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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➊ 건강한 경쟁이 건강한 숲을 만든다

나무의 눈치 게임, 높이 경쟁

지금 이 순간에도 숲 속에서는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숲에서 자라는 나무는 빛을 받기 위해 잎을 넓히고 가지를 뻗는다. 다른 나무 그림자에 가려지면, 나무는 성장이 더뎌지고 급기야 원치 않는 죽음을 맞이하기도 한다. 이런 경쟁은 숲을 더욱 활력있게 만들어 준다.

일본의 수학자 이와사 요는 나무가 주변 환경에 따라 성장 속도와 나무의 높이(키)가 달라지는 현상을 ‘게임이론’으로 설명했다. 게임이론은 한 사람의 행동이 다른 사람의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의사결정은 어떻게 달라지는지에 대해 논리적인 근거를 제시하고 수학적으로 분석하는 데 쓰인다. 범죄를 저지른 두 공범자에게 각각 ‘자백할 것인지’ ‘혐의를 부인할 것인지’ 선택하도록 하고, 그 결과에 따라 서로 다른 형량을 결정하는 ‘죄수의 딜레마’가 대표적인 예다.

나무의 이득을 계산하면 승자가 보인다

이와사 요는 나무가 주변 환경에 따라 높이를 결정하는 현상을 ‘나무 높이 게임’이라고 불렀다. 높이는 가지와 잎이 가장 많이 달려 있는 부분인 ‘수관’을 기준으로 잰다. 외딴 곳에 덩그러니 홀로 자라는 나무는 수관을 높이 들어 올릴 필요가 없다. 키가 작아도 충분히 광합성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울창한 숲에서는 키가 작으면 큰 나무의 그늘에 가리므로 부지런히 수관을 높이 들어 올려야 살아남을 수 있다.

이와사 요는 나무 높이에 따른 이득을 계산했다. 수관의 크기와 모양은 일정하다고 가정하고, ‘광합성으로 얻은 에너지량’에서 ‘성장하며 사용한 에너지량’을 빼서 나무의 이득을 구했다.

그 결과 울창한 숲에서 자라는 나무는 부피 성장보다 길이 성장에 에너지를 많이 투자해, 나무 높이가 높았다. 키가 작으면 광합성을 하기 어려우므로 주변 나무와 경쟁하며 나무 높이를 높여야 이득을 양수로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듬성한 숲에서 자라는 나무는 상대적으로 나무줄기가 굵고 키가 작았다. 굳이 키가 크지 않아도 광합성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빛을 더 받기 위해 에너지를 주로 가지를 더 넓게 뻗는 데 투자한다. 다시 말해 나무는 스스로 게임이론을 적용해 경우에 따라 에너지를 다르게 투자하며, 자신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을 최대화하고 있었다.

이처럼 나무는 성장에 필요한 조건(광합성 속도, 빛의 세기, 성장에 필요한 에너지)이 같더라도 환경에 따라 서로 다른 성장세를 보인다.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사람의 의사결정을 분석하던 게임이론이 자연 현상도 설명해 주는 것이다.

죄수의 딜레마에서 최적의 해결점을 찾아라!

범죄를 저지른 두 공범자 A와 B가 체포됐다. 그러나 유죄를 확정하기에는 증거가 불충분해 검사는 A와 B를 각각 다른 공간에 가두고 다음과 같은 거래를 제안한다.
(단, 검사는 A와 B에게 같은 조건을 제시한다.)

➊ 네가 자백하고 공범이 침묵하면 너는 무죄로 인정한다(공범은 징역 3년).
➋ 네가 침묵하고 공범이 자백하면 너는 징역 3년을 살게 된다(공범은 무죄).
➌ 너와 공범이 모두 자백하면 두 명 모두 징역 2년을 살게 된다.
➍ 너와 공범이 모두 침묵하면 두 명 모두 징역 1년을 살게 된다.

이와 같은 구조에서 최적의 해결점을 찾은 상태를 ‘내시 균형’이라고 한다. 죄수의 딜레마에서는 두 죄수가 모두 자백하는 상태가 바로 내시 균형이다. 내시 균형은 1994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미국의 수학자 존 내시가 만든 용어로, 게임 구조에서 상대방의 전략을 기초로 자신의 이익을 최대화하는 상태를 말한다.

