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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입소문이 만들어낸 맛, 허니버터칩

핫이슈


 
과자 하나 먹자고 온 나라가 난리다. 대형 마트 앞에는 이른 아침부터 과자 한 봉지를 사러온 사람들로 가득하다. 편의점에는 허니버터칩이 없으니 제발 그만 물어봐 달라는 호소문이 붙어 있다. 도대체 어떤 맛이기에 이럴까 싶어 방방곡곡 과자를 찾아 다니지만, 부스러기는커녕 포장지조차 볼 수 없다. 오죽하면 유니콘 같은 상상 속 존재가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도대체 과자 하나에 이렇게 떠들썩해진 이유가 뭘까?

온 몸을 얼어 붙게 하는 바람이 불던 지난 밤, 기자는 한 과자를 만나기 위해 집 주변 슈퍼와 편의점을 샅샅이 돌아다녔다. 문을 열면서 “허니버터칩 있나요?”라는 문장만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돌아오는 답은 어디든 똑같았다.
“없습니다.”
추위에 지친 기자는 단골 편의점에서 캔커피로 언 몸을 녹였다. 과연 실제 있는 과자인지 의심마저 들기 시작했다.
이런 모습이 측은했는지 주인 아저씨가 말을 건네왔다.
“그거 못 구해요. 들어오면 어떻게들 알았는지 순식간에 다 사가요.”
다행이었다. 그래도 실제 존재한다는 걸 확인했으니. 갑자기 그 맛이 너무 궁금했다.
“혹시 맛은 어떤가요?”
“나도 구경밖에 못 했어요”
편의점 주인도 바라볼 수 밖에 없는 과자라니. 궁금증은 더 커져만 갔다.

900만 개의 비밀은 입소문!

허니버터칩이 처음 세상에 나온 건 지난 8월 1일이다. TV는 물론 흔한 인터넷 광고 하나 없었기 때문에 처음엔 과자의 이름을 아는 사람조차 드물었다. 그런데 불과 출시 석 달만인 지난 11월초 매출액이 50억 원을 넘어섰다. 보통 한 달에 10억 원 정도만 팔려도 인기 과자로 인정받는다. 허니버터칩은 말 그대로 ‘대박’을 기록한 것이다.
 

매출액은 나온 지 100일째인 11월 17일 100억 원을 돌파했고, 11월 말엔 136억 원을 기록했다. (왼쪽 그래프 참고) 허니버터칩 한 봉지(60g)가격이 1500원이니, 900만 봉지 넘게 팔린 것이다. 현재 한 달에 400만 봉지(60억 원)정도 생산되고 있는 허니버터칩은 나오기 무섭게 모두 팔리고 있다. ‘허니버터칩 신드롬’이라고 불러도 아깝지 않다.

신드롬의 비밀은 입소문에 있다. 입에서 입으로 ‘맛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얼마나 맛있기에 이럴까?’하는 궁금증이 번졌고, 어떤 비싼 광고보다 강력한 홍보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허니버터칩’이란 단어가 온라인에서 얼마나 쓰였는지 보면 그 파급력을 알 수 있다.

허니버터칩이 처음 세상에 나온 8월 1일부터 기사 작성일(12월 15일)까지 트위터, 페이스북, 블로그, 온라인 뉴스 같은 SNS를 통해 허니버터칩 관련 단어는 모두 14만 2168번 언급됐다. 같은 기간 ‘유느님’ 유재석씨에 관한 언급량은 1만 8587건에 불과하다. 허니버터칩의 인기가 ‘유느님’을 넘어섰다는 걸 알 수 있다.

허니버터칩처럼 입소문을 이용해 특정 상품을 널리 알리는 마케팅 기법을 ‘바이럴 마케팅★’이라 한다. 제품에 대한 소문이 마치 컴퓨터 바이러스처럼 퍼진다는 뜻에서다. TV나 신문 같은 매스미디어보다 SNS나 웹 같은 마이크로미디어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바이럴 마케팅에 대한 관심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바이럴(viral)★ ‘바이러스에 의한’이란 뚯이다.

