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 중에는 중고등학생을 가르치고, 방학에는 ‘레디 액션! 컷!’을 외치는 수학선생님이 있다. 바로 안슬기 감독이다.
수학교사, 영화감독을 꿈꾸다
"고등학교 시절 스티븐 스필버그가 기획하고 시나리오를 쓴 영화 <;구니스>;를 보고 영화감독의 꿈을 키웠어요. 당시에는 영화감독이 된다는 게 크게 환영받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부모님께 말도 안하고 혼자 꿈을 키웠지요. 막연히 대학에 가면 영화를 공부를 할 수 있을 거라고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대학생이 되니 수학과 교육학 공부하느라 정신이 없더군요.
대학 때 영화 공부를 하지 못한 게 한이 되서 교사가 되자마자 영화제작학교에 등록해 영화연출에 대해 공부했어요. 이때 제작한 작품이 제 첫 번째 단편영화인 <;고지식한 자판기>;예요."
안 감독의 행보는 학창시절부터 독특했다. 보통은 국어를 잘하면 문과에 가지만, 안감독은 국어는 잘하니까 수학을 공부해 보겠다라는 생각에 이과를 선택했다. 그리고 결국엔 수학교육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대학입학시험 전까지는 수학을 잘한다고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당시에는 지원 대학에 가서 직접 시험을 봤는데, 다른 해에 비해 수학시험이 어렵게 출제돼 많은 학생들이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안슬기 감독은 시험을 잘 보았고, 이때 처음 ‘나도 수학을 잘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수학교사가 된 이후에는 영화감독이라는 오래된 꿈을 이루기 위해서 새로운 길에 도전했다. 하지만 영화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 영화인 모두가 ‘아~!’(저 사람 오래 하진 않겠군!)’라는 반응을 보였다.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사람이 힘든 영화제작에 도전했으니, 머지않아 돌아갈 것이라는 편견에서 나온 반응이다. 하지만 안 감독은 더 열심히 시나리오를 써서 공모전에 응모했다. 그 결과 영화진흥위원회 독립영화제작지원에서 일부 제작비를 지원 받을 수 있었다. 이렇게 탄생한 영화가 <;다섯은 너무 많아>;다.
영화연출은 수학적 사고의 결정체
안슬기 감독의 첫 장편인 <;다섯은 너무 많아>;는 1년에 걸쳐 제작됐다. 사전작업 하는 데 3개월 정도가 걸렸고, 겨울방학을 이용해 20일간 촬영했다. 학기 중에 틈이 날 때 편집을 해야 해서 후반 작업에만 6개월이 소요됐다.
영화제작은 크게 사전 작업과 촬영, 후반 작업으로 이루어진다. 사전 작업은 영화 기획부터 시나리오 작성, 콘티 작업, 장소 섭외, 스텝 구성, 장비 대여, 촬영 계획표 작성 등 촬영에 바로 들어갈 수 있도록 모든 준비를 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콘티작업이란, 영화의 모든 장면을 그림으로 그리는 것이다. 영화를 보는 사람은 영상으로 보지만, 만드는 사람은 그림으로 그려 영화의 전체적인 영상을 미리 예상해보고 그대로 촬영한다.
사전 작업에서 중요한 작업 중 하나가 촬영 계획표 작성이다. 계획을 잘못 세워 일이 두세 번 반복되면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바로 이때 수학적 사고력이 빛을 발한다.
"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이유는 답을 찾아내는 과정에서 수학적 사고력을 기를 수 있기 때문이에요. 수학적 사고력은 어느 상황에서나 합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 주지요. 그런데 영화의 완성도는 어느 정도 돈과 연결돼 있어요. 돈이 많이 있으면 좋은 장비를 이용할 수 있고, 좋은 연기가 나올 때까지 반복해서 촬영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영화 한 편에 쓸 수 있는 돈은 정해져 있고, 그에 맞춰 작업을 하면서 영화의 완성도를 높여야 하기 때문에 수학적 사고가 필요하죠. 특히 영화 촬영 중에는 비가 와서 또는 누가 아파서 촬영을 못 하는 등 돌발변수가 많이 있기 때문에 주어진 비용에 70% 정도만 사용하도록 계획을 짭니다. 그래야 대처할 수 있거든요. 계획을 잘못 짜면 심각할 경우 영화제작이 무기한 연기될 수도 있습니다."
촬영 후 이어지는 후반 작업은 장면 편집과 음향, 배경음악, CG, 색 보정을 거쳐 최종 완성본인 마스터 테이프를 만드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모두 완료되면 프린트 해서 복사본을 만들고 각 영화관에 보내 상영한다.
돌발! 삼행시 인터뷰
안 슬 기 감 독 님 작품 중에 수학을 주제로 한 것도 있나요?
처음 영화를 시작할 때는 영화와 수학을 철저히 분리시켰어요. 그런데 어쩔 수 없이 시나리오에 묻어나더군요. 하루 종일 부딪히는 것이 수학과 학생들이니까요. 아직 영화화 된 작품은 없지만 제가 쓴 시나리오 중에는 수학을 주제로 한 작품이 있어요. 계속해서 시나리오를 쓰고 있으니 언젠가 영화로도 나오겠죠.
슬 쩍 본인의 영화에 배우로 출현하신 적은 없나요? 요즘 감독님들은 본인의 영화나 다른 영화에 조연이나 단역으로 많이 출현하시던데….
독립영화 특성상 감독뿐만 아니라 시나리오 작가, 배우 등 여러 역할을 할 때가 많아요. 저도 마찬가지죠. 사실 그 중에선 연기가 가장 재미있어요. 물론 몸이 가장 편한 건 감독인데요, 정신적으로는 가장 힘들죠.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니까요. 그에 반해서 연기는 책임질 부분도 적고 모든 걸 배우에게 맞춰 주니까 편하죠.
기 대되는 책을 한 권 내놓으셨더라고요. 제목이 <;차라리 수학공부 하지마라>;네요. 정말 하지 말라는 뜻은 아닐 것 같은데, 어떤 내용이 담겨 있나요?
생각보다 많은 학생들이 수학을 두려워해요. 어렸을 때부터 쌓여온 강박관념 때문이겠죠. 다른 과목들은 자신의 생각을 반영하는 것이 많아 칭찬받을 기회가 많은데, 수학은 언제나 맞혔는지 틀렸는지가 분명해 유난히 실패의 경험을 많이 하거든요. 특히 칠판에 나와서 풀어야 하는 유일한 과목이잖아요. 많은 사람 앞에서 자신의 실력을 평가받는 것만큼 스트레스 받는 일은 없거든요. 수학에 상처받은 학생들에게 수학은 정답을 맞히기 위해서 공부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려 주고 싶었어요. 사실 정답 자체는 숫자일 뿐 큰 의미가 없어요. 정답을 맞히는 과정을 통해 수학적 사고력을 향상시키고자 공부하는 거니까요.
안슬기 감독은 현재 중학생들을 위한 수학책도 준비 중이다. 최근에는 소설 쓰기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자신의 꿈을 펼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감독님의 이중생활(?)을 응원하며, 하루 빨리 수학 영화감독으로 또다시 인터뷰하게 되길 손꼽아 기다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