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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기사] ‘백신계 노벨상’ 수상자 인터뷰 “백신 백신은 생명 생명을 살립니다”

    질병과의 전쟁, 그 최전선에서 인류를 지켜내는 한 방울의 기적. 백신이다. 1798년 영국의 의사 에드워드 제너가 인류 최초의 백신을 개발하면서부터 지금까지 230여 년간 이어져 온 백신의 역사 속에는 유독 영웅담이 많다. 그 가운데 소아마비 정복의 주역 두 사람이 한국을 찾았다.
    5월 1일 서울 국제백신연구소(IVI) 본부에서 만나 한국 방문 이유와 백신의 의미를 들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코로나19)을 대비하기 위해 마스크를 쓰고 보내던 무더운 여름날을 기억하는가. 그렇게 인류는 꼬박 3년여 간 코로나19 팬데믹과 싸웠다. 세계를 강타했던 코로나19 팬데믹도 지금은 ‘그런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까마득한 과거가 됐다. 백신 덕분이었다.


    “제가 개발에 이바지한 기술로 수많은 세계인의 생명을 구했다는 것이 매우 기쁘고 행복합니다.” mRNA 백신 기술을 개발해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중요한 기여를 한 커털린 커리코 독일 바이오엔테크 수석부사장이 2022년 제1회 국제백신연구소(IVI)-SK바이오사이언스 박만훈상을 받으며 남긴 소감이다. 커리코 부사장과 드루 와이스먼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의대 교수는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한 주역으로 꼽힌다. 이들이 인생을 바쳐 개발한 mRNA 백신 기술로 기존 백신보다 더 빨리, 더 많은 백신을 만들 수 있었다. 그 덕에 전 세계에 코로나19 백신을 빠르게 보급해 팬데믹의 확산세를 막은 것이다. 


    백신의 역사 속에는 커리코 부사장과 와이스먼 교수 외에도 우리가 기억해야 할 영웅이 많다. 이들의 성과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 국제백신연구소는 SK바이오사이언스와 함께 매년 ‘IVI-SK바이오사이언스 박만훈상’을 수여하고 있다. 국제백신연구소는 1997년 유엔개발계획(UNDP)의 주도로 설립된 국제기구다. 박만훈 전 SK바이오사이언스 부회장은 2021년 향년 64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한국 백신 연구개발에 평생을 바치며, 한국 백신 기술 자립을 이끈 인물이다. IVI-SK바이오사이언스 박만훈상은 그를 기리기 위해 2021년 제정됐다. 


    2025년에는 총 4명의 공동 수상자가 IVI-SK바이오사이언스 박만훈상을 받았다. 2형 소아마비 백신(nOPV2)을 개발하고 보급한 공로로 피에르 반 담 벨기에 안트워프대 교수와 아난다 산카 반디요파디야 미국 빌게이츠재단 소아마비 부서 부책임자가 수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브라질과 나이지리아에서 비영리 재단을 설립하고 활동해 예방 접종률을 높인 루이자 헬레나 트라자노 ‘브라질여성그룹(Grupo Mulheres do Brasil)’ 대표와 스베타 자넘팔리 ‘뉴인센티브(New Incentives)’ 대표도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5월 1일, 서울 국제백신연구소 본부에서 반 담 교수와 반디요파디야 부책임자를 만나 수상소감과 함께 2형 소아마비 백신 개발의 뒷이야기를 들었다.

     

    국제백신연구소

    2025 IVI-SK바이오사이언스 박만훈상 수상자들. 왼쪽부터 아난다 산카 반디요파디야 미국 빌게이츠재단 소아마비 부서 부책임자, 루이자 헬레나 트라자노 ‘브라질여성그룹’ 대표와 스베타 자넘팔리 ‘뉴인센티브’ 대표, 피에르 반 담 벨기에 안트워프대 교수다.

     

    소아마비와의 전쟁, 소크의 유산을 이어가며

     

    “상을 받게 돼 무척 영광입니다. IVI-SK바이오사이언스 박만훈상은 백신 연구자들과 세계 보건 정책 관계자들이 정말 중요하게 여기는 상입니다. 백신은 생명을 직접적으로 살리는 기술입니다. 백신을 개발하고 보급하는 이들을 독려하는 큰 상을 받아 기쁩니다.”


    축하 인사를 건네자, 반디요파디야 부책임자는 웃으며 화답했다. ‘백신은 생명을 살린다’는 그의 말은 수십 년간 소아마비 백신의 영향력을 최전선에서 지켜본 세월을 압축하는 표현이었다. 그는 현재 미국의 빌 게이츠와 멜린다 게이츠가 설립한 ‘빌게이츠 재단’의 소아마비 부서에서 소아마비 백신을 연구하고 있다. 그가 반 담 교수와 함께 개발한 nOPV2 백신은 지금까지 41개 이상의 국가에서 15억 회 이상 접종됐다.


    반디요파디야 부책임자를 소아마비 백신 개발에 뛰어들게 만든 건 현장의 모습이었다.


