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꺅! 우리 집이 날아간다!”
“대체 이 토네이도는 누가 만든 거야?”
도로시의 소리를 듣고, 지나가던 허수아비가 말을 건넸다.
“너도 녹색마녀한테 당했구나? 우린 모두 피해자야. 녹색마녀가 악한 마법으로 혼돈을 만들어 모든 게 엉망이 됐다고. 지금 다같이 녹색마녀에게 따지러 가는 길인데, 같이 갈래?”
계산기가 미쳤어요!
그런데 허수아비 님은 녹색마녀에게 뭘 따지러 가나요?
난 똑똑한 공학자야. 복잡한 계산은 필수지. 그런데 녹색마녀의 악한 마법으로 혼돈에 빠진 계산기 때문에 모든 게 엉망이 됐어. 그 바람에 내 머릿속도 엉망이라고! 계산기 때문에 엉망이 된 내 연구와 두뇌에 대해, 녹색마녀에게 피해 보상을 요구할 거야!
혹시 허수아비 님 계산기만 고장난 거 아니에요? 설마 모든 계산기가 다 그럴 리가…. 한번 확인해 볼까요?
혼돈에 빠진 계산기
계산을 하다 보면 실수하기 십상이다. 특히 소수와 같이 복잡한 숫자나 수십 회에 이르는 반복적인 사칙연산은 실수 확률이 거의 100%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계산기나 컴퓨터는 계산 실수를 하지 않을까?
한번 직접 확인해 보자. 컴퓨터 엑셀 프로그램을 열고, 제곱수에서 2를 빼는 간단한 계산을 여러 번 반복해 보자. 첫 번째 칸인 A1에 0.4를 입력하고, 아래 칸 A2에 ‘=A1^2-2’ 수식을 입력한다. ‘^2’은 제곱을 의미하므로, A1칸에 있는 0.4의 제곱수에서 2를 빼란 의미다. A2 칸에 적힌 답은 -1.84(=0.4²-2)다. 이제 A2에서 A40까지 드래그한 뒤, 홈 메뉴에서 ‘채우기-아래쪽’을 클릭하면 이 계산을 40회 반복 계산할 수 있다.
그리고 B1에 0.4를 입력하고 B40까지 같은 계산을 해 보자. A40과 B40은 당연히 같은 값이 나온다. 물론, A10과 B10에도 -1.675876209란 동일한 값이 적혀 있다. B10에 -1.675876209란 값을 다시 한 번 입력하고 엔터 키를 눌러 보자. 원래 있던 수와 같은 수를 입력했으니, 같은 계산 결과가 나와야 정상이다. 그런데 놀라움은 지금부터 시작된다. 처음에는 A열과 B열의 계산 결과 값이 조금 다르게 나올 뿐이다. 그러다가 아래로 갈수록 점점 차이가 벌어져 A40, B40에서는 서로 다른 엉뚱한 값이 나오게 된다.
사소한 차이에서 시작된 계산기 속 카오스
같은 값으로 시작해 같은 프로그램으로 같은 수식을 풀었는데, 어떻게 결과 값이 다르게 나타날 수 있을까? 허수아비의 말처럼 녹색마녀가 장난을 친 것일까?
그 이유는 엑셀이 화면에 보이는 값보다 더 많은 자릿수까지 저장하기 때문이다. 즉, B10에 입력한 -1.675876209의 뒤에는 소수점 이하 열 번째 자릿수가 숨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래 봤자 A10과 B10의 수는 소수점 이하 열 번째 자릿수가 살짝 다를 뿐이다. 아주 사소한 차이다. 그런데 이 사소한 차이가 반복적인 계산 과정을 거치며 크게 벌어진다. 계산을 40회 보다 더 많이 반복하면 A열과 B열의 값은 점점 더 크게 달라진다. 이런 현상이 바로 ‘카오스’다.
