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가 꼼꼼하게 남긴 기록은 후대 천문학자의 연구에 선물이 됩니다. 최근에는 태양 활동의 새로운 주기를 밝혔죠. 우리 선조의 기록으로 어떻게 새로운 주기를 찾았을까요?
일관된 흑점 기록이 중요한 단서
태양 표면에서 일어나는 일 중 가장 흥미로운 현상은 바로 ‘흑점의 활동’입니다. 흑점은 강한 자기장에 의해 에너지가 이동하지 못해 나타나는 현상으로, 태양에서 주변보다 낮은 온도를 지녀 검은 점처럼 보입니다. 이 흑점은 개수가 많아졌다가 줄어드는데요, 제멋대로 변하는 게 아니라 꽤 정확한 주기성을 띠고 있지요. 수백 년간 천문학자들이 태양 표면을 관측한 결과 가장 대표적인 태양 흑점의 주기는 약 11년입니다. 조금 긴 주기로는 60년이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양홍진 한국천문연구원 연구원팀이 흑점이 ‘240년’ 주기로도 활동한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이 새로운 발견에 연구팀이 이용한 도구는 거대한 천체망원경이 아닌 우리 선조가 남긴 오래된 기록이었습니다.
연구팀은 고려사와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흑점 관측 자료 55개에 중국의 중요한 사서 기록을 포함해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기존에 알려진 11년과 60년 주기뿐만 아니라 240년 주기까지 찾았습니다. 예를 들어 흑점은 1400년 초반까지 많아지다가 1520년쯤까지 차츰 감소하고, 다시 1650년쯤까지 증가했습니다. 전과 후에도 240년을 주기로 같은 현상이 반복됐죠.
한반도는 천 년 동안 고려에서 조선으로 한 번 밖에 국가가 바뀌지 않았고, 국가가 바뀌었어도 고려의 자료가 조선으로 그대로 전승됐습니다. 따라서 기록이 연속적이고, 표현 방법이 일관돼 긴 기간을 분석하는 게 가능했던 것입니다.
수학적으로 완벽한 태양의 흑점 주기 240년
사실 태양이 240년 주기로 활동한다는 주장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유럽의 한 학자가 중국의 옛 문헌을 토대로 주장했지만, 신빙성이 없어 받아들여지지 않았지요. 양 연구팀은 연구 결과의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몬테카를로 방법’으로 검증을 했습니다.
몬테카를로 방법은 무작위로 추출된 난수를 이용해 우연적 결과로 유의성을 검정하는 방법입니다. 자료가 신빙성이 있다는 가설을 세운 뒤 그 가설이 유의수준을 기준으로 얼마나 믿을 만한지 따지는 거죠. 연구팀은 918년부터 1910년까지 약 천 년 동안 관측한 흑점 관련 데이터를 무작위로 뿌리는 시행을 10만 번 반복했습니다.
그 결과 흑점의 활동이 11년, 60년, 240년 주기로 활동한다는 주장이 유의수준 99.73%와 99.99%에서 모두 타당하다는 결과를 얻었습니다.
조상의 미미한 흔적? 기후 변화 암시!
양 연구원팀은 태양 활동이 기후 변화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서리 기록이 온도 변화를 나타내는 지표임을 알아냅니다. 서리는 추울 때 내리는데요, 일 년 중에 서리가 오지 않는 기간을 ‘무상기간’이라고 합니다. 늦은 봄의 마지막 서리가 내린 날에서 초가을 첫 서리가 내리는 날까지지요. 이 무상기간이 짧으면 그 해는 추운 것이고, 길면 따뜻한 겁니다.
그런데 조선 때 남긴 서리 기록 700개를 조사하자 서리가 급격히 줄어든 시기도 240년 주기성을 보였습니다. 태양의 흑점 활동이 기후 변화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 드러난 겁니다. 태양 흑점의 수가 늘어날 때 지구 기온이 낮아지는 거라면 언제 또 큰 추위가 올지도 알 수도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