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에서 기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링컨시. 들판을 따라 택시로 30분을 더 들어가니 엘리자베스 중등학교가 나타났다. 작은 시골학교일 거라는 생각과는 달리, 수학과 과학 특성화 학교로 전국에서 상위 25%에 드는 학생만 입학할 수 있는 학교라고 한다. 영국은 도시 외곽의 학교가 더 우수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곳의 학생들은 과연 어떻게 수학을 공부할까?
✚ “니 하오(중국말로 안녕)!”
첫 참관일, 설레는 마음으로 교실에 들어서자 개구쟁이 한 명이 인사를 건넨다. ‘중국이 아니라 한국에서 왔어’라고 말하려는데, 현지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수업이 시작됐다. 영국 학생들은 동양이라면 중국 사람을 떠올리나 보다. 학교 소개를 하시던 로렌스 선생님은 동양 사람을 처음 보는 학생도 있을 거라고 귀띔해 주셨다. 런던같이 큰 도시에는 여러 인종이 함께 살지만 시골로 갈수록 백인의 비율이 높다는 것이다. 이 학교도 백인 학생의 비율이 90%를 넘었다.
적극적으로 도전한다
영국은 7학년(중1)까지 모든 학생이 같은 수준의 수학을 배운다. 이날 수업은 ‘도전! 골든벨’ 방식으로 진행됐다. 선생님이 칠판에 ‘16을 소인수분해하라’는 문제를 냈다. 합성수 16을 소수의 곱으로 나타내는 문제다. 학생들은 저마다 가지고 있던 작은 화이트보드에 문제를 풀었다. 먼저 푼 학생은 화이트보드를 흔들어 선생님에게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어려운 문제를 다루지는 않았지만, 수학 공부를하는 영국 학생들의 자세는 적극적이었다. 수업을 마치고 한 학생에게 “수학 공부가 재밌니?”라고 물어보자 주저하지 않고 “조금 어렵긴 해도 재밌어요”라고 대답했다.
수준에 따라 원주율 배우는 법
8학년부터는 수준에 따라 수학 수업을 다르게 받는다. 8학년은 A와 B 둘로, 9학년부터는 다섯 반으로 나눠서 배운다. 하루는 8학년의 수학 수업을 둘 다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두 반 모두 원을 공부하고 있었는데, 원주의 길이와 원의 넓이를 구하는 방식이 달랐다.
A반에서는 학생들이 여러 가지 동그란 물체를 들고 각각의 지름과 원주의 길이를 직접 재고 있었다. 측정을 마치자 두 값의 비율을 계산해 발표했다. 약 3, 3.2, 3.1, 2.9~3.4처럼 다양한 값이 나왔다. 선생님이 π(파이)가 3.1415…인 이유를 설명하며 원주율인 파이는 그리스 사람이 처음 발견했다고 말했다. 이때 한 학생이 “그래서 그리스 사람들이 파이를 좋아했군요”라고 말해 온 교실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B반의 재치도 만만치 않았다. ‘원은 마술’이라는 제목으로 반지름을 이용해 원주의 길이와 원의 넓이를 구하고 있었다. 물체를 사용하는 A반과 달리 B반은 식을 이용해 바로 문제를 풀었다. 다들 문제 풀기에 익숙해지자 선생님은 “원은 정말 마술 같죠?”라고 말했다. 그러자 한 학생이 “원이 마술이라면 난 이제 해리포터야”라며 키득거렸다. 어느 나라나 학생들이 말장난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컴퓨터와 연결된 전자칠판 사용
영국에서는 수학 수업에 컴퓨터와 연결된 전자칠판을 사용한다. 전자칠판은 큰 모니터 역할을 할 뿐 아니라 칠판 위에 그림을 그리고 복사해서 붙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도형을 그린 다음 좌우를 바꾸거나 움직이면 도형의 대칭과 회전을 쉽게 공부할 수 있다. 식을 풀거나 그래프를 그릴 때도 효과적이어서 수학 수업에 재미를 더한다.
컴퓨터로 수학을 스스로 배우는 수업도 있다. 학생들은 컴퓨터실에 서 일주일에 한 번씩 수학을 공부한다. 7학년 여학생 ‘조’의 뒤에서 이과정을 지켜본 적이 있다. 게임처럼 생긴 화면에 ‘3과 4의 최소공배수
를 찾아라’는 문구가 나오자 조는 바로 12라고 입력했다. 10의 약수를 찾는 문제도 쉽게 풀었다. 게임을 마치자 ‘훌륭해요’라는 표시와 함께 높은 점수가 나왔다.
수학을 잘하는 조에게 꿈을 물었더니 헤어 디자이너다. 대학은 안 갈 거라고 한다. 대학보다 꿈이 먼저라는 당당함이 인상 깊었다.
영재반도 실용적으로
어느 학교나 영재는 있기 마련이다. 영국에서도 9학년 영재를 위한 수업이 따로 있었다. 7명이 전부인 수업에 는 수학실력이 뛰어난 학생들이 모였다. 영국 교육과정에 포함되지 않은 어려운 단원을 배운다고 한다. 이날 수업은 우리나라에서도 고등학교 2학년에나 배우는 행렬에 관한 내용이었다.
여기서도 영국 수학교육의 특징이 잘 드러났다. 바로 실용성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선생님은 행렬이 무엇인지 가르치기보다 버스정류장과 길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A, B, C, D 정류장으로 가는 길을 말로 설명하려면 복잡하지만, 행렬을 쓰면 쉽게 정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였다. 공부와 실생활을 연결하니 행렬의 필요성이 더 잘 전달되는 것 같았다.
수학 공부는 학교에서만
영국에서 수학은 학교에서 모든 것을 배운다. 수업 시간에 바로바로 질문을 하고, 모르는 것이 많으면 선생님과 시간을 잡아 보충한다. 문제집도 따로 없어서 선생님이 칠판에 적어주는 연습문제를 공책에 베껴 문제를 푸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험 점수가 낮거나 숙제를 하지 않은 학생은 방과 후에 남아야 한다. 그래서 숙제 수첩을 따로 만들어 선생님이 내준 숙제를 까먹지 않도록 한다.
학교 외에는 수학을 배울 곳이 없으니 선행학습도 없다. 다만 배운 내용은 철저히 복습한다. 한 단원이 끝날 때마다 쪽지 시험을 보기 때문이다. 이 시험에서 일정 수준을 넘지 못하면 따로 시간을 내서 재시험을 본다.
지금은 풀 붙이는 시간
영국은 수업시간에 교과서보다 유인물과 공책을 더 많이 이용한다. 매 수업마다 선생님이 나눠주는 유인물이 많기 때문에 수업시간 중에 유인물을 공책에 붙이는 시간이 따로 있다. 수업시간이 50분이지만 풀 붙이기나 문제 풀이를 반복해서 하기 때문에 실제로 배우는 내용은 우리나라보다 적다.
✚영국의 교육 프로그램
영국은 만 5세에 초등학교 1학년을 시작한다. 만 7세에 입학하는 우리나라보다 2년이 빠른 셈이다. 초등과정 6년을 마치면 11세에 중등학교로 진학한다. 7학년에서 11학년까지 5년 과정을 마치면 진로에 따라 길이 달라진다. 대학으로 진학할 학생은 2년간의 대학 예비과정을 거친다. 대학을 가지 않을 학생은 전문 자격을 갖추기 위한 과정을 밟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