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쇼핑몰 로비에서 친구를 기다리던 기자는 사람들이 모여 깔깔거리는 모습을 봤다. 그들은 이상하게도 허공에 팔을 휘저었다…. 가까이 가 보니 높이 설치된 대형 스크린이 있었다. 팔을 재빨리 휘두르면 화면 속 두더지를 잡을 수 있는 게임이었다. 화면에 푹 빠진 기자는 두더지 뒤에 나오는 광고에도 자연스럽게 집중하게 됐다. 이 광고를 만든 곳이 바로 이번에 소개할 ‘라온스퀘어’다. 사람의 시선을 잡아끄는 아이디어로 광고답지 않게 재미난 광고를 만드는 신생 기업이다.
어제 왔던 손님, 오늘 또 왔네
사람의 움직임을 인식하는 광고에 대해 찾아보면 ‘사용자 경험 인터페이스’, ‘인터랙티브 어트랙션’ 등 이해하기 힘든 용어가 쏟아져 나온다. 라온스퀘어의 김태일 대표는 직접 만든 다양한 작품을 예로 들어 이런 개념을 설명했다.
“화장품 가게 앞을 지나는데 벽면에 내 모습이 나타나요. 내가 손을 흔들면 화면에 뜬 말풍선이 팡팡 터지죠. 손님이 화장품 가게 안으로 들어가 보고 싶게 만든 전략이에요.”
김 대표가 보여준 영상 속에서는 피부와 화장품에 관심이 많은 손님이 결국 가게 안으로 들어간다. 그 안에는 손님의 얼굴을 비추는 카메라가 있는데, 사진을 찍으면 손님의 얼굴 피부톤이 어떤지 알려준다. 흔히 얼굴에 붉은 기가 돌면 ‘웜톤’, 노란 기가 돌면 ‘쿨톤’이라고 부른다. 자신의 피부톤에 맞는 화장품을 추천받은 손님은 즐거운 마음으로 가게를 둘러본다.
이렇게 사람이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사용자 경험’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사용자 경험을 활용한 광고에 더 집중하게 된다. 라온스퀘어는 널리 알리려는 브랜드에 어떤 광고가 적합한지 고민한다. 예를 들어 청바지 가게를 찾은 손님이 바지를 입었을 때 뒷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는 점을 생각해 가게
에 손님의 옆모습과 뒷모습을 찍어주는 카메라를 설치하는 식이다.
디자인과 소프트웨어의 결합!
라온스퀘어의 작품이 있는 매장과 전시관에 당장이라도 가보고 싶어진 기자는 라온스퀘어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기로 했다. 라온스퀘어에서는 디자이너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함께 일한다. 광고를 만들고 싶은 회사가 의뢰하면 디자이너와 기술자 모두 그 회사에 대해 공부한다. 재미있고 알찬 광고를 만들기 위해 광고하려는 제품과 광고를 할 장소에 대해 속속들이 조사하는데, 그 기간이 짧게는 3개월, 길게는 9개월 정도다.
디자이너는 브랜드와 제품에 맞는 광고나 이벤트를 기획하고,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는 프로그래밍으로 디자이너의 아이디어가 눈앞에 나타나도록 한다. 예를 들어 화면을 터치하면 원하는 콘텐츠가 나타나도록 하는 식이다. 프로젝트가 끝난 뒤에도 의뢰인이 지속적으로 콘텐츠를 관리할 수 있도록 관리 프로그램도 만든다.
디자인과 소프트웨어 기술이 조화를 이루는 라온스퀘어의 문화는 이들이 만드는 광고에도 녹아 있다. 과거 한 모터쇼에서 가족사진을 찍어주는 이벤트를 기획했을 때, 이들은 스티커 사진기 같은 부스 안에 캐리커쳐 작가가 숨어있다가 가족들의 얼굴을 직접 그려서 사진처럼 내보내기로 전략을 바꿨다. 사진 기계에서 사진이 아닌 그림이 나오자 많은 가족들이 환호했고 이벤트는
대성공이었다. 디자인 또는 기술 중 어느 한 쪽만 내세우기보다 진짜 즐거움을 추구한 결과다.
아이도 어른도 즐거운 세상을 꿈꾼다
3세, 6세인 자녀를 키우는 김 대표는 요즘 아이들의 ‘다중지능’을 키울 수 있는 놀이터에 관심이 많다. 다중지능은 미국의 심리학자 하워드 가드너가 1983년에 사람의 지능을 9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고 주장한 데서 비롯됐다. 김 대표가 꿈꾸는 체험 놀이터에는 여러 가지 지능을 키울 수 있는 다양한 놀이가 있다.
아이는 놀이터에 들어가 자신의 입맛에 맞는 놀이에 빠져든다. 이때 아이가 손목에 찬 웨어러블 기기는 아이가 어떤 놀이에 특히 집중하는지를 기록한다. 이를 통해 아이의 어떤 지능이 뛰어나며 앞으로 어떤 교육이 더 필요한지 분석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놀 곳이 없는 어른을 위한 놀이터는 없을까? 추리를 좋아하는 김대표는 요즘 유행인 ‘방 탈출 카페’에 디지털 기술을 접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방 탈출 카페는 밀폐된 방에서 여러 가지 단서를 찾아 자물쇠를 풀고 탈출하는 곳이다. 방 탈출 카페에 가본 적이 있는 기자는 서둘러 암호를 풀기 위해 팔을 허공에 휘젓는 모습을 상상했다.
마지막으로 김 대표가 언제 가장 보람을 느끼는지 물었다. 그는 “우리가 만든 걸 보고 사람들이 기뻐하고, 즐거워할 때 에너지가 솟는다”고 말했다. 앞으로 그와 라온스퀘어가 만들 즐거운 세상은 어떤 곳일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