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한대의 학과 생활에 관해 이야기하기에 앞서 학과 시스템부터 소개하는 게 좋겠다. 우선 우한대에 입학한 신입생은 세부 전공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다. 엄밀히 말하면, 나는 아직 소프트웨어학과가 아닌 컴퓨터학부에 다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1학년 때는 컴퓨터공학과와 소프트웨어학과 학생 모두 컴퓨터학부에 소속돼 동일한 전공기초 수업을 듣는다. 이후 전공을 선택하면서 2학년 때 소프트웨어학과와 컴퓨터공학과로 나뉜다. 나는 얼마 전 소프트웨어학과로 전공을 선택했다.
이렇게 세부 전공을 정하는 등 중요한 결정을 할 때는 학부생 전원이 모여서 회의를 한다. 이 회의는 컴퓨터학부 사무동에서 열리는데, 기숙사와는 조금 먼 공학부에 있다. 이곳에는 컴퓨터학부의 전공 사무실과 실습 과목이 진행되는 실습실이 있다. 실습이 없는 4학년을 제외하면 이 실습실을 자주 이용한다. 평소 수업은 정보학부 강의동에서 진행된다.
회의에서는 컴퓨터공학과와 소프트웨어학과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전공과목은 어떻게 다른지, 학과별 취업 상황은 어떤지 등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준다. 컴퓨터학부는 우한대에서 학생 수가 가장 많은 학부로, 1학년만 해도 550명 정도 된다. 그래서 전공 결정이나 취업처럼 아주 중요한 일이 아니면 이 인원이 쉽게 모이지 않는다.
중국 대학에는 학부별로 반장과 여러 부장들이 있다. 중국 대학은 학생 수가 많아서 보통 한 학과에 반이 여러 개 존재한다. 반장은 한국 대학의 과대표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주로 반 회의를 열거나 학교의 지시사항을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부장에는 학습부장, 체육부장, 조직부장 등이 있다. 특히 체육부장의 역할이 중요한데, 중국 대학생들의 의무 사항인 체력검사를 진행한다. 이 체력검사는 홍콩, 마카오 출신 학생들과 외국인은 하지 않아도 된다. 이렇게 반을 관리하는 학생들은 반의 전반적인 운영을 도맡는다.
학습 면에서는 과목별로 과목 대표가 있다. 과목 대표는 시험 일자나 과제 내용, 제출 일자 등을 과목별 단체 채팅방을 통해 공지한다. 보통 과목마다 매주 혹은 2주에 한 번 과제를 준다.
인원수가 워낙 많다 보니 학과 내에서 따로 진행하는 학과 활동이나 스터디 같은 것은 없다.게다가 우한대는 중국인인 경우 같은 학과 같은 반 학생들끼리 기숙사를 배정한다. 모르는 내용을 물어보거나 서로 잘하는 것을 가르쳐주는 등 기숙사 내에서 룸메이트와 함께 공부할 수 있어 따로 스터디를 조직할 필요가 없다.
중국 대학과 한국 대학의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는 학생과 교수 사이의 교류가 매우 적다는 점이다. 이 또한 학생 수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보통 학생 수가 가장 많은 과목은 한 교실에서 약 130명이 함께 수업을 듣는다. 전공 수업도 많게는 90명 정도가 동시에 수강한다. 교수와의 교류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한국의 경우에는 그래도 학과마다 지도교수 시스템이 있지만, 중국에는 이런 시스템도 없다. 교수와의 개인 면담은 물론이거니와, 수업 시간 외에 교수를 만나는 것 자체가 어렵다. 심지어 수업에서도 본인이 남아서 질문을 하는 것이 아니라면, 한 학기 동안 교수와 한 마디도 나누지 않는 것은 흔한 일이다.
내 경우에는 이번 학기에 수강 중인 C++ 프로그래밍 과목에서 교수와의 교류가 얼마나 어려운지 느낄 수 있었다. 학생들과 조를 짜서 게임을 만드는 과제가 떨어졌는데, 이 과제가 학점에서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과제를 진행하는 중간에 자신이 어떤 역할을 맡을 것인지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이때 내가 준비한 발표 내용이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해 발표 후 교수에게 여러 가지 조언을 듣고 싶었다. 하지만 교수는 발표한 내용에 대해서만 평가할 뿐, 내 상황에는 관심이 없었다.
다행히 이날 발표에서는 내가 어떤 점을 어려워하는지 같은 조 친구가 교수에게 대신 설명해줘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이렇게 교수에게 먼저 말하지 않으면, 내가 어떤 상황이며 어떤 점이 힘든지 전달할 수 없다. 물론 도움을 받기도 어렵다.
중국 대학은 학과 활동이 매우 적고, 그마저도 공부보다는 학과 운영에 국한돼 있어 학과의 도움을 받기는 매우 어렵다. 자신의 역량을 향상할 길은 스스로 찾아야 한다. 나처럼 소프트웨어 전공자는 중국의 여러 기업이나 학교에서 열리는 프로그래밍 대회를 준비하는 것도 한 방법이며, 이외에도 프로그래밍 강의를 듣거나 프로그래밍 동아리에 가입할 수도 있다. 이 중에서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으면 된다.
하지만 1학년 때는 필수적으로 수강해야 하는 기초과목이 많아 학교 공부를 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편이다. 본격적으로 전공을 공부하는 2학년에 올라가면 이런 활동에 참여해 전공 역량을 끌어올릴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