더욱 놀라운 것은 몇 십 단계 후에는 B열 뿐만 아니라 A열도 모두 오답이 된다는 점이다. 사실 여덟 번째 계산 결과만 해도 소수점 이하 백 자리가 넘는다. 정확한 계산을 하기 위해서는 모든 자릿수를 다 계산해야 한다. 하지만 컴퓨터가 소수점 이하 뒷자리 어딘가에서 반올림을 하지 않는다면, 숫자 데이터가 무한히 커져서 계산하는 데에 필요한 시간과 컴퓨터의 용량이 엄청나게 늘어날 것이다. 즉, 소수점이 있는 숫자들의 계산에서 반올림은 불가피한 선택이며, 반복적인 계산에서 결국 정확한 계산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소수점이 있는 숫자들의 반복 계산은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걸까? 사실 학자들은 위와 비슷한 과정을 거쳐 세계 인구나 행성의 위치 변화, 날씨 등을 예측한다. 세계 인구나 행성의 위치 변화에 관한 함수를 만들고, 현재의 세계 인구나 행성의 위치 데이터를 입력한 뒤 계산을 반복하면 미래의 인구나 행성의 위치 변화를 예측할 수 있다. 이런 방법을 ‘수학적 모델링’이라고 한다. 과학자들은 수학적 모델링을 통해 날씨나 세계 인구 등에 대한 단기적인 예측을 하고 있다.
하지만 앞서 살펴본 것처럼, 반복 계산이 수십 차례 이상 넘어가면 그 결과가 무의미해진다. 이것이 날씨나 인구 변화를 장기적으로 정확히 예측할 수 없는 이유다.
수학 경시 대회에서 시작된 카오스
“콰콰쾅!”
악! 하늘이 무너진다! 휴~, 아니구나. 난 하늘이 언제 무너질지 몰라서 조금만 큰 소리가 들려도 무서워 죽겠어. 녹색마녀가 악한 마법으로 행성들을 불규칙적이고 예측 불가능하게 만들어서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몰라.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겁이 많아진 건 다 녹색마녀 때문이야. 그런데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오스카 왕도 그랬다던데? 녹색마녀에게 어서 행성들의 움직임을 안정적으로 돌려 놓고, 잃어버린 내 용기도 돌려달라고 따질 거야!
오스카 왕은 또 누구죠?
왕께 수학경시대회를 생일선물로 드립니다
1889년 스웨덴의 국왕, 오스카2세가 60세 생일을 맞았다. 스웨덴 스톡홀름대의 수학자들은 고민 끝에 왕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수학경시대회를 개최했다. 경시대회의 문제 중 하나는 ‘태양계가 정말로 안정한지, 모든 행성들이 궤도를 안정적으로 돌 수 있을지 증명하라’는 것이었다.
수학자들이 이런 문제를 낸 데는 이유가 있다. 17세기 뉴턴은 중력의 법칙을 발견해, 태양의 중력이 어떻게 행성을 붙잡아 궤도를 따라 돌게 만드는지 설명했다. 하지만 행성이 두 개 이상일 때에는 각 행성이 서로에게 미치는 중력 때문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하기 매우 어려웠다.
이 문제에 여러 수학자와 과학자들이 도전했지만, 풀리지 않는 숙제로 남아 있었다. 심지어 뉴턴은 궤도에서 이탈한 행성을 신이 가끔 원래 위치로 갖다 놓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문제를 수학적으로 증명해 경시대회의 우승자가 된 사람이 있다. 바로 ‘푸앵카레의 추측’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수학자 앙리 푸앵카레다.
카오스 현상을 최초로 발견한 푸앵카레
푸앵카레는 문제를 풀기 위해 태양계를 3개의 물체만으로 이뤄졌다고 가정했다. 그리고 나서 이 3개의 물체가 주기 운동을 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미분방정식을 풀었다. 하지만 방정식의 해가 불규칙했다. 이 결과를 보고 그는 행성들이 불안정한 궤도를 그리며 때때로 예측 불가능한 방식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확신했다. 그리고 위상수학의 방법을 사용해 방정식의 풀이가 옳다는 사실까지 증명했다.
푸앵카레는 이 논문으로 1889년 1월 21일 국왕의 생일에 맞춰 수학경시대회의 상을 수상한다. 그런데 사실 이 이야기에는 뒷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사실 푸앵카레는 경시대회에서 우승한 논문에서 불규칙한 현상은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상을 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실수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는 당황해서 수상을 철회했다. 그리고 논문이 실린 저널을 파기하는 비용도 전부 지불했다고 한다. 그 뒤 푸앵카레는 연구를 거듭해 첫 번째 논문의 오류를 바로잡은 새 논문을 1890년에 공식적으로 출판하게 된다.
1999년, 영국의 수학 사학자인 준 배로-그린은 스톡홀름 미탁 레플러연구소의 기록보관소 구석에 숨겨져 있던 푸앵카레의 첫 번째 논문을 발견해 이 같은 사실을 세상에 알렸다.
