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아~, 만 년이나 잤더니 목이 뻣뻣하네! 역시 밖은 상쾌해! 아, 참! 주인님, 안녕하세요! 램프의 요정 지니예요. 바로 여기 램프에 소원을 말하면 무엇이든 들어 드립니다.”
“소원을 들어 준다고? 그럼 요즘 가장 유행하는 패션이 뭔지 알려 줘.”며칠 뒤 살이 쏘옥 빠진 지니가 울면서 나타났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어떤 옷을 좋아하는지 일일이 물어 보기로 했어요. 그런데 모든 사람을 만나는 건 너무 힘들어요. 게다가 어떤 사람은 자꾸 대답을 바꾸지 뭐예요? 소원을 바꿔 주세요.”
“아휴~, 진작에 여론조사를 하지 그랬어?”
사람들의 생각을 알면 무엇이 좋을까?
어제 산 옷이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후회하고 있는데, 누군가 “그 옷 멋진데? 잘 어울려~.”라고 말하면 정말 그런가 하면서 거울을 본 적이 한 번쯤 있을 거예요. 또한 날씨가 흐린 날 아침, 우산을 가지고 나갈지 말지 고민될 때 다른 사람이 우산을 갖고 있는지 살펴본 뒤 결정한 경험도 있을 거예요.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의 생각을 고려하는 거지요.
이렇게 행동하는 이유에 대해선 여러 가지 설명이 가능해요. 그 중 한 가지는 가족, 친구, 선배, 후배 등 많은 관계 속에서 어울려 살면서 다른 사람의 의견을 고려하면 유용한 정보가 많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에요.
미국에는 ‘백만장자가 되길 원하십니까?’라는 TV퀴즈 프로그램이 있어요. 우리나라의 ‘1대 100’과 비슷한 퀴즈쇼로, 참가자는 3가지 찬스를 쓸 수 있지요. 보기가 4개인 문제에서 정답이 아닌 2개의 보기를 지우는 찬스와, 아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정답을 물어 볼 수 있는 찬스, 방청객들의 의견을 참고할 수 있는 찬스예요. 제작진은 방송된 것을 토대로 각각의 찬스에 대해 답을 맞힌 비율을 구했어요. 그 결과는 각각 50%, 65%, 91%로, 가장 많은 사람들의 생각인 방청객들의 의견을 참고로 했을 때 답을 맞힐 확률이 가장 높았어요.
이처럼 모든 사람들의 생각과 정보를 모아서 추려낸 지식과 통찰력은 나 혼자만의 생각보다 더 합리적인 경우가 많아요. 실제로 여러 사람의 생각과 경험, 지식을 합치면 막강한 지식 토대를 만들 수 있어요. 또한 세상에는 건축, 의료, 행정, 농업, 과학, 기술 등 많은 분야가 있어서 한 개인이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기는 어려워요. 하지만 각기 다른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면 많은 분야를 망라해 알 수 있죠.
따라서 한 나라의 행정을 맡아보는 정부에서는 어떤 문제나 쟁점에 대해 사회구성원들이 어떤 의견을 갖고 있는지 물어 의사결정을 하려고 합니다. 이때 사용하는 방법 중 하나가 여론조사예요. 여론조사는 모든 쟁점에 대해서 사람들의 의견을 가장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방법이지요.
사람들의 생각, 여론 조사를 통해 알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알고자하는 사람들의 욕구 때문에 신문과 방송에서는 여론조사를 자주 활용합니다. 그런데 전국민을 대상으로 조사를 하려면 많은 시간과 돈이 필요해요.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인구주택총조사는 한 번 조사할 때 비용이 1800억 원이나 들거든요. 따라서 사람들은 작은 표본을 통해서 모집단의 특성을 알려고 합니다. 여기서 모집단이란 의견이 궁금한 전체 집단을 말하고, 표본이란 전체 집단의 의견을 추측하기 위해 채택된 일부 집단을 뜻합니다.
그런데 표본을 통해 조사한 것을 믿어도 될까요? 사실 이미 우린 많은 곳에서 표본을 통해 대상을 파악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건강검진을 하면 병원에서 주사기로 혈액을 뽑아 검사합니다. 하지만 몸 전체의 피를 검사하지는 않지요. 시험관에 들어갈 만큼의 피만 뽑아 몸 전체 건강 상태를 파악합니다. 국물의 간을 맞출 때도 한 숟가락만 떠서 맛을 보고 국의 맛을 결정하죠.
하지만 우려했던 것처럼 표본을 잘못 뽑으면 전체 의견을 틀리게 추측할 수도 있어요. 예를 들어 국물이 싱거워 소금을 넣었는데, 국물을 잘 섞지 않고 떠먹으면 짜거나 싱거울 수 있죠. 따라서 전체를 잘 섞은 뒤 표본을 뽑아야 해요. 즉, 모집단에 속한 모두가 표본으로 뽑힐 확률이 동일하도록 무작위로 뽑아야 합니다.
만약 서울 시민에 관한 여론조사를 한다고 가정해 봐요. 그런데 강남역 앞에서 조사를 한다면 어떨까요? 이 조사는 믿을 수 없습니다. 서울시민들이 표본으로 뽑힐 확률이 같지 않기 때문이에요. 조사 시간에 강남역에 가지 않는 사람은 뽑힐 확률이 0%이고, 강남역에 있는 사람들만 뽑힐 가능성이 높게 되거든요.
그렇다면 무작위 추출의 옳은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바로 복권 추첨입니다. 복권은 당첨 확률이 희박하지만, 구매한 모든 사람들이 동등한 당첨 확률을 가지고 있거든요. 로또 추첨 과정을 보면 둥근 통에 번호가 적힌 공을 넣고 빙빙 돌려 공이 하나씩 나오게 합니다. 공을 잘 섞어 어떤 공이든 뽑힐 확률이 같도록 만드는 거지요.
