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게임을 하다 보면 게임 안에서만 쓸 수 있는 일종의 전자 화폐인 게임머니를 얻게 된다. 이 게임머니를 사용하면 게임 안에서 다양한 아이템을 살 수 있다. 그리고 종종 게임을 하다 보면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게임머니를 실제 생활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최근, 다양한 온라인 사이트와 오프라인 매장에서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비트코인’이라는 전자 화폐가 큰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비트코인은 수학 문제를 풀어야 얻을 수 있다는데…. 도대체 어떤 돈일까?
화폐 진화의 꼭짓점에 비트코인이 있다!
약 1만 년 전 고대인들이 물물교환을 위해 사용한 곡식이나 가축은 인류 역사에 처음으로 등장한 화폐였다. 첫 화폐가 등장한 이후 지금까지 화폐는 금과 은 같은 금속을 거쳐 종이에 가치를 적어 사용하는 형태로 진화해 왔다. 그리고 최근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비트코인이라는 전자 화폐까지 등장했다.
1만 년간 이루어진 화폐의 3단 변신!
“투드할리야가 쿠룬타에게 보리 30세겔을 빚졌다.”
이라크지역에서 발견된 5000년 전 메소포타미아 시대 진흙판에는 위와 같이 사람들 사이의 거래 내용이 기록돼 있다. 이처럼 인류는 아주 오래 전부터 경제 활동을 했는데, 초창기에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다른 것을 내주는 물물교환 형태로 거래가 이루어졌다. 이때 물물교환 수단으로 주로 사용했던 것은 보리를 비롯한 곡식과 양, 소 등의 가축과 소금이었다.
메소포타미아인들은 정확한 계산을 위해 보리를 기준으로 하는 ‘세겔’이라는 무게 단위까지 만들어 사용했다. 1세겔은 보리 180알의 무게로, 약 11그램 정도다. 당시 세겔은 무게와 화폐 단위를 동시에 나타내는 기준으로 사용되었는데, 오늘날에는 영국의 파운드화가 그 전통을 이어받아 무게와 화폐 단위를 동시에 나타내고 있다.
이후 암석으로부터 금속을 만들어내는 기술이 발달하면서 금과 은, 구리, 청동 같은 금속이 점차 곡식과 동물을 대신하는 화폐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곡식과 동물은 상하거나 죽을 수 있지만, 금속은 변질될 염려가 없고 휴대하기 간편하다는 장점 때문이다. 메소포타미아 지역뿐 아니라 중국과 인도 등 다양한 문명권에서 널리 쓰이기 시작한 금속 화폐는 자연스럽게 지금과 같은 작은 동전 형태로 발전해 갔다.
그렇다면 종이 화폐는 언제 등장한 걸까? 종이 화폐의 등장은 약 1000년 전인 11세기 중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미 7~10세기 당나라 때부터 종이에 거래 내용을 기록하던 것이 지폐의 발명으로 이어진 것이다. 상인들은 무겁고 부피가 큰 금속 화폐 대신 편리한 종이 화폐의 등장을 환영했고, 지폐는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갔다.
이처럼 새로운 화폐의 등장은 이전 화폐가 가진 불편함과 신기술의 등장에 큰 영향을 받아 왔다. 지난 1000년 동안 널리 쓰이던 종이 화폐도 인터넷 상거래가 활발해지면서 불편한 점이 생겼고, 그에 따라 각종 전자 화폐가 등장하게 됐다.
전세계에 불어 닥친 비트코인 열풍!
비트코인은 현재까지 알려진 전자 화폐 가운데 가장 진화된 형태로, 최근 미래의 화폐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비트코인은 다른 가상 화폐와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
우선 가장 큰 차이는 사용 범위가 매우 넓다는 점이다. 지난 2009년에 비트코인이 등장한 이후, 세계의 수많은 상품 판매자들이 비트코인을 결재 수단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현재 세계 최대 온라인 쇼핑몰인 ‘아마존’과 미국의 온라인 음식 주문 사이트인 ‘푸들러’를 비롯해 다양한 곳에서 비트코인으로 상품을 구입할 수 있다. 심지어 자동차와 부동산 판매 대금을 비트코인으로 받는 곳도 있다. 아직 세계 모든 곳에서 통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비트코인으로도 못하는 게 거의 없는 셈이다.
