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맨과 수학자가 함께 공연한다고?”
잠시 후 학생들이 강당을 가득 메우자 텔레비전에서 듣던 익숙한 목소리가 스피커에서 울려 퍼졌다.
“개그 수학 콘서트에 온 친구들을 환영합니다람쥐~! 다람쥐~!
수학자와 개그맨이 뭉쳤다!
“안녕하세요? 저는 개그콘서트 ‘꺾기도’ 팀의 홍인규예요를레이요~♬♪”
지난 11월 30일 오전 10시, 서울 서신초등학교 강당에 설치된 무대 위에 오른 개그맨 홍인규 씨가 자신이 만든 유행어를 선보이자 강당에 모인 아이들은 그야말로 ‘빵!’ 터졌다. 여기저기서 깔깔대며 웃는 모습이 마치 개그콘서트 현장에 온 듯했다.
개그맨 홍인규 씨가 서신초등학교를 찾은 이유는 바로 개그 수학 콘서트 때문이다. 개그 수학 콘서트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가 주최하고 <;수학동아>;가 후원한 초등학생 대상 수학 강연으로, 작년 <;수학동아>;가 주최한 수학 토크콘서트의 새로운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매달 과학콘서트를 진행하고 있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는 초등학생들에게 수학의 재미를 알려 주기 위해 <;수학동아>;와 함께 이번 콘서트를 마련했다.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수학에 대한 흥미를 잃어가는 아이들에게 수학도 개그처럼 재미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특별히 최고의 수학자와 개그맨이 연사로 참여했다. 포스텍 수학과 박형주 교수가 수학 강연을 맡고, 홍인규 씨를 비롯해 개그콘서트 ‘아빠와 아들’ 팀의 김수영, 유민상 씨가 개그를 맡았다. 박형주 교수는 2014년에 우리나라에서 열릴 세계수학자대회 조직위원장을 맡은 국내 최고의 수학자로, 지난 1차 수학 토크콘서트에 이어 이번에도 어린이들을 위한 지식 나눔에 동참했다. 또 아빠와 아들 팀은 매주 개그콘서트에 출연하며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자타공인 국내 최고의 개그맨이다.
첫 순서로 아빠와 아들 팀이 등장해 강연 주제인 휴대전화를 소재로 개그를 선보였다.
“아빠, 어제 친구랑 이탈리아 레스토랑에 갔었어요. 여기 좀 보세요. 어제 음식 먹으면서 휴대전화로 찍은 사진을 바로 블로그에 올려 놨어요. 스파게티, 피자, 리소토, 마늘빵…. 근데 아빠, 어떻게 사진을 찍어서 바로 블로그에 보낼 수 있는지 궁금해요.”
“그건 박 교수님께서 설명해 주실 거야. 이야~, 우리 수영이, 친구랑 잔뜩 먹었구나?”
“응? 이건 내가 먹은 것만 찍어서 올린 건데?”
두 사람의 공연이 끝나자 순식간에 강연장이 웃음바다가 됐다.
1막 휴대전화 속에도 수학이 있다고?
아빠와 아들 팀의 개그에 이어서 포스텍 수학과 박형주 교수가 등장하자, 홍인규 씨가 재빠르게 장난을 걸었다.
“우리 교수님은 수학을 얼마나 잘하시는지 문제를 내 볼까요? 4 곱하기 8은?”
“앗! 갑자기 물어보니 모르겠네요. 하하~.”
“와~. 교수님께도 어려운 게 있군요? 하지만 수학을 어렵지 않게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들었어요.”
“물론 있지요. 생활 곳곳에서 수학적인 원리를 찾아보는 것이 수학을 재미있게 공부하는 비결이에요. 우리 친구들이 매일 들고 다니는 휴대전화에도 수학이 있거든요.”
“휴대전화에도 수학이 들어 있다구요? 얼른 설명해 주세요~!”
“알겠습니다람쥐~!”
박형주 교수는 재치 있는 답변으로 강연을 시작했다.
“어떻게 휴대전화 사진을 다른 사람에게 전송하는지 생각해 본 친구들 있나요?”
