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요즘 세계는 '핼리'혜성얘기로 떠들썩하다. '최고의 천상(天上)쇼'를 구경하자는 호기심에서부터 대지진과 화산폭발을 '핼리'와 연결시키는 추측까지…

86년 4월10일 지구와 가장 가까와져
 

(그림1) 핼리혜성의 전궤도


태양에서 약60억㎞ 떨어진 암흑과 혹한의 세계, 해왕성궤도 저편에서 머뭇거리던 지름 약6㎞의 소천체(小天體)가 태양을 향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때는 1948년. 이로부터 38년후, 이 소천체는 지름 수백만㎞의 가스로 뒤덮여 태양에 도달하려 한다.
76년만에 찾아오는 핼리혜성으로 세계가 요란하다. 그 신비스런 모습으로 사람을 감동시키기도 하고 공포에 떨게도 한 핼리혜성은 지구궤도를 넘어서 근일점(태양과 가장 가까와지는 지점) 도착을 눈앞에 두고있다(86년2월9일).

지구와의 첫번째 접근은 지난 11월 27일(거리9천3백만㎞), 이날 이후는 공전하는 지구와 다시 멀어졌다가 86년 4월 10일경에 2번째 지구접근이 이루어진다. 이때가 지구와의 거리가 6천3백만㎞로 가장 가까운 접근이다(그림1,2참조).
숱한 화제와 미혹의 대상이었던 '핼리'의 정체는 인류사상 최초로 쏘아올린 6개의 탐사위성이 상당한 정도 밝혀낼 것이다. 우리는 TV화면에서 그 장관을 볼수 있을 것이며 지상에서도 직접 관찰할 수도 있다.
 

(그림2) 핼리혜성의 위치


지름 6㎞의 눈덩어리

혜성하면 꼬리가 달린 밝은 천체라고 생각하지만 대부분의 혜성은 희미한 빛의 반점으로 발견된다. 그러나 대표적인 혜성은 머리부분과 꼬리가 있고 머리의 중앙부에는 대단히 강한 빛을 내는 핵이 있다. 이 핵이 바로 혜성이 본체이며 지름이 불과 10㎞정도밖에안되는 단단한 눈덩어리'이다. 핼리혜성의 핵도 지름이 불과 약6㎞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 고체의 눈덩어리 속에는 철, 망간, 니켈 등의 금속과 암석 등이 먼지형태로 혼합되어 있으며 태양 가까이에 오면 바깥쪽에서부터 녹기시작, 개스와 먼지가 증발하여 핵을 뿌옇게 둘러싼다. '코마'(라틴어로 머리털)의 탄생이다. 우리는 이 개스체가 태양에 조명되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이다. 핼리혜성이 화성궤도를 통과하면서 '코마'의 개스는 태양의 복사압과 태양풍으로 인해 해양의 반대방향으로 밀린다. 이것이 바로 혜성의 꼬리다. 혜성꼬리는 태양에 접근함에 따라 더욱 길고 뚜렷해진다.

꼬리에는 두종류가 있다. 하나는 태양과 정반대 방향으로 곧게 뻗은 '이온'꼬리이다. 코마를 이루고 있는 입자가 태양의 강한 자외선복사에 의해 +이온과 -이온으로 나뉘어 생겨난다. 다른 꼬리는 먼지꼬리다. 혜성의 운동과 함께 핵으로부터 연속적으로 방출된 먼지가 태양풍(태양에서 방출하는 전리된 입자의 흐름)의 압력에 의해 태양 반대방향으로 두껍고 넓게 퍼진다. 먼지꼬리는 약간 휘어지는 특징이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혜성의 꼬리는 먼지꼬리다.

1910년에 나타났던 핼리혜성은 불과 6㎞의 본체에 반지름이 1천만㎞의 코마를 가지고 그 뒤로 약 3억2천만㎞나 되는 꼬리를 늘어뜨리며 나타났었다.(지구와 태양사이의 거리는 1억5천만㎞) 이 코마의 꼬리가 말하자면 핼리혜성의 대기인 셈이지만 지구의 대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약 1천만분의 1)로 희박하다.

1910년에 나타났던 핼리혜성은 지구에 상당히 접근했기 때문에 지상에서도 웅장한 모습을 볼 수 있었지만 이번 회귀에는 지구와의 최접근거리(86년 4월 10~11일 예정 약6천3백만㎞)가 이전에 비하여 멀고 또 지구, 태양, 핼리와의 상대적위치 관계 때문에 관측조건을 나쁘다고 볼 수 있다. 핼리혜성 자체도 주기를 반복함에 따라 기력이 쇠퇴한다. 76년의 긴 여행을 하다보면 태양계내 혹성들의 인력을 받아 자체질량도 어느 정도 감소됐을 것으로 추측된다.
 

