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Part 1. 전자화폐 시대가 온다

소위 ‘채굴장’에서는 가상화폐를 채굴하기 위해 수백 대의 컴퓨터를 이용한다.

 

게임 머니 없이 온라인 게임을 한다고 상상해 보세요. 열심히 몬스터를 사냥해서 얻은 아이템을 보관할 창고가 필요하겠죠. 창고를 마련했으면 자리를 비운 사이 창고를 지켜 줄 사람을 고용해야 하고, 아이템이 주머니에 가득 찰 때마다 창고로 가야 합니다. 다른 플레이어와 아이템을 교환하고 싶으면 거래하기로 약속한 장소까지 아이템을 들고 가야 하지요. 내가 가진 아이템 한 개의 가치가 교환할 아이템보다 낮으면 아이템을 왕창 들고 가야 할 거예요.

 

게임 머니 같은 화폐가 있으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얻은 아이템을 게임 머니로 바꿔서 들고 다니고 거래할 때는 아이템 대신 게임 머니를 주고받으면 되니까요. 일부러 창고를 사거나 창고를 지킬 사람을 고용할 필요도 없지요.

 

이런 이유 때문에 사람들은 문명이 발생한때부터 화폐를 사용했어요. 지금은 지폐와 가벼운 금속으로 만든 동전을 주로 사용하지만 초콜릿의 원료인 카카오나 고래의 이빨, 심지어 바퀴 모양의 큰 돌을 화폐로 사용하기도 했죠.

 

많든 적든 지금은 주변에서 쉽게 지폐나 동전을 볼 수 있지만, 과거 메소포타미아나 이집트에서 상류층만 돈을 갖고 쓸 수 있던 것처럼 누구나 화폐를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에요. 가부장적인 문화가 남아있는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아직도 여성이 돈을 자유롭게 가질 수 없고, 돈을 번다 해도 아버지나 남자 형제들이 보관해야 하죠. 자기가 번 돈으로 사고 싶은 물건도 살 수 없는 거예요.

 

 

새로운 화폐 등장!
돈을 가질 수 없다면 은행에 통장을 개설해서 돈을 주고받으면 어떨까요? 통장에 적혀있는 숫자 가 내가 가진 돈이고, 은행이 이 사실을 보증해 주니까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모든 거래 기록을 은행이 적어 놓기 때문에 몰래 돈을 쓸 수는 없습니다. 행여 기록하는 사람이 잘못 기록하거나 기록을 조작할 수도 있죠.

 

2014년, 아프가니스탄에 사는 여학생 패리사 아흐마디는 난생 처음 자기가 번 돈을 이용해 노트북을 샀어요. 현금이나 통장을 이용하지 않고 가상의 지갑과 돈을 이용했지요. 이 화폐는 장부를 적는 은행이 필요 없고 이름이나 성별을 공개하지 않아도 거래를 할 수 있어서 노트북을 살 수 있었어요.

 

아흐마디가 노트북을 살 때 사용한 화폐는 최초의 가상화폐인 ‘비트코인’입니다. 온라인으로 이 독특한 화폐의 ‘지갑’을 만들면 지갑을 가진 사람끼리 돈을 보내거나 물건을 살 수 있어요. 지갑은 국가나 성별 같은 개인정보를 적지 않아도 만들 수 있고, 은행 없이도 거래할 수 있어요.

 

가상화폐로 거래하려면 은행 대신 지갑, 물건, 가게 등의 거래 내용을 암호화해서 장부에 적을 사람이 필요한데, 이런 일을 하는 사람에게 대가로 가상화폐를 제공합니다. 대가가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나서서 장부에 적으려고 해서 은행이 필요 없지요. 이렇게 장부를 작성해 주고 가상화폐를 받는 일을 ‘채굴’이라고 해요.

 

장부를 적으려고 하는 사람이 너무 많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단 한 명만 거래 정보를 장부에 적고 가상화폐를 받을 수 있는데, 불공평한 방법으로 선정한다면 장부를 적으려고 하지 않고 결국 아무도 가상화폐를 사용하고 싶지 않을 거예요.

 

비트코인 개발자는 수학 문제를 이용해 이것을 손쉽게 해결했어요. 문제를 가장 먼저 푼 사람이 장부를 적는 거지요. 단, 이 문제를 풀려면 성능이 좋은 컴퓨터가 필요해서 몇몇 사람들은 컴퓨터 수백 대를 이용해 이 문제를 풀기도 합니다.

