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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소설 ‘용의자 X의 헌신’이 뮤지컬로 돌아왔다. 수학 공식처럼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드는 천재 수학자와 절대 풀리지 않을 것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천재 물리학자의 대결! 그들이 벌이는 치밀한 두뇌 싸움이 무대에서 펼쳐진다.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범한 날이었다. 그때, 훼손이 심각해 도무지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한 남자의 시신이 발견됐다. 부검 결과, 사망자는 도시락 가게 점원 야스코의 전 남편. 사건을 맡은 구사나기 형사는 야스코를 용의자로 지목한다.

 

그러나 증거가 없다. 사건 당일 야스코의 행적을 샅샅이 조사했지만 알리바이는 빈틈없이 완벽하다. 심증은 야스코를 지목했지만, 수학 공식처럼 치밀하게 짜인 알리바이에 수사에는 차질이 생긴다.

 

사건 해결을 위해 구사나기 형사가 향한 곳은 뜻밖에도 물리학 연구실이다. 이곳은 ‘탐정 갈릴레오’라고 불리는 천재 물리학자 유카와가 있는 곳이다. 구사나기 형사는 유카와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평소대로라면 관심도 두지 않겠지만, 유카와는 구사나기 형사에게 수학 교사 이시가미가 사건에 연루돼 있다는 얘기를 듣고 곧바로 수사에 협조한다.

 

뮤지컬은 연기에 노래와 춤이 어우러진 공연이다. 보통 여러 명의 배우가 한 역할을 공연마다 번갈아 연기한다. 아래 등장인물 속 배우와 다른 사람인 이유!

 

 

이시가미는 유카와와 같은 학교를 다닌 동창으로, 유망한 천재 수학자였다. 유카와만큼 이시가미의 천재성을 잘 알고 있는 사람도 없었다. 유카와는 용의자 야스코의 범죄를 감추기 위해 이시가미가 복잡한 트릭을 설치해 놓았다고 확신한다. 그렇게 유카와는 이시가미가 만들어 놓은 수학 공식 같은 문제를 해결하며 사건의 진실을 파헤친다.

 

 

 

사건의 시작은 탐정 갈릴레오부터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소설 중 유카와가 등장하는 소설은 총 8편이다. 팬들은 8편의 책을 첫 번째 작품의 이름을 따서 ‘갈릴레오 시리즈’라고 부른다. 현재 한국에는 여섯 번째 시리즈인 ‘한여름밤의 방정식’까지 나와 있다. 세 번째 시리즈인 용의자 X의 헌신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전작에서부터 이미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소설 속에서 이들은 어떤 사건을 계기로 만나게 됐는지 살펴보자.

 

뮤지컬에서는 송원근(사진), 에녹, 신성록 배우가 냉철하고 논리적인 추리로 문제를 해결하는 유카와 역할을 맡았다.

 

 

 

탐정 갈릴레오 탐정 갈릴레오의 탄생


평범한 길목에 있던 사람이 갑자기 몸에 불이 붙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사람의 머리에서 불길이 치솟았다는 목격자의 말로 사람들은 ‘플라즈마’라는 현상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 생각한다. 플라즈마는 물질이 아주 높은 온도에서 음전하를 띤 전자와 양전하를 띤 이온으로 분리된 상태다.

 

 

이때 수사에 어려움을 느낀 형사는 대학 동창이자 천재 물리학자인 유카와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현장에서 유카와는 공중의 빨간 실을 보았다는 목격자의 말을 토대로 추리를 하고 전혀 다른 결론을 내린다. 유카와 덕분에 사건의 진범은 가려진다. 이후 유카와는 미제로 남을 법한 문제를 해결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근대 자연과학의 아버지인 갈릴레오의 이름을 그에게 붙여, 유카와를 ‘갈릴레오’라고 부른다.

 

예지몽 갈릴레오 콤비의 재회


한 청년이 밤에 여고생의 방에 몰래 침입했다가 경찰에 붙잡힌다. 경찰서에 온 청년은 어렸을 적 꿈속에서 한 소녀를 봤는데, 이 후 그 소녀를 미래의 여인이라 부르며 살아왔다고 진술한다. 그리고 오래전 꿈에서 만난 그 소녀를 어제 만났다는 믿기 힘든 얘기를 한다. 어떤 일이 벌어지기 전 꿈에서 미리 사건을 보는 예지몽을 꿨다는 것이다. 심지어 청년의 말이 사실이라는 증거도 속속 나온다.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에 경찰이 당황하자 구사나기 형사는 다시 탐정 갈릴레오를 찾는다. 유카와는 이번에도 천재 물리학자답게 기이한 현상으로만 여겼던 사건을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근거로 추리해 나가며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

 

용의자 X의 헌신 천재 수학자 이시가미의 등장


유카와가 대학생일 때다. 우연히 학교 벤치에 앉아 어딘가에 몰두하고 있는 이시가미를 보고 호기심을 느낀다. 이시가미가 골똘히 풀고 있는 문제는 ‘4색 문제’. 4색 문제는 인접한 부분이 겹치지 않도록 평면지도를 색칠할 때 단 4가지 색만 있으면 된다는 문제다.

 

 

다시 말해 5색 이상 필요한 지도는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난제는 이미 1976년에 증명됐다. 다만 증명은 컴퓨터로 했는데, 지도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2000개 정도로 분류해 몇천 시간에 걸쳐 계산해낸 것이다. 이시가미는 컴퓨터를 이용해 증명한 게 탐탁지 않았고, 더욱 간결하고 보기 쉽게 증명하기 위해 매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유카와와 이시가미는 4색 문제를 논하며 친구가 된다.