    “저는 인도 콜카타에서 보건 담당관으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15년도 더 된 일이죠. 그때 어린 연구자로서 백신의 영향력을 직접 봤습니다. 소아마비는 어린이들에게 마비를 일으키는 질병입니다. 전염성이 굉장히 높은데,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계층의 어린이들에게 더 잘 퍼지죠. 그런데 콜카타 지역에서 소아마비 백신 접종 캠페인을 진행하면, 소아마비 감염률이 현저히 낮아졌어요. 그런 극적인 효과를 보며 백신의 힘을 실감하게 됐습니다.”
    소아마비는 인체에 침입한 폴리오 바이러스가 신경계를 공격하면서 발생하는 질병이다. 이 과정에서 폴리오 바이러스가 운동신경을 손상시키면 처음에는 근육 무기력증을 보이다가, 병의 진행에 따라 일시적 또는 영구적인 신체 마비와 변형이 생긴다. 소아마비는 주로 분변과 침방울 등을 통해 전파된다. 그래서 오염된 물이나 음식물을 통해 쉽게 퍼진다. 생활 환경이 비위생적인 취약계층 사이에서 전파가 빠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세기 중반, 소아마비는 세계적인 문제였다. 미국에서는 1952년, 무려 5만 7628건의 소아마비 사례가 보고됐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도 고통받았을 정도로 광범위하게 퍼진 병이었다. 한국에서도 1950년대 소아마비가 유행해 당시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에 보고된 사례가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초까지 매해 1000건이 넘었다.


    이런 분위기를 단숨에 반전시킨 사람이 있었다. 미국의 의학자 조너스 에드워드 소크였다. 그는 1948년부터 소아마비 백신 연구에 매진해 1952년에는 세계 최초로 불활성화된 폴리오 바이러스를 이용한 사백신을 개발하는 데 성공한다. 이어 1955년에는 백신의 안전성이 입증되면서 소아마비와의 전쟁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7년간 쉬지 않고 연구에 매진한 소크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소크가 개발한 백신 덕에 1979년부터 1999년 사이 미국의 신규 소아마비 환자 수는 ‘0명’이 됐다. 한국도 1984년 이후부터는 소아마비 박멸에 성공한 국가 반열에 올랐다.


    소크의 이름이 오늘날까지 기억되는 이유는 그가 소아마비 백신을 처음 개발한 사람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소크는 한 TV 인터뷰에서 소아마비 백신의 특허권이 누구에게 있냐는 질문에 다음과 같은 답을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글쎄요, 말하자면 사람들이겠죠. 특허는 없습니다. 태양에 특허를 낼 수 있겠습니까?” 실제로 소크는 소아마비 백신에 특허를 내지 않았고, 그 덕에 소아마비 백신은 가난한 이와 부유한 이를 가리지 않고 전 세계에 퍼질 수 있었다.

     

    세계 최초로 소아마비 백신 개발에 성공한 미국의 의학자 조너스 에드워드 소크가 백신을 접종하고 있다. 그는 이 공로로 미국의 국민 영웅 반열에 올랐다. 미국의 타임지는 그를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명’ 중 하나로 꼽았다.
     
    더 안전한, 더 빠른 백신 개발을 위해서

     

    소크가 인류에게 남긴 유산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그 덕에 소아마비는 현재 천연두에 이어 퇴치를 목전에 둔 질환이 됐다. 하지만 남은 문제가 있었다. 소아마비 백신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다. 사백신(IPV)과 생백신(OPV)이다. 소크가 개발한 사백신은 말 그대로 죽은 바이러스를 몸에 주입하는 형태다. 죽은 바이러스를 이용하니, 인체에 들어온 백신이 부작용을 일으킬 우려가 적다. 대신 주사로 접종해야 해 효율성이 떨어진다.


    반면, 생백신은 살아있는 바이러스를 약화한 형태다. 전염성이 없도록 약독화 과정을 거치지만, 200만 명에 1명꼴로 생백신 속 폴리오 바이러스가 돌연변이를 일으켜 소아마비를 유발하는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이런 위험성을 안고 있지만 생백신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생백신이 특히나 취약계층에 효율적인 방식이기 때문이다. 소아마비 생백신은 입에 약을 직접 투여하는 경구용 백신이다. 접종 방식이 간단해 의료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환경에서도 접종에 무리가 없다. 


    이에 더해 생백신은 말 그대로 ‘살아있지만, 병을 일으키지 않는 폴리오 바이러스’다. 생백신을 접종받은 사람으로부터 약독화된 폴리오 바이러스가 전파돼, 주변에 있는 접종을 받지 않은 사람에게도 백신의 효과가 나타난다. 그래서 소아마비 사백신은 보건 인프라가 잘 갖춰진 선진국에서, 생백신은 개발도상국에서 주로 이용한다.


    생백신의 위험성을 낮추기 위해서, 반디요파디야 부책임자와 그의 팀은 세계보건기구(WHO)가 결성한 공동연구팀의 일원으로 새로운 형태의 소아마비 생백신 개발에 착수했다. 그는 “nOPV2 개발은 다양한 측면에서 길을 닦는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우리는 백신을 이루는 폴리오 바이러스를 유전적으로 다시 창조했어요. 유전자에서 돌연변이가 일어날 만한 부분을 고치고, 안정성을 높였죠. 이렇게 생백신의 유전자를 디자인하는 작업은 백신 개발 역사상 첫 시도였습니다.”


