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이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질병’, ‘사고’, ‘손해’ 등의 단어가 먼저 생각나지 않나요? 그런데 “보험의 근본은 수학”이라고 열변하며 매일 머릿속으로 그래프를 그리고 방정식을 푼다는 분이 있습니다. 바로 수학을 전공하고 보험회사를 운영하는 송영록 메트라이프생명 대표님입니다.
송영록 대표님과의 인터뷰는 시작부터 기자의 예상을 빗나갔습니다. 수학을 전공했지만 현재는 경영자이기 때문에 오랫동안 수학과 떨어져 지냈다고 생각해 ‘어떻게 수학 이야기를 이끌어낼까’를 고민했거든요. 그런데 마치 물 만난 물고기처럼 술술 수학과 보험 이야기를 풀어내시는 모습에 놀라며 인터뷰를 시작했습니다.
수학이 없으면 보험도 없다
“수학은 보험의 출발점이에요. 수학이 없으면 보험 상품을 만들 수 없거든요. 기업은 상품이 있어야 존재할 수 있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수학이 없으면 보험회사가 존재할 수 없어요.”
보험회사에서 하는 일 중에 수학이 필요한 분야가 무엇인지 묻자 송 대표님은 대뜸 이렇게 답했습니다. 수학이 ‘전부’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곧바로 펜을 들고 노트에 수학 기호와 그래프를 그리며 구체적인 설명을 이어갔습니다.
송 대표님에 따르면 보험 상품은 복잡한 연립방정식 문제를 푼 결과입니다. 보험 가입자들에게 지급할 보험금을 예상한 뒤 역으로 각 가입자에게 받을 보험료를 계산하는 문제죠. 질병에 걸렸을 때 치료비를 주는 보험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사람은 나이와 과거 질병에 걸렸던 경험 등에 따라 특정 질병에 걸릴 확률이 달라집니다. 따라서 모든 고객에게 같은 가격으로 보험 상품을 판매할 수는 없습니다. 질병에 걸릴 위험이 낮은 고객에게는 적은 돈을, 높은 고객에게는 좀 더 많은 돈을 받아야 하죠. 이를 위해 나이와 질병 이력 등을 고려해 해당 고객에게 맞는 적절한 보험료를 계산해야 합니다.
우선 보험회사는 고객의 기대수명과 현재 나이그리고 각 질병에 걸릴 확률, 물가 상승률, 은행 이자율 등을 변수로 하는 복잡한 연립방정식을 풀어서 앞으로 고객들에게 지급할 보험금를 미리 예상합니다. 또 그 돈을 현재 가치로 환산합니다. 그런 뒤 보험회사가 보유한 돈과 비교해 안정적으로 고객에게 보험금을 지급하면서 회사를 운영하려면 보험 상품을 얼마에 팔아야 하는지를 계산하는 겁니다.
이런 업무를 ‘계리(計理)’라고 부릅니다. 이익의 많고 적음을 계산한다는 뜻이지요. 송 대표님은 “수학과 통계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주로 계리 업무를 맡는다”며 “보험회사의 대표 중에는 계리 담당자 출신이 많다”고 말했습니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도입도 ‘수학’이 핵심!
보험 산업은 18세기에 시작된 전통적인 산업인데요, 최근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를 중심으로 한 4차 산업혁명이 보험 산업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보험을 뜻하는 영어 단어 ‘인슈어런스’와 기술을 뜻하는 영어단어 ‘테크놀로지’의 합성어인 ‘인슈어테크’라는 신조어가 생겼을 정도입니다.
송 대표님은 보험 산업에 인슈어테크를 도입하는 데도 ‘수학’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AI는 수학으로 설계된 기술이며, 빅데이터 분석의 기초는 수학이기 때문입니다. 기본 원리가 되는 수학을 이해하지 못하면 기술을 활용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보험 상품 자체가 수식을 만들어 계산한 결과물인데, 거기에 수학적인 도구인 AI와 빅데이터를 접목하려면 반드시 수학을 잘 알아야 한다는 것이 송 대표님의 생각입니다. 메트라이프생명에서는 현재 AI와 빅데이터를 도입하려는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기계학습 기법으로 고객의 행동 패턴과 어떤 보험 상품을 선호하는지와 고객이 보험을 해지하지 않고 유지하는 비율 등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또 블록체인과 스마트폰을 이용해서 고객이 보험금을 청구하기 쉽게 하는 서비스도 개발하고 있습니다.