 

갈릴레오가 사라진 영화 용의자 X


2005년 일본에서 출간된 소설 ‘용의자 X의 헌신’은 이듬해 2006년, 일본에서 가장 권위있는 문학상인 ‘나오키상’을 수상한다. 이후 일본을 포함해 미국과 중국에서 영화로 제작됐다. 한국에서도 2012년 10월 ‘용의자X’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됐다. 영화에서는 천재 물리학자 유카와가 나오지 않아, 수학자와 형사가 대립 구조를 이룬다. 수학자이자 수학교사 이시가미(한국이름 석고)가 연구하는 문제도 다르다.

 


소설에서 이시가미는 4색 문제를 컴퓨터가 아닌 사람이 증명하는 방법을 찾기 위한 연구에 매달리지만, 영화에서는 ‘골드바흐의 추측’을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골드바흐의 추측은 정수론 분야에서 해결되지 않은 난제로, 2보다 큰 모든 짝수는 두 개의 소수 합으로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때 하나의 소수를 두 번 사용하는 건 상관없는데 예를 들면 4 = 2+2, 6 = 3+3, 8 = 3+5, 10 = 3+7 = 5+5와 같다. 이것이 모든 짝수에 대해 성립하는지는 아직 증명되지 않았다.

 

영화 ‘용의자 X’의 한 장면. 원작 소설과 다르게 수학자와 형사가 대립한다.

 

 

 

사건의 실마리는 대화 속에

 

유카와는 물리학자의 길을 걷고, 이시가미는 학교 선생님이 된 뒤로 한동안 왕래가 없었다. 그런데 야스코 사건으로 두 사람이 오랜만에 재회한다. 이시가미는 유카와가 교정에서 처음 봤을 때 처럼 여전히 세상의 모든 이치를 수학적으로 표현했다. 유카와와 대화할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시가미는 야스코 사건에 대해서도 수학 문제에 빗 대어 말한다. 그런데 뜬금없어 보이는 이시가미의 수학 문제는 소설의 복선이자, 사건을 해결할 실마리를 제공한다.

 

#첫 번째 씬
"구나사기에게서 재미있는 말을 들었어. 자네의 시험문제작성에 대해, 선입견의 맹점을 찌른다고 했던가. 겉으로는 기하학의 문제인 것 같지만 사실은 함수 문제라고 말이야.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어. 수학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매뉴얼대로 문제를 푸는 데 익숙한 학생에게는 아주 유효한 방법이겠지. 언뜻 보기에 기하학 문제니까 있는 힘을 다해 그 방향으로만 문제를 풀려 하겠지. 그러나 풀리지 않아. 시간만 흘러갈 뿐이지. 심술궂다면 심술궂다고 할 수 있지만, 실력을 측정하는 데는 아주 좋은 수단이야."

 

이시가미는 순수한 학문인 수학의 본질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문제 푸는 방법만 외워 대입하는 것을 경멸한다. 그런데 재직 중인 학교에서 그저 학생들의 수학 성적만 올리라는 압박을 받고 정신적으로 피로해진 상태다.

 

그리고 이시가미는 잘 포장된 겉모습에 속아 속에 있는 진짜 문제를 보지 못해 헤매고 있는 형사들의 모습을 본다. 이시가미는 사건을 담당하는 형사들이 문제의 본질을 간과하고 있는 모습을 지적한다. 이 말을 들은 유카와가 문제 해결 방향을 바꾸는 순간, 사건의 퍼즐은 척척 맞아떨어진다.


결국 사건을 야스코와 완전히 분리했다. 언뜻 보기에는 연결되어 있은 것 같지만 결코 만날 수 없는 직선상으로 옮겨버린 것이다.

 

#두 번째 씬
"마지막으로 이시가미를 만났을 때, 그 친구, 내게 수학문제를 하나 제시했지. P≠NP 문제라는 건데 자신이 생각해서 답을 내는 것과, 남에게 들은 답이 옳은지 그른지를 확인하는 것 중 어느 게 더 간단한거라는 유명한 문제이지."

 

유카와는 형사에게 이시가미와 나눴던 대화 내용을 말해준다. 여기서 이시가미가 언급한 수학문제인 P≠NP 문제는 2000년 클레이 수학연구소가 발표한 7개의 밀레니엄 문제 중 하나다. P는 정해진 단계에 풀리는 문제, 즉 답을 찾는 게 쉬운 경우이고, NP는 풀이를 보고 답이 맞는지 틀렸는지 확인하는 게 쉬운 경우다. 이 두 경우의 관계를 찾는 문제가 P≠NP 문제다.

 

이시가미는 야스코를 구하기 위해 명확한 진술 내용을 형사에게 내밀며 자신이 범인이라 자수한다. 이시가미는 허점 없는 답을 고안해 냈다. 찾기 쉬운 답을 낸 것이다. 그러나 이 답이 맞는지 틀렸는지 확인해야 한다. 쉽게 확인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른다. 유카와는 형사에게 말했다.

 

"전력을 기울여 그가 제시한 답이 옳은지를 확인하지 않으면 안 돼. 자네들은 지금 도전받고 있고, 시험당하고 있어."

 

오랜만에 만난 두 친구는 사건을 두고 대립한다. 이야기는 한 명이 문제를 던지면 다른 한 명이 문제를 해결하는 구조로 흘러간다. 어느 대사 하나도 의미 없이 쓰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반전이 거듭된다. 두 천재의 첨예한 두뇌싸움을 뮤지컬에서 직접 확인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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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6호 수학동아 정보

  • 조혜인 기자(heyn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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