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은행 강도를 소탕하고 러시아에서 살인미수사건을 해결했다는 이야기가 조선까지 전해져 유명 인사가 된 허풍과 도형. 이들이 2년 5개월간의 세계일주를 마치고 돌아온다는 소식에 조선 전체가떠들썩하다. 허풍과 도형에겐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
1 금의환향한 허풍과 도형
“선생님, 드디어 돌아왔어요. 저기 보이는 항구가 인천항이에요. 와~!”
도형이 환호를 하는 사이 허풍은 폭포수 같은 눈물을 흘리고 있다.
“흐엉. 엄마, 아빠~, 저 돌아왔어요!”
잠시 뒤 배가 항구에 멈춰서고 허풍과 도형은 가장 먼저 배에서 내렸다. 허풍은 땅바닥에 엎드려 혼잣말을 하다 벌떡 일어서 외친다.
“이게 얼마 만이야! 너무 그리웠어, 흑흑…. 아, 참! 조선의 여성들이여~, 이 허풍이 돌아왔어요!
더 이상 슬퍼하지 말아요.”
“크크. 어? 선생님, 저기 사람들이 우리를 향해 몰려오는데요?”
“이놈의 인기는 식을 줄을 몰라.”
허풍과 도형을 둘러싼 기자들은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며 질문을 한다.
“세계 일주를 마친 기분은 어떻습니까?”
“어느 곳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까?”
번쩍이는 플래시에 정신 줄을 놓은 도형과 달리, 허풍은 갖가지 포즈를 취하며 질문에 대답한다.
“오래간만에 조선 땅을 밟으니 기분이 좋군요. 모든 곳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 중에서도…. 앗! 질문은 더 이상 받지 않겠습니다. 자세한 것은 나중에 말씀드리죠. 개별적으로 연락주세요.”
“선생님, 너무 많은 사람들이 겹겹으로 쌓여 있어서 빠져 나갈 수가 없어요.”
그 때였다. 기자들 사이를 비집고 불쑥 나타난 손이 도형에게 쪽지를 주고 사라진다.
“어? 선생님, 누가 항구 창고에서 만나자는데요? 주어진 그림의 규칙을 찾아 세 번째 그림에 들어갈 숫자를 알아 내고, 그 숫자가 써진 창고로 오래요. 어? 이 쪽지는‘선데이 경성’에서 보낸 거네요. 선생님, 빨리 가 봐요.”
도형의 말이 안 들렸는지 허풍은 계속해서 포즈를 취한다. 도형은 허풍의 손에 쪽지를 쥐여 주고 혼자 창고로 향한다.
2 허풍에게 푹 빠진 차선이
“저기요. 안에 누구 없어요?‘선데이 경성’에서 오신 분 안 계세요?”
창고 문을 열며 도형이 조심스레 말했다.
“여기예요. 역시, 퍼즐로 여러 문제를 해결하며 세계여행을 했다는 소문이 틀리지 않았군요. 금세 찾아오셨네요. 그런데 허풍 씨는…?”
“아, 선생님은 사진 포즈 취하시느라 바쁘세요.”
“이런, 아름다운 숙녀를 기다리게 했군요. 정말 죄송합니다.”
도형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허풍이 나타났다. 허풍은 중절모를 손에 든 채 창고 문에 기대서 있다.
“허풍이라고 합니다. 숙녀분의 성함은?”
“저…, 저는 차선이라고 합니다. 소문처럼 멋있으시네요.”
차 기자는 허풍에게 푹 빠진 듯 얼굴을 붉히며 허풍과 도형을 잡지사로 안내했다. 세계일주 시작 전 쌀쌀 맞았던‘선데이 경성’편집장은 마치 다른 사람이 된 듯 반가운 얼굴로 허풍과 도형을 마중 나와 있다.
“아니, 이게 누구신가! 경성 최고의 모험가 허풍 선생 아닌가! 하하, 어서 오십시오.”
건물 안으로 들어간 일행은 푹신한 의자에 앉아 편집장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데….
“선생이라면 세계일주에 성공하리라 믿고 있었소. 하하! 세계일주 여행기를 연재하기로 했던 것 잊지 않았죠? 좋은 이야기 많이 부탁드립니다.”
편집장과의 인사를 끝내고 차 기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허풍과 도형.
“저, 피곤하실 테니 며칠 쉬시다가 연락을 주시면 제가 인터뷰 하러 가겠습니다.”
“아닙니다. 이렇게 아리따운 기자님을 귀찮게 할 수 없지요. 내일 제가 잡지사로 오겠습니다. 여기 물음표에 들어갈 숫자가 나타내는 시간에 뵙죠. 하하하.”
허풍은 도형에게 배운 퍼즐을 다양한 곳에 활용했다.
3 사심 인터뷰
다음날, 차 기자가 잡지사 앞에서 허풍을 기다리고 있다.
“기자님, 저희 왔어요. 저녁은 안 드셨죠? 선생님께서 맛있는 저녁을 대접하고 싶다고 해서 이 근처 식당을 예약했거든요.”
“하하하, 이거 죄송합니다. 기자님께서 어떤 음식을 좋아하시는지 여쭤 보지도 않고 메뉴를 정했습니다.”
“어머, 아니에요. 이러시지 않아도 되는데 정말 감사합니다.”
