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역대 왕조는 하늘의 현상에 민감했습니다. 이것이 천문학 발전의 밑바탕이 됐지만, 그만큼 뛰어난 관측 실력을 겸비한 천문학자가 필요했습니다. 이런 천문학자들에게 수학 실력은 필수였지요. 천문학자가 왜 수학을 잘해야 하냐고요?
고차원 문제도 해결한 수학 실력
고려 충선왕은 동양 최고의 역법인 ‘수시력’을 중국에서 들여왔습니다. 수시력은 정교한 역법인 만큼 보통 수학으로는 다룰 수 없었습니다. 한 예로 수시력에는 황도좌표와 적도좌표를 변환하는 내용과 함께 그 변환하는 수식으로 ‘4차 방정식’을 이용해야 했습니다. 역법을 알려면 고등 방정식을 풀 줄 알아야 했지요.
조선으로 넘어와서는 조선 실정에 맞는 독자적인 역법을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렇게 세종 재위 시절에 운동하는 천체의 위치를 계산하는 방법을 서술한 역서 ‘칠정산’이 만들어집니다. 혹자는 세종대왕의 대표 업적으로 한글의 창제와 함께 칠정산 집필을 꼽기도 할 정도로 칠정산은 천문 도서로서의 가치가 크지요.
이 책을 주도해 만든 사람은 수학 실력이 뛰어난 천문학자 이순지와 김담입니다. 특히 김담은 직접적으로 알 수 없는 물체의 성질을 여러 수학적 방법을 통해 구해내는 ‘역산’의 달인이었습니다. 김담은 이 능력 하나만으로 당시 이례적으로 종삼품의 벼슬에 올랐습니다.
세종실록에 따르면 세종 때 천문관측을 맡았던 기술직 관리는 ‘10차 방정식’도 풀만큼 실력이 출중했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당시 천문학자들은 1년의 길이가 365.2425일, 1달의 길이가 29.530593일라는 것까지 정교하게 계산했을 정도였지요.
데이터의 ‘개수’보다 중요한 ‘정확도’
천문학자들의 뛰어난 수학 실력이 필요했던 이유는 또 있습니다. 중학교 통계 시간을 생각해 보세요. 자료의 정리와 관찰에 대해 배울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자료의 개수보다 정확도입니다. 자료가 조금 적더라도 정확해야 더 신뢰도 높은 결과를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부 자료가 누락 되면 빠진 부분을 고려해서 분석하면 되지만, 거짓 자료가 포함되면 무엇이 사실이고 거짓인지 알 수 없어 분석하기 힘들어지니까요.
전세계에서 과거 자료가 2000년 이상 남아있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중국뿐입니다. 중국은 국토도 크고 인구가 많으니 수적으로 견줄 수 없을 만큼 많은 자료가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많은 나라가 공존했던 탓인지, 주요 기록을 제외하고는 거짓으로 기록된 관측자료도 종종 섞여있지요. 반면 우리 선조들의 자료는 수적으로는 적지만 관측 실력이 뛰어나 수치가 정확했고, 관측 시스템과 기록 방법이 일정해 후대 학자들이 연구하기에도 제격이지요.
현대 천문학자들은 망원경과 함께 이런 과거 자료를 연구합니다. 그래서 어찌보면 정확하고 정교한 자료를 갖고 있는 우리나라는 또 다른 망원경을 가진 것과 다름없습니다. 진귀한 기록이기에 최근에는 서양에서도 우리나라 자료에 관심이 매우 많지요. 우리 선조들의 흔적으로 찾을 수 있는 천문 현상은 여전히 많습니다. 우리 기록으로 또 어떤 새로운 천문 현상을 알 수 있을지 기대해 보세요.
조선 천문학자들
김담과 이순지의 담화
이순지 우리가 얼마나 대단한 천문학자인지 궁금한 사람이 많은가 보군요. 우리 업적을 말하자면 한도 끝도 없겠지만 살짝만 말해보지요.
김담 우리의 가장 큰 업적은 칠정산 편찬이지요. 칠정은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 달과 태양을 뜻하는데, 칠정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계산한 것이오. 이를 토대로 날짜와 24절기를 알아냈지요.
이순지 중국 역법인 수시력을 이용했으나 한반도의 위치에 맞게 천체 운행을 계산했다는데 큰 의의가 있지 않소. 그 계산은 매우 복잡한데, 결과는 놀랍도록 정확하고 말이오.
김담 칠정산이 없었을 때는 중국의 역법을 그대로 사용해 오차가 심했소. 날짜가 틀리다 보니 기후에 민감한 농사를 잘 짓기가 매우 어려워 백성들이 힘들어 했었지요.
이순지 칠정산외편도 만들었지 않소. 아랍의 역법을 면밀히 분석해 우리 실정에 맞게 말이오.
김담 칠정산외편의 경우 수시력보다 더 정확하지요. 2019년에 계산한 1년은 정확히 365일 5시간 48분 46초인데 이 수치와 비교했을 때 단 1초만 느리지요. 이게 가능한 이유요?
이순지 뛰어난 수학 실력 덕분이지요. 또 이 같은 노력으로 조선의 천문학 체계가 수립된 거라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