박 교수는 사진 전송과 동영상 통화는 수학 덕분에 가능해졌다고 설명을 이어갔다.
“휴대전화는 화면을 수백만 조각으로 나눈 뒤, 각 조각에 해당하는 밝기와 색깔 정보를 0과 1로 이루어진 2진수에 담아 전기 신호로 보내요. 진법이란 수를 표시하는 방법으로, 일상 생활에서 사용하는 표기법인 10진법이 대표적이지요. 10진법은 0부터 9까지 숫자를 세다가 그보다 큰 수는 자릿수를 올려 표기하는 방법이에요. 반면 2진법은 0과 1만을 이용해 숫자를 표기하기 때문에 각 자리 숫자는 0 또는 1로만 쓸 수 있답니다.
이렇게 0과 1만으로 정보를 전할 수 있는 특징은 빛을 깜빡이거나, 전류를 보내고 끊는 것과 비슷해요. 그래서 2진수는 빛이나 전기 신호를 사용하는 기계 장치에서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쓰이지요.”
아직 진법에 대해 배우지 않아서 생각만 해도 어렵다고요? 하지만 학교에서 배우지 않았다고 꼭 어려운 개념은 아니에요. 피타고라스가 살던 시절에는 덧셈과 뺄셈도 무척 어려운 수학이었지만, 지금은 초등학생도 할 줄 알잖아요?
최첨단 수학도 이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모두가 아는 보편적인 지식이 되어 가는 거랍니다. 그러니 학교에서 배우지 않았다고 두려워하기보다는 호기심을 가지고 도전해 보세요~!
동영상 통화까지 가능하게 한 ‘부호이론’
박 교수는 이어서 1970년대 미국 화성탐사선인 마리너호가 찍어 보낸 화성 표면 사진을 보여 주며, 사진 전송과 동영상 통화를 가능하게 한 수학이론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2진수를 이용해 사진을 전송하는 방법은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전기 신호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자기장 등에 의해 신호가 왜곡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널리 쓰이지 못했지요. 하지만 ‘부호이론’이라는 수학 이론이 등장하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되었죠.”
부호이론은 미국 수학자 클로드 섀넌이 1948년에 발표한 것으로, 통신 체계가 스스로 잘못된 신호를 인식하고 바르게 수정하도록 하는 알고리즘★이다. 예를 들어 내 휴대전화에서 전송한 1011(2)이라는 2진수 신호가 전자기파의 방해를 받아 1001(2)로 바뀌었다고 하자. 이때는 신호를 받은 휴대전화가 처음 보낸 신호에 포함된 1의 개수에 대한 정보를 보고 잘못된 신호라는 걸 판단하게 된다. 1970년대 미국항공우주국(NASA)에서 이 알고리즘을 이용해 화성탐사선이 보내온 화성 사진을 정확히 해독해 내면서, 본격적으로 정보통신 분야에 쓰이기 시작했다.
알고리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거치는 논리적인 절차나 단계.
“휴대전화뿐 아니라 DVD에 영화를 저장하고 재생할 때도 같은 원리가 사용된답니다.”
박 교수는 부호이론을 사용하는 다른 예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DVD는 영화 화면과 소리 정보를 담은 2진수를 기록한 일종의 저장소예요. 영화를 저장할 때는 레이저로 DVD 표면에 홈을 파는데, 숫자 0은 얕게, 1은 깊게 판답니다. 반대로 영화를 볼 때는 재생장치가 빛을 쏜 뒤, 돌아오는 신호를 파인 홈의 깊이에 따라 0과 1로 해석해서 영상으로 변환하지요. 그런데 이때 DVD에 먼지가 묻거나 흠집이 나 있으면 신호를 잘못 해석하게 되는데, 이런 경우에도 부호이론을 이용해 오류를 수정해요.”
박 교수는 부호이론처럼 많은 수학 이론이 우리 생활을 편리하게 하는 데 쓰인다며 수학의 실용성을 강조했다.
알고리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거치는 논리적인 절차나 단계.
2막 배꼽 빠지는 수학 개그!
