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영어, 일본어, 중국어, …. 우린 외국어를 배우는 데 열심이다. 그런데 정작 주변에서 사용되고 있는 ‘이 언어’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바로 손으로 말하는 수화다. 낯설 수도 있지만, 수화는 이 세상을 이루는 또 하나의 언어다. 간단한 수화도 배워 보고, 수화 속 수학의 원리도 알아보자.

수화와 수학은 기호의 언어


수화란, 소리가 아닌 손짓을 이용해 뜻을 전달하는 언어다. 청각장애인을 위해 수화가 개발된 건 1620년 스페인의 농교육자 J.P.보넷에 의해서다. 그는 세계 최초의 수화 알파벳을 만들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47년 국립서울농학교 윤백원 선생에 의해 한글 지문자가 만들어졌다.

수화는 손 동작을 통해 의미를 전달한다. 하지만 단순히 손동작 하나만으로 표현하는 것은 아니다. 손의 모양(수형)과 위치(수위), 손의 움직임(수동)과 손바닥의 방향(수향)을 기본으로 몸동작과 얼굴 표정 등을 조합해 의사를 전달한다.

여기서 수화와 수학의 닮은꼴을 발견할 수 있다. 수화와 수학이 기호를 사용하는 언어라는 점이다. 기호란 어떤 뜻을 나타내기 위한 문자나 부호를 말한다. 이때 기호와 의미는 반드시 일대일 대응을 해야 한다.
 

수학에서는 수, 계산, 논리 등 수학의 개념을 간결하게 표현하기 위해 +, -, π 등의 기호를 사용한다. 따라서 이런 다양한 수학 기호들을 해석할 줄 알아야 수학 문제를 풀 수 있다. 수화도 마찬가지다. 수화에서는 지문자와 수화의 단어가 바로 의미를 담은 부호, 즉 기호다. 수화의 기호들을 모르면 청각장애인과 의사소통을 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한편, 수학과 수화 모두 단순히 기호의 의미와 사용법만 외웠다간 낭패를 볼 수 있다. 사실 청각장애인들이 대화할 때 가장 주목하는 부위는 손이 아니라 얼굴이다. 얼굴 표정이나 몸동작을 통해 감정이나 상황을 더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학도 마찬가지다. 기호를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대입하거나 해석하지 못하면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복잡한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수학이든 수화든 기호의 의미와 사용법도 알아야 하지만, 상황에 맞는 적절하고도 다양한 해석까지 꼭 염두에 둬야 한다.

닮음의 원리가 담긴 수화

수화에는 ㄱ, ㄴ, … 자음과 모음을 닮은 지문자가 있고, ‘안녕하세요’ 등의 의미를 담은 수화 단어가 있다. 수화는 문자나 의미의 형태를 담아 손 동작으로 만드는데, 특히 지문자의 경우 글자 모양을 중심으로 만들었다. 즉, 문자와 손 모양이 닮음꼴이라는 것!

수학에서 닮음이란 ‘한 도형을 일정한 비율로 확대 또는 축소해 얻은 새로운 도형이 본래의 도형과 닮은 것’을 의미한다. 이때 닮은 두 도형은 대응각의 크기가 같고, 각 대응변의 길이의 비가 같다는 성질을 지닌다.

실제 ‘자음 ㄴ’과 ‘ㄴ을 나타내는 지문자’의 형태를 비교해 보면, 각각의 꼭짓점과 각이 서로 일치함을 확인할 수 있다. 문자와 지문자 사이에 각 변의 길이가 완전히 비례하진 않지만, 사람마다 손가락의 길이와 서체가 다르다는 점을 감안하면 거의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즉, ‘자음 ㄴ’과 ‘ㄴ을 나타내는 지문자’가 닮음 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닮음 관계는 ㅅ, ㅈ 등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한편, ㄷ, ㅁ, ㅂ 등에서는 닮음 관계가 뚜렷하게 드러나진 않아도 가능하면 글자의 형태에 닮도록 만들어졌다.

청각장애인들은 수화 단어에 없는 고유 명사나 신조어 등은 지문자로 표현하고, 대부분 수화 단어를 주로 사용한다. 앞으로 청각장애인 친구를 만나면 한글 지문자로 서로의 이름을 알려 주며 대화의 물꼬를 터 보자. 31개 지문자를 어떻게 다 외우냐고? 한글과 전혀 다른 영어 알파벳도 금세 외운 여러분이 아닌가! 수화 지문자에 한글과의 닮음의 원리가 담겨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한글 지문자도 어렵지 않게 익힐 수 있다.
 

음성언어와 닮은 듯 다른 수화

우린 친구와 얘기할 때 화가 나면 음성이 높아지거나 크게 얘기한다. 흥분하면 빠르게 말하기도 한다. 음성의 높고 낮음, 강약, 속도 등이 모두 의미소통의 장치로 사용되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주어, 서술어, 목적어 등 문법에 의해 단어를 나열하고 문장으로 구성한다.

