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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수학과 화학의 맛있는 만남 분자요리

“첫 번째 시험관에 든 스프를 들이킨 다음, 삼키지 말고 두 번째에 든 연어를 먹으세요. 음미하다가 세 번째에 든 소스를 마셔요. 그리고 마지막 시험관에 든 연어 알을 톡 씹어….”

아직 미완성인 요리를 마저 완성하라는 것인지 과학실험을 하라는 것인지 아리송했다. 하지만 웨이터가 안내한대로 요리를 차례대로 입에 넣었더니 겉보기로는 전혀 예상치 못한 풍미가 느껴졌다. 특히 마지막에 입에 넣은 캐비어를 깨물자 짭짜름한 간장이 새어나왔다!

최근 우리나라에도 알려지고 있는 이런 색다른 요리는 원래 영국과 프랑스, 스페인 등 유럽의 물리화학자들이 생각해냈다. 특히 프랑스 물리화학자인 에르베 디스는 “뛰어난 요리는 맛뿐만 아니라 향과 질감도 최대한 살릴 수 있어야 한다”며 ‘분자요리’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했다.

과학실에서처럼 조리실에서도 물리화학적인 반응을 이용하면 평소와 다른 모양과 질감을 내는 요리를 할 수 있다. 실제로 시험관이나 비커, 피펫, 주사기, 스포이트, 소형 전열기(정해진 온도로 가열하는 기구) 같은 실험기구로 요리하기도 한다. 또 맛과 향을 좀 더 살리기 위한 방법도 개발할 수 있다.

가짜 캐비어의 핵심은 두께와 점성

최근에는 값비싼 캐비어 알 대신 ‘가짜 캐비어 알’이 분자요리 분야에서 주름잡고 있다. 앞서 소개한 입가심 요리에서는 연어를 입에 문 채 먹은 연어 알이 특별한 역할을 했다. 겉보기에는 연어 알처럼 작고 탱글탱글한 구슬 모양이었지만 터뜨려보니 짭조름한 맛이 났다. 눈으로 보기에도 즐겁지만, 예상치 않게 연어와 잘 어울리는 소스를 내놓음으로써 요리 맛을 한층 더 향상시킨 셈이다.


이런 가짜 캐비어 알은 미역이나 다시마, 톳 같은 갈조류에 들어 있는 ‘알긴산나트륨’을 이용한다. 알긴산나트륨과 칼슘이 만나면 투명한 젤라틴 막이 생기면서 고체가 된다. 분자요리 연구자들은 과일주스에 알긴산나트륨을 섞어 주사기나 스포이트에 넣고 염화칼슘(또는 젖산칼슘) 수용액이 든 비커에 한 방울씩 똑똑 떨어뜨리면 과일주스 맛 캐비어가 된다는 것을 알아냈다. 과일주스 물방울이 떨어지면서 순식간에 겉에만 둥근 모양대로 굳고, 안쪽은 즙이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과일주스 말고 샴페인이나 기름, 소스나 스프를 넣을 수도 있다.

가장 맛있는 캐비어가 되려면 겉의 겔이 적당히 터지지 않을 만큼 두껍고도 입 안에서 한 번에 톡 터질 만큼 얇아야 한다. 그래서 분자요리를 연구하는 물리화학자들은 캐비어 안에 넣는 액체의 성질이나 캐비어를 만드는 알긴산나트륨이나 칼슘의 양을 조절하며 다양하게 실험했다. 먼저 캐비어에 가두는 액체는 신맛이 날수록 캐비어가 좀 더 굵어졌다. 겔의 두께는 액체의 산성도를 나타내는 수소이온지수(pH)가 커질수록 얇아졌다.

물리화학자들이 실험을 해본 결과 pH가 5.3보다 커지면 겔이 얇아지다 못해 터져 버렸다. 가장 이상적인 결과는 pH가 약 3.3일 때였다. 이때 겔의 두께는 약 1.6mm였다. 이 두께여야만 캐비어는 그릇 위에서는 탱글탱글하면서도 입 안에서는 톡톡 터지며 즙을 가장 맛있게 내뿜었다.


겔의 두께만큼 중요한 것은 바로 점성이다. 점성이 너무 작으면 캐비어가 요리 위에서 너무 가볍게 굴러다닐 위험이 있고, 점성이 너무 크면 젤리처럼 상큼한 느낌을 주기 어렵기 때문이다. 캐비어의 점성은 겔과 그 안에 든 액체의 밀도차와 캐비어의 부피가 클수록 크다. 반대로 캐비어를 만들 때 알긴산나트륨을 섞은 액체를 칼슘 용액에 떨어뜨리는 속도에 반비례한다.

 


물과 기름이 만나는 조건

분자요리는 절대 섞일 일이 없어 보이는 물과 기름을 섞는 데도 성공했다. 물 안에 기름방울이, 또는 기름 안에 물방울이 잘게 쪼개져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상태로 만든 것이다. 이런 상태를 ‘에멀전’이라고 한다.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에멀전은 바로 마요네즈다. 마요네즈는 물(식초) 안에 기름방울(식용유)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에멀전이다.

