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100°C 에서 갑자기 수증기가 되는 이유는 뭘까? 천천히 녹아가던 남극 빙하가 갑자기 뒤집히며 붕괴하는 이유는 뭘까? 고요해 보이던 군중이 갑자기 폭동을 일으키는 이유는? 자연, 심리, 사회적 현상 등 다양한 분야에서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변화를 설명하는 수학 이론이 있다. 바로 카타스트로피 이론이다.
갑작스런 변화를 예측하는 수학이 등장하다
세상에는 갑작스런 일들이 많다. 적재량을 겨우 500g 넘었을 뿐인데 다리가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내리기도 하고, 섭씨 0°C에서 물은 갑자기 단단한 얼음이 돼 버린다. 갑작스럽게 주가가 폭등·폭락하기도 하고, 전쟁이 터지거나 눈사태가 일어나기도 한다.
뉴턴이 미적분학을 발견한 후 연속적인 운동에서 변화율을 분석할 수 있게 되었고, 그 결과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변화에 대해 수학적으로 해석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회 현상과 인간의 행동, 생태계 현상들을 연속적인 변화의 과정으로만 설명하기는 힘들다. 통계적으로 무시할 만한 작은 차이가 전체의 형태에 큰 변화를 가져오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현상들을 밝히는 데 기존의 수학은 한계에 부딪치게 됐다.
그러던 중 1973년, 프랑스의 수학자 르네 톰이 카타스트로피 이론을 제안했다. 카타스트로피란 그리스어 ‘katastrophe’에서 온 말로, ‘ 돌연히 나타나는 광범위한 큰 변동’이란 뜻이다. 이 이론은 위상수학의 한 분야로, 자연이나 사회 현상을 수와 식만이 아니라 기하학적으로 관찰하고 그 의미를 분석한다. 기하학적인 구조를 이용해 여러 현상을 직관적으로 해석할 수 있도록 수학의 영역을 넓힌 것이다.
카타스트로피 이론의 기본 가정을 살펴보자. 일단, 이 이론은 원인과 결과의 공간을 구분한다. ‘원인 공간’ 속의 변수가 변화함에 따라 ‘결과 공간’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 엉뚱한 결과를 가져온다.
예를 들어 x, y가 원인이라고 할 때, z는 결과값이 된다. 점 Q(x, y, z)는 공간 속에 아무렇게나 자리잡은 것이 아니라, 원인 x, y와 결과 z의 관계를 나타내는 함수에 의해 정해진다. 그리고 함수 값들을 그래프로 그리면, 위의 곡면과 같은 도형이 그려진다. 이때 점 A에서 점 A´로 z값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는 지점을 ‘특이점’, 또는 카타스트로프 지점이라고 한다.
카타스트로피 이론은 변화가 갑자기 일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전혀 징조가 없는 것이 아니며 일정한 규칙도 갖고 있다는 점을 알려 준다. 따라서 갑작스러운 변화의 규칙과 징조를 미리 파악해 사전에 예방할 수 있게 해 준다.
발렌타인데이에 성공하는 비법도 알려 준다?
사랑을 전하는 발렌타인데이가 곧 다가온다! 초콜릿을 주고 싶은 친구는 있는데, 그 아이의 태도가 영 아리송하다면? 카타스트로피 이론을 적용해 이성 친구의 심리를 분석해 보는 건 어떨까? 발렌타인데이에 성공하는 비법, 카타스트로피 이론에서 찾아보자.
나쁜 남자에게 끌리는 이유는?
누군가를 좋아하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마음이 기뻤다가 실망했다가 하는 등 급변하곤 한다. 카타스트로피 이론은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변화를 설명하는 수학 이론이다. 따라서 급격하게 변하는 연애 심리와 데이트 성공률을 예측하는 데도 안성맞춤이다.
그럼 카트스트로피 이론을 적용해 남녀의 만남이 잘 될 것인지, 안 될 것인지 예측해 보자. 여기 좋아하는 두 남녀가 있다고 하자.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면 할수록 데이트를 많이 한다. 이걸 왼쪽 그래프에 나타내면 결과값인 z축이 데이트 횟수가 된다.
연애 감정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변수는 당연히 남녀의 심리 상태다. 따라서 x축과 y축은 각각 여성과 남성의 심리 상태로 놓는다. 이때 x축이 왼쪽으로 갈수록 여성이 상대 남성을 좋아하고, 오른쪽으로 갈수록 싫어한다고 볼 수 있다. y축은 좌표 앞 부분으로 올수록 남성이 상대 여성을 좋아하는 걸 뜻한다.