실제로 미국 경제잡지 ‘포브스’의 카슈미르 힐 기자는 1주일 동안 비트코인만으로 생활한 뒤에 매일 일어난 일들을 기사로 쓰기도 했다. 체험 후 힐 기자는 “비록 많은 거리를 걸어다녀야 해서 몸무게가 2.2kg이나 줄었지만, 비트코인만으로 1주일을 생활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비트코인은 아직까지 달러나 유로, 원화처럼 공식 화폐로 인정받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한국과 미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에서 그 나라의 화폐와 비트코인을 교환하는 거래소가 운영되고 있다. 11월 말 현재 한국에서는 1비트코인(BTC)이 약 80만 원 안팎에 거래되고 있는데, 비트코인의 환전 가격은 마치 금처럼 수요에 따라 매일 달라진다. 지난 2009년 비트코인이 처음 등장했을 무렵 24달러(약 2만 5000원)를 주고 5000비트코인을 산 노르웨이 청년 크리스토프 코흐 씨는 그동안 비트코인의 가치가 85만 배나 상승해 7억 3000만 원이나 되는 돈을 손에 쥐기도 했다.
비트코인은 역사상 최초의 수학적인 화폐!
이처럼 전세계가 주목하는 비트코인에는 특별한 점이 있다. 바로 화폐 시스템이 수학을 기반으로 운영된다는 점이다. 첨단 전자 화폐의 발행과 운영에 수학이 밀접한 관련이 있다니, 그건 무슨 뜻일까?
수학 문제를 풀어야 비트코인을 얻을 수 있다고?
비트코인의 수학적인 특징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수학 문제를 풀면 비트코인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비트코인은 거래소에서 돈을 주고 환전할 수도 있지만, 돈을 들이지 않고도 수학 문제만 풀면 얻을 수 있게 설계돼 있다. 바로 이점이 비트코인 운영체계의 핵심이다.
예를 들어 비트코인 시스템에서는 A가 물건을 구입하면서 B에게 비트코인을 보낼 때, 마치 이메일을 보내는 것처럼 받는 사람의 전자지갑 주소와 보내는 돈의 액수만 적으면 된다. 이 거래 내용은 자동으로 암호로 변환된다.
비트코인 시스템은 전세계에서 이루어지는 이같은 거래 내용을 10분 단위로 한데 모아 전체 사용자가 공유하는 장부에 기록한다. 이때 장부를 기록하는 권리와 함께 일정 금액의 비트코인을 사용자 중 한 사람에게 주는데, 상금으로 주는 비트코인은 새로 발행된다. 사용자들은 상금으로 걸린 비트코인을 얻기 위해 경쟁하면서 수학 문제를 풀어야 한다.
그런데 비트코인을 얻기 위해 경쟁하는 사람들이 풀어야 하는 수학 문제란 바로 암호화된 거래 내용을 푸는 것이다. 비트코인 시스템은 ‘공개키 암호’라는 방식으로 거래 내용을 암호화 하는데, 공개키 암호란 한마디로 암호를 풀기 위해 수많은 경우의 수 조합을 검토해야 하는 암호 체계다. 따라서 비트코인을 얻고자 하는 사람은 컴퓨터를 이용해서 암호 문제 풀이에 도전해야 한다.
이렇게 컴퓨터를 이용한 문제 풀이 경쟁 끝에 암호화 된 10분 동안의 거래 기록을 풀어낸 사람은 그 내용을 장부에 기록하고, 모든 비트코인 사용자들에게 발표한다. 그리고 그 사람은 새로 발행된 비트코인을 받게 된다. 이때 새로 발행되는 비트코인의 액수 또한 수학적으로 계획돼 있다는 점이 비트코인의 또 다른 수학적인 특징이다.
비트코인이 처음 만들어진 2009년부터 4년 동안은 매 10분마다 문제를 푸는 사람에게 50비트코인을 발행했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는 4년 단위로 발행량이 절반씩 줄어들도록 했다. 그리고 현재는 10분 마다 25비트코인이 발행되고 있는데, 이 금액은 점점 줄어들어서 2040년이 되면 총 2100만 비트코인을 끝으로 발행이 끝나게 된다.
이런 비트코인의 수학적인 특징 덕분에 모든 사용자가 거래 내용이 기록된 장부를 가지고 있게 되어 장부를 조작할 수 없고, 비트코인을 이중으로 사용할 수도 없다. 이처럼 비트코인 시스템은 거래와 거래 기록, 그리고 발행량 조절을 모두 수학적으로 연결해 안전한 화폐 구조를 만든 최초의 수학 기반 화폐다.
비트코인, 과연 미래 화폐로 사용될까?
수학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안정적인 시스템에도 불구하고 아직 많은 사람들과 각 나라 정부에서는 비트코인을 금속 화폐와 종이 화폐의 뒤를 이을 미래 화폐로 받아들이지는 않고 있다. 비트코인 시스템에 대한 우려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전문가들에게 비트코인에 대한 우려와 그에 대한 답을 들어 보자!
1. 요즘 해킹이 전세계적인 문제인데, 비트코인은 정말로 안전한 화폐 시스템인가요?
