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키보드를 두둘기며 전국 도서관에 소장돼 있는 모든 도서를 검색할 수 있는 도서관 전산화의 현장을 본다
정보사회의 이면, 홍수와 가뭄
'정보 능력'은 개인, 사회 및 국가의 힘의 척도가 되었다. 전세계에서 경쟁적으로 쏟아지는 정보의 양은 실로 폭발적이다. 이 같은 정보의 폭발적 대량생산은 필연적으로 매우 심각한 문제를 가져왔다.
그 하나는 우선 정보의 생산량자체가 너무 많다는 점이다. 인쇄매체에만 수록되는 1년간의 기록정보의 양을 문자 수로 계산하여 무려 4천2백조(兆) 자로 추산한 보고가 1971년도에 있었다. 같은 시기의 다른 보도에 의하면 세계는 10억종의 도서와 3억편의 학술논문을 보유하고 있으며 매년 과학기술분야에서만도 4백만 건의 연구논문과 1백만건에 달하는 특허정보가 쏟아지고 있다고 한다. 한 흥미로운 통계에 따르면 서기 원년부터 현재까지 인류가 창출·축적해 온 지식의 총량이 곱으로 불어났을 때가 1650년이었고 그것이 다시 곱으로 불어난 해는 1900년, 또 그것이 다시 곱이 된 해는 1950년이었으며, 1960년에는 그것이 다시 곱으로 불어났다고 한다. 즉 인류가 생산해내는 정보의 총량이 배로 증가하는 기간, 이를테면 그배증주기(倍增週期)가 최초에는 1천6백50년이라는 세월이었으나 그 다음에는 2백50년으로 짧아지고 그 다음에는 50년으로, 다시 그 다음에는 겨우 10년이 걸렸을뿐이라는 것이다.
위의 수치들이 대부분 추정치이기는 하나 우리는 여기서 지구상의 인간이 창출해내는 정보의 양이 실로 천문학적 숫자에 이르고 또 그것은 가공할 속도로 증가하고 있음을 감지하게된다.
이처럼 정보가 인간 활동의 질과 능률을 규정하면서 우리 생활의 구석구석에서 범람하고 있는 이 현상을 가르켜 '정보홍수'라고 표현한다.
정보의 홍수는 중대한 임팩트(impact)를 우리들 인간사에 던지고 있다. 넘쳐 흐르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는 유익하고 긴요한 정보가 무가치하고 무의미할 뿐이다. 불필요하고 유해한 정보들 속에 섞여서 제값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음식을 먹지 않고는 살아갈 수가 없지만 갖가지 먹음직스러운 식품들이 식욕을 자극한다고 해서 너무 많이 먹거나 아무거나 먹어버리면 다치거나 죽어버릴 수도 있는 것처럼 정보를 적절히 이용하지 않으면 개인의 삶도 국가의 발전도 불가능하게 된다. 홍수처럼 넘치는 정보들 속에서 그 적절한 선별이나 이용과정을 그르쳐버리면 오히려 개인을 망치고 국가 사회를 해칠 수 있다는 기박한 위협에 직면하게 된다. 이 같은 사정을 가르켜 '정보공해'라고 표현한다.
공해의 위협 아래서 어떻게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국가적으로 유익하고 적절한 정보만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입수하여 이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는 참으로 어려운 과제이다. 미국의 국립과학재단이 한편의 연구보고서가 완성될 때까지 연구자가 겪어가는 일련의 활동 가운데 '문헌조사'에만 총 연구소요시간의 절반이 넘는 50.8%를 소비하고 있음을 밝히면서 치열한 정보경쟁의 장래를 경고한 것이 지금부터 30여년 전인 1950년대 중반의 일이었가.
정보의 홍수 속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꼭 필요한 정보를 꼭 필요한 때에 만난다는 일이 그토록 어렵다고 하는 그 절실한 갈증의 상황을 '정보가뭄'이라고 하는 역설적 고통으로 표현한다.
정보의 홍수 가운데에서 그 공해의 위협을 극족하고 가뭄의 고통으로부터 벗어 날 수 있는 최선의 수단은 무엇이겠는가? 바로 이 질문이 정보화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풀어야 할 가장 가치있는 과제가 아닐 수 없는 것아다.