빵을 찍어먹는 비네그레트 역시 마요네즈처럼 물(비네거)과 기름(올리브유)를 섞어 만든다. 하지만 포크로 아무리 휘저어도 잘게 쪼개진 비네거 방울(지름 약 1~50μm, 1μm은 1000분의 1mm)이 여기저기 흩어질 뿐 절대 섞이지 않는다. 또 시간이 흐르면 비네거는 비네거끼리, 올리브유는 올리브유끼리 모인다.

마요네즈를 만들 때는 물과 기름을 잘 섞어 주는 유화제가 들어간다. 예를 들어 달걀노른자에 들어 있는 레시틴은 물과 친한 부분과 기름과 친한 부분을 모두 갖고 있다. 그래서 물과 친한 부분은 물을 둘러싸고, 기름과 친한 부분은 기름을 둘러싸면서 물과 기름이 잘 섞여 있는 상태를 만든다.

분자요리에서는 이와 같은 원리로 식초와 기름에 달걀노른자 대신 코코넛밀크나 아보카도, 또는 마늘이나 겨자를 다진 것을 섞어 넣어 맛난 소스를 만든다. 코코넛밀크와 아보카도, 마늘, 겨자에도 유화제 성분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과학적인 원리를 알면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기에도 좋다.

물리화학자들은 에멀전이 잘 만들어지는 조건을 수학식으로도 나타냈다. 크림처럼 잘 섞이는 비율은 물 안의 기름방울 또는 기름 안의 물방울 크기와 개수, 밀도 등이 중요하다. 만약 마요네즈처럼 물 안에 기름방울이 섞여 있다면 식은 다음과 같다.
 


공기도 요리의 일부!

물과 기름뿐 아니라 액체와 공기를 섞는 일도 성공했다. 과일즙이나 소스, 스프, 샐러드 드레싱, 초콜릿 등을 거품으로 만들어 맛과 향을 모두 잡은 것이다. 거품은 고체나 액체일 때보다 표면적이 훨씬 커서 향기 분자가 날아가는 속도가 훨씬 빠르다. 그래서 향기가 비교적 진하게 난다. 또 스테이크나 푸딩 위에 얹은 거품 소스나 디저트로 나온 푸딩 위의 초콜릿 무스는 입에 넣었을 때 사그라지는 감촉도 일품이다.

이렇게 거품요리를 만들 때 가장 많이 쓰이는 재료는 달걀흰자다. 노른자를 없앤 달걀흰자는 오랫동안 한 방향으로 빠르게 저으면 거품이 풍부하게 일어난다. 흰자를 많이 치대면 치댈수록 공기방울의 크기는 점점 작아지고 거품 전체 크기는 커진다. 또 거품벽이 단단해지면서 거품도 오래 간다. 잘 만든 달걀흰자 거품은 지름이 10~150μm 정도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물과 공기가 다시 분리된다. 결국 거품이 하나둘씩 터지면서 사라진다. 심한 경우에는 거품 요리를 그릇에 담는 과정에서 무너져버릴 수도 있다. 거품이 잘 터지는 건 거품 주변에 힘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거품 바깥에 있는 주변 공기는 안으로 밀어내고, 거품 안쪽의 공기는 바깥으로 나가려고 한다. 또 거품 표면에는 물 분자가 서로 잡아당겨 표면적을 줄이려는 힘(표면장력)이 있다. 결국 이 힘들이 서로 평형을 이루지 않으면 거품은 금세 터져버리고 만다.
 

이럴 때 마요네즈를 만들 때처럼 유화제를 넣으면 오랫동안 거품이 무너지지 않는다. 달걀노른자 속 레시틴이나 녹인 초콜릿을 넣는 것이다. 기름과 친한 부분은 거품 안쪽에 든 공기를 향하고, 물과 친한 부분은 거품벽을 둘러싼다. 즉, 거품벽을 단단하게 코팅해 거품 표면에서 물기가 흘러내리거나 증발하는 현상을 줄이는 것이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모습으로 식탁에 올라오는 분자요리야말로 맛집을 찾아다니고 맛난 음식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현대인의 입맛을 충족시켜주지 않을까? 훨씬 더 새롭게, 더 신선하게, 더 특별하게 변신하고 있는 요리에는 한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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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8월 수학동아 정보

  • 이정아 기자
  • 도움

    Marie Romane, TPE cuisine moleculaire, 에르베 디스(INRA), 니콜라 쿠르티 옥스퍼드 도서 Myhrvold, Nathan, Young, Chris, Bilet, Maxime의 <Modernist Cuisine>, Anne Cazor와 Christine Lienard의 <Petit precis de cuisine moleculaire>, Laurier Schramm의 <Emulsions, Foams and Suspens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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