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의 패턴을 찾아 갔던 말레이시아 여행(수학동아 2014년 11월호 참조)에 이어 이번에는 불교문화 속에 있는 띠 문양을 찾아 태국으로 떠납니다. 1000년의 불교 역사를 자랑하듯 태국에는 수많은 불교문화유산이 남아 있습니다. 거기에 아름다운 자연환경까지 겸비한 태국은 매년 20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 관광대국이지요. 그럼 우리도 화려한 불교 문화 속에 숨어 있는 수학을 찾으러 태국으로 떠나볼까요?
불교문화의 뿌리를 찾아 아유타야로~
방콕에서 북쪽으로 약 60여 km 떨어진 아유타야는 1350년부터 400년 동안 번성했던 왕국의 수도입니다. 이름의 뜻은 ‘불멸(사라지지 않는다)’이지요. 한때 이곳에는 3곳의 왕궁을 비롯해 375곳의 사원과 29개의 요새, 94개의 커다란 문이 있었을 정도로 찬란한 도시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영원할 것 같았던 이 도시는 버마(지금의 미얀마)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됐고, 200년이 넘게 정글 속에 있다가 유네스코 발굴 작업에 의해 비로소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비록 지금은 처참히 부서진 모습만 남아 있지만 아유타야는 타이 왕국과 불교의 변천사를 보여 주는 중요한 유적지입니다. 1991년부터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돼 보호를 받고 있지요.
가장 먼저 가볼 곳은 아유타야의 대표 유적지인 왓마하탓입니다. 태국어로 ‘왓’은 ‘사원’이라는 뜻이에요. 입구를 지나 천천히 걷다 보면 엄청나게 넓은 사원터에 한 번 놀라고, 화려했던 과거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폐허로 변해버린 처참함에 또 한 번 놀라게 됩니다. 한줌의 재처럼 사라진 과거의 영광을 상상하며 걸으면 조금 서글픈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곳 왓마하탓이 유명한 건 버마군의 침략 당시 잘려나간 부처의 머리를 감싸 안고 자란 보리수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석가모니가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하여 불교에서는 매우 신성하게 여기고 있거든요. 슬픈 듯도 하고 평온한 듯도 한 부처님의 얼굴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잔인했던 버마군의 침략마저도 용서될 것 같습니다.
다음으로 가볼 곳은 왓차이와타나람입니다. 앙코르와트를 연상시키는 듯한 외양을 가진 이 사원 역시 외양과는 다르게 내부는 거의 폐허가 돼 있었습니다. 버마군은 아유타야 왕조를 무너뜨리면서 사원과 탑을 모두 부수고 불상의 머리도 모두 잘라 버렸습니다. 잘린 채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는 불상들만이 아유타야의 과거를 말해 주고 있는 듯합니다.
마지막으로 왓야이차이몽콘으로 가볼까요? 다행히 왓야이차이몽콘에는 부서지지 않은 거대 체디(부처의 유물이나 왕의 유해를 모시는 곳)와 와불(누워 있는 불상)이 남아 있었습니다. 이 와불 주변으로는 아마도 거대하고 화려한 사원이 있었겠지요? 비록 사원은 부서져 없어졌지만 간절히 부처님에게 기도를 올리는 사람들을 따라 저도 기도하고 돌아왔습니다.
7가지 띠 유형과 띠 문양
가슴 저릿한 과거의 왕국 아유타야를 뒤로 한 채 우리가 향한 곳은 태국의 수도 방콕입니다. 방콕에는 화려한 불교문화를 느낄 수 있는 왕궁과 수많은 사원이 있기 때문이죠. 그곳에서 저와 함께 7가지 유형의 띠 문양을 찾아봅시다.
7가지 띠를 찾으려면 먼저 띠가 무엇인지 알아야겠죠? 띠란 일정한 조각이 좌·우로 반복되는 문양을 말합니다. 이때 반복되는 조각을 ‘기본 조각’이라 부릅니다. 그런데 이 기본 조각은 그 문양이 아무리 복잡하고 섬세하더라도 그 문양 안에 있는 대칭은 많아야 네 가지뿐입니다. 평행이동, 회전, 반사, 미끄럼반사지요.
또한 대칭을 포함하고 있는 기본 조각을 또 다시 결합해 좌·우 반복이 되도록 띠를 만들면 그 띠는 다시 7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아무리 복잡한 문양을 가진 띠도 대칭성으로 분류한 7가지 유형을 벗어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럼 지금부터 7가지 유형의 띠가 무엇이고, 어떤 대칭성을 갖고 있는지 예를 통해 살펴 보도록 합시다.
왕궁에서 보물찾기
태국의 왕궁은 라마 1세가 차크리 왕조를 세운 1782년 건립되었다고 합니다. 왕궁의 부지는 무려 21만 8000㎡에 이르며, 여러 정부 기관 및 사원들도 함께 자리 잡고 있습니다. 왕궁 안에 있는 건물 중에서는 에메랄드 사원이 가장 유명합니다. 에메랄드 사원 안에는 한 덩어리의 옥을 깎아 만들었다는 에메랄드 부다가 높은 대좌 위에 앉아 있습니다.
에메랄드 부다는 1434년 치앙라이에서 처음 발견되었습니다. 발견 당시에는 외관의 색깔이 회반죽색이어서 평범한 부처처럼 보였는데, 어느 날 코 부분이 벗겨지면서 천연의 옥색이 드러났습니다. 그런데 맨 처음 옥색의 몸체를 발견한 스님은 그 보석이 에메랄드인 줄 알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옥으로 만든 이 부처가 ‘에메랄드 부다’라고 부른 것이지요.