정보홍수의 유량조절
이 시대에 있어서 '정보'의 가치론적 의미는 "개인의 삶을 영위하는 필수에너지인 동시에 국가발전의 원동력"이라는 데에 있다.
오늘날 국제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치열한 경쟁의 핵심 요소도 국토·인구·부존자원 따위의 물질적 에너지가 아니고 '정보능력'이라고 하는 고도의 정신적 에너지이다.
정보능력은 국력의 척도인 동시에 선진의 징표가 되고도 한다. 정보능력이란 정보 창출능력·정보관리능력·정보이용능력을 다 포함하는 말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정보의 생산-선별-수집-정리-축적-활용-재생산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정보사슬(information circle)'의 총체적 운영능력을 말한다.
지구상의 모든 국가들은 이 운영능력의 향상 즉 정보사슬의 운영효율을 높이기 위하여 오랜 옛날부터 힘써 왔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의 결과가 오늘의 정보화 사회를 낳았고 이제는 마침내 그 일에 국가의 운명을 걸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맞게된 것이다.
그런데 도서관은 정보능력의 신장을 위한 그 같은 국가적 노력의 지혜로운 소산으로써 학교, 연구소, 언론매체 등과 함께 이를테면 상호보완적으로 탄생된 기능적 조직체이다. 그 중에서도 도서관의 가장 독특한 기능은 분방한 정보의 세계에 질서를 부여하는 능력이다. 도서관은 정보사슬의 첫마디(생산)와 끝마디(재생산)를 효과적으로 연결하는 중간 과정의 여러마디(선별·수집·정리·축적·검색·제공)를 직접 담당하는 전문적 장치인 것이다.
"도서관은 사람의 알 권리(知的自由)를 보장하기 위한 사회적 장치"라든가 "학술과 문화의 효과적인 발전을 위한 최선의 여건조성에 봉사하는 기관"등으로 표현되는 도서관의 본질론은 물론이고 "도서관은 자료를 수집·정리·보존하여 공중 또는 특정인의 이용에 응하게 하는 기관"으로 보는 현행 도서관법의 태도도 모두 같은 이념에 입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요컨대 도서관은 본래부터 생산자로 하여금 양질의 정보를 생산하게 하는 동시에 이용자들에게는 각자에게 필요하고 적절한 정보만을 적시에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최선의 수단으로 고안되었던 것이다. 그것이 오늘날의 정보화사회에 이르러서는 저 엄청난 정보의 홍수와 가뭄을 유효히 조절하는 정보통정(統整)과 그 유통(流通)의 중추기관으로 변화된 것이다.
따라서 도서관이 이와같은 현대적인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느냐 하는 것은 한 나라의 실질적인 선진화를 좌우할 만큼 중대한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도서관 전산화의 신기원, MARC
현대 정보사회의 여러 특징들은 도서관의 기능과 책임을 가중시켜 왔고 도서관이 이와같은 현대적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우선 정보처리의 방법에 있어서 종래의 수작업(手作業)적 형태를 벗어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한편 컴퓨터라고 하는 고성능의 자동화기기가 개발·발전돼음에 따라 도서관에서의 컴퓨터 이용은 필요하고 당연한 일로써 매우 자연스럽게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도서관 전산화의 개념을 약간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도서관자료의 선택·수집·정리·축적·검색·열람·대출·참고봉사·상호대차 및 원거리통신(relecommunication)을 이용한 정보공급 등의 도서관 정보관리업무에 컴퓨터 및 그 주변기기와 기술을 이용하는것"이라고 할 수있다.
그런데 초기의 컴퓨터 제조업자들은 도서관에서 사용할 수 있는 컴퓨터는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러나 겨우 10여년 사이에 그들은 정보산업의 주요한 고객이 될 수 있음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한편 컴퓨터 측의 무관심에도 불구하고 이미 미국의 도서관에서는 자료처리의 기계화를 시작했다.
