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땅 아래에는 지하철, 수도관, 통신선 등 도시 생활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시설들이 있어요. 곳곳에서 땅을 뚫거나 파내는 공사도 쉼 없이 계속되지요. 지하의 이런 변화 때문에 때로는 땅 꺼짐이 발생하기도 해요.
물 새고, 흙 사라진다
도시의 땅 밑에는 물이 지나는 관인 상수도와 하수도가 있어요. 상수도는 사람들이 마실 물을 공급하고, 하수도는 사람들이 사용한 더러운 물을 정화 처리장으로 보내지요.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땅 꺼짐 사고 중 절반 이상은 상하수도관이 낡아서 손상된 것이 원인이에요.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2년까지 발생한 땅 꺼짐 사고 1127건 중 하수도 손상에 의한 사고가 506건으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어요.
수도관이 깨지거나 금이 가면 물이 새어 나옵니다. 깨진 틈 사이로 흙이 쏟아지거나, 수도관에서 흘러 나온 물이 흙과 같이 다른 곳으로 쓸려가면 수도관 위에 빈 곳이 생겨 땅이 가라앉을 수 있지요. 우리나라 땅 밑에는 설치한 지 오래된 낡은 상하수도관들이 많습니다.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의 전체 상하수관 중 30년 이상 된 하수관로는 전체의 55.6%, 상수관로는 전체의 36%나 돼요.
땅 꺼짐은 집중호우가 이어지는 6~8월 자주 발생합니다. 집중호우 기간에는 빗물이 땅속으로 스며들어 지하수의 양이 갑자기 많아져요. 지하수가 평소보다 빠르게 흐르면서 흙을 씻어내고 지하에 빈 곳이 생길 수 있지요. 전문가들은 기후 위기로 인해 더 강하게, 더 자주 찾아오는 극한 강우가 땅 꺼짐에 영향을 준다고 지적합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류동우 책임연구원은 “긴 장마와 홍수는 지하수 흐름에 변화를 일으키거나 흙의 특성에 영향을 미친다”며 “지반 함몰 역시 기후 위기와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전했어요.
부실 공사도 땅 꺼짐의 중요한 원인으로 꼽힙니다. 건물의 기초를 튼튼히 하기 위해 땅을 깊게 팔 때는 주변 땅이 무너지지 않도록 벽을 세워야 해요. 그런데 이 벽에 틈이 생기면 주변 흙과 지하수가 공사장으로 새어 나와 그 위에 있던 땅이 무너질 수 있지요. 터널을 뚫을 때도 주변 흙과 지하수가 터널 내부로 들어와 터널 위에 빈 공간을 만들 수 있어요. 빈 공간이 점점 커지거나 위로 이동해서 지표면과 가까워지면 땅 꺼짐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