여론조사, 얼마나 정확할까?
여론조사를 다룬 기사를 자세히 보면 ‘신뢰수준’, ‘표준오차’라는 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 걸까요?
예를 들어 여론조사 결과 어떤 의견이 80%가 나왔고, 표준오차가 ±3.1%, 신뢰수준이 95%라고 합시다. 이건 100번 조사를 수행했을 때 모집단의 평균이 76.9%∼83.1% 구간에 있는 경우가 95번 나온다는 의미입니다.
이때 신뢰구간의 길이가 길면, 당연히 모집단의 의견이 그에 속할 확률이 크겠죠. 하지만 정확도는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조사에서 A의 의견을 지지하는 신뢰구간이 30%~80% 사이라고 합시다. 95% 신뢰수준이라고 해도 이 정보는 의미가 없겠죠? 35%~40% 사이처럼 신뢰구간의 길이가 짧아야 의미가 있어요.
반대로 신뢰구간의 길이는 35%~40% 사이인데, 신뢰수준이 30%라면 이것도 정확도가 떨어집니다. 따라서 신뢰구간의 길이가 짧으면서 신뢰수준도 높아야 정확한 조사가 이뤄졌다고 판단할 수 있지요.
그렇다면 신뢰구간은 어떻게 구할까요? 표본수와 평균, 표준편차를 알면 공식을 통해 구할 수 있습니다. 표준오차는 표본수만 알면 되지요. 따라서 표준오차를 줄이려면 표본수를 크게 하면 돼요. 즉, 더 많은 사람을 조사해야 하지요. 그런데 표본수가 일정한 수 이상이 되면 그 차이가 얼마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비용이나 시간을 고려해 표본수를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2012 대선에서 여론조사는 어떻게 치러졌을까?
전국민을 모집단으로 하는 여론조사를 하려면 전국민의 조사명부가 필요해요. 보통 전화번호부를 사용하지요. 그런데 최근 휴대전화와 인터넷전화의 사용 증가로 집 전화번호 등재율이 55%밖에 안 된다고 해요. 그마저도 정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고요. 그래서 최근에는 임의전화걸기 방식을 사용합니다.
전화번호는 지역번호와 국번호, 번호로 이루어지는데, 번호는 네 자리로 구성됩니다. 따라서 지역번호와 국번호를 제외하고 0000∼9999까지 1만 개의 번호를 부여해 컴퓨터로 가상의 전화번호를 만들어요. 그런 뒤 이 번호를 무작위 추출해서 전화를 걸지요. 이 방법을 사용하면 전화번호부에 등재된 번호 말고도 모든 가구를 대상으로 전화를 걸 수 있어요.
지난해 치러진 대통령 선거 여론조사도 모두 임의전화걸기 방식으로 치러졌어요.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궁금증이 생깁니다. 왜 이렇게 여론조사를 여러 번 하는 걸까요? 또 왜 결과는 계속해서 달라지는 걸까요?
그건 사람의 마음이 계속 바뀌기 때문이에요. 때론 여론조사 결과가 다른 사람의 판단에 영향을 주기도 하고요. 이 경우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나는데, 이것을 ‘밴드왜건’과 ‘언더독 효과’라고 합니다.
밴드왜건 효과는 다수의 의견을 따르려는 사람의 심리를 말합니다. 따라서 선거 때 여론조사 결과가 1위로 나온 사람을 계속해서 부각시키면, 다른 사람을 지지했던 사람이나 선거에 관심이 없던 사람도 그 사람을 지지하게 되지요. 반대로 언더독 효과는 약자에게 관심이 쏠리는 현상을 말합니다. 열세에 놓인 후보자가 유권자의 연민을 자극하여 지지를 얻어낼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선거관리위원회에서는 선거 6일 전에는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지요.
한편 투표 당일이 되면 각 언론사에서 출구조사를 합니다. 투표를 마치고 나오는 사람에게 누구를 찍었는지 묻는 조사죠. 얼핏 생각해 보면 투표가 끝난 뒤 보통 6시간 뒤면 투표 결과가 나오는데, 많은 비용을 들어서 출구조사를 하는지 이해가 안 될 수도 있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미래를 알고자 하는 욕구가 있어요.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출구조사의 결과를 참고로 개표 진행 과정을 스포츠 경기처럼 즐기며 보죠.
2012년 대통령 선거의 SBS, KBS, MBC 방송 3사 출구조사는 전국 360개 투표소에서 8만 6000명을 대상으로 이루어졌어요. 투표자를 6명 단위로 끊어서 차례로 나오는 6명은 조사하고, 다음 6명은 조사하지 않는 방법으로 진행했지요.
그런데 이번 선거는 다른 선거에 비해 투표율이 높아 5시 전에 조사를 마친 투표소가 많았어요. 출구조사 대상으로 선정된 투표소는 전체 유권자 수에 비례해 조사 대상자를 200명~300명씩 할당했는데, 높은 투표율로 이 목표치를 빨리 달성했기 때문이죠. 따라서 마감 시간을 앞두고 투표한 그룹에 대한 의견이 반영되지 않아, 이 부분이 오류로 추정결과에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어요.
이렇게 통계를 이용하면 전 국민의 생각을 좀 더 쉽게 알 수 있어요.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판단에 많은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여론조사를 악용하는 경우도 많죠. 따라서 이 여론조사가 정확한지 판단할 수 있는 눈이 필요하지요. 이번 기회에 각종 여론조사를 찾아보고 문제점은 없는지 살펴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