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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호기심의 최전선을 꿈꾼다, 최재경 제8대 고등과학원장

우리나라 기초 과학 연구의 산실 고등과학원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기초 과학 연구기관 고등과학원! 
수학부에는 1994 필즈상 수상자인 예핌 젤마노프 교수가, 물리학부에는 2016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존 마이클 코스털리츠 교수가 다른 저명한 교수 및 연구원들과 함께 우리나라 기초 과학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제8대 원장인 최재경 교수가 생각하는 고등과학원은 어떤 곳일까?

 

 

기초 학문의 요람, 고등과학원

 

고등과학원은 어떤 곳인가요?


상대성이론을 만든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불완전성 정리를 증명한 수학자 쿠르트 괴델, 컴퓨터 발전에 이바지한 수학자 폰 노이만과 앨런 튜링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바로 미국 프린스턴 고등연구소(IAS)에서 연구했다는 점입니다.


IAS는 수학, 물리학, 생물학, 역사, 사회 과학 등의 연구자들이 강의나 연구비에 구애받지 않고 기초 학문을 연구하는 기관입니다. 아무래도 강의나 인재 육성에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고 오로지 연구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좋은 연구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당대 최고의 학자들이 IAS에서 연구하며 전세계의 기초 학문을 선도하죠.


우리나라도 기초 과학을 선도하기 위해 1996년 IAS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기초 과학 연구기관을 설립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고등과학원입니다. 연구에만 전념하고 싶은 과학자, 수학자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죠.

 

기초 과학 연구가 왜 중요하죠?


IAS의 초대 소장인 아브라함 플렉스너가 1939년 미국의 한 문예 평론지에 기고한 수필 ‘쓸모없는 지식의 유용성’에 나온 이야기를 들려줄게요.


어느 날 필름 회사 ‘코닥’을 설립한 이스트만 코닥이 과학 발전에 이바지하는 기관에 투자하겠다고 선언하자 플렉스너는 ‘누가 과학 발전에 크게 공헌했냐?’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이스트만이 무선 통신이 가능한 무선 전신기를 만든 이탈리아의 전기공학자 굴리엘모 마르코니를 예로 들었죠.


이에 플렉스너는 마르코니가 무선 전신기를 개발할 수 있었던 건 30여 년 전에 영국의 물리학자 제임스 맥스웰이 8개의 방정식을 이용해 전자파 이론을 정립했기 때문이므로 맥스웰의 공헌이 더 크다고 말하며, 실생활에 직접적으로 관련 없어 보이는 기초 과학 연구가 사실은 실생활에 가장 유용하다고 주장했어요.


고등과학원도 플렉스너의 이런 철학에 동의합니다. ‘호기심으로부터 출발한 연구가 결국 인류 생활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죠.

 

 

 

수학도 과학처럼 실생활에 활용되나요?


‘에우클레이데스가 정립한 다섯 가지 공준이 모두 필요한가’라는 호기심에서 출발한 연구는 쌍곡 기하학, 타원 기하학 같은 ‘비유클리드 기하학’을 탄생시킵니다. 이후 아인슈타인은 타원 기하학을 토대로 일반상대성이론을 만들었고, 일반상대성이론은 뜻밖에 인공위성과 통신해 현재 위치를 알려주는 GPS를 만들어내죠. 인공위성은 고도가 높은 곳을 돌기 때문에 지구와 중력과 속도 차이가 발생해 시간의 오차가 생깁니다. 이를 일반상대성이론과 특수상대성이론을 이용해 보정하거든요.
제가 연구하는 ‘극소곡면’도 아주 흥미롭고 활용도가 높습니다. 극소곡면은 비누막에 관한 연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철사로 만든 도형을 비눗물에 담근 뒤 꺼내면 비누의 화학적 성질 때문에 면적을 최소로 하는 모양을 만드는데, 이 원리를 수학적으로 해석하는 연구입니다. 최소 면적, 최소 부피가 되는 모양을 찾는 연구다 보니 건축에서 활용되죠. 실제로 중국 베이징 올림픽 수영 경기장 ‘워터 큐브’의 외벽과 독일 뮌헨 올림픽 스타디움의 지붕은 극소곡면의 성질을 이용해 최소의 재료비로 튼튼하게 지었습니다.

 

뛰어난 연구를 하는 비결


고등과학원에 소속된 분들은 왠지 연구실에 콕 박혀 연구만 할 것 같아요.


세상과 단절한 채 책과 씨름한다고 생각하면 오해예요. 연구를 잘하려면 잠깐 산책하거나 취미 활동 하는 게 필요합니다.


아무리 뛰어난 수학자라고 해도 문제를 푸는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아요. 새로운 아이디어를 문제에 적용하기까지 무수히 많은 실패를 거듭하고 그 아이디어를 떠올리기 위해 연구실 안을 뱅글뱅글 돌거나 오솔길을 걷고, 운동하면서 머리를 식히죠.


저는 시나 소설을 즐겨 쓰는데, 예전에 한 수학 문제를 십여 년 동안 풀지 못해 시도 때도 없이 한숨을 쉬며 좌절했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때 시를 한 편 쓰고 나니 마음이 추스러져 연구를 계속할 수 있었죠. IAS에 있는 허준이 박사도 시를 좋아하는데, 직접 쓴 시를 제게 메일로 보낸 기억이 나네요.


글쓰기 활동은 연구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좋은 논문을 쓴 뒤 학회에서 이해하기 쉽게 발표해야 많은 사람에게 연구가 알려지고 세상에 도움이 됩니다. 그런데 글을 쓰며 이야기를 다양하게 만들어봐야 연구를 소개할 때도 재밌게 발표할 수 있거든요.

 

뛰어난 연구를 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요?


남과 다르게 생각하는 것과 끈기가 필요합니다. 수학이 아닌 다른 학문도 비슷할 거라고 생각해요. 시험 성적만 중요하게 생각하면 이런 자질을 기르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시험은 보통 빨리 푸는 능력을 요구하는데, 기초 과학 연구에서 빠른 속도는 필수 역량이 아니거든요.

 

 

기초 과학자가 되고 싶은 학생들에게 조언 부탁드려요!


저는 중학생 때 아인슈타인과 아이작 뉴턴의 전기를 읽고 수학을 공부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런 천재들에 비하면 내 능력이 못 미친다고 생각했고, 소설가가 되겠다고 결심한 뒤 고2 때 문과로 진학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소설책 맨 뒤에 비평가가 남긴 날카로운 비평을 보고 이렇게 색다른 시각을 가질 수 없겠다고 생각했어요. 결국 고3 때 이과로 바꿔 다시 수학을 공부했죠. 여러분도 머리로 떠올리기보다 직접 움직이며 이것저것 해보고 어떤 일을 해야 좋을지, 수학자를 비롯한 기초 과학자를 꿈꾼다면 어떤 분야를 평생 공부하고 싶은지 찾아보세요. 

 

2020년 06월 수학동아 정보

  • 김우현 기자 기자
  • 디자인

    이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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