송 대표님은 “수학을 공부한 사람은 다른 어떤 회사보다 보험회사에서 일하기 편할 것”이라며, “보험 상품을 쉽게 이해하고, AI 같은 새로운 기술을 도입할 때도 훨씬 수월하다”고 말했습니다.
미래 인재에게 필요한 건
‘수학과 사람에 대한 관심’
대구에서 태어난 송 대표님은 중학교 시절 버스를 타거나 길을 걸을 때도 머릿속으로 수학 문제를 풀정도로 수학을 좋아했습니다. 특히 ‘철수’나 ‘영희’가 등장해서 구구절절 서술하는 문제를 x, y, z 같은 미지수를 이용해 단순한 수식으로 만들고, 몇 줄의 수식을 적으면서 답을 찾는 과정과 그 답이 맞았을 때의 쾌감이 좋았답니다.
송 대표님은 “논리적인 풀이 과정을 거쳐서 답을 찾는 것이 재미있었다”며, “틀려도 여러 번 시도한 끝에 답을 맞히면 그게 참 신기했다”고 말했습니다.
수학을 좋아했고, 세상이 움직이는 비밀을 알고 싶었던 송 대표님의 학창 시절 꿈은 수학으로 세상을 설명하는 이론물리학자였습니다. 이론물리학자가 되기 위해서 수학과에 진학했지만 너무나 어려운 수학의 벽에 부딪히면서 진로를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수학과 졸업생의 진로는 크게 세 가지였습니다. 대학원에 가서 연구하거나, 정보통신기술(IT) 분야로 진출하거나, 보험회사에 취직하는 거였죠. 송 대표는 당시에는 주로 밤 늦은 시간에 일했던 컴퓨터 개발자의 삶이 힘들 것 같아서 보험회사에 지원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일해보니 자신에게 잘 맞는 일이었습니다.
이유는 보험이 수학과 인간의 인생에 대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송 대표님에 따르면 보험은 인간의 생로병사를 수학적으로 계산하고, 예측해서 적절한 비용을 받고 어려움이 생겼을 때 도움을 주는 경제제도입니다. 수학과 자연이 움직이는 원리만큼이나 책 읽기를 통해 인간의 삶에 관심이 많았던 송 대표님에게 보험은 딱 맞는 일이었던 거죠.
송 대표님은 “수학을 통해 문제를 단순화하는 법과 논리, 그리고 풀이법을 배웠다면, 책을 통해 사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배웠다”면서, “보험은 인간의 생로병사가 얽혀 있는 유일한 금융 분야라는 점에서 수학과 사람에 대한 관심이 많은 저에게 잘 맞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송 대표님은 수학을 좋아하는 수학동아 독자들에게 책을 많이 읽기를, 수학만큼이나 사람을 좋아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포용력 있는 사람이 되기를 당부했습니다. 수학을 좋아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수학과 연결해 생각하며, 다른 사람도 자기 생각을 이해할 거라고 짐작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보험회사뿐 아니라 어떤 일을 하더라도 수학이 아닌 예술과 인문학 등에 관심을 가지며 다른 것을 좋아하는 사람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인문학과 사람, 세상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송 대표님이지만 “매일 사무실에 놓인 화이트보드를 바라보며 머릿속에 방정식을 세우고, 그래프를 그려본다”는 말에서 역시나 ‘수학 덕후’ 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사진 촬영하는 동안 지나가던 직원을 불러세우고 나눈 대화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내용이 마치 수학 문제와 풀이법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것과 비슷했거든요.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묻자 송 대표님은 “어떤 직업을 택하더라도 수학은 꼭 필요하다”며, “절대 수학을 포기하는 ‘수포자’가 되지는 말라”고 간곡하게 부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