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탄 허풍과 도형은 열차의 특실 안이 궁금해 자물쇠로 잠긴 특실 문을 연다. 그런데 이게 웬일? 문을 열자 칼에 찔려 피를 흘리는 남자가 허풍 앞으로 쓰러진다. 자칫 살인미수 사건에 용의자로 지목될까 두려운 허풍은 경성 최고의 탐정을 자처하며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 가는데….
1 네 명의 용의자
“특실에는 13명이 탔고 각자의 자리를 조사할 때 자기 자리에 없었던 사람이 4명이지.”
“그럼 사건이 있던 시간에 그 네 사람이 뭘 하고 있었는지 알아보면 되겠네요?”
“바로 그거야! 벌써 승무원에게 네 사람을 모아달라고 부탁했단다.”
승무원과 함께 네 명의 남녀가 식당 칸으로 들어온다. 30대 초반의 앤, 20대 후반의 브릭, 30대 후반의 크리스, 60대 후반의 데이비드가 그 주인공.
“앤 부인, 사건이 일어났을 때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죠?”
“남편인 브릭과 퍼즐을 풀며 와인을 마시고 있었어요.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둘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었거든요.”
앤의 말에 브릭은 깜짝 놀란다.
“마, 맞아요. 앤과 저는 좋아하는 퍼즐을 풀며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죠.”
브릭이 도형에게 퍼즐을 건넨다.
“선생님, 이거 재미있어 보여요. 여기 있는 숫자 카드를 사용해서 빈칸을 채워 수식을 완성하는 건가 봐요.”
퍼즐이라는 말에 신 난 도형은 알리바이를 듣다 말고 퍼즐을 풀기 시작한다.
“험험, 녀석 참. 아무튼 둘만 계시다는 것을 목격한 사람이 있습니까?”
두 사람은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고 있다. 바로 그때 크리스가 말한다.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섰을 때 두 분이 웃으면서 제 앞을 지나갔어요. 그리고 화장실에서 나와 보니 와인 바에서 퍼즐을 즐기고 있더군요. 평소 퍼즐을 좋아하던 저는 두 분이 다 풀면 그 퍼즐을 빌려달라는 말까지 했죠.”
2 의심스러운 알리바이
크리스의 말에 앤과 브릭의 어두웠던 얼굴빛이 점점 환해진다.
“그렇지만 크리스 아저씨가 화장실에 간 시간 동안은 이분들의 알리바이를 증명할 수 없어요”
“그렇지. 화장실로 향할 때와 자리로 돌아갈 때만 이 두 사람을 봤으니까.”
도형과 허풍의 지적에 크리스는 당황한다.
“또 브릭 아저씨와 앤 아주머니는 꽤 긴 시간 자리를 비웠을 거예요. 퍼즐을 풀고 있었잖아요. 그런데 크리스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눈 건 잠깐이고.”
도형이 의심의 눈초리로 브릭을 바라본다.
“크리스 씨, 화장실에서 얼마나 있었죠?”
“그게 한 1~2분쯤 걸렸을 거예요. 볼일만 보고 금방 나왔으니까….”
허풍의 눈치를 본 브릭은 화제를 바꾼다.
“꼬…, 꼬마야. 나도 퍼즐을 좋아한단다. 화장실에서 퍼즐을 풀곤 하지. 신문 대신 퍼즐을 푼다고 생각하면 돼. 여기 보렴.”
크리스가 건네준 퍼즐을 받아든 도형은 의심의 눈초리는 어느새 사라지고 또다시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바뀐다.
“밖에 주어진 숫자는 그 줄의 연속된 칸에 들어갈 숫자의 합이에요. 숫자가 2개 적혀 있을 경우 합하면 첫 번째 숫자가 되는 숫자들이 연속해 있고 빈칸 다음에 합하면 두 번째 숫자가 되는 숫자들이 들어가죠. 각 줄에는 1부터 5까지의 숫자가 한 번씩만 들어가는데, 줄에 따라 숫자가 일부만 들어가기도 해요.”
“도형아, 퍼즐이 중요한 게 아니잖니. 빨리 범인을 잡지 않으면 또 다른 사건이 일어날지 몰라. 그리고 열차가 쉬지 않고 계속 달린단 말이야. 그럼 역마다 있는 맛있는 특산물을 먹을 수 없잖니.”
“선생님도 참. 그런데 이거 꽤 어려운데요. 아마 크리스 아저씨는 화장실에 오래 계셨을 거예요. 이런 퍼즐을 안 풀고 나왔을 리 없어요. 크리스 아저씨, 아까 깜박 잊고 말 안 하신 거죠?”
3 데이비드의 증언
주요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날카로운 시선으로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한 도형이 퍼즐에 눈이 팔려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허풍은 4명의 용의자에게 질문만 계속하고 수사는 진전이 없다.
“저기, 탐정님. 그럼 저기 노신사가 범인인가요? 다들 알리바이가 있는데….”
“아니요. 세 분의 알리바이는 엉성하기 짝이 없어요. 아직 단정 지을 순 없죠.”
똑 부러지는 도형의 말에 승무원은 말을 마저 잇지 못한다. 퍼즐을 다 푼 도형은 다시 사건에 집중한다. 바로 그때 세르게이의 응급처치가 끝난다. 도형과 허풍은 응급처치를 한 의사의 말을 듣는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지금은 잠시 이대로 쉬게 두는 게 좋겠네요.”
