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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퍼드 박사의 수학 로그] 제17화. 한국의 잊힌 국론 대가, 이임학

 

수학동아 독자 여러분. 그동안 제가 수학 로그에서 군론을 이야기할 때마다 외국 수학자만 소개했는데요. 우리나라에도 군론이 발전하는 데 기여한 천재 수학자가 있다는 사실 들어봤나요? 

 

 

1922년 12월 18일 대한제국이 일제로부터 지배받던 시절에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난 이임학 교수는 1939년 서울 경성제국대학에 입학합니다. 그 당시 경성제국대학에는 수학과가 없어서 물리학과로 입학했죠. 우리나라가 독립한 다음 해인 1946년 이 교수는 불과 만 24세의 나이로 경성대학(현 서울대학교) 수학과 교수가 됩니다. 어린 나이에 교수가 될 수 있었던 이유에는 이 교수의 뛰어난 수학 실력도 있지만, 광복 뒤 일본인 교수들이 모두 떠나면서 졸업생 가운데 실력이 우수한 사람을 뽑아 교수로 임명하던 시대적 상황도 있습니다.

 


이 교수는 현대대수학, 고급정수론, 위상수학 등을 가르쳤습니다. 그 시기에는 그랜빌(Granville), 스미스(Smith), 롱리(Longley)가 쓴 영문판 ‘미적분학의 기초(Elements of Calculus)’를 미적분 교재로 많이 사용했는데, 1948년 이 교수는 이 책의 한글 번역판을 처음 출판했습니다. 이후에도 이 교수는 ‘평면해석기하학’, ‘대수학’ 등 7권의 대학 교재를 쓰며 열악했던 한국의 수학교육을 발전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세계적인 수학자의 길로 들어서다


이 교수는 1947년 서울의 남대문 시장을 지나다가 우연히 쓰레기더미 속에서 미국 수학회지 ‘미국 수학 협회 회보(Bulletin of American Mathematical Society)’를 발견합니다. 거기서 당시 유명한 수학자였던 막스 초른(Max A. Zorn)이 쓴 논문을 읽게 되죠. 그는 초른이 그 논문에서 제시한 미해결 문제를 간단히 풀어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외국과의 학술 교류가 흔하지 않았고 국제수학지에 논문을 내는 방법도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교수는 화보의 편집자에게 자신이 문제를 해결한 방법과 해답을 편지로 보냈습니다. 


막스 초른은 대한민국이라는 낯선 나라의 한 수학자가 보낸 해답을 보고 감탄했습니다. 그래서 그 내용을 이임학 교수의 이름으로 미국 수학회지에 대신 내주죠. 이 논문은 1949년 ‘On a problem of Max A. Zorn.’이란 제목으로 실렸습니다. 이는 이 교수가 쓴 첫 국제 수학 논문이자 한국인이 최초로 해외 유명 학술지에 낸 수학 논문입니다.

 

 

군론의 대가가 된 비운의 천재 수학자


6.25 전쟁을 겪고 이 교수는 1953년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그곳에서 스티븐 제닝스(Stephen Jennings) 교수를 만나 대수와 군론을 공부하고, 1955년 ‘Witt algebras’라는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당시에 가장 주목받는 수학 연구 분야였던 군론에 혜성처럼 등장해 유한 단순군 분류부터 리군(Lie group) 연구 이론 정립까지 다양한 연구논문을 발표했습니다. 더불어 수학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학술지인 수학 연보(The Annals of Mathematics)에도 논문 두 편을 발표했습니다.


1960년엔 새로운 단순군을 찾아내고 자신의 이름을 따 ‘리 군(Ree Group)’ (리 군(Lie group)과는 영문명칭이 다릅니다!)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그의 다양한 업적을 인정한 프랑스의 세계적인 수학자 장 디외도네(Jean Dieudonne)는 그의 저서 ‘순수 수학의 파노라마(A Panorama of Pure Mathematics)’에서 군론이라는 역사적인 연구를 이끈 위대한 수학자 21명 중 한 명으로 이임학 교수를 꼽았을 정도입니다. 

 


이 교수는 군론으로 수학사에 큰 업적을 남겼지만, 아쉽게도 오랫동안 한국에서 잊힌 비운의 수학자입니다. 1955년엔 대한민국 정부와 갈등을 빚어 한국 국적을 박탈당했기 때문이죠. 다행히 캐나다 정부로부터 영주권과 시민권을 부여받았고 캐나다인으로서 브리티시컬럼비아에 머물다 2005년에 사망했습니다. 


그렇지만 수학계에선 이 교수가 남긴 업적이 잊힌 적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리 군(Ree group)에 관한 논문이 100편이 넘을 정도니까요. 또 일찍이 연구 성과를 인정받아 1963년 40대의 나이로 캐나다 과학자의 최고 영예인 캐나다 왕립학회(Royal society of Canada) 정회원으로 선출됐습니다. 사망 직후인 2006년엔 늦게나마 우리나라 정부로부터 업적을 인정받아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죠. 비록 살아있는 동안엔 한국인으로서 기억되진 못했지만, 사후에라도 한국 수학계의 거목으로 인정받았으니 다행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교수가 공부한 상황과 비교해 오늘날 우리나라는 경제적, 문화적으로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습니다. 수학 분야에서도 국제수학연맹 기준 Group Ⅳ에 속한 수학 강국이 됐죠. 한국의 수학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리 군(Ree group)으로 수학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이임학 교수. 앞으로 수학동아 독자 중에서도 이임학 교수처럼 수학 발전에 기여하는 수학자가 나올 거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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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5월 수학동아 정보

  • 이승재
  • 진행

    김미래 기자 기자
  • 디자인

    김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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