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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학, 종이배, 종이비행기…. 종이를 접고 펴면서 원하는 모양을 만드는 단순한 이 기술은 ‘오리가미’로 더 유명하다. 오리가미는 20세기 ‘오리가미 언어’가 확립되면서 놀라운 속도로 발전해 왔다. 수학자와 과학자들은 때때로 이러한 오리가미 언어와 기술을 이용해 난제를 해결하기도 한다. 점점 진화하면서 세상 곳곳에서 역사를 다시 쓰고 있는 오리가미의 활약상을 알아 보자.
 

예술에서 과학이 되다

종이접기는 약 1900년 전 중국에서 종이가 탄생하던 그 시대에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쉽게 휘고 구겨지는 종이의 성질이 자연스럽게 인류의 ‘접기 본능’을 건드렸으리라. 종이접기는 6세기경 종이가 일본으로 전파되면서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때 ‘접다’라는 뜻의 일본어 ‘おり(Ori)’와, ‘종이’라는 뜻의 일본어 ‘かみ(Kami)’가 합쳐져, ‘오리가미’라는 단어가 생겼다. 여기서 말하는 오리가미는 종이학처럼, 가위나 풀을 사용하지 않고 종이 한 장으로 접어서 다양한 작품을 만드는 예술 활동을 말한다.

최초의 기록은 1680년경의 일본 문헌에서 찾을 수 있다. 그 뒤로 꾸준히 발전한 오리가미는 20세기 들어 본격적인 체계를 갖췄다. 이때 오리가미의 체계를 바로 세운 사람은 종이접기의 장인인 일본의 공예가 요시자와 아키라다. 요시자와는 과거에 없었던 수만 가지의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낸 것은 물론, 점선, 실선, 화살표로 이루어진 ‘오리가미 언어’를 정의했다. 요시자와가 덕분에 전 세계 사람들이 ‘종이학’을 같은 모양으로 접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가지 더 가장 놀라운 변화는 오리가미가 체계를 갖추면서 오리가미 기술로 자연을 흉내 낼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잘 포개져 있는 꽃봉오리나 번데기 속에 구겨져 있는 곤충의 날개의 모습에서 오리가미와 닮은점을 찾아냈기 때문이다. 꽃봉오리나 곤충의 날개는 정교하게 접어 만든 오리가미와 같다. 이런 아이디어는 과학자들의 연구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1차원 DNA를 3차원 로봇으로

오리가미는 2차원 재료(종이)를 접어 3차원 결과물을 만드는 과정이다. 다시 말해 재료를 접는 과정을 통해 차원이 늘어난다. 과학자들은 오리가미의 이런 성질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DNA를 재료로 나노 구조물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를 ‘DNA 오리가미’라고 이름 붙였다. DNA 오리가미는 2006년 학술지 ‘네이처’에 처음 논문이 실렸다. 논문의 저자인 미국의 폴 로데문트 캘리포니아공대 컴퓨터과학과 교수는 DNA로 만든 사각형, 별 모양, 웃는 얼굴 등 다양한 나노 구조물의 원자 현미경 사진을 선보였다.

로데문트 교수는 우리에게 익숙한 이중나선 구조의 DNA가 아닌 단일가닥의 DNA를 사용했다. 쉽게 말해 실(1차원)을 뜨개질해 원하는 대로 목도리(2차원 구조물)나 카디건(3차원 구조물)으로 만드는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이때 사용한 DNA 가닥의 지름은 수 nm(나노미터, 1nm=10억 분의 1m)인데, 로데문트 교수는 7000여 개의 염기로 구성된 긴 DNA단일가닥을 주 골격으로 이용했다.

1차원인 DNA단일가닥으로 2차원의 구조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특별한 방법을 써야 했다. DNA단일가닥은 아데닌(A), 구아닌(G), 티민(T), 시토닌(C)이라는 네 가지 염기가 일렬로 붙어 있는 모습이다. 이들 염기는 각각 다른 염기와 짝을 이뤄 결합하는 성질이 있다. 아데닌은 티민과 구아닌은 시토신과 짝을 이룬다.
 

로데문트 교수는 이 성질을 이용해 주 골격을 이루는 긴 DNA단일가닥을 연결해 주는 짧은 가닥을 만들어 넣었다. 짧은 가닥은 따로 떨어져 있는 종이를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한다는 뜻으로 ‘스테이플★ 가닥’이라고 불렀다. 1차원의 가닥을 2차원으로 만들어 주는 면에서 오리가미와 성질이 비슷하다.