어쨌든 푸앵카레는 이 논문을 통해, 행성들의 궤도가 사실은 불규칙적이고 예측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증명했다. 최초로 카오스 현상을 발견한 것이다.
나비효과가 원래 갈매기효과였다고?
오~, 아름다운 베르테르! 날씨도 화창하고 모든 것이 완벽한 날,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려고 단단히 벼르고 있었는데…. 변덕스러운 날씨와 자꾸 틀리는 일기 예보 때문에 미루고 미뤘더니 결국 다른 녀석과 만나고 있잖아? 흑, 이렇게 허무하게 사랑을 잃다니…. 그런데 이렇게 혼돈스러운 날씨도 모두 녹색마녀 때문이래. 그런데 녹색마녀는 그게 다 나비 때문이라나?
나비라고요? 그건 또 무슨 말이지?
나비 효과는 원래 갈매기 효과였다?
미국의 기상학자 로렌츠는 1961년, 컴퓨터로 기상 예측을 하기 위한 수학적 모델을 만드는 과정에서 카오스 현상을 발견했다. 기존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앞으로의 날씨를 예측하려면, 날씨와 관련된 여러 변수들을 단순화시킨 기상 방정식을 풀어야만 한다. 로렌츠는 이 기상 방정식을 풀기 위해 컴퓨터를 새로 구입했다. 그런데 당시 컴퓨터는 성능이 떨어지는 건 물론이고, 모니터 대신 인쇄물을 출력해야만 결과물을 볼 수 있었다. 곱셈을 하는 데는 100만 분의 17초가 걸리고, 숫자를 한 줄 인쇄하는 데는 10초가 걸렸다.
로렌츠는 컴퓨터를 통해 나온 수치들을 그래프로 그려 날씨를 예측하고자 했다. 그는 결과를 검토하기 위해 계산 중 일부를 반복하기로 하고, 인쇄했던 수치를 다시 입력한 뒤 컴퓨터를 재가동했다. 그런데 이번에 나온 계산 결과는 먼저 계산한 결과와 전혀 달랐다. 깜짝 놀란 로렌츠는 계산 결과를 검토하다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다.
두 계산 결과 사이에 처음에는 소수점 끝자리만 1이 차이 나던 것이, 점점 차이가 벌어져 시뮬레이션 시간으로 4일이 지날 때마다 거의 2배씩 달라진 것이다. 그러더니 결국 두 번째 달에 이르러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났다.
이는 반올림에서 비롯된 사소한 오차가 지속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인쇄물에 적힌 소수점 이하 3자리의 숫자를 입력했지만, 컴퓨터는 소수점 이하 6자리까지 저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로렌츠는 1972년 ‘브라질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이 텍사스에 토네이도를 일으킬 수 있을까?’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했다. 사실 그는 처음 논문에서 갈매기의 날갯짓이라고 표현했지만, 나비가 이론을 알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해 나비로 바꾼다. 나비효과는 카오스에 대한 깊은 인상을 남겼고, 그는 지금도 카오스의 아버지로 불린다.
기상청 슈퍼컴퓨터, 비난할 수 없는 이유는?
자꾸 틀리는 날씨 예보. 성능 좋은 슈퍼컴퓨터만 개발되면 문제가 해결될까? 날씨를 만들어 내는 대기는 하나의 커다란 비선형 동역학★계다. 비선형계는 원인과 결과 사이의 관계가 비례하지 않고 매우 복잡한 함수로 나타나 예상치 못한 변화를 만들어 낸다. 반대로 선형계란 원인과 결과가 비례해 결과를 예측할 수 있다.
동역학★ 물체에 작용하는 힘과 운동의 관계를 연구하는 학문. 동역학계란 움직이는 체계를 뜻한다.
비선형 동역학계를 다루는 방정식은 매우 복잡해서 쉽게 답을 구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컴퓨터가 발전하면서, 100% 정확한 답은 아니지만 예전에는 풀 수 없었던 비선형 방정식의 근삿값을 구할 수 있게 됐다. 아주 많은 반복 계산을 통해 원하는 답을 찾아내도록 한 것이다. 이런 방법을 ‘수치해석법’이라고 한다.