수화는 말 대신 비언어적 요소로 문법을 대신한다. 수화의 문법은 수화소다. 수화소란 수형소(손의 형태), 수위소(손의 위치), 수동소(손 동작), 수향소(손의 방향), 체동소(몸 동작) 등을 말한다. 청각장애인들은 여러 수화소들을 동시에 짝을 이뤄 사용하며 수화의 문장을 구성한다. 즉, 같은 손 동작이더라도 손의 위치에 따라 뜻이 달라지기도 하고, 손의 방향에 따라 뜻이 반대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혹시 수화에도 신조어가 있을까? 보통 신조어나 유행어가 만들어지는 창구는 TV다. TV 프로그램에서 재미있었던 말은 거의 실시간으로 인터넷 동영상이나 친구들과의 전화 등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 금세 퍼진다.

수화에도 신조어는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예능 프로그램은 수화 방송으로 제공되지 않기 때문에, 청각장애인들이 유행어를 금세 알기는 어렵다. 대신 인터넷 글이나 스마트폰 채팅 등을 통해 알게 된 유행어가 수화 신조어로 재탄생 되고 있다. 수화 신조어는 직접 만나서 대화를 나눠야만 전파되기 때문에 전달 속도는 느린 편이다. 현재 확인된 바로는 ‘헐’은 널리 사용되고 있고, ‘멘붕’이란 수화 신조어는 아직 널리 퍼지진 않았다.

청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연결하는 수학

수화는 청각장애인이 일상 대화를 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가장 중요한 언어다. 하지만 비장애인들은 수화를 잘 모르기 때문에 청각장애인들과 의사소통이 거의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만약 수화를 실시간으로 인식해 통역해 주는 시스템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컴퓨터가 수화를 인식하려면 사전에 컴퓨터에 수화의 여러 손 동작들과 그 의미를 입력해 두어야 한다. 그런 다음 카메라가 사람의 행동을 찍으면 여러 움직임들 중 수화를 가려내 무슨 뜻인지 인식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여기에는 패턴 인식 기술이 중요하게 쓰인다. 먼저 컴퓨터가 수화를 인식할 수 있도록, 좌표를 이용해 수화 동작을 표현한다. 그리고 카메라가 인식할 수화 동작을 찍으면, 기존의 입력된 값과 비교해 어떤 뜻인지 가려내는 것이다.

수화는 정지해 있는 한 동작이 아니다. 10개나 되는 손가락이 동시에 연속적으로 움직이면서 불필요한 동작들도 많이 만들어진다. 또 같은 뜻의 수화라도 사람마다 손의 위치나 동작이 조금씩 다르다. 이런 점들 때문에 수화 패턴을 인식하기란 쉽지 않다.

이때는 확률적인 방법을 이용해 문제를 해결한다. 인식할 수화와 기존의 데이터 값이 얼마나 일치하는지 확률적으로 계산한 뒤, 기존의 데이터와 몇 % 이상 일치하면 A 뜻, 그 이하면 다시 다른 뜻과 비교해 보는 것이다.

실제로 이와 같은 원리를 이용하는 수화 인식 시스템이 개발되고 있다. 최근 고려대 정보통신대학 이성환 교수팀이 수화 동영상에서 의미있는 수화 동작을 자동으로 검출하고 인식하는 독창적인 알고리즘을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또한 컴퓨터가 수화를 인식해 바로 글로 번역해 주는 수화-텍스트 번역 프로그램도 이미 개발돼 있다.
 
수화인식 시스템은 카메라가 얼굴과 손을 인식한 뒤, 그 위치와 동작의 특징을 추출해 무슨 뜻인지 가려낸다.

알아두면 좋은 수화

청각장애인과 만나면 어쩐지 어색하기도 하고 수줍은 맘도 들어서 피하고 싶은 맘이 들지 모르겠다. 마치 외국인을 보면 피하고 싶은 심정과 비슷할 것이다. 물론 수화를 알면 좋지만 모르더라도 당황하지 말자. 입 모양을 크게 말해주거나, 글을 쓰는 방법으로도 간단한 의사소통은 충분히 할 수 있다. 우리가 ‘잘 듣는’ 사람이라면 청각장애인은 ‘잘 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청각장애인들은 바디랭귀지와 표정, 입 모양 등을 통해 우리가 하고자 하는 말의 많은 부분을 이해한다고 한다.

여기에 말문을 열기 좋은 간단한 수화를 소개한다. 간단한 수화로 대화를 시작한 뒤에는 자연스러운 분위기와 웃는 얼굴이 가장 좋은 소통 방법이다.
 

2012년 12월 수학동아 정보

  • 김정 기자
  • 도움

    우호민
  • 사진

    김정 기자
  • 사진

    동아일보
  • 사진

    ImageBit
  • 사진

    위키미디어

🎓️ 진로 추천

  • 언어학
  • 교육학
  • 컴퓨터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