텍사스대학교 도서관이 대출업무에 펀치카드 기법을 적용한 것은 1936년의 일이며 그 이후 컴퓨터의 단계적 발달과 함께 꾸준히 시도·개발되어 왔다. 특히 1960년대에 이르러 펀치카드를 사용하여 데이타를 입력하는 오프라인 배치시스팀이 개발되었고 마침내 미국의회도서관의 '기계가독형목록(MARC:Machine Readable Cataloging)'의 개발은 도서관 전산화의 신기원을 마련하였다. 이 기계가독형목록은 서지(書誌)정보를 기계가독형형태(機械可讀形態)로 바꾸어 마그네틱 테이프에 담아두는 운용체제이다. 이 테이프는 수요자에게 제공돼 그들이 자신의 컴퓨터로 처리·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
이 때를 계기로 하여 경쟁적 또는 협동적으로 추진·발전된 도서관 전산화는 미국, 캐나다, 영국, 독일, 스웨덴, 덴마크, 호주, 일본 등 여러나라에서 이미 경이적인 성과를 이룩해 놓고 있다.
세계 어느 나라의 경우이거나 도서관업무의 전산화에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목적의식을 기본구상으로 하여 추진계획의 바탕에 깔게된다.
● 도서관업무를 전산처리함으로써 각 자료가 지니고 있는 정보가치를 하나도 사장(死藏)됨이 없이 최대한으로 활용되도록 한다.
● 국가 단위의 중앙도서관에 데이타베이스를 형성하고 전국의 각종 각급 도서관과 전산망(Network)을 구축함으로써 국민 누구나 각자의 거주지역에 구애됨이 없이 나라 안의 어디에 있는 자료라도 간편·신속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
● 해외 문헌정보의 데이타베이스와도 이를 상호연결 운영함으로써 국외 정보를 효과적으로 도입 제공하여 과학기술 및 학술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한다.
● 국내 각 도서관들이 따로 따로 자료를 수집하고 정보를 처리하는 데 소요되는 예산과 인력을 대폭 절감할 수 있도록 한다.
긴 여정의 출발점
우리말 사전에서 '사정의 통지'라는 짤막한 해석을 달고 '정보'라는 낱말이 처음으로 모습을 보인 것은 1938년도에 간행된 문세영의 '우리말사전'에서이다. 이때는 이미 전술한 텍사스대학교에서 정보처리의 기계화를 시작한지 2년이 지났을 때이었다.
국내에서 도서관 전산화에 본격적인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은 대체로 1970년대의 후반으로 판단된다. 국립중앙도서관의 전산화 가능성을 총무처 정보전자계산소에서 조사를 실시한 것이 1976년 4월이었고 같은 해 연말에 전산화 1차계획을 수립하여 1978년 초에 국무총리령 제2호에 따라 정부행정전산화 기본계획에 책정되었던 것이다. 이어서 '자동화준비실'이 만들어져 계획을 다듬으면서, 1980년 기계가독형목록을 위한 '한국문헌자동화목록법(KORMARC)'의 실험용 포맷을 제정하고 1년 뒤에 그 표준포맷 제1판을 완성·간행하였던 것이다.
1982년8월에는 국립중앙도서관의 직제가 개정되어 과(課)단위의 전산실이 신설되고 9월에 컴퓨터를 설치 가동하기 시작했다.
비록 소형(JEPCOM 4296:128KB)이었으나 시스템이 움직이고 데이타 입력이 개시됨에 따라 전산화 보급을 위한 강습을 여는 한편 '한국문헌자동화목록 운영협의회'를 구성하고 1983년 여름부터는 인쇄카드와 인쇄카드속보를 출력해 회원도서관 중심으로 이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그이후 지난해 연말까지 표준포맷의 확정판을 간행하고 다시 연속간행물용 실험포맷을 개발하는 한편 '한국문헌자동화목록법 기술규칙'의 예비노트판(1983)과 그 보완판(1985)을 발간 배포하였으며 시스템 확장을 꾸준히 추진해왔다.
현재 국립중앙도서관이 주도하는 한국문헌자동화목록 운영협의회에는 모두 45개 국내 도서관이 가입하고 있으며 인쇄카드는 총41개 도서관에 연간 약 50만대가 공급되고 있다. 이 전산 인쇄카드의 출력은 한국문헌목록의 기계가독형화(KORMARC)의 첫단계 소득인 것이다. 목록 데이타의 압력은 현재 10만 건을 넘어서고 있다.