덕분에 근삿값을 통해 어느 정도 예보는 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그 계의 초기 상태는 절대로 정확히 측정할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오차가 발생하고 증폭된다. 이 때문에 장기간 날씨 예보는 불가능하다. 날씨에 있어 예상 가능한 한계는 이틀 정도다. 즉, 컴퓨터가 수천 배 더 강력해져도 나비효과 때문에 날씨를 완벽히 예측해 낼 수 없다.
카오스에 나타나는 비밀의 수가 있다?
흐흐흐….
응? 대체 녹색마녀가 수돗가에서 뭘 하는 거지? 물장난을 하는 건 아닐 테고.
무슨 나쁜 마법이라도 연구 중인가 봐. 나쁜 마법의 현장을 잡았으니 어서 녹색마녀에게 가서 따지자고!
잠깐! 확실한 증거가 나올 때까지 좀 더 지켜봐요.
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에서 카오스를 발견하라!
1978년 미국 캘리포니아대의 과학자들은 물방울의 움직임을 통해 움직이는 물체의 운동상태를 관찰했다. 수도꼭지를 아주 조금 돌리고 물이 흘러나오기를 기다리면 물방울이 규칙적인 리듬에 따라 떨어지지만, 수도꼭지를 조금 더 돌리면 물의 흐름이 증가하며 물방울이 불규칙하고 무작위로 떨어지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 수 있다.
연구자들은 이런 불규칙해 보이는 물방울의 움직임 속에 규칙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를 녹음해 시간 간격을 분석한 결과, 다음 물방울이 떨어질 때를 예측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선, 물방울이 규칙적으로 떨어질 때는 ‘똑-똑-똑-똑’ 이런 반복적인 리듬으로 떨어진다. 따라서 다음 물방울이 언제 떨어질지 예측이 가능하다.
그런데 물방울이 떨어지는 속도가 조금 더 빨라지도록 수도꼭지를 조절하면 이 리듬이 바뀐다. ‘똑-똑’이라는 2개의 새로운 물방울 패턴이 반복된다. 여기서 물방울을 조금 더 빨리 떨어지게 하면, 이번엔 4개의 물방울로 이뤄진 ‘똑-똑-똑-똑’이란 새로운 패턴이 만들어진다. 계속해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속도를 조금 더 높이면 8개의 물방울로 이루어진 패턴이 관찰된다.
실험 결과, 연구자들은 물방울의 패턴이 반복되는 수가 계속 2배씩 늘어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주기가 2배씩 늘어날수록 물방울이 떨어지는 시간 간격은 점점 줄어들었다. 즉, 물방울이 떨어지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것이다.
결국 물방울이 떨어지는 속도가 무한히 빨라지는 지점에 다다르면, 어떤 물방울의 순서도 정확히 동일한 패턴을 반복하지 않게 된다. 카오스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카오스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주기 배가 연속 단계’라고 한다.
카오스 현상에서 나타나는 비밀의 수
1975년, 물리학자 미첼 파이겐바움은 실험을 통해 모든 카오스가 만들어지는 과정, 즉 주기 배가 연속 단계에서 어떤 특수한 수가 발견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같은 유형의 현상에 항상 존재하는 일정한 수치를 ‘보편상수’라고 하는데, 파이겐바움은 카오스 현상에서 나타나는 보편상수를 발견하고 이를 ‘델타(δ)’라는 기호로 표현했다. 카오스 현상에서 공통적으로 찾을 수 있는 수치는 바로 4.669201609…다. 델타는 카오스라는 눈을 통해서만 볼 수 있는 자연의 패턴이다.
물방울이 불규칙적인 패턴으로 떨어지는 카오스 현상에서도 파이겐바움의 보편상수를 찾을 수 있다. 물방울 실험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패턴의 주기가 두 배씩 증가될 때마다 수도꼭지를 돌려야 하는 양은 약 4.669배로 감소한다.
카오스, 기하학과 만나다
으악! 저건 뭐지? 녹색마녀가 긴 실 뭉치를 마구 움직이더니 괴상한 나비가 만들어졌어!
괴물을 소환하는 것 아니야? 늦기 전에 모두 힘을 합해 녹색마녀를 물리치자!
녹색마녀! 이 모든 혼돈을 일으킨 주범! 악한 마법은 그만 멈추고 모든 혼돈을 정상으로 되돌려 놔요!
무슨 말을 하는 거냐? 난 지금 카오스를 연구하는 중인데, 별 소릴 다 듣겠구나.