이후 DNA 오리가미 기술은 발전을 거듭해 2차원 구조물은 물론 3차원 구조물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지난 2009년 미국 하버드대 의학과 조지 처치 교수팀은 이같은 원리로 나노 박스를 만든 뒤 이 안에 나노 짐을 싣는 데 성공했다. 연구자들은 짐이 달라붙을 수 있게 끝이 튀어나온 스테이플 가닥 12개가 박스 내부에 놓이게 DNA 오리가미를 설계했다. 그리고 여기에 나노 입자를 붙이는 데 성공했다. 연구자들은 이를 ‘나노로봇’이라고 부르고, 앞으로 세포의 행동을 조절하는 데 쓰일 것이라 전망했다. 생명체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는 DNA가 로봇을 만드는 부품이 된 셈이다.

스테이플★ 흔히 호치키스라고 부르는 도구의 정식 이름이 스테이플러고, 그 안에 넣는 금속 심이 스테이플이다.



스스로 접고 펴는 오리가미 로봇 등장!
 

책상 위에 종이 한 장이 펼쳐져 있다. 잠시 후 꿈틀하더니, 네 다리를 만들고 몸통을 일으켜 세운다. 몸통을 세우는가 싶더니 어느새 다리까지 꼿꼿이 세우고 앞으로 움직인다. 3단 변신을 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4분 30초. 어떻게 가능한 걸까.

이것은 지난 8월 학술지 ‘사이언스’에 실린 ‘오리가미 로봇’이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와 하버드대 공동 연구팀이 개발한 것으로, 길이 10cm, 무게 78g, 초속 5.4cm로 움직이는 초소형 로봇이다.

연구팀은 2010년 6월에 스스로 배와 비행기 모양으로 접히는 오리가미 로봇을 만든 적이 있다. 이번에는 스스로 걸어가는 변신 로봇 제작에 성공한 것이다. 이번 오리가미 로봇의 가장 큰 특징은 평면 상태로 누워 있다가 전기가 통하면 벌떡 일어나 구부러지면서 스스로 접힌다는 점이다.

오리가미 로봇은 잘 휘어지는 플라스틱 기판에 종이를 붙여 만든다. 종이 표면에는 전자회로가 붙어 있다. 그리고 종이 표면에 접힘선을 미리 만들어 놓는다. 접힘선을 미리 만들어 놓으면 큰 힘을 가하지 않아도 쉽게 접을 수 있다. 또 접히는 부분의 위와 아래에는 형상기억 소재를 붙인다. 형상기억 소재가 접힌 자국을 기억하고 있다가 회로에 전류가 흐르면 원래 상태로 돌아가는 성질을 이용한 것이다.

이 방법으로 로봇은 스스로 몸을 접어 움직일 수 있다. 종이는 안쪽은 물론, 바깥쪽으로도 접을 수 있어 원하는대로 설계할 수 있다. 이번에 연구팀이 개발한 로봇은 자신의 몸을 스스로 조립하고 움직일 뿐만 아니라, 여러 번 접었다가 원래 형태로 돌아오는 과정을 반복할 수 있다.

연구 책임자인 로버트 우드 하버드대 엔지니어링 및 응용과학과 교수는 하버드대 학보사와의 인터뷰에서 “오리가미 방식을 이용하면 새로운 모양의 로봇을 쉽게 만들 수 있다”며, “오리가미 로봇의 가장 큰 장점은 모든 제작 과정을 자동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기존 로봇 제작 과정과 비교해 시간과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오리가미, 첨단 과학으로 계속 변신 중!

스스로 접히는 오리가미 로봇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점은 무엇일까? 대부분 ‘전개도’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전개도는 컴퓨터가 알아서 그려준다. 오리가미 전개도를 그리는 소프트웨어가 이미 개발돼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원하는 로봇의 겉모습만 고르면 소프트웨어가 알아서 전개도를 그려 준다. 이렇게 완성된 전개도를 3D 프린터에 입력하고 재료를 결정하면 변신하기 전 로봇이 쉽게 완성된다.

오리가미 로봇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점은 기능을 유지한 채로 부피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이를 로봇 연구에 적극 활용하기 위해, 최근에는 국내에서도 오리가미 로봇 연구를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조규진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는 최근 자동차 바퀴를 오리가미 방식으로 접어 만든 일명 ‘가변형 바퀴 로봇’을 발표했다. 바퀴 로봇은 도로를 달리다 계단이나 장애물을 만나면 스스로 바퀴를 부풀려 문제없이 통과하고, 좁은 틈에선 바퀴의 크기를 줄여 지나간다. 조 교수는 바퀴가 굴러가는 동안에도 바퀴의 크기를 조절할 수 있는 특별한 방법을 개발했다. 모터를 이용하면 환경에 따라 바퀴의 크기를 조절할 수 있다. 이 바퀴의 평소 지름은 12cm인데, 환경에 따라 5.5cm까지도 축소 가능해 앞으로 재난 복구나 탐사 활동에 쓸 수 있다.