태국 사람들은 여러 불상 중에서도 이 에메랄드 부다를 가장 성스럽고 귀한 존재로 여깁니다. 그래서 그 누구도 감히 이 불상을 손으로 만질 수 없는데, 오직 왕만이 성스런 의식을 통해 1년에 3번 부처님의 옷을 갈아입혀 줄 수 있습니다. 에메랄드 사원의 위엄과 왕에 대한 존경을 나타내려는 듯 사원과 왕궁 주변 건물은 화려하기 그지없습니다.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건물의 외벽들은 가지각색 다양한 문양들로 가득 차 있는데, 바로 이곳에서 우리는 7가지 유형의 띠 문양을 찾을 수 있습니다.
➊ f1 : 평행이동만 있는 띠
평행이동의 성질만 가진 띠는 정말 많은 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옆에 보이는 왕궁의 장식에서도 세 단의 띠가 각각 평행이동에 의해서만 만들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곡선으로 된 띠 문양을 좌우로 곧게 펴서 생각합니다.
➋ fx : 평행이동과 x축 반사가 있는 띠
다음 띠는 에메랄드 사원의 기둥 장식입니다. 띠의 중앙선을 따라 양쪽의 문양이 반사($x$축 반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상하로 뻗은 띠 문양을 좌우로 눕혀 생각하기 때문에 $x$축 반사가 있는 것입니다.
➌ fy : 평행이동과 y축 반사가 있는 띠
왕궁 주변의 탑을 보면 장식이 매우 정교하고 아름답습니다. 이 아름다운 문양을 가만 들여다보면 층층의 띠가 모두 y축 반사의 성질을 갖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➍ f2 : 평행이동과 180° 회전이 있는 띠
아래 띠는 에메랄드 사원의 난간 장식입니다. 정말 아름답죠? 이 장식의 가운데 띠를 잘 보면 180° 회전의 성질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➎ fxy : 평행이동과 x축, y축 반사가 있는 띠
정말 화려한 아래 장식은 라마 5세가 세웠다는 차크리 마하 프라삿 입구의 난간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 장식에서 우리는 아주 중요한 두 개의 띠를 찾을 수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x$축, $y$축 반사가 있는 띠입니다.
➏ fg : 평행이동과 미끄럼반사가 있는 띠
평행이동과 미끄럼반사만 있는 띠는 사원에 있는 도자기 문양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도자기의 아랫부분 구름 문양을 좌우로 곧게 펴서 생각해보면 미끄럼반사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➐ fgy : 평행이동과 미끄럼반사, y축 반사가 있는 띠
x축, y축 반사가 있는 띠를 발견했던 차크리 마하 프라삿 입구의 난간장식에서 또 하나 찾아볼 수 있는 띠가 바로 미끄럼반사, y축 반사가 있는 띠입니다.
모두 다른 모양을 하고 있지만 수학적으로는 성질이 같다는 게 신기하지 않나요? 더 놀라운 건 이 7가지 띠를 왕궁이라는 한 장소에서 모두 찾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냥 보기에는 단순해 보여도 쉽지 않은 일이거든요.
불교 문화의 수학적 매력
왕궁에서 7가지 띠를 모두 찾았으니 조금 여유로운 마음으로 다른 사원들을 돌아볼까요? 왕궁의 남쪽으로는 태국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 중 하나인 왓포 사원이 있어요. 왓포는 길이 46m, 높이 15m에 달하는 거대한 와불로 유명해요. 한 장의 사진에 담기가 어려울 만큼 큰 이 불상은 1832년 라마 3세의 명으로 만들었습니다. 이 불상은 깨달음을 얻은 석가모니가 열반에 들기 직전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에요. 불상을 중심으로 다양한 패턴도 있어서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제 배를 타고 짜오프라야 강 건너편에 있는 왓아룬으로 이동해봅시다. 왓아룬은 새벽에 햇빛을 받으면 ‘프랑’이라 불리는 탑의 도자기 장식들이 형형색색 빛을 내며 강을 비춥니다. 그래서 ‘왓아룬’을 ‘새벽사원’이라고도 불러요. 태국의 10바트짜리 동전에서도 이 사원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사원에는 높이가 74m에 달하는 중앙탑이 서있고, 그 탑을 중심으로 사방에 약 30m 높이의 탑 4개가 있습니다. 중앙탑은 사방에 나 있는 계단을 이용해 올라가볼 수 있도록 되어 있는데, 계단을 오르려면 약간의 용기가 필요합니다. 탑을 오르는 3개의 계단 중에 두 번째 계단의 경사는 약 45°인데 반해 세 번째 계단의 경사는 약 62° 정도로 매우 가파르기 때문입니다. 평소에 운동을 열심히 안 한 사람들은 오르고 내리기가 어려울 수 있어요. 저도 다녀온 후 다리 근육이 뭉쳐 고생했네요~.
이외에도 방콕 시내에는 왓사켓, 왓랏차나다 같은 다른 사원도 많이 있어요. 왕궁이나 왓포, 왓아룬처럼 유명하진 않지만 나름의 독특한 매력이 있는 사원들이에요. 여유가 있다면 이런 사원들도 돌아다니면서 불교문화의 다양한 매력을 느껴보면 좋을 것 같아요.
태국 여행을 마무리 짓고 돌아오며 아쉬운 마음이 많이 들었어요. 불교문화가 이렇게 다양하고 화려한 줄 알았다면 7가지 문양 말고도 17가지 유형의 벽지 문양을 모두 찾아볼 걸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벽지 문양이란 일정한 조각이 상하 좌우로 반복되는 문양을 의미해요. 띠 문양이 1차원이라면 벽지 문양은 2차원이 되는 것이지요. 혹시 여러분이 태국을 여행하게 된다면 이 17가지 벽지 문양 찾기에 도전해 보세요. 방콕의 불교문화는 정말 다채로워서 17가지 벽지 문양을 모두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