“기자님도 퍼즐 좋아하시나 봐요. 사실 선생님께서 기자님께 멋있게 보이고 싶어서 퍼즐로 시간을 정했는데, 혹시 못 푸시면 어쩌나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괜한 짓을 했다며 자책도 하시고요.”
도형의 말에 차 기자는 얼굴이 빨개졌고, 허풍은 헛기침을 했다. 사실 허풍은 퍼즐 쪽지 뒷면에 정답을 써 놓았었다.
“많은 곳을 여행하셨는데요. 다시 한 번 가고 싶은 곳이 있으신가요?”
식사를 마치고 후식으로 나온 차를 마시며 인터뷰가 시작됐다.
“음…, 프랑스, 이탈리아, 아프리카의 초원. 모두 다시 가고 싶네요. 하지만 이 모든 곳보다 아름다운 곳은 우리나라 조선이죠. 기자님이 계시니까요. 하하하.”
이런 말도 안 되는 말들이 오갔지만 차 기자는 아이처럼 좋아하며 허풍의 말을 적어 내려갔다. 이렇게 인터뷰를 한 지 3주가 지났다. 두 사람은 친구처럼, 연인처럼 가까워졌다.
“허풍 선생님, 토요일에 시간 있으세요?”
“물론이죠. 차 기자님이 원하시면 전 언제라도 달려갑니다. 하하하.”
“그럼, 이 시계가 8시가 되기 전까지 시침, 분침이 서로 가장 가까이에 오는 시간에 관악산 입구에서 만나요.”
“데이트 신청하는 건가요? 하하하. 농담입니다. 맑은 공기를 마시면서 인터뷰를 하자는 거지요?”
“네~, 내일 뵐게요. 도형 군도요.”
4 예기치 않은 만남
“안녕하세요, 기자님. 저희 선생님은 아직 안 오셨나요?”
“아직…. 도형 군, 우리 먼저 올라가요. 오늘은 다른 분이 허풍 씨를 인터뷰를 하고 싶어 해서요. 우리 둘이 먼저 올라가면 따라 오실 거예요.”
차 기자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입을 가리고 웃었다. 한편 아침부터 차 기자를 기다리던 허풍은 뜻밖의 사람을 만나는데….
“자네가 허풍 군인가?”
“예, 그렇습니다만….”
“하하, 나는 차선이의 아비 되는 사람이네.”
허풍은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갑자기 멍해졌고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
“세계일주를 했다고 하던데 산은 처음인가?”
“헉헉, 아닙니다. 조선…, 헉헉. 최고의…, 헉헉. 산악인입니다. 헉헉.”
“하하하, 힘들 텐데 유머가 넘치는구먼.”
이렇게 관악산 연주대에 오른 두 사람은 잠시 앉아 쉬기로 했다.
“나는 산을 좋아해서 자주 오른다네. 시간이 되는대로 말이야.”
“그러시군요. 저도 산을 좋아합니다. 평지를 더 좋아하긴 하지만….”
“하하하, 딸아이가 자네 칭찬을 많이 하더군. 그래서 한번 만나고 싶어 이렇게 부탁을 했다네.”
“저도 차 기자처럼 아름답고 훌륭한 사람은 처음 봤습니다.”
“고맙네. 내 길게 이야기하지 않겠네. 앞으로 어찌될지 모르지만, 오늘 보니 딸아이가 잘못된 선택을 하진 않았다고 생각하네. 여기 퍼즐 속 단어를 마음 속 깊이 새겨 주게나. 알파벳을 순서대로 정렬해서 일정한 규칙에 따라 숫자를 대입하면 12=O, 15=L, 22=E를 나타내지. 5가 어떤 알파벳을 나타
내는지 맞히면 나의 뜻을 알게 될 걸세.”
“네~, 이 단어를 명심하겠습니다.”
산에서 내려온 뒤 허풍과 차 기자가 만났다.
“미리 말을 해 주셨으면 이것저것 준비라도 했을텐데, 깜짝 놀랐잖아요.”
투정이 섞인 말투였지만 허풍은 얼굴 가득 미소를 짓고 있었다.
★ 허풍의 고백
“차 기자님, 아니, 선이 씨. 저와 결혼해 주세요. 경성 최고의 멋쟁이도, 경성 최고의 산악인도 아닌 제가 선이 씨에게 최고의 남자가 되고 싶습니다.”
갑작스런 고백에 도형은 깜짝 놀랐지만, 당사자인 차 기자는 생긋 웃으며 허풍이 내민 꽃을 받아들었다.
6개월 뒤, 도형은 미국에서 만났던 퍼즐의 대가 샘 로이드의 초청으로 퍼즐 공부를 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날 준비를 했다. 차 기자와 허풍은 도형을 배웅하러 인천항에 왔다.
“도형아, 꼭 가야겠니? 너 없인 하루도 살 수가 없어. 가지 마~, 가지 마. 엉엉.”
“선생님도 참. 선생님 곁에는 차 기자님이 있잖아요. 많이 배워서 돌아올게요.”
“어린 도형 군도 이렇게 의젓한데, 이럴 때 보면 참 어린 아이 같죠? 잘 다녀와요, 도형 군.”
도형이 탄 배가 출발하자, 허풍은 손을 흔들며 배가 가는 방향으로 내달렸다.
“잘 살아야 해. 난 잘 있을….악!”
“허풍 씨~! 누가 좀 도와 주세요!”
앞도 안 보고 내달리던 허풍이 그만 물에 빠지고 만 것이다. 이렇게 허풍의 세계일주는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