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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그래피에 담은 수학자의 명언 판곡중학교 김상미 선생님

STEAM인터뷰


 
경춘선 창 밖에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며 선생님은 어떤 분일지 상상해봤다. 고등학생일 때 마라톤을 하는 수학 선생님을 만난 적은 있었지만 캘리그래피를 하는 수학 선생님은 처음이었다. 전혀 예상이 안 됐지만 선생님의 블로그에서 본 작품을 직접 볼 생각에 마음 속에 점차 기대가 부풀어 올랐다.

김상미 선생님을 만나러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판곡중 1학년 2반 교실을 찾아갔다. 김 선생님의 제자들이 반갑게 기자를 맞았다. 그리고 ‘어울림’을 보여 주겠다고 했다. 무슨 말인지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2반 학생들의 이름으로 속을 채운 캘리그래피 작품이었다. 김 선생님이 3월에 첫 출석부를 받고 만든 것이란다.

학생들이 자랑스럽게 보여준 건 이뿐만이 아니다. 교실 뒤편의 사물함에는 사물함 주인의 이름과 함께 장래희망이 캘리그래피로 적혀 있었다. 그리고 수학자의 명언으로 꾸민 편지지에 정성스럽게 적은 편지는 선생님의 사랑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었다. 조카처럼 친근한 학생들 앞에서 감탄사를 연발하던 기자는 인터뷰가 시작되자 먼저 편지에 대해 물었다.

“예전에는 스승의 날에 편지를 받는 걸 당연하다고 여겼어요. 편지가 너무 짧으면 서운하기도 했지요. 그런데 교단에 오래 머물다 보니 그 편지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습니다. 한 줄짜리 편지라도 답장을 줘야겠다고 생각했죠. 이렇게 작품으로 편지를 써 보내면 신기하게도 아이들이 편지를 접지 않아요. 그냥 종이에 써 줬으면 여러 번 접어서 가방에 넣을 텐데, 이건 안 접고 파일에 끼워 두거나 코팅을 해서 보관하더라고요.”

캘리그래피는 학생들과 선생님을 정서적으로 이어줄 뿐만 아니라 수학 수업에도 도움이 된다.

“제가 수학 교사라 실제로 수업에서 다룰 내용으로 작품을 만들기도 해요. 예를 들어 정수와 유리수 단원에 나오는 수직선은 눈에 보이지 않는 음수를 볼 수 있게 하려고 만든 거예요. 수직선을 표현한 캘리그래피 작품을 보여 주면서 수학의 역사를 이야기하면 학생들도 수업을 좀 더 재미있게 듣는답니다.”

<;사이언스>;에 실린 선생님의 제자 사랑

김 선생님의 교육방식은 2009년에 미국 과학전문학술지 <;사이언스>;에 실린 적이 있다. 미래의 학교는 어떤 모습일까 고민하던 김 선생님은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사이버 가정학습을 시도했다. 사이버 가정학습은 학생에게 매일 공부할 분량을 주고 문제를 풀면 바로 채점해 주는 시스템이다. 사이버 가정학습을 반복하면 자기가 틀린 부분을 바로 알 수 있고 꾸준히 공부하는 습관을 기를 수 있다. 김 선생님은 이 방법이 수학 성취도가 낮은 제자들에게 특히 효과가 있다는 점을 알게 됐다. 이 연구 결과는 2008년 교육정보화연구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냈고 <;사이언스>;의 주목을 받았다.
 

삶의 활력소가 된 캘리그래피

김상미 선생님이 캘리그래피를 시작한 건 2011년이다. 경기도 우수교사로 뽑혀 서울대에서 1년 동안 수학 수업 관련 연구를 하고 논문지도를 받기로 했던 때다. 주변의 부러움을 샀지만, 막상 책과 논문에 파묻혀 지내다 보니 여유가 없었다. ‘이렇게 팍팍한 마음으로 어떻게 좋은 연구를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 끝에 김 선생님이 찾은 것이 바로 ‘캘리그래피’였다. 김 선생님은 어렸을 때 서예를 했었고, 지금도 전시회를 꾸준히 다닐 만큼 미술을 좋아한다. 바른 자세로 정갈한 글씨를 쓰는 서예는 장점이 많았지만, 김 선생님은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글씨를 쓰고 싶었다. 그런 면에서 캘리그래피는 김 선생님에게 삶의 활력소가 됐다.

김 선생님은 아무리 바빠도 주말 중 하루는 오롯이 글자를 쓰는 데 쓴다. 사실 글자를 쓰는 것보다는 어떻게 쓸지 고민하는 시간이 더 길다. 퇴근하는 선생님의 머릿속엔 ‘어떻게 하면 수학자의 업적과 명언의 뜻을 잘 전달할 수 있을까’로 가득하다. ‘무한’을 연구한 게오르그 칸토어의 명언을 쓸 때는 무한의 이미지를 함께 넣는 방법을, 피에르시몽 라플라스의 명언을 쓸 때는 별을 연구한 수학자의 말답게 글자를 별처럼 표현하는 방법을 떠올렸다. 그리고 주말에는 그동안 구상한 디자인을 실제 작품으로 만든다.

김 선생님은 작품을 쓸 때 비싼 종이나 캘리그래피용 펜 대신 문방구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화선지와 붓펜을 쓴다. 흔한 재료의 가치를 높이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다.

캘리그래피를 통해 이루고 싶은 꿈이 있냐는 물음에 김 선생님은 작품을 모아 전시회를 열거나 책으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작품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서다. 그런데 인터뷰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좋은 소식이 들렸다. 김 선생님이 2015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작품을 전시하게 된 것이다. 비록 작은 공간이지만 김 선생님은 대중에게 작품을 선보이고 생각을 나눌 수 있게 됐다. 꾸준한 노력이 담긴 작품은 분명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이다.





시간에 중력을 만드는 캘리그래피

김상미 선생님은 ‘물’ 같은 교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학생들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면서 모두 좋은 방향으로 흐르게 하는 선생님이 바로 물을 닮은 선생님이다. 김 선생님은 다양한 특징이 있는 아이들에게 스며드는 물이 되려면 마음의 샘을 늘 갈고 닦아야 한다고 했다. 글씨를 쓰는 것은 여유로움을 즐기고 마음을 닦는 방법이다.

“정신없이 바쁘다고 급한 일만 먼저 하다 보면 시간이 가볍게 날아가 버려요. 혼자 천천히 생각하는 습관은 소중한 시간이 날아가지 않게 붙들어 주죠. 캘리그래피는 시간에 중력을 만들어 줍니다.”

김 선생님은 캘리그래피로 만들었던 글귀 가운데 ‘수학의 본질은 자유로움에 있다(게오르그 칸토어)’와 ‘누구든지 수학에서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수많은 절망감을 맛보아야 한다(존 밀너)’를 특히 좋아한다고 했다. 글귀 속의 수학을 ‘인생’으로 바꿔도 전혀 어색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선생님은 수학 수업은 물론 학생들이 어떤 꿈을 갖고 있는지에도 관심이 많았다. 꿈이 있는데 어떻게 이룰지 모르는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며 인터뷰가 끝난 뒤에 기자에게 ‘과학기자가 되는 방법’을 취재해 가기도 했다.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은 주변에 그 힘을 전파한다더니 김상미 선생님이 딱 그런 분이었다. 선생님의 이야기가 수학자의 명언 못지않게 독자에게 힘을 전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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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7월 수학동아 정보

  • 고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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