핼리혜성의 구조^태양의 복사압과 태양풍으로 형성된 꼬리는 태양에 가까와질수록 길고 뚜렷해진다.


풀려지는 태양계의 수수께끼
 

(표1) 핼리혜성 탐사기


태양계를 떠다니는 수많은 혜성들은 언제 어디서 탄생한 것일까 아직까지도 혜성은 태양계의 수수께끼이다. 1950년, 네덜란드의 천문학자'오르트'는 태양계 밖의 아주 먼곳에 혜성의 집이 존재한다고 발표했다. 여기에는 1천억 개 이상의 혜성이 있는데 이 혜성집을 오르트구름이라고 한다. 태양계 근방을 통과하는 별의 인력을 받아 혜성은 태양을 향해 끌려가게 된다. 혜성의 기원을 연구하는 것은 지구를 포함한 태양계 탄생의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가 될 것이다. 만약 혜성에서 채취한 물질이 원시태양계의 구성물질과 같다면 혜성에서 원시태양계의 잔재를 살펴볼 수도 있으며, 아직까지도 신비에 싸여있는 태양계의 생성기원과 구성 성분에 대한 실마리를 풀 수도 있다. 예를들면 혜성물질의 ${C}_{12}$와 ${C}_{13}$의 함량비를 조사해 지구를 포함한 태양계내의 혹성과 어떤 차이를 보이는가도 대단한 관심을 끌고있다. 태양계내의 두 원자의 존재비는 어떤 천체에서나 거의같다. 이것은 태양계내의 천체는 모두 같은 것으로부터 탄생했다는 것을 증명한다. 만약 혜성의 함량비가 태양계 혹성과 비슷하다면 혜성은 태양계 생성의 산증인이다. "핼리혜성도 수성, 금성, 지구와 하나의 형제일까?"하는 의문은 이처럼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번에 나타나는 핼리혜성은 미지의 의문을 해결하는 가장 좋은 기회이다. 세계 각국은 국제협력하에 여러가지 탐사계획을 세우고 있다. 1910년 관측이 광학망원경에 의한 지상관측이었던 것에 비하여 이번 관측은 입체적이다. 핼리혜성 관측조건이 나빠졌다 하더라도 76년 동안 천문학은 대단히 발전했다.

전번 회귀에 세계의 천문학자들이 핼리를 처음 발견한 것은 1909년 9월이었지만 이번에는 근일점통과 3년전에 이미 핼리를 찾아냈다. 지상관측 또한 가시광선 영역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적외선, 자외선, 전파관측이 행해진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위성탐사계획. 최첨단 과학기술의 결정체인 탐사선을 혜성가까이에 접근시켜 그 본질을 연구한다. 현재까지 총6개의 탐사선이 핼리를 맞이하기 위해 발사되어 86년 3월부터 6월에 걸쳐 본격적인 탐사를 진행한다(표1참조).

6개의 탐사기 중 유럽우주기구에서 보낸'지오트'는 핼리혜성 핵에서 약5백㎞까지 접근하여 4시간 동안 핵을 TV로 촬영, 지상에 중계할 예정이다. 핵 가까이 5백㎞까지 접근한다는 것은 많은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궤도계산의 잘못으로 핵분자와의 충돌가능성도 높고 핼리혜성에서 방출되는 먼지입자에 의해 '지오트'탐사기가 흔들릴 위험도 많다.

여기서 필수적으로 요청되는 것이 국제협력이다. '지오트'가 핵에 접근하는 약 1주일전에 핵으로부터 약1만㎞에 있는 소련의 '베가1호'는 '지오트'의 궤도를 정확히 수정해준다. 또한 일본의 '선구호'는 태양풍을 관찰, '지오트'의 흔들림을 방지하기 위한 데이터를 보내온다. 이처럼 6개의 위성은 서로 협력체제를 갖고 핼리탐사를 시행한다. 이들에 의한 종합적인 관찰은 핼리혜성의 실상을 보다 정확히 밝힐 것이며, 더 나아가 태양계 생성기원과 구성성분에 관한 많은 새로운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지상에서의 관측계획도 전세계의 전문가 뿐만아니라 아마추어들에 의해 다양하게 준비되고 있다. 지상관측은 주로 혜성의 물질적 조성을 알 수 있는 분광관측과 밝기와 온도변화 등을 조사하는 광전관측, 그리고 위치변화 등을 조사하는 사진관측으로 나뉜다.

