경주발굴의 주역이기도 하다.
 

일년의 반을 서울집 대신 경주의 여관에서 기거하는 조단장은 앞으로의 계획을 '아직 신라의 궁궐자리도 밝히지 못한 상태여서 경주 고도의 근본을 캐내는데 힘쓰겠다'고 힘주어 말한다.

1986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사진

    윤기은 기자
  • 황의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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