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난 설악산에 사는 산양이야.
너무 춥고 배가 고파.
구해줘야 할 친구들도 있어.
이 주소로 오면 자세히 알려줄게!
2024년 겨울 특히 죽은 산양이 많이 발견된 42번, 46번 국도를 따라 이동하며 울타리 실태를 파악했다.
설악산에 사는 산양에게서 편지가 도착했어요. 2024년 겨울, 친구들이 떼죽음을 당했던 사건의 진위를 밝히고 2025년 겨울에는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도와달라는 내용이었지요. 깊은 산속에 꼭꼭 숨어 사는 산양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편지를 쫓아 설악산으로 달려갔어요!
동아DB
폭설이 심했던 2024년 겨울 산양의 사망 신고 수는 1000여 건에 달했어요.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연간 신고 수가 평균 약 65건이었던 것에 비추어 볼 때, 갑자기 너무 많은 산양이 죽은 거였지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취재 노트#1] 속초시 미시령 옛길
2024년 12월 22일 오전 7시, 미시령 옛길 초입에서 정인철 사무국장을 만났다. 잠깐 사이에 발이 얼어붙을 정도로 날이 매서웠는데, 아직 본격적인 겨울은 시작도 안 됐다고 해서 놀랐다. 정 사무국장은 하루 먼저 내려와 조사한 현장 상황을 브리핑했다. 몇 가지 주의 사항을 듣고 함께 눈산으로 들어갔다.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강원도 화천군 민간인 통제선 부근에서 농막에 걸려 죽은 채 발견된 산양.
산양이 발견된 위치 데이터를 따라서
“지도에서 보이는 점들이 산양 사망 신고 위치를 전부 표시한 거예요. 도로랑 울타리 주변에 점이 많이 찍혀 있죠. 오늘 이 점들을 따라 쭉 이동하면서 현장을 조사하겠습니다.”
스마트 패드 속 지리정보시스템(GIS) 자료를 가리키며 정인철 사무국장이 말했어요. 정인철 사무국장은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소속으로, 야생동물 전문가들과 함께 백두대간의 산양 모니터링을 지속하고 있어요. 겨울철에는 거의 매주 현장에 나가 상황을 살피고 있지요. 산양이 언제 어디로 자주 내려오는지, 어디에서 이동 흔적이 발견되는지, 행동 특성은 어떠한지 조사하고 기록하기 위해서예요.
산양은 솟과의 초식동물로, 우리나라에서 매우 희귀한 멸종위기종이에요. 보기만 해도 아찔한 절벽을 평지처럼 자유자재로 다니면서 나뭇가지나 순을 먹고 살지요. 산양은 주로 해발 1000m 이상의 높은 산에 살고 경계심이 아주 많아 사람과 마주치는 일이 거의 없어요. 그런데 2024년 겨울 폭설로 전국 민가, 도롯가 등에서 죽은 산양이 1040마리 정도 발견됐어요. 지난 10년 전체 산양 폐사체의 약 73%에 이르는 수치였지요. 신고가 들어온 건만 집계된 것이므로 깊은 산속이나 민간인 통제 구역에서 죽은 산양은 이보다 많을 것으로 추정돼요.
산양은 눈이 많이 쌓이면 추위를 피하고 먹이를 찾기 위해 계곡 쪽으로 이동하는 특성이 있어요. 눈이 쌓이지 않은 곳이나 쌓였더라도 금방 녹는 따뜻한 곳에서 겨울을 나는 거지요. 그런데 이번엔 문제가 생겼어요. 돼지들이 걸리는 감염병인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2019년 환경부 등이 설치한 ASF 울타리가 산양의 이동을 가로막은 거예요. 결국 수많은 산양이 굶주리고 탈진한 상태로 발견됐어요.
정인철 사무국장은 “산양은 다리가 짧은 데다 배에 털이 적어서 눈이 쌓이면 계속 배가 눈에 쓸려 저체온증에 시달린다”고 설명했어요. 이렇게 눈을 피하지 못하고 고립된 환경에서 먹이 경쟁을 하다 보니 늙은 산양과 새끼 산양 같은 약한 개체들이 특히 많이 사망했지요.
연도별 산양 사망 신고 추이
자료 출처: 국가유산청
한상훈
모니터링 카메라에 포착된 산양. 눈 때문에 온몸의 털이 젖어 있다.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녹색 선은 설악산국립공원 경계, 노란색 점은 죽은 산양이 발견된 위치, 빨간색 선은 ASF 울타리다. 산양 폐사체 신고 위치 241개 중 117곳(48.5%)이 ASF 울타리 영향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