그중에서 밝기와 위치변화는 많은 아마추어들에 의해 얻어질 수 있다. 세계의 아마추어들은 국제핼리관측기구(IHW)를 구성하여 전문가들의 협력하에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국내에서도 국립천문대를 비롯 각대학천문대와 아마추어 천문가들에 의해 핼리혜성 관측이 진행되고 있다. 특히 국립천문대의 소백산관측소와 연세대학교 일산관측소에서는 국내 최대의 61㎝ 반사망원경으로 광전관측과 사진관측을 수행, 핼리의 밝기와 온도변화, 꼬리크기 등을 관찰하고 있다.

연세대학교 나일성교수와 이용삼연구원은 85년 8월 장마와 9월의 악천후에 고전을 고듭하다 9월25일 새벽, 핼리혜성 촬영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또한 한국아마추어천문협회(회장 박동현 : 덕성여대교수)는 85년 5월부터 15명으로 구성된 핼리탐사반을 구성, 맹활약 중이다. 이 탐사반도 역시 9월25일 새벽 4시15분, 충남 아산군 온양읍 야산지대인 음봉에서 핼리혜성 사진촬영에 성공했다. IHW에서 제공한 데이터를 컴퓨터처리, 핼리를 정확히 추적 개가를 올린 것이다. 16㎝반사망원경을 사용하였고 그때의 핼리혜성 전체광도는 11.5등급, 핵광도는 17.8등급이었다. 이 사진은 국립천문대에 있는 팔로마성도(21등성까지 표시돼 있음)에서 비교분석, 핼리혜성 사진으로 공인되었다. 현재도 15일 간격으로 탐사팀을 음봉에 내려보내 핼리관측을 진행중이다.

또한 서울대학교 아마추어천문회도 교내에 위치한 제1관측소의 25.4㎝ 반사망원경을 이용, 관측활동을 벌이고 있다.
 

(표2) 핼리혜성의 날짜별 밝기 변화


나도 볼 수 있다
 

(그림3) 천구상의 핼리혜성 궤도(1985.11~1986.5)


영원한 우주의 여인(旅人), 핼리혜성은 국내에서는 어느 정도 관찰가능한가. 육안으로 아니면 쌍안경이나 소형망원경으로 언제, 어느 별자리부근에서 관찰할 수 있나를 알아보자.

우리가 보통 육안으로 관찰가능한 별은 6등급부터이다. 핼리혜성이 지구와 처음 접근하는시기(85.11.27)가 6.5등급이며 지구와 가장 가깝게 접근하는 86년4월10일경의 밝기가 4.0등급이다(표2참조).

이론적으로는 12월 20일 이후부터 육안관찰이 가능하지만 도시상공에서는 공해와 조명때문에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서울상공에서는 맑은 날씨에도 3등성은 돼야 희미하게나마 보이는게 현실이다. 예를들어 2등성인 북두칠성도 맑은 날씨에야 뚜렷하게 보인다. 결국 핼리의 모습을 직접 보자면 어둡고 공해가 없는 시골로 내려가야 한다. 또한 이번 핼리회귀는 남쪽지방으로 가야만 관찰이 용이하다. 중부이남의 한적한 시골야산지대가 관찰의 최적조건인 셈이다.

좀더 확실한 관찰을 위해서 천구상의 핼리혜성궤도를 통해 알아보자(그림3). 핼리는 11월, 플레아데스(좀생이 별) 아래를 통과하여 12월 페가수스자리 밑을 지난다. 1월말부터 2월말까지는 지구의 위치상으로 보아서 핼리혜성이 태양쪽에 존재하므로 지구에서는 관찰 불가능하다. 3월말에는 궁수자리 옆을 지나고 지구와의 최접근시(4월 10일 경)에는 전갈자리와 켄타우르스자리 사이에 있다.

육안으로 관찰할 수 있는 시기를 살펴보면 85년 12월20일이후부터 86년 1월25일경까지와 86년 3월 초순부터 4월말까지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위치한 위도(북위 35~40도를 기준)를 고려하면 상황은 약간 달라진다. 애석하게도 핼리혜성이 지구와 가장 가까이 접근하고 가장 밝게보이는 4월10일을 전후한 며칠동안은 지평선 아래로 핼리혜성이 사라지므로 관측이 불가능하리라고 추측된다.

