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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을 노래하는 스파이더맨 - (주)레인콤 대표이사 양덕준

“스파이더맨이요.”

양덕준(54) 레인콤 사장에게 어린시절 꿈에 대해 물었더니 대뜸 이렇게 대답한다. 손에서 거미줄을 내뿜고 빌딩 벽을 오르내리는 거미인간? MP3플레이어의 대명사 ‘아이리버’를 만든 벤처기업의 사장이 농담할 리는 없을 텐데.

“집이 미군 부대 뒤쪽에 있었습니다. 쓰레기더미 속에 만화책이 많았는데 영어 공부한다고 자주 봤죠. 그러던 어느날 스파이더맨을 만났습니다.”

그저 꼬맹이 시절 상상했던 영웅이려니 생각했다. 사실 기자의 어린시절 꿈도 슈퍼맨이었다. 망토를 두르고 툭하면 담벼락에서 뛰어내렸다. 하지만 양 사장은 생각보다 진지했다.

자유 쫓아 우주로 하늘로

초등학생 시절 그는 헬리콥터를 만들고 싶었다. 고사리손으로 동네의 고철을 다 모았다.

“고철로는 헬리콥터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죠. 한동안 좌절했습니다.”

그러다 새로운 꿈이 다가왔다. 이번에는 더 커졌다. 우주선을 만들고 싶었다. 중학교 때 공상과학(SF) 소설을 탐독하다 갖게 된 꿈이었다. 스파이더맨은 헬리콥터, 우주선에 이은 세번째 꿈이었다.

“스파이더맨을 만들려면 대학에서 뭘 공부해야 할까 고민했어요. 도서관에서 어려운 책도 뒤졌습니다. 응용화학과가 가장 그럴듯해 보였죠. 당시 응용화학과가 딱 두 곳 있었는데 서울대와 영남대였죠. 서울대에 떨어진 뒤 영남대에 갔어요.”

대학에 들어오니 환경이 달라졌다. 그는 “대학에 들어오면 노는 데 탐닉하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놀다 보니 꿈도 변했다. 그의 표현을 빌면 ‘스파이더맨이 충격적으로 다가왔다가 현실성이 없다는 생각에 멀어졌다’고 한다. 대학에서는 반중력 물질에 심취해 온갖 책을 다 뒤졌다.

졸업할 무렵 화장품 회사에 가려고 했다. 왜냐고 물었더니 “예쁜 여자가 많고 직장생활이 재미있을 것 같아서”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진짜”라고 그는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현실적’이었던 소망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는 군대를 갔다. 그곳에서 진짜 꿈을 만났다.

“미군 미사일 부대에서 미사일 시스템을 정비하는 일을 했어요. 진공관 컴퓨터였던 것 같아요. 컴퓨터가 고장나면 설명서 보면서 고치는 일을 했어요.”

어느날 부대에 트랜지스터 컴퓨터 한 대가 들어왔다. 교실만한 컴퓨터가 탁자만한 크기로 줄어들었다. 그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컴퓨터를 이용하면 우주선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제대 후 친구 결혼식에 갔다. 삼성반도체(현재 삼성전자)에서 사람을 뽑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바로 지원해 20년을 그곳에서 근무했다. 한국 반도체의 탄생부터 번영까지 역사를 함께 한 셈이었다. 나올 무렵에는 해외영업 담당 임원까지 올라갔다.

“임원 되고서 자유롭게 살고 싶은 욕구가 강해졌어요. 현장에서 뛰다가 임원 되면 인사관리도 하고 구조조정도 해야 하잖아요. 자유롭게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창업했죠.”
 

(주)레인콤 대표이사 '양덕준'


인터넷의 강을 항해하다

그의 말대로 헬리콥터에서 우주선, 스파이더맨, 반중력 물질 등으로 이어진 그의 어린 시절 꿈은 ‘자유’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때론 하늘을, 때론 우주를, 때론 빌딩숲을 자유롭게 다니기를 꿈꿨다. 틀에 박히는 것을 거부하던 그가 음악의 한계를 깨뜨리고 새로운 디지털 감성을 창조한 MP3플레이어에 매혹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지금 생각하면 난 참 인생을 랜덤(random)하게 살았어요. 그때그때 끌리는 것에 열심히 파고들고 그러다 보니 길을 찾은 셈이죠. 다만 그 길에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직원 7명으로 시작한 레인콤은 처음에는 미국의 소닉블루라는 회사에 MP3플레이어를 납품했다. 1년 뒤 위기가 찾아왔다. 소닉블루가 대금결제를 미뤘다. 양 사장은 고민 끝에 자체 브랜드를 내놓기로 결심했다. 그는 “빈손으로 시작한 일, 쓰러져도 다시 일어서면 된다”고 다짐했다. ‘인터넷의 강’을 뜻하는 아이리버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한동안 영업이 안돼 회사 말아먹는 것 아닌가 고심했다. 미국 전자제품 양판점 베스트바이가 레인콤의 전시 요청을 거절하려고 ‘CD형 MP3플레이어에 플래시메모리형을 추가해 3개월 안에 미국 전역에 공급하라’고 주문했다. 그러나 레인콤은 불가능해 보였던 주문을 맞춰내 신뢰를 얻었다.

디자인회사 이노디자인은 결정적인 원군이 됐다. 양 사장은 무작정 뉴욕에 있던 이노디자인 김영세 사장을 만나 디자인을 맡겼다. 레인콤과 이노디자인의 만남은 ‘기능’이 중요했던 MP3플레이어를 패션 상품으로 바꿨다. 결국 아이리버는 소비자의 감성을 파고들며 최고 인기의 MP3플레이어가 됐다. 레인콤은 지난해 매출 4540억원에 435억원의 흑자를 냈다. 아이리버는 현재 세계 시장의 10%를 차지하며 애플에 이어 2위에 올라 있다.

그러나 그는 “지금이 가장 중요한 순간”이라고 말했다. 애플, 삼성전자 등 국내외 대기업이 MP3플레이어 시장에 뛰어들면서 대격전지가 됐기 때문이다.

늘 위기는 기회다. 전쟁에서 살아남는다면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돋음할 수 있다. 그는 신제품 ‘유텐’(U10)을 보여주면서 대기업의 공세를 이겨낼 무기라고 소개했다. 네모난 모양에 모니터가 크고 모니터 안에서 버튼을 누를 수 있다. 음성 녹음, 동영상 재생, 게임 등도 즐길 수 있다. 기존 제품과 개념이 확 달라진 것이다.

그는 “MP3플레이어는 앞으로 디지털 융합(컨버전스)과 문화의 창조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어떻게 콘텐츠에 쉽게 접속할 것인가, 새로운 문화와 생활양식을 만들 것인가가 화두라는 것이다. 그는 “건방지게 들릴지 모르지만 아이리버가 그것을 가장 잘 안다”고 자신했다. 레인콤이 앞으로 내놓을 제품도 새로운 컨셉에 초점을 맞출 계획이다.

“큰 회사나 돈 보다는 제대로 된 브랜드를 하나 만드는 것이 진짜 목표입니다. 카리스마 있는 브랜드, ‘조르지오 아르마니’같은 친근하면서도 창의적인 브랜드를 만들고 싶습니다.
 

양덕준 사장과 김영세 아노디자인 사장(왼쪽)의 만남은 MP3플레이어를 패션상품으로 진화시켰다.
 

2005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사진

    김연정
  • 김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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