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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말하는 허준이 교수, “글쓰기 능력, 예술적 창조성, 느긋함”

중학교 2학년 어느 날 불쑥 내민 자작시들을 받아 들고 예상치 못한 성인식을 맞는 양

놀라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했던 기억이 있다.

‘아, 이 아이는 더 이상 우리 보호물이 아니구나. 이제 우리는 친구가 되는 거네.’

수업 시간에 딴생각, 딴짓했을 것이 분명했지만 그걸로 나무랄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돌이켜 보면, 그 후 준이의 성장에는 몇 번의 계기들이 더 있었다. 자칭 ‘셀프 홈스쿨링’ 시절 남아도는 시간은 혼자 생각하고 많이 읽고 넓게 보는 잠재력을 키워 주었고, 간신히 들어간 자퇴 반에서 마음에 맞는 친구들과의 나름 ‘슬기로운 학원 생활’은 현실적 공부 감각을 익히게 해 주었다. 제도권 밖에 있을 때 더욱 성장했다는 것이 이상하지만 이 시절 준이의 얼굴은 밝고 행복해 보였다. 지금 생각하면 준이는 타고난 아웃사이더 기질이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대학이라는 제도권으로 돌아간 준이는 시행착오도 겪고 방황도 했지만 히로나카 헤이스케 선생님과의 만남은 이 모든 걸 상쇄할 만큼 강력했다. 수학 세계로의 입문은 그동안의 침체기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우리의 저녁 밥상은 히로나카 선생님의 이야기로 배가 불렀다. 내용도 이해를 못 하는데 강의 노트를 만들라는 선생님의 지시나, 생전 처음 논문이라는 것을 써 보는 경험이나, 며칠을 함께 생활하며 수학자의 24시를 보여 주시던 선생님 이야기가 우리 밥상의 반찬이었다.

 

허덕거리면서도 신이 나 하는 모습에 우리도 같이 신이 났던 기억이 새롭다.

 

 

수학자의 덕목은 무엇일까? 흔히들 뛰어난 수학자의 조건으로 머리와 노력을 꼽는다. 물론 그런 조건을 충족하는 수학자들도 있지만, 그 둘만이 기준은 아닌 듯하다. 적어도 준이의 경우에는 오히려 글쓰기 능력, 예술적 창조성, 그리고 느긋함이 그 덕목이 아닐까 싶다. 수학에 문외한인 나로서는 이러한 의외의 열거에 대한 부수적 설명은 무리이리라.

 

 

그는 조용한 성격임에도 친구들, 동료들, 학생들, 멘토들 모두에게 따뜻하고 열려 있다. 사실, 그의 느긋함과 담대함은 때로는 실질적 곤혹스러움을 초래하기도 한다. 예컨대, 성적이나 시험에 너무 ‘쿨’해서 치명적 결과로 우리 마음을 졸이게 한 적도 여러 번이다. 그렇지만 이 점은 모범생이었던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들면서도 내심 닮고 싶었던 덕목 중의 하나이다. 내 배에서 나왔다고 다 나를 닮는 것도 아니고 다 내 것도 아니다.

 

 

결혼 또한 준이의 변모에 놀랄 만한 계기를 가져왔다.

친구이자 이해심 많은 배우자를 만나면서 마트에서 물건 하나 제대로 살 줄 모르던 사람이 아주 합리적 생활인으로 변신한 것이다. 육아도 잘하는 편이고 운동도 열심인 편이다. 모르긴 해도 역대 필즈상 수상자 중 가장 평범한 생활인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준이가 상을 받을 때마다 참 운이 좋다고 말하곤 했다.

상복이 있다고. 그런데 사실 좋은 친구들, 좋은 멘토들을 둔 것보다 더 좋은 운이 있을까?

 

이인영 (허준이 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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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8월 수학동아 정보

  • 이인영(허준이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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