<;그림4>;는 북위 38도상에서의 관찰고도를 나타내준다. 예를들면 1월15일의 핼리혜성은 지평선과 15도 각도 위의 남서쪽 저녁하늘에서 보인다.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면 핼리혜성은 1월말경 서쪽하늘에서 사라졌다가 3월초순 남동쪽 새벽하늘에 다시 나타난다. 4월 초순까지 남쪽하늘로 이동하다가 4월10일 전후로 해서는 잠시 사라지고 4월 중순 이후 남동쪽 저녁하늘에 다시 나타난다. 보통 지평선과의 고도가 10도 이하면 관찰하기는 매우 까다롭다. 남쪽지방으로 내려갈수록 관찰고도는 높아지고 4월10일을 전후한 핼리혜성도 볼 수 있다.

<;그림3>;과 <;그림4>;를 이용한 관찰방법의 예를 들어보자. 86년 1월10일 핼리혜성을 관찰하고 싶다면 먼저 <;그림4>;에서 남서쪽 저녁하늘 고도20도를 확인하고 <;그림3>;에서 어느 별자리를 통과하고 있는지 예비지식을 얻으면 보다쉽게 핼리혜성을 관찰할 수 있다.

육안관찰은 이론적으로 보면 가능하지만 그 당시의 날씨상황, 대기오염, 조명 등에 예민하게 작용하므로 보다 확실한 관찰을 위해서는 소형망원경이나 쌍안경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소형망원경이나 쌍안경을 사용하면 핼리를 관측할 수 있는 시기도 길어질뿐아니라 보다 선명히 관찰할 수 있다(그림3). 보통 시중에서 팔고있는 관찰 가능한 소형망원경(보통 60~70㎜)의 가격은 5만원선이다. 그러나 카메라를 연결시킬 수 있는 20㎝ 정도의 망원경은 제작비만 30만원 이상이 든다. 특히 핼리혜성이 꼬리가 발달하여 그 면적이 넓어지면 망원경보다는 쌍안경관찰이 유리하게 된다. 관찰 가능한 35㎜ 쌍안경의 가격은 약 3~4만원선. 쌍안경을 사용할 때는 관찰상태가 흔들리지 않도록 삼각대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쉬운 방법으로는 등받이가 있는 의자에 거꾸로 앉아 팔을 등받이에 올려 놓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혜성아 워낙 빨리 움직이고 여러가지 변수가 많아 천문학에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초보자는 국립천문대나 각종 단체에서 주관하는 행사에 참여, 핼리혜성을 지켜보는 것이 보다 확실하다. 국내 핼리탐사 계획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국립천문대에서는 개기일식이 일어나는 86년 4월24일에 핼리혜성이 가장 잘 보일 것으로 예측, 4월23일~24일 이틀간 전국적으로 천체관측회를 개최하여 일반국민들도 핼리혜성관측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또한 한국아마추어 천문협회에서는 86년 1월7일부터 10일까지 충남도고산장에서 국교3년~고교3년생 3백명이 참가하는 핼리과학캠프를 열 예정이다.(문의전화 295-2089)

연세대 천문대 산하에 있는 한국아마추어천문가회에서도 핼리의 고도가 높은 제주나 남해안에서 핼리관측모임을 가질 예정이다. 또한 주로 학생층을 대상으로 하는 어린이회관 육영천문회에서도 3월 중순께 제주도에서 관측회를 열 계획이다.
 

(그림4) 북위 38˚ 상의 관찰고도


뉴튼이 밝혀낸 핼리혜성궤도

핼리혜성이 처음으로 76년 주기혜성으로 밝혀진 것은 영국 천문학자'에드먼드핼리'(1656~1742)였다. 핼리는 당시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표한 친구인 뉴튼의 협력을 얻어 혜성의 궤도를 계산하고 1531년 출현한 혜성과 1607년에 출현한 혜성은 동일한 것이며 긴타원의 궤도를 가지는 76년 주기혜성이라고 발표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핼리혜성'이라고 명명한 것이다.

전세계에 기록되었던 핼리혜성의 역사 중 가장 오래된 것은 BC 239년 3월30일(근일점 통과일)에 나타난 것으로 중국 '사마천'의 '사기'에 나타난다. 기록으로서 가장 신뢰할만한 최고의 것이다. 이 당시만해도 유럽에서는 혜성을 별로 보지않고 일종의 대기현상으로 간주하였다.