만약 여성은 남성을 싫어하는데 남성만 여성을 좋아한다면, 상황은 평면상의 점 A에서 길 p를 따라간다. 이걸 결과 공간에서 보면, 곡면상에서 길 p는 점점 아래쪽으로 내려가기 때문에 이 경우 데이트의 횟수는 점점 줄어들 거란 걸 알 수 있다.
반대로, 여성이 남성을 좋아한다면 평면상의 점 B에서 시작돼 길 q를 따라 움직인다. 곡면상의 길 q는 위쪽으로 올라가기 때문에 데이트의 횟수도 늘어나고 두 사람은 행복한 만남을 갖게 된다고 예측할 수 있다.
점 A에서 교제가 시작돼 길 p를 따라가는 커플은 잘 될 가능성이 없는 걸까? 오른쪽 그래프를 보자. 만약 남성이 적극 노력해 여성이 조금씩 마음을 열면, 상황은 길 p 대신 길 s를 따라 진행된다. 하지만 아직 곡면의 아래쪽에 있기 때문에 데이트의 횟수는 크게 늘지 않는다.
그런데 어느 정도 데이트가 진행됐을 때, 남성이 ‘이 정도면 할 만큼 했는데….’ 라고 생각하며 열정을 잃고 미지근한 태도를 보인다고 하자. 평면상에서 보면 남성의 심리 상태가 길 s에 있는 점 X에서 XY의 방향으로 뒤돌아서는 것이다.
이때 길 XY가 쐐기 곡선과 만나는 Y 지점에서 상황은 어떻게 될까? 곡면으로 보면 점 Y는 중간 부분이 끊어지는 지점이다. 따라서 이때는 점 Y에서 Y´로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며 데이트의 횟수는 급격히 늘어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여기서 나쁜 남자에게 끌리는 여성의 심리를 엿볼 수 있다. 남성이 꾸준하게 잘 해 줄 때는 여성이 별 관심을 보이지 않다가, 갑자기 냉담한 태도를 보이면 나쁜 남자의 매력을 느끼며 둘의 관계가 좋아질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카타스트로피 이론을 적용하면, 중요한 변화의 시기를 예측해 성공할 수 있는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카타스트로피 이론, 어디까지 적용될까?
카타스트로피 이론은 주식시장의 폭등•폭락 모델이나 뇌 활동이 갑자기 정신병 질환으로 바뀌는 현상, 교도소 죄수들이 갑자기 난동을 부리는 현상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에 적용된다. 카타스트로피 이론이 적용될 수 있는 영역은 어디까지일까?
급격한 변화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나
빙하학자들은 지구온난화로 인해 빙하가 녹으면서 갑자기 뒤집히고 붕괴하는 현상을 카타스트로피 이론으로 분석했다. 온도가 높아져 빙하가 녹으면 그 형태가 달라진다. 빙하는 안정적으로 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형태 변화에 따라 기울어진 정도와 안정성이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그러다가 카타스트로프 지점에 이르는 순간, 빙하가 뒤집어지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빙하는 80%가 물에 잠겨 있기 때문에 이런 변화를 예측하기 어렵다. 빙하학자들은 빙하가 녹는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카타스트로피 이론을 활용해 빙하가 뒤집어지는 시점을 분석했다.
이번에는 교도소로 가 보자. 카타스트로피 이론은 교도소 내 폭동을 방지하는 역할도 한다. 사회학자들은 교도소 내 죄수들의 생활을 관찰하다가, 그들이 교도소 안의 단조로운 생활에 싫증이 나면 무엇인가 자극을 찾아 불화를 일으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이 불화로 인해 긴장이 고조되면 다시 새로운 불화가 더해지는 패턴을 발견했다.
관찰 결과를 바탕으로 연구자들은 교도소의 상태가 불온한지, 평온한지를 결정하는 주요 원인으로 긴장과 불화를 손꼽았다. 그리고 카타스트로피 이론을 적용해 교도소 내 긴장이 고조된 상태에서 불화가 계속 더해지면 죄수들의 행동이 어떻게 변화할지 분석했다.
그 결과, 불화로 인해 긴장이 고조되는 어느 시점에서 곡면 아래쪽에 있던 점(평온한 상태)이 단번에 위쪽의 불온한 상태로 뛰어올라, 폭동이 일어나기 쉬운 상태로 변한다는 걸 알아냈다. 실제로 교도소에서는 이런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감시 시스템을 도입하고 주기적으로 데이터를 분석해 교도소 내 폭동을 효과적으로 방지할 수 있었다.