운명의 날, 11월 19일

허니버터칩이 언급된 횟수를 시간에 따라 살펴보면,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알 수 있다. 출시일 이후 서서히 증가하던 언급량이 어느 순간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이다. (아래 그래프 참고) 10월 초까지 허니버터칩에 대한 언급량은 하루 100건에도 미치지 못했다. ‘열풍’으로 불리기엔 턱없이 모자란 수치였다. 그러던 10월 6일 처음 세 자리수의 언급량을 기록한 후 꾸준히 늘어나 11월 초에는 하루 평균 1000번 넘게 허니버터칩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 나왔다.

폭발적인 증가는 11월 19일에 있었다. 언급량이 5320건으로 전날(1522건)의 3배를 넘었다. 이 기록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얼마 전 발생한 ‘땅콩 리턴 사건’를 보면 알 수 있다. 사건이 처음 보도된 12월 8일 ‘땅콩’ ,‘마카다미아’, ‘대한항공’ 같이 사건과 관련된 단어의 언급량은 3000건을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다음 날에도 이 사건과 관련된 언급량은 4000건을 넘지 못했다.
 

11월 29일에는 언급량이 무려 7087건을 기록했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에 관한 1일 평균 언급량과 비슷한 수준이다. 12월 들어서 다소 줄어들긴 했지만, 아직까지도 하루에 3000번 가까이 언급되고 있다. 한 번 올라간 인기는 쉽게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11월 19일 이후로 허니버터칩은 하나의 ‘신드롬’이 됐다. 그 전까진 그저 인기 끌던 과자였지만, 이젠 하나의 사회현상으로 완전히 다른 상태가 됐다. 이렇게 하나의 상태가 갑자기 다른 상태로 변하는 모습은 일상 속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바로 끓는 물이다. 물은 99.999…℃까진 부글부글 끓기만 한다. 그러다 100℃까지 되면 완전히 다른 상태인 ‘수증기’가 된다. 100℃를 기준으로 물은 액체에서 기체로 상태가 완전히 달라진다. 0℃에서도 마찬가지다. 0.00001℃까진 액체였던 물은 0℃가 되는 순간 얼음(고체)으로 변한다.
 

한 순간 모든 것이 달라진다

온도나 압력에 따라 물질의 상태가 완전히 달라지는 현상을 ‘상전이’라 하고 0℃나 100℃처럼 상전이가 일어나는 지점은 임계점이라 한다. 임계점에서는 물질의 상태가 뒤섞여 있다. 예를 들어 100℃에서 물은 액체 상태와 수증기가 구별되지 않는 상태로 존재한다. 압력이나 자기장에 따라 갑자기 자석이 되거나, 온도가 낮아지면서 저항이 0이 되는 현상도 대표적인 상전이 현상이다.

어느 순간 자동차들이 꼼짝 못하고 서 버리는 ‘교통정체’도 상전이 현상으로 볼 수 있다. 도로 위의 자동차가 어느 정도 늘어날 때까진 자동차 속도에 큰 영향이 없다. 그러다 어느 순간 갑자기 속도가 느려진다. 쭉 내려가던 속도는 마침내 멈추기에 다다른다.

신기한 건 정체 현상 이후에 자동차 수가 줄어도, 속도는 이전처럼 빨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건 물이 수증기가 되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일단 한 번 기체가 된 후에는 다시 액체로 돌아오기 힘들다. 마찬가지로 한 번 생긴 정체현상은 자동차가 줄어들어도 쉽게 풀리지 않는다. 한번 바뀐 상태를 이전으로 다시 되돌리기 어려운 것도 상전이의 특징 중 하나다.
 

