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미술관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삼청동을 찾았다. 골목 끝에 있는 한 아담한 미술관에 들어서자 마침 작품 앞에 서 있던 사람이 기자를 반겼다. 지난해 8월 이곳에서 개인 전시회를 열었던 김주희 작가다. 영락없이 화가로 보이는 김 작가의 또 다른 직업은 특이하게도 수학 교사다. 수학과 미술이라,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
“제가 선생님이라고 불러야 하나요? 작가님이라고 해야 하나요?”
다짜고짜 던진 질문에 김주희 작가는 웃으며 “낮에는 선생님, 밤에는 작가”라고 답했다. 수학교육학과 동양화를 차례로 전공한 김 작가는 현재 서울 성수고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고 있다. 수업을 마치면, 김 작가는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는 작가로 변신한다. 이처럼 두 얼굴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해졌다.
“항상 수학을 좋아했어요.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하얀 연습장에 풀이를 적어나가는 과정이 그림을 그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거예요. 그런데 인생은 수학처럼 정해진 답만 구하는 것이 아니었어요. 수학만 하다 보니 인생을 잘 몰랐던 거죠. 그 고민의 결과가 미술로 이어진 것 같아요. 현재는 미술에 수학을 적절히 활용하고 있어요.”
별개로 보이는 수학과 미술이 김 작가에게는 비빔밥의 재료였다. 기자가 의아한 반응을 보이자 김 작가는 말을 이었다.
“수학과 미술은 닮은 점이 있어요. 상징적이고 함축적이죠. Σ(시그마)와 ∫(인테그랄)은 각각 합계와 적분을 상징해요.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누구나 알아들어요. 그림도 마찬가지예요. 작가가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캔버스에 담긴 작가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어요.”
작품의 소재를 일상에서 찾는다는 김 작가. 얼마 전에도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화분에 담긴 꽃을 그린 그림으로 개인전을 열었다. 김 작가는 자신의 대표작을 가리키며 작품 속에 담긴 수학 이야기를 슬며시 꺼냈다.
“그림 속에는 나 자신을 의미하는 화분 하나만 있어요. 배경은 화분의 여집합인 셈이죠. 그런데 알고 보면 여집합은 화분, 나 자신이 만드는 거예요. 나만 없다면 나눠지지 않은 하나의 세상인 것이죠. 즉 소통 부재의 원인이 과연 어디에 있는지 생각해 보게 하는 작품이에요.”
이어 김 작가는 지난 개인전 때 선보였던 콜라주 기법의 작품을 집어 들었다. 콜라주는 캔버스에 인쇄물, 천과 같은 재료를 풀로 붙여 만드는 회화 기법이다.
“이 작품을 선보였을 때 다들 독특하다는 반응을 보였어요. 나름의 순서를 정해 하나씩 재료를 붙였는데, 알고보니 수열의 귀납적 정의★를 따랐던 순서였어요. 사고방식은 쉽게 변하지 않더라고요. 덕분에 남들과 다른 작품을 만들 수 있었죠.”
김 작가는 수학적 사고방식을 미술 작품에 접목시키고 있다. 최근에는 이를 수업에도 적용하고 있는데, 학생들의 반응이 예상보다 뜨겁다고 한다.
“아무래도 미술과 연관성이 높은 기하를 가르칠 때는 학생들의 반응이 좋은 편이에요. 수업도 딱딱하지 않고 부드럽게 진행되고요. 지금은 수학에 미술을 접목시켜 더 즐겁게 가르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중이에요.”
하고 싶었던 것이 많았던 김 작가의 학창시절, 꿈의 공통분모는 창조성을 발휘하는 일이었다고 한다. 수학과 미술의 두 손을 잡고 창의적인 작품을 만들고 있는 김 작가의 앞으로의 모습을 기대하며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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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열의 귀납적 정의★ 수열에서 이웃하는 항의 관계를 추론하는 방법. 개별적인 항에서 일반적인 법칙을 유도하는 과정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