현황을 요약해서 말하자면 한국문헌에 대한 자동화목록이 궤도에 진입했으며 프로그램과 데이타를 이양 받은 부산의 동의대학교 등 몇몇 의욕적인 대학도서관을 선두로 하여 확대되고 있고 포맷과 규칙 등 기초도구가 실용되고 있으며 기존 컴퓨터 시스템의 주변기기와 기억용량을 능리는 등(512KB) 점진적인 확충을 꾀하고 요원교육과 경험확산에 힘쓰고 있다. 그리고 국립중앙도서관의 내부적 업무로는 한국문헌의 주제처리와 편목 외에 수서업무의 시스템분석과 입력된 데이타로 출력할 수 있는 서지(예컨대 '대한민국출판물총목록')발간의 전산화에 착수했다. 또한 서양자료를 포함한 외국 문헌정보에 대하여는 미국의회도서관(L.C.)으로부터 실험용 테이프를 건네받아 현재 그 변환방법을 실험하고 있다. 요컨대 지금 단계는 관내 업무 전산화의 토탈시스템 개발에 착수하는 한편 국내 문헌의 데이타 베이스 구축을 위한 데이타 축적과정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와같은 토대위에서 앞으로 우리나라 도서관의 전산화사업은 박차를 가하게 될 것이다. 이 일을 이끌 국립중앙도서관의 장기계획은 다음과 같은 추진방향을 그 골격으로 하고 있다.
● 국립중앙도서관의 토탈시스템 완성.도서관업무 중 서지정보통정(書誌情報統整)분야에 속하는 모든 업무를 유기적 관련하에 전산화함으로써 그 효율을 극대화 시킨다.
● 전국 도서관의 온라인 네트웍 편성.국립중앙도서관을 중심 데이타베이스로 하여 나라 안의 모든 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정보를 한 체제로 연결·운영함으로써 어떤 문헌정보라도 전국 방방곡곡에서 손쉽게 이용되도록한다. 그 구상도는(그림1)과 같다.
● 해외 학술정보의 이용체계 확립.외국의 주요 데이타 베이스를 도입, 변환하거나 직접 온라인으로 연결하여 국내에 공급하는 전산체제를 구축한다.
위와 같은 계획의 추진 성과에 비례하여 기대되는 효과도 현실화되어 갈 것이다. 그리고 그 효과는 일일이 늘어놓을 수 없을만큼 다양하고 크다. 예컨대 나라 안팎의 문헌정보를 마음만 먹으면 앉은 자리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과 같은 것은 이용자측이 실감하게 생활의 변화가 될 것이며 인력과 예산의 막대한 절감은 경영의 일대 혁신을 가져올 것이다.
그러나 정보경쟁의 후발성을 극복하고 도서관 전산화를 통한 국가정보능력의 진정한 신장을 기약하기 위해서는 첫째 국민일반의 인식과 이해, 둘째 도서관 및 그 관련분야의 협력과 의지, 세째 정부의 과감한 정책과 투자가 따라야 할 것이다.
"만약 아메리카 대륙이 초토화 되는 불행을 겪게 되더라도 미국의회도서관의 정보시스템만 남는다면 오늘의 미국을 그 자리에 복원해 놓을 수 있을 것" 이라는 말에서 우리는 현대적 도서관의 막중한 기능을 실감하게 된다.
국가사회의 진정한 선진화는 이른바 '정보예속'에서 실질적으로 벗어나 자주적 정보운용체제를 보유하고 가동할 때 비로소 가능하게 되는 것이라고 본다면, 국가 문헌정보의 중추기지인 도서관의 중요성이야 말로 아무리 강조하여도 지나칠 바가 없다할 것이다.
지금 새로 짓고있는 국립중앙도서관의 신축건물이 차츰 그 당당한 모습을 들어내고 있는 중이다. 명실상부한 선진화 의지의 주춧돌로 삼고 그 안에 생생한 국가발전의 원동력을 짜 넣으려 한다.
국내의 모든 도서관자원을 한 체제로 연결하고 해외의 문헌정보까지도 적시에 공급할 수 있는 전산화의 계획은 우리나라의 도서관문화를 선도할 '국립중앙도서관 종합발전계획'의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다.
언필칭 이 일은 일부 전문가나 도서관계자 만의 꿈이 아니고 이 시대 이 땅위에 살고있는 우리 모두가 이해하고 협력하고 동참하여야 할 국가발전의 역사적 현실 과제가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