카오스 현상에 나타나는 이상한 끌개
카오스 이론은 컴퓨터와 함께 발달한다. 컴퓨터의 성능이 좋아지면서 복잡한 방정식의 근삿값을 쉽게 풀이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카오스 이론이 발달한 계기는 또 있다. 물체의 운동을 기하학적 형태로 시각화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다.
물체의 운동 상태에 대한 기하학적인 해석은 100년 전 위상공간을 발명한 푸앵카레에서 시작됐다. 위상공간은 물체의 운동 상태를 나타내는 수학적인 가상 공간이다. 푸앵카레는 물체의 운동 상태가 어떻게 변화하는지에서 더 나아가 이를 시각적으로 표현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물체의 운동 상태를 미분 방정식으로 푼 다음, 그 값을 위상공간에 그렸다. 그러자 특정한 궤적이 나타났다.
그런데 이 궤적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떤 한 점이나 기하학적인 형태로 모아졌다. 수학에서는 이 점이나 기하학적 형태를 ‘끌개’라고 부른다. 위상공간에서 물체의 운동 상태는 초기값을 다르게 선택해도 결국 끌개로 다가간다. 따라서 끌개의 형태가 어떤 종류인지 알면, 그 운동 상태가 어떻게 변할지 시각적으로 확인하고 예측할 수 있다.
그런데 1963년 미국의 기상학자 에드워드 로렌츠는 ‘이상한 끌개’를 발견한다. 대기의 변화를 수학적으로 모델링 하기 위해 만든 방정식을 풀어 위상공간에 그리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점의 궤적이 어떤 한 점이나 기하학적 형태로 나타나지 않고, 일정 범위 안에서 나비 모양을 유지한 것이다. 이를 ‘로렌츠 끌개’라고 한다. 로렌츠의 첫 발견 이후, 과학자들은 카오스 현상에서 계속 이런 특성을 가진 다양한 모양의 이상한 끌개를 발견한다.
카오스, 프랙탈을 만나다
이상한 끌개는 종잡을 수 없는 패턴에도 불구하고, 결국 일정 범위 안에 머물며 반복운동을 한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바로 여기서 프랙탈 구조를 찾을 수 있다. 프랙탈이란, 작은 구조가 전체 구조와 비슷한 형태로 끝없이 되풀이 되는 구조를 말한다. 즉, 부분과 전체가 똑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 ‘자기 닮음’이 특징이다. 해안선의 일정 부분을 확대해 보면 전체 해안선과 똑같은 배열이 나타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로렌츠 끌개의 두 날개를 살펴보자. 수많은 날개들은 각각 비슷한 형태가 무수히 반복되며 전체적으로 같은 형태를 하고 있고 있다. 다른 이상한 끌개들 역시 복잡하지만 프랙탈의 패턴을 보여 준다.
파이겐바움이 카오스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 주기 위해 그린 ‘파이겐바움 도형’에서도 프랙탈의 특징이 나타난다. 파이겐바움 도형에서 부풀린 도형의 작은 부분은 원래 도형을 정확히 닮았다. 게다가 파이겐바움 도형에 나타나는 모든 가지들의 끝은 칸토어 집합을 형성한다. 칸토어 집합은 1883년 독일의 수학자 게오르그 칸토어의 이름을 딴 프랙탈 구조로, 각 직선의 가운데 $ \frac{1}{3} $을 없애는 방식을 무한히 반복하면 만들어진다. 파이겐바움 도형과 칸토어 집합의 관계는 카오스와 프랙털 사이에 깊은 관련이 있음을 말해 준다.
이런 연구들을 통해 과학자들은 불규칙해 보이는 카오스 속에 실제로는 반복되는 패턴, 즉 프랙탈 구조가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카오스를 이해하기 위한 강력한 기하학적 도구를 발견한 것이다.
카오스 제어, 나비 효과를 활용하라!
모든 것이 카오스 때문이었다니…. 카오스가 나쁜 거군요? 녹색마녀, 오해해서 미안해요! 당신은 착한 마녀니까, 이제 당신의 마법으로 저를 원래 살던 곳으로 돌려보내 주세요.
저희도 각각 심장과 두뇌와 용기를 되돌려 주세요!
다들 뭔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나 본데, 난 마녀가 아니야. 난 카오스를 연구하는 수학자라고. 그리고 카오스는 나쁜 게 아니야. 내 얘기를 잘 들어보려무나.
네에? 그게 무슨 말이에요?
카오스로 정보를 보호하라!