차가 도로를 가득 채우듯 사람들이 순식간에 한 군데로 쏠리는 유행이나 시위 같은 사회 현상도 상전이 현상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어떤 이유나 명분에 따라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몇 명이 모였는지가 대규모 사회현상을 일으키기도 한다는 말이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속담을 떠올려 보자. 별로 관심 없던 물건이나 연예인도 친구들이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괜히 한번 더 쳐다보게 된다. 시위도 마찬가지다. 혼자서는 앞장 설 용기가 부족하지만, 몇 명만 모이면 우르르 몰려 나가게 된다. 최근엔 만 명 정도의 시위가 일어나기 위해선, 서로 다른 집단을 연결해 줄 4명만 있으면 된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인기 밀도’에 갇혀 버린 허니버터칩 열풍

허니버터칩 열풍도 상전이 현상을 닮았다. 우선 ‘임계점’을 찾을 수 있다. 물이 100℃에서 끓듯이 허니버터칩도 11월 19일을 기점으로 하나의 사회 현상으로 발전했다. 출시 후 100여 일 동안 허니버터칩을 다룬 뉴스는 12건에 불과했다. 그러다 19일 ‘대폭발’이 있은 후론 많게는 100건까지 매일 매일 평균 20건에 가까운 뉴스가 나오고 있다. SNS상의 소문을 넘어서 언론의 관심을 받는 자리를 두 달 가까이 지키고 있는 것이다. 인기(상태)가 치솟은 후, 꾸준히 그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모습도 상전이 현상과 닮았다.



상전이 현상은 밀도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물 분자 사이의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에 따라 물은 얼음이 되기도 하고 수증기가 된다. 허니버터칩 열풍도 밀도로 해석할 수 있다. 다음과 같이 허니버터칩의 ‘인기 밀도’를 정의해보자.

11월 한 달 동안 허니버터칩은 약 80억 원 어치가 팔렸다. 한 달 동안 최대로 만들 수 있는 양(약 60억 원)을 넘어서는 수치다. 허니버터칩을 사고 싶어하는 사람이 팔리고 있는 개수보다 커지면서 ‘인기 밀도’는 점점 높아졌다. 도로 위의 ‘자동차 밀도’가 높아지면서, 어느 순간 멈춰버린 자동차처럼 입소문이 빠져나가지 못하고 굳어 버렸다. ‘인기 밀도’는 점점 높아지는 반면, ‘제발 한 번만 먹어보자’는 사람은 계속 쌓이기만 하면서 ‘소문 정체’가 일어난 것이다.

한 번 높아진 밀도는 쉽게 낮아지지 않는다. 명절이나 연휴기간 한 번 시작된 교통정체가 쉽게 풀리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인기 밀도를 낮추는 방법은 간단하다. 허니버터칩이 더 많이 시장에 나오거나 사람들의 관심이 떨어지면 된다. 그런데 지금은 공급량은 그대로인데 사고 싶어 하는 사람은 줄지 않아서 ‘인기밀도’는 계속 올라가고 있다. 앞으로도 당분간 허니버터칩을 먹어 보기 힘들 거라 예상하는 이유다.

‘꼬꼬면 사건’은 이런 분석을 뒷받침한다. 꼬꼬면은 몇 년 전 한 TV 프로그램을 통해 알려진 뒤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지금의 허니버터칩처럼 ‘꼬꼬면 구하기 전쟁’이 벌어졌었다. 인기에 놀란 회사는 서둘러 시설을 갖추고 라면 생산량을 몇 배 늘렸다. 하지만 판단 착오였다. 생산량이 늘어나면서 ‘꼬꼬면’의 인기는 오히려 금세 시들해져 버렸다. ‘인기밀도’가 급격하게 떨어지면서, 사람들이 더 이상 꼬꼬면을 궁금해 하지 않기 시작한 탓이다.
 

불안감이 부추긴 허니버터칩 열풍

‘허니버터칩 열풍을 상전이 현상’이라고 말하기엔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아직은 통계물리학적으로 의미있는 변수가 무엇인지 콕 집어 말할 수 없다. 정확한 변수를 알게 된다면, 허니버터칩 열풍을 상전이현상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기사를 마무리 하던 중, 드디어 허니버터칩을 구하게 됐다. 신주단지 모시듯 조심스레 한 조각 맛을 봤다. 기대가 너무 컸을까? 솔직히 아주 맛있지는 않았다. ‘나도 드디어 먹었구나’하는 뿌듯함이 더 컸다. 허니버터칩 열풍의 비밀도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다들 맛있다는데 나만 못 먹었어!’라는 불안감이 과자 하나에 저마다 매달리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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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1월 수학동아 정보

  • 이한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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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범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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