혜성은 인간에게 길조라기보다는 흉조에 가까운 것으로 여겨졌다. 점성술에서의 혜성의 출연은 전쟁과 재해의 발생, 위정자의 죽음을 예언하는 것이었다. 로마시대 '시저'의 죽음도 혜성과 결부시켰고 폭군 '네로'도 혜성을 두려워했다. 1066년 '윌리암'의 노르만정복 당시, 영국국왕 '해롯'Ⅱ세가 핼리혜성을 보고 위축되어 대패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밤하늘에 장대하게 펼쳐지는 핼리의 모습은 폭군위정자의 잠재적 심리를 마구 흔들어 놓았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핼리혜성에 본격적인 과학의 메스가 가해진 것은 1682년 9월15일 출현 이후라 하겠다. 유럽은 르네상스시대를 거치면서 천문학도 많은 발전을 하였다. 이때는 영국 그리니치천문대가 핼리혜성을 처음 발견했고 핼리라는 이름이 명명된 이후, 76년 주기혜성임을 만천하에 증명한 해였다.

핼리가 출현한 해(1835년)에 태어나 다시 출현한 해(1910년)에 죽은 '톰소여의 모험' 작가인 '마크트웨인'의 이야기를 비롯, 핼리에 얽힌 에피소드는 많지만 1910년 회귀에는 많은 이야기가 남겨져 있다. 핼리혜성의 꼬리가 지구를 뒤덮어 지구상의 인간은 모두 죽는다는 루머가 유행, 천문학자들을 당황시켰다. 이 루머의 출처는 확실치 않지만 1906년 유명한 SF작가인 'H.G.웰즈'가 '혜성가운데의 나날'이라는 소설을 발표했던 것이 아닌가 추측하고 있다. 1910년에는 핼리에 관한 책들이 많이 나왔는데 내용은 상당히 과학적으로 핼리를 분석했음에도 그 제목들이 '지구와 혜성의 충돌'등으로 표현돼 사람들의 공포심을 자극하였다고 볼 수 있다. 특히 혜성물질 중에 독성물질이 포함돼있다는 소식을 듣고 뉴욕의 모든 집에서 자물쇠구멍까지도 솜으로 틀어막았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이번 회귀에서는 핼리혜성에 관한 많은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콜롬비아 화산폭발 등을 핼리혜성과 관련시켜 이야기하는 호사가들도 있긴 하지만 핼리혜성의 출현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를 비롯한 태양계의 존재를 보다 분명히 밝혀주는 귀중한 계기가 될 것이다.

한국에서의 고대기록

혜성에 대해서는 서양보다 동양에서 더 과학적으로 일찍부터 연구돼 왔다. 그 증거로서 내세울 만한 것은 혜성에 관한 정의이다. 연세대학교 나일성교수에 의하면 동양에서는 서양보다 훨씬 일찍, 혜성을 천체로 간주하였다고 한다. 더우기 저녁에 보이는 혜성은 꼬리를 동쪽으로 뻗고 새벽에 보이는 것은 서쪽으로 뻗는다는 이치도 알고 있었다. 이는 꼬리가 향하는 방향이 태양과 반대방향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욱 재미있는 사실은 혜성을 혜(彗), 패(孛), 치우기라고 3가지로 분리한 사실이다. 우리나라 문헌속에는 치우기라는 기록이 간간히 보인다.

핼리혜성에 관한 우리나라 최고 기록은 고구려 산상왕 27년(AD 217년)의 것이 있다. 그러나 이 기록이 과연 핼리혜성을 나타내는 지는 의심이 간다. 왜냐하면 기록당시가 핼리혜성의 근일점 통과시보다 5개월이나 앞섰기 때문이다. 이 이후의 기록은 8번의 결측(缺測)만 있을뿐 AD 998년 이후는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다.

이중 가장 돋보이는 것은 1759년 조선 영조, 관상감이 발행한 '성변등록'이다. 이것은 측후관들이 관측한 것을 왕에게 즉각 보고한 것이다. 현재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에 3권이 보관되어 있다. 이 책에는 혜성이 발견된 3월5일(음력 4월1일)부터 3월29일(음력4월25일)까지 혜성의 모습과 위치를 기록하고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혜성 모양에 대한 8장의 스케치가 포함됐다는 사실이다. 나일성교수는 "1700년대에 붓으로 그린 혜성 스케치는 혜성 연구에 더없이 귀중한 자료"라고 말하며 "꼬리의 모양과 길이까지 표현된 것은 우리 조상의 천체에 관한 지대한 관심을 나타내주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우리 조상들은 천문학분야에 어느 민족보다 우수한 자질을 발휘했다. 신라시대의 첨성대를 비롯, 조선 세종시대의 우수한 천체관측기구가 이를 증명한다. 핼리혜성에 관한 많은 관찰도 진행되었음이 틀림없다. 다만 우리과학사에 대한 연구 미비로 많은 기록을 찾아내지 못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1986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김두희 기자

🎓️ 진로 추천

  • 천문학
  • 역사·고고학
  • 물리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