 

 

수학 문제, 가상화폐를 만들다
2009년 컴퓨터 프로그래머인 나카모토 사토시는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수학 문제를 이용해 은행 없이 돈을 주고받을 수 있는 거래 방법을 소개했어요. 사토시는 가상의 돈인 ‘비트코인’을 130년에 걸쳐 일정량 만들어지도록 하고, 수학 문제를 풀어 거래 장부를 적는 사람에게 비트코인을 나눠주는 방법을 생각했어요. 이 문제는 수학을 잘 모르는 사람도 시간을 들이면 누구나 도전할 수 있는 문제예요. 사토시가 낸 문제는 이렇습니다. 비트코인을 채굴하고 싶으면 지갑, 물건의 금액, 상점 같은 거래정보를 ‘해시함수’를 이용해 32자리의 16진수 숫자로 바꾸도록 합니다. 해시함수는 어떤 정보를 입력해도 일정한 길이의 문자열로 바꿔주는 함수예요.

 

 

그런데 해시함수로 바꿨다고 해서 무조건 장부에 적을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문자열의 첫 네 자리가 모두 0이어야 한다’ 는 조건을 만족해야 하죠. 사람들은 거래정보에 일련번호를 하나씩 붙이고, 이 번호를 조금씩 바꿔가며 조건을 만족하는 값이 나올 때까지 찾아야 합니다. 해시함수는 입력한 정보를 보통 2256개의 문자열 중 한 개로 아무렇게나 바꾸기 때문에 위 조건을 만족하는 값을 찾으려면 아주 많은 계산을 해야 하죠. 문제가 너무 쉬우면 0를 다섯 자리로 늘리면 돼요.

 

문자열을 찾았으면 이제 장부에 입력하면 됩니다. 이 장부는 누구나 볼 수 있기 때문에 함부로 조작할 수 없도록 ‘블록체인’을 이용했어요. 블록체인은 각 거래 내역이 적힌 장부를 이어서 만든 고리예요. 새로운 장부를 만들 때 바로 전에 있는 장부에 담긴 내용을 짧게 요약해서 함께 기록해 놓기 때문에 ‘체인’이라고 표현하지요.

 

 

모두를 위한 화폐가 올까?
가상화폐의 가치는 들쭉날쭉하지만 꾸준히 오르고 있어요. 2010년 비트코인을 이용한 첫 거래에서는 41달러짜리 피자를 사기 위해 1만 비트코인을 지불했어요. 현재 1만 비트코인은 몇백억 원에 육박할 정도로 가치가 올랐지요.

 

가상화폐가 상용화되려면 가상화폐를 이용하는 사람이 많아야 해요. 게임 속에서 번 돈은 게임 속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것처럼, 가상화폐도 가상화폐를 사용하는 사람들끼리 사용할 수 있어요.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에서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가상화폐 지갑을 만든 사람은 약 6000만 명 정도로, 아직 턱없이 부족합니다.

 

지폐나 동전처럼 가상화폐가 화폐로 널리 쓰이게 될지는 아직 모릅니다. 쉽고 안전하지만, 낯선 거래 방식인데다 1초에 약 2만 건의 거래를 처리하는 신용카드에 비해 가상화폐는 1초에 7건 정도밖에 처리를 하지 못할 정도로 느리기도 하지요.

 

아흐마디뿐 아니라 여전히 문화 차이 때문에 또는 은행을 지을 수 없을 정도로 사는 곳이 낙후돼서 은행을 이용하지 못하는 사람이 대략 25억 명이나 있어요. 아직 시기상조지만, 언젠가 가상화폐가 상용화된다면 스마트폰만 있어도 전 세계 누구와도 거래를 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거예요. 물론 수학 문제를 열심히 풀어야 겠죠?

 

 

 

 

▼관련기사를 계속 보시려면?

 

Intro. 수학, 미래를 보다

Part 1. 전자화폐 시대가 온다

Part 2. 인공지능, 인간 못 넘는다

Part 3. 역사의 흐름을 예측한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18년 01호 수학동아 정보

  • 김우현 기자(mnchoo@donga.com)
  • 도움

    김병한(연세대학교 수학과 교수), 김형중(고려대학교 사이버국방학과 교수)
  • 참고자료

    마이클 J. 케이시 ‘비트코인 현상 블록체인 2.0’, 아포스톨로스 독시아디스 ‘로지코믹스’, 존 도슨 주니어 ‘쿠르트 괴델의 생애와 업적’, 피터 터친 ‘제국의 탄생’, 캐서린 이글턴 외 ‘화폐의 역사’

🎓️ 진로 추천

  • 컴퓨터공학
  • 경제학
  • 수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