안녕하세요! 저는 인터넷 시스템의 단점을 처음 발견한 보안 전문가 댄 카민스키입니다. 비트코인이 너무나 간단히 이메일 보내듯이 돈을 주고받는 시스템이다 보니, 저 역시 여러 번의 인증 과정을 거쳐야 하는 은행 인터넷 뱅킹 사이트보다 해킹을 당하기 쉬워 보였어요. 그래서 비트코인 시스템의 결함을 열심히 찾아봤죠.
하지만 놀랍게도 결함은 발견할 수 없었어요. 은행의 경우 해킹을 하려면 은행 전산망에만 침투하면 되지만, 비트코인 시스템의 핵심인 전자 장부를 해킹하려면 전세계 사용자들의 컴퓨터 절반 이상을 해킹해야 해요. 그러려면 세계 최고 성능을 자랑하는 슈퍼 컴퓨터 500대를 합친 것보다 8배나 더 빠른 연산 능력을 가진 컴퓨터가 필요하니…. 비트코인 시스템 해킹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겠죠?
댄 카민스키(보안 전문가)
2. 범죄에 이용되거나 부자들이 세금을 피하는 데 쓰일 걱정은 없나요?
그 문제는 비트코인 거래소를 운영하는 제가 대답할게요. 많은 사람들이 비트코인으로 거래를 할 때 별다른 인적사항이 남지 않고 돈을 주고받은 주소만 기록된다는 점 때문에 범죄에 이용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해요. 그리고 부자들이 자신이 가진 재산에 대한 세금을 피하기 위해 재산을 숨기는 데 활용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어요. 이런 주장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에요. 하지만 이런 문제는 비트코인뿐만 아니라 금속 화폐나 종이 화폐도 갖고 있는 문제예요.
그리고 무엇보다 아직까지는 비트코인의 전체 가치가 범죄에 활용될 만큼 크지 않아요. 예를 들어 현재까지 발행된 비트코인의 가치를 환산해도(2013년 11월 말 현재 약 9조 3700억 원) 전세계 부자들이 숨겨 놓은 재산(최소 2경 868조 원)보다 훨씬 작거든요.
김진화(한국비트코인거래소)
3. 그런데 비트코인은 누가 만든 건가요? 만든 사람이 나쁜 마음을 먹으면 순식간에 시스템을 파괴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하이퍼 텍스트라는 인터넷 개념을 생각해 낸 저는 비트코인이 탄생했을 때부터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비트코인 시스템을 발표한 ‘사토시 나카모토’가 누군지 알아내기 위해 여러모로 조사를 해 보았죠. 제 결론은 바로 사토시 나카모토가 일본 교토대의 수학자 신이치 모치즈키 교수라는 것입니다.
암호학을 비롯한 계산 수학과 컴퓨터과학에 그만큼 조예가 깊은 사람은 많지 않아요. 게다가 작년 말에 신이치 모치즈키 교수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세계적인 수학 난제인 ‘ABC 추측’을 증명해서 올린 논문을 보면 비슷한 점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학술지가 아닌 개인 홈페이지에 논문을 발표했다는 점과, 그가 ABC 추측을 증명하면서 ‘우주 간 기하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창시했다는 점이 비트코인 체계를 발표한 논문과 흡사하거든요.
만약 비트코인 시스템의 창시자가 신이치 모치즈키가 아니고, 끝까지 밝혀지지 않는다고 해도 비트코인 시스템에 창시자만 알 수 있는 치명적인 약점은 있을 수 없어요. 비트코인 시스템은 처음부터 ‘오픈 소스’로 만들어졌거든요. 오픈 소스란, 프로그램을 만든 설계도를 누구나 볼 수 있게 공개하는 방식이에요. 따라서 누구나 프로그램을 살펴보고, 장단점을 파악한 뒤 단점을 보완할 수 있죠. 그렇기 때문에 창시자가 누구든, 아무도 모르는 방법으로 비트코인 시스템을 파괴할 수는 없어요.
테드 넬슨(정보기술 및 사회학자)
이처럼 수학으로 만든 새로운 화폐 체계인 비트코인은 완하는 효과적인 화폐 시스템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우려 속에서 점점 더 빠르게 전세계로 퍼져가고 있다. 아직까지는 사용할 수 있는 곳도 많지 않고, 마치 주식시장처럼 오르락내리락 거리는 그 가치 때문에 비트코인을 투기의 대상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비트코인에 관심을 갖는 많은 사람들은 비트코인을 금속과 종이 화폐를 보완하는 효과적인 화폐 시스템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과연 비트코인의 발행이 끝나는 2040년에는 비트코인의 위상이 어느 정도가 돼 있을까? 금속 화폐와 종이 화폐의 뒤를 잇는 미래의 화폐로서 자리매김하고 있을지, 아니면 잠시 반짝하고 사라져버릴지 그 결과를 기대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