잎과 가지의 배치도 수학적으로

무작정 높아지기만 하면 경쟁에 유리한 걸까? 그랬다가는 줄기와 뿌리가 못버텨 스스로 쓰러질 수도 있다.

각 나무마다 잎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고 가정하면, 나무는 환경에 따라 잎을 서로 다른 높이로 분산시킨다. 정해진 양의 잎으로 에너지를 최대로 얻기 위해서다. 예를 들어 외딴 곳에서 자란다면 땅 가까이 잎이 많은 돔 또는 원뿔 모양이 좋다. 주변에 경쟁하는 나무가 많으면 잎이 달리는 위치가 점점 높아져 결국은 가장 꼭대기에 잎이 가장 많이 달리는 아이스크림 콘 모양이 된다. 아이스크림 콘 모양인 나무일수록 키도 큰 편이다.

나뭇가지 각도도 다 이유가 있다

나무는 가느다란 나뭇가지로 잎의 무게를 견뎌야 한다. 그래서 전략적으로 잎을 분산시킨다. 가지도 일정한 법칙에 따라 늘린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나뭇가지는 곁가지가 하나일 때는 몸통이 휘고, 2개가 서로 반대쪽에서 날 때는 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19세기 말 독일의 해부학자 겸 발생학자였던 빌헬름 루는 이 법칙을 좀 더 정교하게 다듬었다. 해부학자였던 루는 사람의 몸속 혈관 구조를 연구하면서 이 법칙을 정리할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는 ‘가지 속 관의 액체 운반 능력은 가지가 갈라져도 변하지 않아야 한다’는 가설을 세우고, ‘가지 성장의 법칙’을 만들었다.

빌헬름 루의 <;가지 성장의 법칙>;

➊ 하나의 중심 줄기가 폭이 같은 두 가지로 갈라질 때, 가지들이 원래의 몸통과 이루는 각도는 서로 같다($a=b$).
➋ 갈라진 두 가지의 굵기가 서로 다르다면, 둘 중에서 가는 가지가 두꺼운 가지보다 더 큰 각도로 휜다($a>b$).
➌ 너무 가늘어서 몸통을 휘지 못하는 곁가지라면, 몸통과 70°에서 90°까지 각도를 이루며 난다.
 

아름다움까지 재현하는 수학 알고리즘

나아가 수학자들은 나무의 아름다운 구조까지 재현하려는 욕심을 부린다. 린덴마이어 시스템, 또는 줄여서 L-시스템이라는 프로그램은 일정한 길이가 되면 가지가 두 개로 갈라진다는 간단한 규칙만으로 훌륭한 나무를 컴퓨터 속에 만들어낸다. 이 프로그램은 나무의 성장을 재현하는 알고리즘과 프랙탈 원리를 이용한다. 처음 이 프로그램을 설계한 사람은 헝가리의 생물학자 애리스티드 린덴마이어다. 그리고 훗날 미국 매사추세츠공대 언어학과 노엄 촘스키 교수가 알고리즘을 보강하고, 영국의 유명한 수학자 스티븐 울프램이 수학 패턴을 만들어 이 프로그램은 한 단계 더 발전했다.

이처럼 나무의 성장을 재현하는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나무의 생태계가 무너진 원인을 분석하고 성장에 문제가 생겼을 때 그 원인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혈관 속 법칙을 나뭇가지에 적용하다!

1920년대에 생물학자 세실 던모어 머리는 빌헬름 루의 법칙을 본격적으로 나뭇가지의 성장에 적용했다. 사실 머리도 혈액의 흐름에 더 흥미가 있었지만, 혈관과 나무의 가지가 모습이 닮은 것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어 나뭇가지에 대한 연구를 이어갔다. 두 구조는 모두 액체를 나르는 속이 빈 관으로 이뤄진 형태다. 다만 사람의 혈관은 관의 굵기가 굵은 편인데, 나무는 가는 관들 여러 개가 모여 큰 관을 이룬다. 머리의 알고리즘을 따라 무작위로 뻗어가는 가지를 만들면, 제법 사실적인 ‘나무’를 재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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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4월 수학동아 정보

  • 염지현(ginny@donga.com)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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