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을 하나 드릴게요. 여기 전시된 그림은 누가 그렸을까요? 알려지지 않았지만, 실력 있는 신진 화가일 것 같다고요? 놀랍게도 사람이 아닌 컴퓨터가 그린 그림입니다. 그게 가능한 일이냐고요? 전시장 안으로 들어가 보시죠.
그림만 있으면 세계적인 화가의 그림풍으로 바꿔 그릴 수 있는 화가를 소개합니다. 바로 인공지능(AI) 화가입니다. 위에 오른쪽 그림은 AI 화가가 왼쪽 위에 있는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화풍으로 그린 금문교입니다. 진짜 고흐가 보면 깜짝 놀라 까무러칠지도 모르겠네요. AI 화가가 고흐와 다른 점이 있다면 붓과 물감 대신 수학 공식과 컴퓨터로 그림을 그렸다는 것이지요.
AI 화가만 있으면 나도 빈센트 반 고흐
2015년 8월 26일 세간의 화제를 일으킨 논문 하나가 등장합니다. 바로 레온 가튀스 독일 튀빙겐대학교 연구원의 ‘예술가 스타일의 신경 알고리듬’ 입니다. 논문은 ‘뉴럴 스타일 트랜스퍼(NST)’라는 알고리듬을 이용해 컴퓨터로 예술가의 화풍을 똑같이 따라 그릴 수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즉 NST 알고리듬이 유명 예술가들의 그림 그리는 스타일을 학습하게 만들어, 어떤 이미지든 그 그림 스타일로 변환시킨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NST는 두 개의 이미지를 사용합니다. 하나는 그림 소재로 사용할 사진, 다른 하나는 원하는 예술가의 화풍이 드러난 그림입니다. 예를 들어 서울 한강에서 본 남산서울타워 사진을 에드바르 뭉크의 ‘절규’ 화풍으로 바꾸고 싶다면, 남산서울타워 사진은 소재 이미지가 되고, 뭉크의 그림은 화풍 이미지가 됩니다. 두 이미지를 알고리듬에 입력하면 AI 화가는 소재가 담긴 이미지와 화풍이 담긴 이미지를 함수를 이용한 수학 모형을 이용해 점진적으로 조정하고, 마침내 뭉크의 절규 풍 남산서울타워 그림을 그려내는 것이지요.
이 논문이 발표된 이후 많은 사람이 실제로 알고리듬을 구현해 실험해 보는가 하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게 애플리케이션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AI 화가에 관심이 뜨겁다는 사실을 대변하는 일이죠. 이후 이 논문에 실린 알고리듬을 발전시킨 연구도 꾸준히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저스틴 존슨 페이스북 AI 연구원은 가튀스 연구를 토대로 누구나 변환할 수 있는 NST 코드를 공개했습니다. 그리고 금문교 사진을 멕시코 화가 프리다 칼로의 화풍으로 변환시켜 공개했습니다. 원본 사진의 형태는 그대로 보존하면서 화풍만 예술가의 것처럼 바뀌었지요.
작품 서명에 담긴 수학식의 비밀
2018년 10월에는 미술사에 큰 획을 긋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혹시 입장할 때 있던 그림을 보셨나요? 세계 3대 경매사인 ‘크리스티’에서 풍채 좋은 건장한 남성을 흐릿하게 표현해 오묘한 느낌을 주는 오비어스의 작품 ‘에드몽 드 벨라미의 초상(118쪽 작품)’이 43만 2500달러(약 5억 2000만원)에 낙찰된 것입니다. 이 작품의 하단에는 다음과 같은 서명이 적혀 있었습니다.
이날 경매에 나온 세계적인 팝아트 화가 ‘앤디 워홀’의 작품 낙찰가 7만 5000달러(약 9000만 원)보다 6배가량 높은 가격에 팔린 셈인데요, 매년 수십~수백억 원을 호가하는 미술 경매품도 수두룩한데 상대적으로 적은 액수로 낙찰된 이 그림이 왜 화제가 됐냐고요?
작품 하단에 수학 수식을 서명으로 남긴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 그림을 그린 오비어스는 AI 화가입니다. 오비어스는 기계학습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휴고 카셀 듀레를 비롯한 세 명의 연구원이 주축인 단체입니다. 오비어스는 생성적 적대 신경망(GAN)이라는 딥러닝 알고리듬을 이용해 AI 화가를 개발했습니다. 그리고 이 AI 화가에 14~20세기 그림 1만 5000여 점을 학습시켜 경매에 나온 그림을 포함해 여러 점의 작품을 만들었지요.
GAN은 ‘구글 브레인’에서 기계학습을 연구하고 있는 이안 굿펠로우가 만든 것으로, 진짜 같은 가짜를 가장 손쉽고 빠르게 만들 수 있는 알고리듬으로 평가받습니다. GAN은 ‘생성자’와 ‘감별자’ 두 모형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생성자는 실제 이미지를 이용해 진짜 같은 가짜를 만들고, 감별자는 이에 대한 진위를 판별합니다. 이때 생성자는 감별자를 속이지 못한 데이터를, 감별자는 생성자에게 속은 데이터를 계속 입력받아 학습합니다. 이 과정을 반복해 점점 실제에 가까운 거짓 데이터를 만들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앞서 보았던 비밀스러운 수식은 GAN 알고리듬을 정의하는 수식으로, 정교한 가짜를 만들어내는 최적의 값을 찾는 식입니다.
오비어스의 작품은 대규모 경매에 처음으로 출시된 AI 화가 작품입니다. 이로써 앞으로 예술계에서 AI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궁금하지 않나요? 벌써 또 어떤 AI 화가가 등장해 세상을 놀라게 할지 기대가 됩니다.
도움 오비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