“우와~! 떠들지도 않고 교수님 말씀을 이렇게 집중해서 잘 듣다니, 저 감동했어요~! 그래서 제가 여러분에게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이 선물은 아주 크고, 무거운 선물이에요. 바로…, 아빠와 아들 팀입니다~!”
홍인규 씨가 다시 한번 아빠와 아들 팀을 부르자 ‘뚜비뚜바~♬’하는 음악이 흘러나오며 김수영 씨와 유민상 씨가 다시 무대에 올라왔다.
“우리 수영이 수학 시험 성적 좀 볼까? 아니 이런! 하나 틀렸네? 하나만 더 맞히면 100점인데 어쩌다 틀린 거야~.”
“문제가 이상해요~. 아무리 읽어도 이해가 안 돼요~.”
“문제가 잘못될 리가 있나. 아빠가 가르쳐 줄게. 어디 보자…. 사과 다섯 개가 있다. 그 중 두 개를 철수에게 줬다…. 뭐? 음식을 남한테 준다고? 문제가 이상하잖아?”
다시 등장한 아빠와 아들 팀은 다양한 수학 개그를 펼치며 아이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했다. 또 직접 문제를 내서 맞힌 아이를 무대 위로 불러내 함께 춤을 추면서 특별한 추억을 만들어 주었다.
김수영, 유민상(개그콘서트 아빠와 아들 팀)
오랜만에 초등학생들 앞에서 공연하니 동심으로 돌아간 기분이었어요. 또 이번 공연을 준비하면서 수학 개그를 처음 해 보게 됐는데, 신선하고 재미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 개그콘서트 공연을 할 때도 오늘 선보인 수학 개그를 했답니다. 관객들의 반응이 아주 좋았어요. 앞으로도 수학을 활용한 개그를 많이 만들고 싶고, 초등학생들과 함께 하는 공연 기회도 자주 생겼으면 좋겠어요.
수학도 개그처럼 즐겁다!
개그콘서트 팀의 공연이 끝나자, 다시 박형주 교수가 무대에 올라 아이들의 궁금증을 해소해 주는 시간을 가졌다. 한껏 웃는 동안 마음이 열린 아이들은 이번 강연과 평소 수학에 대해 궁금했던 것들을 자유롭게 물어보았다.
강연을 들은 아이들 모두에게 행사를 주최한 국가과학기술위원회 김도연 위원장과 박형주 교수가 직접 <;수학동아>; 최신호를 나눠 주며 행사는 마무리됐다. 인기 개그맨과 최고 수학자를 만난 아이들의 소감은 어땠을까?
최지우(서울 서신초 6)
개그맨들이 나와서 수학과 먹는 개그를 재미있게 보여 주니까 흥미롭게 토크콘서트를 볼 수 있었어요. 저는 나중에 야구 경기를 분석하는 일을 하고 싶은데, 야구에도 수학이 많이 쓰인다고 들었어요. 이제부터 수학 공부를 더 열심히 해서 멋진 야구 분석가가 되고 싶어요.
고수빈(서울 서신초 6)
교수님께 왜 꼭 미지수를 X라고 하는지 질문했는데, 꼭 X여야 할 필요는 없지만 처음 생각해 낸 사람들이 정한 약속이라고 답해 주셨어요. 평소에는 수학에 큰 관심이 없었는데 이렇게 교수님께서 질문에 답변해 주시니 기분도 좋고, 더 많이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고보경(서울 서신초 6)
교수님 강연을 듣고 수학이 정말 우리 생활에 유익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특히 휴대전화에서 사진을 보낼 때 수백만 조각으로 나눈다는 사실이 신기했어요.
김도연(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장)
국가과학기술위원회에서는 아이들에게 수학으로 바라보는 과학이야기를 들려주고자 이번 행사를 마련했어요.
와서 보니 개그 공연을 통해서 수학이 어려운 것이라는 학생들의 고정관념을 조금이나마 없애 준 것 같아 기뻤습니다.
이번 개그 수학 콘서트를 통해 단 몇 명의 학생이라도 수학에 흥미를 갖게 되고, 수학자를 꿈꾸게 된다면 더 없는 기쁨이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