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데기를 이고 꿈틀꿈틀 풀잎과 땅을 기어가는 달팽이를 본 적 있나요? 달팽이는 육지에만 살지 않아요. 바다에도 있답니다. 바다에서도 꿈틀꿈틀 기어가는 달팽이는 어떻게 살아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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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육지에만 사는 게 아니다
갯민숭달팽이는 바다에 사는 달팽이예요. 화려한 형광색 무늬를 띠고 바닥을 꼬물꼬물 기어다녀요. 갯민숭달팽이는 영어로 ‘Nudibranch’예요. 벌거벗었다는 의미의 라틴어 ‘nudus’와 아가미를 의미하는 고대 그리스어 βρáγχια(bránkhia)가 합쳐져 생긴 이름입니다. 이름대로 갯민숭달팽이는 등에 장미처럼 생긴 아가미 깃털이 있어요. 아가미로 바다에서 호흡할 수 있지요. 아가미가 튀어나오지 않고 육지에 사는 달팽이는 민달팽이입니다.
육지에 사는 달팽이와 바다에 사는 갯민숭달팽이는 모두 복족류 동물이에요. 생물학자들은 복족류가 원래 모두 껍질을 가진 수중 달팽이였다가 여러 종으로 분화됐다고 추측하고 있어요. 바다에 남은 달팽이는 무거운 껍질이 퇴화했지요. 대신 산호와 닮은 화려한 색상으로 숨어 자신을 보호할 수 있습니다. 반면 육지로 간 달팽이는 폐로 호흡을 하며 몸을 보호하기 위해 껍질을 유지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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➊ 2020년 인도네시아 렘베에서 본 갯민숭달팽이.
➋ 2012년 필리핀에서 본 갯민숭달팽이.
갯민숭달팽이, 남의 세포를 빌려 방어한다
갯민숭달팽이는 북극해부터 온대지역과 열대지역을 거쳐 남극해까지 전 세계 바다에 살아요. 수심이 얕은 바다부터 수심 2500m만큼 깊은 바다까지 다양하게 서식하지요.
갯민숭달팽이는 짧게는 몇 주, 길게는 1년까지 살 수 있습니다. 짝짓기를 할 때는 춤으로 구애를 해요. 알은 1개밖에 낳지 않는 종도 있고, 최대 2500만 개의 알을 낳는 종도 있답니다.
갯민숭달팽이의 몸에는 빛을 감지하는 안점이라는 기관이 있어요. 갯민숭달팽이는 주변의 밝고 어두운 정도를 안점으로 구분해요. 이를 통해 주변에 포식자가 있는지 등 위험 요소도 알 수 있습니다.
갯민숭달팽이 중에는 독이 담긴 기관이 있는 종도 있어요. 덕분에 독을 뿜어내서 포식자로부터 몸을 보호할 수 있지요. 스페니쉬댄서라는 종은 주변 환경에서 위협을 느끼면 붉은색 몸을 격렬하게 펄럭이며 헤엄쳐 달아나요. 이 모습이 스페인 민속춤인 플라멩코와 닮아 스페니쉬댄서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대부분의 갯민숭달팽이는 육식을 해요. 바닷속 동물인 해면을 먹거나 산호 등 자포동물을 먹는 종도 있습니다. 해면을 먹는 종은 해면에 있는 독성 화학 물질을 몸에 보관해 포식자를 피해요. 자포동물을 먹고 사는 종은 자포동물의 몸에 있는 자포세포를 피부 밖에 보관해 몸을 방어합니다. 자포세포에는 독성 물질이나 가시가 있지요.
갯민숭달팽이 중에서는 식물처럼 광합성해 사는 종도 있어요. 광합성은 식물이 빛을 이용해 이산화탄소와 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양분을 만드는 과정입니다. 양누디라는 종이 바로 광합성을 하는 갯민숭달팽이에요. 해조류를 먹은 뒤 해조류에 있는 조류 세포를 등에 보관해요. 해조류는 식물처럼 광합성으로 양분을 만드는 생물이지요. 이처럼 광합성하는 조류의 엽록체가 양누디와 같은 숙주에 의해 떨어져 나가는 현상을 절취라고 부릅니다.
2020년 인도네시아 벨렘에서 만난 갯민숭달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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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수환(해양생물학자, 해양 사진작가)
우석대학교 대학원에서 산호충강을 전공하고 한국해양과학기술원에서 해양 환경 및 생태계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주로 산호와 해조류의 서식 환경과 말미잘의 분류에 대해 연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