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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수학나라로 간 피노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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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노키오는 꾀병을 부릴 수도,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마음을 숨길 수도 없다. 사소한 거짓말만 해도 딸꾹질이 나 모든 게 들통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거짓말이 나쁘다고 하면서도, 사실만 이야기하는 피노키오를 불편해 한다. 때론 ‘하얀 거짓말’도 필요한 게 세상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항상 진리를 쫓는 수학이라면 다르지 않을까? 어떤 좋은 거짓말도 수학의 세상에서 그저 고쳐야 할 ‘거짓’에 불과하다. 거짓말을 못하는 피노키오와 사실만을 원하는 수학. 둘은 정말 천생연분일까?


드라마 <;피노키오>;에는 피노키오 증후군★에 걸린 주인공이 등장한다. 드라마 속 설정에 따르면 피노키오 증후군은 거짓말을 하면 자율신경계의 이상으로 딸꾹질을 하는 선천적인 질병으로, 치료가 불가능하다. 전화나 문자로 거짓말을 해도 증상이 나타나고, 진실로 바로 잡아야만 딸꾹질이 멈춘다. 그래서 피노키오 증후군 환자들은 되도록 사람을 만나는 걸 피하고 말을 아끼며 살아간다.

드라마 속 주인공 최인하(박신혜 분)는 다르다. 딸꾹질이 나서 티가 나도 하고 싶은 말을 하며 당당하게 산다. 그런 인하에겐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 바로 기자다. 눈치보지 않고 당당하게 사실만을 말해야 하는 기자라면 누구보다 잘 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어렵게 시작한 기자 생활은 생각과 많이 달랐다.

다들 밋밋한 팩트(사실)에 임팩트(충격)라는 양념을 쳐야 좋은 뉴스라고 말한다. 기자는 사실만을 말한다고 믿었던 인하는 이런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게다가 사랑하는 최달포(이종석 분)의 가족이 자신의 친엄마가 만든 ‘팩트는 없이 임팩트만 있는’ 뉴스 때문에 비극을 맞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인하의 괴로움은 커져만 간다.

피노키오 증후군★ 드라마 속 가상의 질병과는 상관없지만 ‘피노키오 증후군’은 실제 있는 증후군이다. 상대방이 자신을 비웃고 조롱한다고 받아들이면서 온 몸이 굳는 증상을 ‘피노키오 증후군’이라 부른다.

수학의 세계에서도 멈추지 않는 딸꾹질

드라마 속에서 인하는 피노키오인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기자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 수학자만큼 피노키오에게 어울리는 일은 없다. 수학만큼 참과 거짓이 분명한 곳도 없기 때문이다. 빛보다 빠른 물질이 있는 외계 행성을 상상해 보자. 이곳에서 상대성이론은 거짓이 된다. 상대성이론은 빛보다 빠른 물질은 없다는 가정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수학은 다르다. 빛보다 빠른 물질이 있어도 1+1은 2다.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세상이라도 구구단의 결과는 그대로다. 수학은 항상 참인 ‘공리’와 ‘정리’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다. 공리와 정리는 지구가 사라지고, 인류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도 변하지 않는 진리다.

탄탄한 수학의 세계에서 피노키오는 딸꾹질을 할 일이 없다. 굳이 거짓말을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딸꾹’ 아니, 근데 ‘딸꾹’ 왜 자꾸 딸꾹질이 나오는 걸까? 우리가 무슨 거짓말이라도 한 걸까? 그렇다. ‘수학의 세계에선 거짓말을 할 일이 없다’는 말은 절반만 참이다.

드라마에서 주인공 달포는 ‘시험지를 훔쳤다’고 의심받는다. 담임 선생님은 달포에게 억울하다면 훔치지 않았다는 걸 스스로 증명하라고 다그친다. 그러자 달포는 이제부터 선생님에 대한 헛소문을 퍼뜨리겠다며, 선생님도 소문이 사실이 아니란 걸 직접 증명해 보시라고 소리친다. 실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긴다면 얼마나 억울할까? 아닌 걸 아니라고 증명해 보이라니.

그런데 ‘사실이 아니다’라는 걸 증명하기가 ‘사실이 맞다’는 걸 보이는 것보단 쉬울 때가 많다. ‘세상의 모든 백조는 흰색이다’라는 명제를 떠올려 보자. 이 명제가 참인걸 보이기 위해선, 세계 방방곡곡을 다니며 모든 백조가 흰색인 걸 확인해야 한다.

