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GALAXY는 WARP중

은하의 70%는 출렁이고 있다






새로운 은하의 모습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특징은 ‘워프’다. 휴대전화 통신사의 서비스 이름으로, 또 SF 작품에서 ‘순간 이동’을 의미하는 용어로 친숙한 단어다. 하지만 천문학에서 말하는 워프는 다른 뜻으로, 은하가 어떤 이유로 휘거나 뒤틀리는 현상을 의미한다.

은하가 순간이동 하는 모습을 기대한 독자나 SF팬이라면 실망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은하의 워프는 순간이동 못지않게 불가사의하며 장대한 현상이다. 지름이 30kpc(킬로파섹, 1파섹은 빛의 속도로 3.26년 가는 거리. 즉 30kpc은 빛의 속도로 10만 년 가야 하는 거리)인 은하가, 마치 누가 꼬집기라도 한 것처럼 끝이 꿀렁하고 휜다. 더구나 묵이나 고무막대처럼 진동하며 출렁이기까지 한다. 한 번 출렁이기 시작하면 약 40억~50억 년 동안 지속된다. 고작 우주선 하나 순간이동하는 것보다 얼마나 웅장한가.




한번 시작하면 40억~50억 년 계속돼

은하 워프는 1950년대 전파로 성간물질을 관찰하는 과정에서 처음 발견됐다. 생각보다 오래됐지만 연구하기가 까다로워 지금까지 정확한 원인은 모른다. 관찰 역시 쉽지 않아, 전체 은하 중 30% 정도에서만 확인이 된다. 심지어 우리은하의 워프조차 논란 중이다. 현재의 연구 결과를 종합하면, 전체 은하의 70%는 워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우리은하도 약한 워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예상된다.

워프는 왜 일어날까. 물렁물렁한 고무막대를 휘려면 힘을 가해야 한다. 손으로 끝을 잡고 구부리는 방법도 있고, 나무망치 같은 것으로 툭 치는 방법도 있다. 은하 역시 뒤틀리거나 휘려면 외부의 힘이 필요하다. 바로 중력이다.

“은하가 놓인 환경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근처에 은하가 많은 환경과 은하가 적은 환경이죠. 이웃한 은하가 있다면 당연히 주변에 강한 중력장이 생기지요.”

김성수 경희대 우주과학과 교수가 설명했다. 우주에는 무수한 은하가 있고, 이들 은하가 서로 스쳐 지나가거나 부딪히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난다. 때로는 부딪혀 서로 합쳐지기도 한다. 이 중 두 은하가 적당한 거리에서 스치듯 지나가면 워프가 일어날 수 있다. 두 은하의 중력장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은하는 서로 끌어당기게 되고, 그 결과 마치 헤어지기 아쉬워하는 연인처럼 서로에게 ‘손’을 뻗는다. 은하 가장자리가 그 방향으로 휘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별 외에, 전파로만 관측할 수 있는 가스 물질도 휘는데, 가스의 워프가 더 심하다.

“휘는 각도는 다양하지만, 아주 크지는 않아요. 대부분 3~5° 사이지요.”
김정환 연세대 천문우주학과 연구원이 말했다. 김 연구원은 2013년, 지도교수인 같은 과 윤석진 교수와 함께 스쳐 지나가는 두 은하가 일으키는 워프 현상을 컴퓨터로 모의실험 했다. 150만 개의 입자로 된 가상 은하를 만들어 중력장의 영향을 분석한 결과, 속도와 각도만 맞으면 서로 스치는 현상만으로도 충분히 워프를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휘는 형태도 다양해요. 세 가지로 나뉘는데, 양 끝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휘는 S형과 카우보이 모자처럼 끝이 같은 방향으로 휘는 U형, 그리고 특이하게 한쪽만 휘는 L형이 있습니다.”

셋이 왜 각각 그런 형태를 보이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진 게없다. 다만, 천체물리학에서는 은하 자체를 마치 토성 고리처럼 가느다란 고리가 겹쳐 있는 형태로 해석하는데, S형의 경우 이런 형태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워프를 지배하는 ‘다크포스’

워프를 일으키는 두 번째 원인은 암흑물질이다. 은하는 눈에 보이는 영역이 다가 아니다. ‘암흑물질 헤일로’라고 부르는 암흑물질 덩어리가 은하는 물론 그 한참 너머까지 뒤덮고 있다. 게다가 은하 중력의 90% 이상은 우리 눈에 보이는 별이 아니라 암흑물질 헤일로가 차지한다. 사실상 은하의 주인인 셈이다.

