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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 게놈연구소의 성공 비결

벼 게놈 해독 결과가 발표된 이후 중국의 베이징게놈연구소(BGI)는 전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인간게놈의 1%를 해독했을 때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던 중국의 게놈 연구가 18개월만에 세상을 놀라게 만든 성과를 냈기 때문이다. 세계 언론들이 전하는 BGI의 성공 스토리를 알아보자.

중국의 벼 게놈 해독 작업을 이끈 양 후안밍 박사는 덴마크 코펜하겐대에서 유전학 박사학위를 딴 뒤 프랑스, 미국 등에서 연구생활을 하다가 1994년에 귀국했다. 양 박사는 이때부터 중국과 같은 개발도상국가가 생명공학에서 세계와 경쟁할 수 있는 분야는 게놈 해독에 있다고 보고 그 중심이 될 연구소 설립에 나섰다. 그 결과 중국 과학아카데미(CAS)의 지원을 받아 베이징게놈연구소가 비영리 민간연구소로 출범했다. 당시 BGI에는 CAS 소속 연구자가 10명이 채 안됐지만 CAS 지정 유전체학 및 생물정보학 연구소로 지정될 만큼 처음부터 주목을 받았다.

BGI는 출범 첫해 다국적 인간게놈프로젝트에 참여, 인간 게놈의 1%를 해독했다. 다음해에는 인디카형 벼 게놈 해독을 시작했으며 이와 함께 덴마크가 주도하는 돼지 게놈해독 컨소시엄에도 참여했다.

BGI의 성공 비결은 우선 참여 과학자들의 연령대가 젊어 창의적인 연구와 무한 속도 경쟁을 이겨낼 수 있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사이언스에 발표된 논문 저자 1백명 가운데 10여명을 제외하면 평균 연령이 20대 중반일 정도다.
 

중국의 벼 게놈 해독 연구



20대 과학자들의 활약 두드러져

각 연구분야를 이끌고 있는 과학자들 역시 20대다. 예를 들어 생물정보학 분야를 책임지고 있는 왕 준 박사는 26세로 1백50여명의 프로그래머와 컴퓨터과학자들을 지휘하고 있다. 왕 준 박사는 베이징대를 16세에 들어갔다고 한다.

시료준비와 염기서열해독 분야 1백명의 연구진을 이끄는 뎅 야준 박사는 29세다. 시안 지방 경찰의 법의학전문가이던 뎅 박사는 애초 법의학 박사학위를 따기 위해 계약직 연구자로 BGI에 들어왔다가 염기서열해독으로 진로를 바꾸고 책임자가 됐다.

두번째 성공비결은 새로운 게놈 해독기술의 도입이다. BGI는 미국의 생명공학기업 셀레라 지노믹스가 인간게놈 해독에 이용한 샷건 방식을 도입, 게놈 해독시간을 크게 단축할 수 있었다. 샷건 방식을 이용한 이유는 전통적 게놈 해독방법을 인디카형에 적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전통적인 게놈 해독에서는 위치를 알고 있는 유전자나 특정 염기서열이 반복되는 부위 등을 표지판으로 게놈에 표시한 유전자지도와, 이에 따라 게놈을 조각내 세균의 DNA에 끼워넣은 BAC 클론 라이브러리가 필요하다. IRGSP는 유전자지도와 BAC 클론 라이브러리를 갖고 있지만 이는 자포니카형에 대한 것이어서 인디카형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인간 게놈 해독에서 샷건 방식의 효율성이 입증되기는 했지만 벼 게놈 해독에 적용하는 것은 처음이어서 BGI의 연구진들은 문제가 생길 때마다 스스로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첫번째 난관은 하드웨어 문제였다. 샷건 방식의 게놈 해독에는 슈퍼컴퓨터가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미국이 국가안보의 이유로 중국에 대한 슈퍼컴퓨터 관련 수출에 제약을 가하고 있었다. BGI는 중국에서 막 개발한 도닝 슈퍼컴퓨터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소프트웨어 역시 문제였다. 한 예로 게놈 해독에서는 각 조각들의 염기서열을 이어 붙이는 ‘어셈블러’ 프로그램이 중요하다. 만약 돼지 게놈을 해독한다면 같은 포유류인 인간 게놈 해독에 이용된 도구들을 일종의 ‘틀’로 이용하면 되지만 벼 게놈은 인간과 아주 다르기 때문에 자체 ‘어셈블러’를 만들어야 한다.

BGI 연구진들은 인간게놈 해독에 이용된 어셈블러에 벼 게놈의 40%를 차지하는 의미 없는 염기의 반복 부분을 무시하도록 하는 하부 규칙을 추가했다. 이를 통해 각 조각들의 염기서열을 이으면서 일어날 수 있는 실수를 미연에 방지하면서도 게놈 해독 시간을 줄이는 효과를 거뒀다고 한다.
 

중국 베이징게놈연구소의 양 후 안밍 소장. 그의 뒤로 게놈해독에 이용된 중국산 슈퍼컴퓨터 도 닝이 보인다.



4년만에 연구원 20명서 5백명으로 늘어

마지막으로 양 후안밍 소장의 지도력은 빼놓을 수 없는 결정적 성공 요인이다. 양 박사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중국 과학계를 설득, BGI를 설립했으며 국제 학계에 나가 자금 문제는 없다는 거짓말을 해 인간게놈프로젝트에 참여해도 좋다는 허락을 얻어내기도 했다. BGI 설립 당시에는 자신의 친지나 연구원, 심지어 고향의 지방정부에서도 자금을 끌어냈다.

BGI를 방문하는 외국인들은 건물 곳곳에 붙어있는 격문을 보고는 라이벌전을 앞둔 학교에 온 듯하다고 전한다. 벽마다 ‘빨리 빨리 빨리’ ‘국가의 이익이 최우선’ ‘핵무기와 인공위성 없이 세계에서 설자리가 없듯이 유전자 연구 없이는 세계에서 독립국가가 될 수 없다’ ‘과학적인 발견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와 같은 격문은 양 박사의 신념을 그대로 표현한다. 그를 따라 젊은 연구자들은 출퇴근 시간도 아끼기 위해 슈퍼컴퓨터 옆에서 침낭을 펴고 자면서 24시간 연구에 매달렸다.

출범 당시만 하더라도 2층 짜리 허름한 벽돌건물에서 20명 가량의 연구진으로 시작한 BGI는 이제 5백명의 연구원에 최신 염기서열분석기 92대와 중국에서 가장 빠른 슈퍼컴퓨터 4대를 갖춘 대규모 연구집단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중국 남부의 항조우시에 분원을 개설하기도 했다. 바야흐로 중국이 게놈 해독을 무기로 세계 생명과학계에 도전장을 내고 있는 것이다.

2002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이영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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