반면 이 문장이 거짓임을 보이는 방법은 훨씬 간단하다. 흰색이 아닌 백조를 단 한 마리만 찾으면 된다. 실제로 호주에는 검은색 백조가 있다.

거짓말이 거짓말인 걸 보여라!

이처럼 어떤 명제가 참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예를 반례라 한다. 수학에서 반례는 매우 중요하다. 단 하나의 반례만 찾아도 명제가 거짓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례를 이용하면 어려운 증명도 쉽게 할 수 있다. 만약 우리가 거짓말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증명하면, 그건 곧 참인 명제를 찾았다는 이야기와 같다. 갑자기 머리가 아파온다고? 다음 같은 상황을 생각해 보자.
 

사실 항아리에는 먹물이 가득 담겨 있었다. 누구든 이 항아리에 손을 집어 넣으면 검게 변할 수 밖에 없다. ‘진실한 사람은 손이 물에 닿아도 깨끗할 것’이라는 사또의 말은 거짓말인 것이다. 그럼 사또는 어떻게 범인을 잡을 수 있었을까?

사또는 죄가 밝혀질까 두려운 도둑의 심리를 이용했다. 불안한 도둑은 ‘무조건 손이 깨끗해야 한다’는 생각만 할 거란 걸 알았던 것이다. 실제로 도둑은 물에 닿지 않으려고 손을 항아리에 넣는 시늉만 했다. 떳떳한 마을 사람들은 항아리 속에 손을 깊숙이 집어 넣었다. 그 결과 도둑만 손이 깨끗한 모순이 생겼고, 사또는 쉽게 범인을 잡을 수 있었다. 이렇게 모순을 이용해 거짓말이 틀렸고, 원래 명제가 참임을 보여 주는 증명법을 ‘귀류법’이라 한다. 귀류법은 고대부터 수학에서 매우 유용한 도구다.

사실 수학자 중에는 귀류법을 꺼리는 사람이 많다. 귀류법을 이용한 증명이 아름답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수학자들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증명법은 연역법이다. 연역법이란 참인 명제를 전제로 새로운 명제가 참임을 보이는 방법이다. 모든 과정에서 거짓말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완벽함을 좋아하는 수학자라면 마음을 뺏길 수 밖에 없다. 거짓말과 모순을 이용해 참을 보이는 귀류법은 수학자의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다. 완벽하지 않은 재료(거짓말과 모순)로 완벽한 결론을 얻는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귀류법은 고대에서 현재까지 수학에서 없어서는 안 될 강력한 무기다. ‘소수의 개수는 무한개다’ 처럼 참임을 직접 증명하기 어려운 명제를 귀류법으로 다루면 아주 편하다. ‘소수의 개수는 유한개다’에 대한 모순만 찾으면 ‘무한개’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귀류법이 없었다면 무한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 개념을 수학적으로 이해하는 데 훨씬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완벽해 보이는 수학에도 빈 틈은 있다

토론 면접에서 달포는 피노키오인 증인의 말을 믿고 보도한 기자에겐 잘못이 없다는 인하에게,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무시했다고 따진다. 아무리 피노키오의 말이라도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진정한 기자라는 이야기다. 수학자도 마찬가지다. 수학자라면 아무리 당연해 보이는 문제라도 거짓말이 없는지 항상 살펴봐야 한다.

커다란 댐에 작은 구멍 하나만 생겨도, 댐 전체가 무너질 수 있다. 수학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튼튼하게 지은 수학이라도 작은 구멍(모순과 역설) 하나만 있으면 순식간에 거짓말이 돼 버린다. 그래서 수학자들은 항상 모순과 역설을 찾아 헤맨다. 일단 작은 구멍을 찾으면, 수학자들은 어떻게든 그 구멍을 메우려고 노력한다. 그 중에선 오랜 노력 끝에 튼튼하게 막은 구멍도 있고, 아직도 물이 새고 있는 구멍도 있다. 아마 수학이 존재하는 한, 물이 새는 구멍을 찾아 다니는 수학자의 일은 끝나지 않을 거다.

드라마에서 인하는 피노키오인 자신도 항상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아간다. 이 세상에는 쉽게 진실을 가리기 힘든 일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수학에서도 마찬가지다. 모든 게 완벽해 보이는 수학에도 아직 참인지 거짓인지 모르는 문제가 아주 많다. 이를 풀기 위해선 가끔 거짓말도 이용할 줄 아는 용기와 지혜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겸손함이 없다면, 수학은 언제라도 하루 아침에 무너질 수 있다.
 

2015년 01월 수학동아 정보

  • 이한기 기자
  • 도움

    이광연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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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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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토파크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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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tock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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