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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퍼드 박사의 수학 로그] 제16화. 펜로즈 타일링과 대칭

 

수학동아 2020년 11월호를 읽은 독자라면 2020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로저 펜로즈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교수를 기억하는 분이 많으실텐데요. 블랙홀과 우주를 연구하는 펜로즈 교수가 대칭의 세계에도 큰 업적을 남겼다는 사실, 알고 있나요?

 


 

길을 걸어갈 때 흔히 볼 수 있는 보도블록, 집 마룻바닥과 벽지, 건물의 벽면을 보면 단순한 무늬가 반복되며 평면을 채우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를 ‘테셀레이션’이나 ‘타일링’, 한국어로는 ‘쪽매맞춤’이라고 부릅니다.


테셀레이션의 정확한 정의는 일정한 형태의 도형을 반복적으로 이어붙여 평면을 빈틈없이 채우는 것입니다. 이때 어떤 조건으로 도형을 이어붙이는지에 따라 테셀레이션의 종류를 구분합니다.


가장 엄격한 조건의 테셀레이션은 단 한 종류의 정다각형만으로 평면을 채우는 것을 말합니다. 이를 ‘정규 테셀레이션’이라고 합니다. 이 조건을 잘 생각해 보면, 오직 세 가지 모양의 정다각형으로만 정규 테셀레이션이 가능하다는 것을 금세 유추할 수 있습니다. 바로 정삼각형, 정사각형, 그리고 정육각형입니다. 360°를 겹치지 않고 빈틈없이 채우려면 정다각형의 한 내각의 크기로 360°를 나눌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른쪽 그림을 보면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림에서 정오각형으로 평면을 채우는 경우에 주목해 보세요. 정삼각형, 정사각형, 정육각형과는 달리 정오각형은 어떻게 이어붙이든 빈틈이 생길 수밖에 없죠? 

 


평면을 주기적으로 채우는 방법의 수


물론 현실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종류의 테셀레이션은 하나의 정다각형으로만 이뤄져 있지 않습니다. 여러 모양의 구조들이 대칭이동을 반복하며 평면을 채우고 있죠. 사진 속 이집트 벽지가 그 예시입니다. 얼핏 보면 원을 겹쳐 평면을 채운 것 같지만, 각 원의 중심을 연결하면 정사각형, 더 쪼개면 직각이등변삼각형 패턴이 대칭이동을 반복해서 평면을 채우고 있죠. 이렇게 대칭이동을 통해 주기적으로 같은 패턴이 반복되는 테셀레이션이 ‘주기적 테셀레이션’입니다.


테셀레이션의 역사는 아주 깁니다. 당장 우리 주변만 둘러봐도 수많은 곳에서 다양한 기하학적 무늬를 이용한 반복적인 대칭이동을 관찰할 수 있죠. 이는 대칭과 균형을 좋아하는 인류의 본성과도 연관이 있지만, 대칭적인 무늬를 만드는 일이 끊임없이 새로운 패턴을 창조하는 일보다 훨씬 쉽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여러 인류문명의 흔적에서 테셀레이션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테셀레이션을 정확히 이해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서로 완전히 달라 보이는 무늬도 대칭이동의 관점에서는 같은 테셀레이션인 경우가 많은데, 이를 엄밀히 분류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선조들은 “대칭이동을 통해 평면을 채울 수 있는 테셀레이션의 방법은 무한할까?”와 같은 질문에 제대로 답할 수 없었습니다. 창작을 이어가려는 예술가들만이 새로운 패턴을 만들기 위해 계속 시도할 뿐이었죠.

 

대칭의 수학, 군론의 등장


어떤 대상의 특징을 이해하고 분류하는 것은 수학자들이 가장 잘하는 일입니다. 테셀레이션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대칭을 연구하는 수학인 군론이 등장한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여러 수학자들의 노력으로 평면 테셀레이션의 종류는 총 17가지밖에 없다는 사실이 증명됐습니다. 이 17가지 테셀레이션을 평면의 대칭군, 혹은 벽지군이라고 부릅니다. 스페인의 알람브라 궁전을 흔히 ‘대칭의 성지’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 17개의 서로 다른 테셀레이션을 성벽 내부의 장식에서 모두 관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수학자들이 군론을 통해 평면의 대칭군을 엄밀히 정의하기 훨씬 전부터 알람브라 궁전을 만든 사람들은 자신들이 모든 평면대칭을 활용해 궁전을 짓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지도 모릅니다.

 

 

펜로즈 타일링과 노벨상


그렇다면 같은 모양의 도형을 사용해서 대칭적으로 반복되는 기본 패턴 없이 평면을 무한하게 채워나가는 것이 가능할까요? 얼핏 보면 불가능한 과제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 어려운 일을 해낸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2020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로저 펜로즈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교수입니다. 펜로즈 교수는 1970년대에 ‘펜로즈 타일링’이라는 예시를 들어 단 두 가지 모양의 사각형만을 사용해서 어떤 패턴의 반복도 없이 2차원 평면을 무한하게 채워나갈 수 있는 ‘비주기적 테셀레이션’을 보여줬습니다. 아래 오른쪽 그림이 파란색 마름모와 초록색 마름모만으로 평면을 채워나가는 펜로즈 타일링의 예시입니다. 어떻게 대칭이동을 해도 이 평면을 규칙성 있게 다시 만들 수는 없죠. 여담으로 옥스퍼드대 단과대학 중 하나인 워덤칼리지에 있는 야외 공간의 바닥 역시 펜로즈 타일링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이는 펜로즈 교수가 워덤칼리지의 교수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펜로즈 타일링의 가치는 단순히 보기 좋고 아름다운 무늬를 만들었다는 예술성에 그치지 않습니다. 반복되는 규칙 없이도 비주기적 테셀레이션이 가능하다는 것을 직접 보여준 펜로즈 타일링 덕분에 1980년대까지만 해도 엉터리 실험으로 취급받던 고체 물질의 준결정 구조가 실존한다는 사실을 밝힐 수 있었습니다. 이 발견의 주인공인 이스라엘 재료과학자 댄 셰흐트만 교수는 2011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발견을 가능하게 한 펜로즈 타일링이지만, 정작 펜로즈 교수는 순전히 재미 삼아 펜로즈 타일링을 고안해냈다고 합니다.


결국 펜로즈 교수가 수학을 즐기며 만들었던 아름다운 모양이 노벨 화학상에 이바지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수학이 이론과 추상 세계를 벗어나 무궁무진하게 활용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아주 좋은 사례가 아닐까요? 우리의 엉뚱하고 재미있는 수학 질문도 어쩌면 세상을 놀라게 할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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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4월 수학동아 정보

  • 이승재(서울대학교 기초과학연구원 사이언스펠로우)
  • 진행

    조현영 기자 기자
  • 디자인

    김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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