“다행이에요. 승객 중에 의사선생님이 계셔서. 그럼 수사를 이어서 하죠. 데이비드 씨, 사건이 있던 시간에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셨나요?”
허풍의 물음에 데이비드는 도형을 보며 대답한다.
“허허허. 도형이라고 했나? 귀여운 꼬마로군요. 나도 딱 저만 한 손자가 있었답니다. 저 아이처럼 귀엽고 머리가 좋은….”
데이비드는 말을 끝맺지 못하고 세르게이를 노려본다.
“저는 앞자리에 있던 브릭 부부와 퍼즐을 교환해 풀고 있었습니다. 기차 여행 중에 만난 사이였지만 퍼즐을 좋아해 쉽게 친해졌죠.”
“아, 그 기분 저도 알아요. 헤헤.”
“퍼즐을 다 푼 저는 정답을 확인하기 위해 두 사람을 찾았는데, 그들이 저쪽 통로에서 크리스 씨와 이야기하는 것을 발견했지요. 전 크리스 씨가 자리로 돌아간 뒤 브릭 부부와 이야기를 나눴어요.”
데이비드가 내민 퍼즐을 받아든 도형은 또다시 눈이 반짝이기 시작한다.
“아하, 1부터 9까지 숫자를 넣어서 삼각형 모양의 수식을 완성하는 문제로군요?”
4 놀라운 발견
네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허풍과 도형. 퍼즐을 푸느라 신 난 도형을 지켜보며 허풍은 뭔가 곰곰이 생각하고 있다.
“도형아, 뭔가 이상하지 않니?”
“네? 뭐가요? 다들 사건이 있던 시간에 퍼즐을 풀고 있었다는 점? 이게 이상한가요?”
“아니, 서로가 서로의 알리바이를 증명해 주고 있다는 점이야. 만약 넷이서 짜고 서로의 알리바이를 증명해주기로 했다면….”
두~둥! 도형은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다.
“그렇군요. 우와 선생님 왠지 진짜 탐정 같아요. 멋있다!”
“감탄할 때가 아니잖니. 일단 이 네 명의 공통점을 찾아봐야겠구나. 도형아, 네 사람이 가지고 있던 물건을 가져다주겠니?”
도형은 후다닥 달려나가 이것저것을 모은다. 이내 도형은 앤의 은색 머리핀, 크리스의 은색 장식이 달린 펜, 데이비드의 은색 회중시계, 브릭의 퍼즐 스크랩북을 들고 허풍에게 달려간다.
“최대한 비슷해 보이는 걸 모아 왔어요. 공통점을 찾아야 한다고 하셨잖아요. 브릭 아저씨는 다들 가지고 있던 은색 물건이 없어서 그냥 신문에 실린 퍼즐을 스크랩한 책을 가져왔어요. 히히.”
아마 퍼즐 스크랩북은 도형 자신이 풀어보려고 가져온 듯 보였다.
“사각형 상자 안에 들어가는 숫자의 합이 모두 같도록 1부터 9까지의 숫자를 한 번씩만 들어가게 숫자를 채우는 퍼즐이구나. 오오, 재밌겠다!”
도형이 가지고 온 물건을 유심히 살피던 허풍은 도형이 풀던 퍼즐 스크랩북을 빼앗아 들더니 유심히 살펴본다.
“아이참! 선생님, 왜 그러세요? 아직 다 못 풀었단 말이에요.”
“그런 거였어. 수수께끼는 모두 풀렸다!”
허풍은 도형을 시켜 사람들을 모은다.
“범인을 알아냈습니다. 어차피 세르게이 씨가 정신을 차리면 알 수 있었겠죠. 아니, 그가 말을 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네요.”
허풍의 묘한 말에 도형을 포함한 모두는 깜짝 놀라 허풍을 바라본다.
★ 살인미수사건의 범인
“용의자 3명이 가지고 있던 이 은색 물건을 자세히 보니 자신의 이름이 아닌 제삼자의 이름이 쓰여 있더군요. 그리고 결정적인 단서는 바로 이 퍼즐 스크랩북입니다.”
허풍은 퍼즐 스크랩북을 들어 보인다. 그리고 종이를 뜯어 탁자에 한 장씩 내려놓는다.
“이건 퍼즐 스크랩북이 아니라 신문 기사 스크랩북이더군요.”
허풍이 가리키는 기사에는 은색 물건에 새겨진 이름이 차례로 적혀 있다.
“이번 사건의 용의자 4명은 어린이 연쇄 살인사건의 피해자 가족입니다. 이들은 범인이 세르게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는 처벌받지 않았죠. 여러분은 복수하기 위해 세르게이를 미행했고 그가 급하게 기차 표를 구해 타자, 좌석이 남아 있었던 특실 표를 사 열차에 몸을 실은 거죠. 그렇죠?"
“그렇소. 내 손자 녀석, 그리고 여기 있는 사람들의 아이에 대한 원한을 갚기 위해 열차를 탔소. 흑흑. 그는 죽어 마땅하오.”
사건이 마무리됐지만 허풍과 도형은 마음이 아팠다. 어린아이들의 영혼이 편히 쉬길 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