“은하가 탄생할 때도 먼저 암흑물질이 모여 헤일로를 이루고, 거기에 물질(바리온 물질)이 ‘고여서’ 별과 성간물질을 이뤘습니다. 암흑물질 헤일로는 일종의 ‘틀’인 셈이죠. 그러므로 은하의 모양은 암흑물질 헤일로의 모양과 관련이 깊습니다.”
김성수 교수는 2009년, 안홍배 부산대 과학교육학부 교수와 당시 제자였던 전명원 연구원 등과 함께 암흑물질 헤일로와 워프의 관계에 대해 연구했다.

“암흑물질 헤일로가 완벽한 구형이라면 워프는 일어나지 않아요. 하지만 만약 찌그러진 형태라면 다릅니다. 배경이 되는 중력장이 비대칭이 되니까, 그 영향으로 은하도 찌그러지죠.”

실제로 천문학자들은 우주에 흩어진 작은 암흑물질 덩어리들이 아직도 중력에 의해 암흑물질 헤일로로 몰려든다고 예측하고 있다. 눈덩이에 작은 눈을 뭉쳐 붙이면 혹이 난 것처럼 된다.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구형이던 헤일로도 작은 암흑물질이 붙으면 한 쪽이 불룩해진 형태로 바뀌는데, 그 결과 중력장이 기울어지고 은하도 왜곡돼 워프가 일어난다.

현재 전체 은하의 70%는 워프 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워프가 ‘대세’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우리은하는 왜 아직 워프 여부를 확실히 모를까. 바로 우리가 그 안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집 안에만 있는 사람이 집의 겉모양을 알기 오히려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워프 현상이 있다는 ‘심증’은 있다. 예를 들어 태양은 우리은하의 중심에서 바깥 쪽으로 약 3분의 2 정도 되는 위치에 있는데, 원반의 중심면을 기준으로 약 300pc 위쪽에 위치해 있다. 은하면이 살짝 위로 휘어 있다는 뜻이다. 김정환 연구원은 “가스(성간물질) 관측을 통해서는 워프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다만, 별 관측 결과는 아직 논란이 많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주변에 은하가 적기 때문에 원인이 불분명하다. 안드로메다 은하가 현재 또는 과거에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고, 다른 원인이 있을 수도 있다. 미국 UC버클리 천문학과 레오 블리츠 교수는 2011년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기고 글에서 대마젤란 성운 등 우리 은하 주위를 도는 왜소은하의 영향을 언급하기도 했지만, 아직은 논란 중이다.






주름치마 입은 우리은하

워프 말고도, 특이한 우리은하의 모습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은하 끝이 마치 치마 주름이나 만두피 끝자락처럼 쪼글쪼글하게 접혀 있는 ‘스케일러핑’ 현상이다. 김성수 교수는 “우리은하의 원반 끝에서 발견한 현상으로, 아직 원인은 전혀 모른다”며 “원인을 밝히면 교과서에 기재될 거라는 말이 있을 만큼 최근 주목 받고 있다”고 말했다.

유령 같은 ‘암흑’ 왜소은하도 흥미롭다. 원래 우리은하 근처에는 왜소은하가 20~30개 있다. 그런데 일반 은하와 달리 왜소은하는 암흑물질의 비율이 훨씬 높다. 김성수 교수는 “은하의 경우 암흑물질과 물질의 비율이 7:1에서 15:1 사이인데, 우리은하의 1만분의 1 정도로 작은 은하의 경우 암흑물질이 압도적으로 많아 100:1을 훌쩍 넘곤 한다”고 말했다. 암흑물질은 관찰이 되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암흑물질 위주로 이뤄진 왜소 은하는 설사 바로 옆에 있더라도 유령처럼 관찰하기 힘들다.

거대한 거품 모양의 고에너지 분출 구조물도 2011년 새롭게 발견된 모습이다. 은하 중심에 있는 팽대부를 기준으로 원반 위아래로 각각 약 8kpc(2만 5000광년) 높이의 감마선과 엑스선이 뿜어 나오고 있다. 아직 정확한 원리는 밝혀지지 않았는데, 팽대부 중심부에 가까운 곳에서 별이 만들어지면서 생긴 것이라고 추측하는 학자도 있다.

은하는 눈에 보이는 아름다운 막대나선구조가 전부가 아니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10배나 많은 암흑물질 덩어리와 존재조차 모르는 암흑 왜소은하, 그리고 휘어지고 주름지고 때로는 출렁이며 수십억 년을 보내는 은하의 새로운 모습은 그 자체로 충분히 낯설다. 스마트폰만 새로운 버전으로 업데이트할 일이 아니다. 당신의 은하 지식도 업데이트해야 한다, 지금 당장. 우리가 몰랐던 은하의 새로운 모습은 계속 등장할 테니까 말이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14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윤신영 기자

🎓️ 진로 추천

  • 천문학
  • 물리학
  • 지구과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