수학에서 탄생한 카오스 이론은 이제 물리, 경제, 의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쓰이고 있다. 경제학에서는 카오스 이론으로 주가 변동을 예측하기도 하고, 의학 분야에서는 뇌 조직이나 심장에서 불규칙적으로 나타나는 전기적 신호를 방지해 간질이나 심장 발작을 예방하기도 한다. 일본에서는 카오스를 활용한 접시 세척기도 개발됐다. 접시에 물을 규칙적으로 분사할 때보다 불규칙적으로 분사할 때, 더 적은 에너지로 더 깨끗하게 닦이는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또한 카오스는 보안이 필요한 통신에도 활용된다. 우리는 컴퓨터 통신을 이용해 인터넷 쇼핑몰에서 물건을 사거나 금융 거래를 한다. 이때 암호화 시스템이 사용된다. 그런데 암호화 알고리즘에 반복적인 패턴이 있으면, 이를 해독하기 쉬워 해킹을 당하기 쉽다. 만약 암호화 알고리즘에 카오스 신호를 이용하면 어떨까?
암호에 카오스 신호를 적용하면 같은 수치를 입력해도 항상 결과가 다르게 발생해 역계산을 할 수 없다. 이 암호를 확인하려면 반드시 정보를 보낸 쪽과 연결된 카오스 시스템을 사용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카오스 신호를 제거하고 정보 신호를 원래대로 복원할 수 있다. 만약 카오스 시스템이 없다면, 중간에서 정보를 해킹하더라도 그저 잡음으로 들릴 뿐 내용은 알 수 없다.
레이저에 카오스 이론을 적용해 암호를 만들 수도 있다. 실제로 서강대 김칠민 교수는 카오스 이론을 이용한 광 혼돈 비밀통신방법을 개발했다. 레이저는 일반 빛에 비해 퍼지지 않고 똑바로 날아간다. 하지만 레이저라고 해도 불규칙한 신호가 나오기 마련이다. 이렇게 레이저에서 발생한 카오스 현상은 레이저의 정밀도를 떨어뜨리는 한 요인으로 지적돼 왔다.
김 교수는 카오스 이론을 적용해 레이저의 혼돈 현상을 예측하고 제어해 안정적인 레이저를 만들었다. 또한 혼돈 레이저를 이용한 비밀통신방법도 개발했다. 레이저에 정보 신호를 넣은 뒤, 레이저의 빛의 파동을 불규칙하게 회전시킨 것이다. 그러면 해커들은 빛의 파동이 회전하는 양을 정확히 구할 수 없어 암호를 해독할 수 없다. 카오스 덕분에 정보가 안전하게 보호되는 것이다.
뇌 신호의 카오스 패턴을 분석하라!
뇌는 1000억 개의 신경 세포들이 거미줄처럼 연결돼 있다. 각 신경 세포들은 끊임없이 서로 신호를 주고받으며 회로망을 재구성하고 환경에 적응한다. 이때 서로 규칙적인 신호를 주고받기도 하고, 전혀 예상치 못한 불규칙한 신호를 만들기도 한다.
이렇게 단순한 구성 요소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상호작용을 하는 체계를 ‘복잡계’라고 한다. 뇌의 행동은 언뜻 무질서해 보이지만, 질서와 혼돈이 균형을 이루며 스스로 새로운 패턴을 만들어 낸다. 예측 불가능해 보이지만, 이 새로운 패턴을 찾아내면 복잡해 보이는 뇌의 활동도 예측할 수 있다.
실제로 포스텍 물리학과 김승환 교수는 카오스 이론으로 뇌를 연구하고 있다. 뇌에서 전달되는 전기 신호의 패턴을 분석해 간질이 일어나는 부위를 찾아내고, 간질 환자의 뇌파를 측정해 발작이 일어나기 전 뇌파에 특이한 변화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렇게 생체 신호에서 카오스 패턴을 감지하면 심장마비, 뇌졸중 등을 예방할 수 있다.
와~, 카오스가 정말 다양한 곳에 쓰이네요. 마녀인 줄 알았는데 정말 카오스를 연구하는 수학자 맞군요!
잠깐! 그런데 전 어떻게 집에 돌아가죠?
그러고 보니 제 심장은요?
미안! 그건 내 분야가 아니야. 자, 여러분의 문제는 전문가와 상담해 보도록! 난 연구로 바빠서 이만~!
네?! 안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