    개발된 백신을 임상 시험하는 방식도 새로웠다. 여기서 반 담 교수가 등장한다. 


    “제 역할은 nOPV2 백신이 개발된 다음부터 시작됐습니다. 반디요파디야 부책임자와 저는 2014년 다른 연구자들과 함께한 아침 식사 자리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그때 반디요파디야 부책임자는 nOPV2 백신 임상시험을 빠르게 진행할 방식을 고민하고 있었죠. 우리는 그날 식사 자리에서 두 시간 넘게 회의를 이어갔습니다.” 반디요파디야 부책임자는 “나는 이제 반 담 교수가 아침 식사를 하자고 하면 우선 싫다고 말한다”며 웃었다.

     

    연합뉴스

    소아마비 백신은 지금도 전세계 어린이들의 건강을 지키고 있다. 2024년 10월 파키스탄의 한 어린이가 소아마비 경구용 백신을 접종받고 있다.

     

    WHO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나이지리아 등 국가에서는 아직도 소아마비 발병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2023년 7월 31일부터 2024년 7월 30일까지 세계보건기구(WHO)에 보고된 전 세계 소아마비 발병 현황을 지도에 나타냈다. 지도에서 소아마비 풍토화 단계란,
    마치 감기처럼 소아마비 바이러스가 계절에 따라 변이를 일으키는 치명률이 낮은 질병이 된 단계를 말한다.
     
    팬데믹이 끝난 자리, 다음을 준비하는 과학자들

     

    “우선 임상시험 참가자들이 한 달간 갇혀 있을 공간이 필요했습니다. 이 공간에서 동시에 백신 연구도 수행해야 했고요. 시간이 별로 없었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소아마비로 인해 고통받는 어린이들을 생각하면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반디요파디야 부책임자의 설명이다.


    반 담 교수는 전부터 백신 임상시험과 백신 개발 및 보급 정책 분야에서 인정받는 인물이었다. 그는 2017년 앤트워프대 병원 주차장에 ‘폴리오폴리스(Poliopolis)’라는 시설을 마련해 nOPV2 백신의 임상 1상 시험을 시작한다. 급하게 공수한 66개의 컨테이너로 출발한 이 시설은 임상 1상 시험을 1년도 되지 않는 시간 만에 완료하는 성과를 냈다.


    “폴리오폴리스를 통한 nOPV2 백신 임상 시험 과정은 어느 하나 도전이 아닌 것이 없었습니다. 자원봉사자를 모으고, 실험실 시스템을 구축하고, 이렇게 만들어진 백신 샘플을 미국 애틀랜타의 질병통제예방센터(CDC)까지 옮기는 것 모두 쉬운 일이 아니었죠. 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도전 과제를 수행하는 건 굉장히 동기부여가 되는 일입니다. 임상시험이 진행되는 2년간 저와 제 팀은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일했죠.”


    반디요파디야 부책임자와 반 담 교수의 협업은 2021년 결실을 얻었다. nOPV2 백신은 2020년 WHO의 긴급사용 승인을 받고, 2021년부터 나이지리아, 라이베리아 등 국가에서 접종되기 시작했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반 담 교수는 폴리오폴리스에서 더 나아가 2022년엔 앤트워프대에 ‘백시노폴리스(Vaccinopolis)’를 열었다. 백시노폴리스는 현재 WHO의 감염병예방협력 센터로 자리매김하며 코로나19 백신 개발에도 기여하고 있다. 


    반 담 교수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백시노폴리스는 영구적인 기관으로 남았다”면서 “이 곳에서 코로나19 백신 연구와 인플루엔자, 그리고 나아가서는 다음 팬데믹을 대비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아마비 백신의 두 영웅은 인터뷰 내내 입을 모아 “팬데믹이 끝난 지금, 백신의 가치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끝났지만,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는 전염병과의 싸움이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백신 연구자들에게 쉼이란 없다. 앞으로 어떤 연구를 할 계획인지 묻는 기자의 질문에 반디요파디야 부책임자는 이렇게 답했다.


    “바이러스는 차별하지 않습니다.  나라와 지역, 인종을 가리지 않고 퍼지죠. 그러니 더더욱 우리는 차이를 넘어서 힘을 합쳐야 합니다. 이미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을 한번 봤잖아요. 앞으로 저는 소아마비 백신의 접근성을 더 낮추는 연구를 할 겁니다. 저와 제 팀은 현재 더 저렴하고, 더 안정적인 백신을 개발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백신은 생명을 살립니다. 백신으로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 질병으로 인해 어린이들이 고통받고 죽는 걸 보는 건 받아들일 수 없는 일입니다.” 

     

    Vaccinopolis

    피에르 반 담 벨기에 안트워프대 교수가 안트워프대 병원에 설치한 소아마비 백신 임상 시험 시설 ‘폴리오폴리스(Poliopol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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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년 7월 과학동아 정보

    • 김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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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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