우주공간이나 심해, 또는 방사능 오염 지역과 같이 사람이 직접 접근하기 힘든 장소에서도 기계의 모양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미래가 머지않았다.



 
고이 접어 나빌레라!

코료 미우라 일본 도쿄대 교수는 1970년에 마루와 골이 번갈아 나타나도록 가로 세로로 주름을 접어 크기를 줄이는 ‘미우라 접기’를 고안했다. 천체물리학자였던 미우라 교수는 거대한 태양전지판을 우주로 안전하게 보내기 위한 기술을 연구 중이었다. 그는 접기 패턴을 연구하다가 아주 쉽게 여닫을 수 있는 구조이면서, 부피를 최소로 줄일 수 있는 접기 방법을 생각해 냈다.
 

미우라 교수는 실제로 1995년 거대한 태양전지판을 접어서 우주로 보내는 데 성공한다. 그로부터 몇 년 뒤인 2001년 미국 로렌스리버모어 국립연구소는 우주에서 태양계 바깥 행성까지 관찰할 수 있는 망원경을 계획했다. 하지만 이 망원경의 크기는 지름만 100m. 축구장만한 크기의 망원경이었다. 이는 당시 미국 항공우주국(NASA) 기술로 우주에 쏘아 올릴 수 있는 한계치의 10배나 됐다. 과학자들은 오리가미 전문가인 로버트 랭 박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랭 박사는 망원경을 72개의 조각으로 만든 뒤 접어서 로켓에 싣고, 우주에서 다시 원래 모습대로 펼치면 된다는 해결책을 제시했다. 현재 연구팀은 랭 박사의 도움으로 지름 5m짜리 망원경을 시작으로, 거대 망원경을 우주로 운반하는 데 첫 발을 내딛은 상태다.

2010년에는 태양빛을 동력으로 영원히 날 수 있는 우주범선을 띄우는 데 이 기술이 쓰였다. 일본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는 대각선 길이가 20m이며, 두께가 0.0075mm인 거대한 마름모 모양의 태양돛을 접은 채로 우주까지 운반했다. 이 돛을 달고 우주로 올라간 이카로스는 우주에서 원심력으로 돛을 펼쳤다.
 

최근에는 NASA의 산하기관인 제트추진연구소(JPL)와 미국 브리검영대 공동 연구팀이 지름 25m의 태양전지를 10분의 1 수준인 지름 2.7m로 접을 수 있는 기술을 연구 중이다. 현재는 1/20 크기의 모형을 만들어 지름 1.25m 크기의 태양전지로 모의 실험을 하고 있다.

JPL의 브라이언 트리스 연구원은 기자간담회에서 “기술개발에 성공한다면 현재 태양전지의 전력 생산 능력을 17배 정도(약 250kw) 끌어올릴 수 있다”며, “고교 시절 오리가미의 매력에 흠뻑 빠져 있던 경험이 태양전지 연구를 가능케 했다”고 이야기했다.
 

 

생명도 구하는 오리가미

오리가미는 공학 분야뿐만 아니라 의학에서도 활용되고 있다. 동맥이나 정맥 같은 혈관에 콜레스테롤이 쌓이거나 찌꺼기가 쌓이면, 혈관이 좁아지거나 막혀 건강을 위협한다. 이때 원기둥 모양으로 짠 금속 그물(스텐트)을 끼우는 수술을 하면, 좁아진 혈관을 넓혀 피가 원활하게 흐르게 도와준다.

하지만 늘 금속 그물을 수술이 필요한 부위까지 옮기는 게 문제였다. 원기둥 모양의 금속 그물을 혈관을 넓힐 만큼 크게 만들면 혈관 안에서 움직이기 어렵고, 너무 작게 만들면 혈관을 넓히는 기능을 못 하기 때문이다. 결국 전문가들은 금속 그물을 작게 접어 혈관을 넓혀야 할 부위까지 옮긴 다음, 다시 원하는 크기로 키우는 방법을 생각해 냈다. 미우라 접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다. 금속 그물을 여러 개의 사각형이 모인 형태로 구성한 뒤, 틀 전체를 찌그리면 크기가 줄어든다.

이렇듯 오리가미와 수학, 과학, 공학의 만남은 운명일지도 모른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현재 오리가미 기술은 분야의 경계 없이 각각의 대상을 최소 부피로 줄여 최대 효과를 낼 수 있는 모든 곳에서 사용되고 있다. 단순한 교육용 재료나 장난감이 아니라 한계를 뛰어넘는 기술처럼 자리매김하고 있다. 종이 한 장으로 입체 조형물을 만들어 내는 신비한 기술,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진화할지 기대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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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수학동아 정보

  • 염지현 기자
  • 도움

    조규진 교수
  • 도움

    김도년 교수
  • 사진

    Robert J. L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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