생물학 분야에서는 대표적으로 개의 공격성에 대한 연구를 들 수 있다. 영국의 수학자 C.지만은 위상수학에서 출발한 카타스트로피 이론을 최초로 과학에 응용했다. 그는 ‘개들의 공격적인 행동이 분노와 공포라는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고 가정하고 카타스트로프 이론을 적용해 연구했다. 그는 분노하고 있는 개가 공포에 질리면 공격을 멈추고 도망가 버리는 시점을 분석했다. 반대로 공포에 질린 개가 분노하기 시작해 결국 도망가기를 멈추고 바로 공격해 들어오는 시점도 분석해 냈다. 카타스트로피 이론을 이용해 동물의 심리와 행동 변화의 시점을 예측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생명 분야에서도 카타스트로피 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 세포 분열의 단계에서 세포는 어느 정도 성장하다가 갑자기 2개의 서로 다른 세포로 분열한다. 또한 알에서 번데기, 유충, 나비가 되는 생물의 형태 변화 과정에서도 한 형태에서 갑자기 완전히 다른 형태로 급격하게 변하는 카타스트로피 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 이처럼 카타스트로피 이론은 갑작스러운 생명체의 변화를 구조화시켜 생명체의 특이성을 분석하는 도구로도 쓰인다.
가상 인터뷰! 르네 톰에게 배우는 카타스트로피 이론
카타스트로피 이론은 위상수학에서 출발했지만, 불연속적인 변화를 분석하는 도구로 생물학과 사회·심리학 등 다른 학문에서 더 많이 사용된다. 카타스트로피 이론은 어떻게 탄생한 걸까? 카타스트로피 이론의 창시자, 르네 톰과의 가상 인터뷰를 지금부터 시작한다.
Q.르네 톰, 대체 카타스트로피 이론은 왜 만들었나요?
1961년 독일의 한 박물관에 갔다가 개구리의 형태 형성과정에 관한 전시를 봤습니다. 이때 1개의 세포가 분열해 세포의 덩어리를 형성하고, 조직이 형성돼 결국 알에서 올챙이, 개구리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신비함을 느꼈지요. 저는 생명이 형성되는 불연속적인 변화 과정을 수학으로 표현하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다가 기하학적 방법을 토대로 카타스트로피 이론을 만들었지요.
Q.카타스트로피 이론에는 어떤 수학 개념들이 들어 있나요?
이 이론은 집합론, 군론, 위상수학, 미분방정식 등 다양한 수학을 뿌리로 하고 있습니다. 카타스트로피 이론은 벡터장의 개념을 이용해 안정성과 불안정성에 대해 설명해요. ‘벡터’란 크기와 방향을 가진 양이에요. 물리학에서 힘, 속도, 가속도를 가리켜 벡터라 하지요. 벡터들의 집합을 ‘벡터장’이라고 합니다.
Q.벡터와 도형의 연관성을 좀 더 자세히 들을 수 있을까요?
여기 구면인 입체 도형이 있습니다. 이제 구면을 수평면으로 잘라 봅시다(그림①). 수평으로 나눠진 원둘레가 보이죠? 여기서 원둘레 위에 있는 점들의 접선이 바로 벡터예요. 그림 속 화살표 말이에요.
벡터장은 원둘레의 궤도라고 할 수 있어요. 그림①의 벡터장은 원둘레를 뱅글뱅글 돌아 원래의 위치로 되돌아옵니다. 이를 벡터장 X라고 합시다. 벡터장 X에 작은 벡터 x′를 더하면 어떻게 될까요?
벡터장 X에 x′를 더하면(그림②) 새로운 벡터장 X+x′가 만들어집니다(그림③). 벡터장 X+x′의 궤도는 N에서 S로 빙글빙글 돌아 내려갑니다. 벡터장 X와는 전혀 다른 형태지요.
원래의 벡터장에 다른 벡터를 붙였을 때 전혀 다른 벡터장이 돼 버리는 것을 ‘불안정한 벡터장’이라고 합니다. 카타스트로피 이론에서는 불안정한 벡터장이 어떻게 새로운 벡터장으로 변하는지를 다루지요.
Q.설명은 들었지만 여전히 어렵네요. 마지막으로 들려주고 싶으신 말은 없으신가요?
수학이란 ‘수와 식’으로 대표되는 학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거예요. 하지만 전 수학이란 형식에 갇히지 않고 여러 분야의 학문을 변형시키는 일을 사랑했습니다. 여러분도 수학을 기호와 숫자 안에 갇혀 있는 꽉 막힌 학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