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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B터뷰] 국내 최초 꿀벌 수의사, 정년기 선생님

 

지난해부터 꿀벌 집단 실종이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약 80억 마리가 넘는 꿀벌이 죽었죠. 이 꿀벌들이 죽어가는 원인을 찾아내 치료하는 수의사가 있습니다. 3월 10일 대전에 있는 꿀벌 동물 병원을 찾아 꿀벌을 지켜주는 정년기 꿀벌 수의사를 만났습니다. 

 

 

꿀벌 수의사의 하루는 어떨까?

 

꿀벌 동물 병원에서 정년기 수의사는 죽은 꿀벌들을 핀셋으로 집어 면밀히 관찰하더니 작은 병에 옮겨 담고 분석 시료를 넣었어요. 꿀벌을 진료하는 병원인데, 정작 살아있는 꿀벌은 찾아볼 수 없었죠. 정 수의사는 “벌 한 마리가 아닌, 벌 무리의 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작업”이라고 말했습니다.

 

벌은 무리를 지어 생활합니다. 뼈, 혈관, 피부 등 사람의 몸을 이루는 여러 조직들처럼 벌들도 여러 개체가 무리를 지어 살아가지요. 사람의 몸에 암 조직이 생기면 주변 세포까지 감염시키기 전에 그 조직을 떼어내 치료합니다. 이처럼 벌 무리 안에서도 죽은 벌들이 많아지면, 병이 무리로 더 번지기 전에 꿀벌 수의사가 벌들을 검사해 어떤 질병에 걸렸는지 찾아냅니다. 그래야 벌 무리에 맞는 처방을 줄 수 있지요. 이날 정년기 수의사가 살펴본 죽은 벌의 몸에서는 꿀벌의 몸에 마비 현상을 일으키는 ‘만성 꿀벌 마비병 바이러스’가 검출됐습니다. 

 

“여보세요? 꿀벌이 아프다고요?”

 

꿀벌이 아프다는 의뢰는 보통 벌을 수십만 마리 이상 키우는 양봉장에서 들어옵니다. 마침 취재 당일 청주의 한 양봉장에서 의뢰가 들어와 기자는 정년기 수의사와 함께 아픈 꿀벌들을 만나러 청주에 있는 양봉장에 갔습니다.

 

“꿀벌들에게 최근 어떤 약을 먹였나요?”

 

꿀벌이 많이 죽었다며 걱정하는 양봉장 주인에게 정년기 수의사가 꿀벌의 상태에 대해 질문하는 ‘문진’을 했습니다. 벌통을 열어 꿀벌의 상태를 직접 관찰도 했고요. 정 수의사는 “꿀벌을 직접 만져보거나, 벌통에 청진기를 대서 꿀벌의 울음 소리를 들어보기도 한다”며 “죽은 꿀벌들을 병원으로 데려가면 더 자세한 질병을 알아낼 수 있다”고 말했어요.

 

Q&A 궁금해요

“꿀벌의 주식도 꿀이라는 점 기억했으면”

 

 Q. 어떻게 꿀벌 수의사가 됐나요?

 

대학에서 수의학을 전공하고 공무원이 되어 가축방역 일을 했어요. 그러다가 우연히 양봉 관련 부서로 갔는데, 양봉에 대해 잘 몰라서 엄청 열심히 공부했어요. 양봉 농가를 다니면서 많이 물어보고 그곳에서 얻은 정보들을 꼼꼼히 기록했습니다. 그러던 와중 양봉장마다 같은 질병이어도 쓰는 약이 모두 다른 것을 보고, 의문을 가지게 됐어요. 이 문제를 알아봐야겠다고 결심한 뒤 공부를 시작했고, 결국 꿀벌 수의사가 됐답니다. 꿀벌은 알면 알수록 오히려 모르는 부분이 자꾸만 생기는 곤충인 것 같아요. 그래서 꿀벌 수의사로서 재미있습니다. 꿀벌 수의사는 자신이 꿀벌을 잘 안다고 자만해서는 안 되지요.

 

 Q. 꿀벌이 정상인지 아픈지 어떻게 알 수 있나요?

 

아픈 꿀벌은 대부분 마비 증상이 있습니다. 꿀벌은 나는 곤충인데, 제대로 날지 못하고 바들바들 떨거나 날개를 제대로 접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꿀벌이 아픈 것을 알 수 있죠. 양봉장에서는 주로 꿀벌이 급격하게 많이 죽는 일이 일어나면, 꿀벌들이 아프다는 것을 깨닫고 저에게 진료 의뢰를 해요.

 

 Q. 꿀벌 수의사는 다른 수의사와 어떻게 다른가요?

 

꿀벌 수의사는 소, 돼지 등 다른 동물 수의사와 달리 한 마리만 보고 개별 진단을 하지 않습니다. 무리 진단을 하지요. 벌의 전체 무리를 한 몸으로 보고 진단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미 죽은 벌들의 유전자를 분석해서 어떤 바이러스나 세균에 감염됐는지 확인하고, 벌의 무리를 살리는 처방을 내리죠.

 

꿀벌은 알에서부터 애벌레, 번데기 과정을 거쳐 성충이 되는 ‘완전 탈바꿈’ 곤충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자라나는 시기에 따라 걸리는 질병이 모두 달라 진료가 어려워요. 예를 들어 애벌레 상태일 때는 꿀벌의 색이 변해 죽는 ‘부저병’에 많이 걸려요. 사람들이 소아과, 비뇨기과 등 여러 병원에 나눠 가는 것처럼, 꿀벌도 시기에 따라 맞춤 진료가 필요해요. 언젠가 번데기 전문의, 애벌레 전문의가 따로 생긴다면 신기할 것 같네요.

 

 

 

 Q. 꿀벌은 어떻게 치료하나요?

 

꿀벌의 몸에 진드기 등 기생충이 생기면 기생충을 죽이는 약을 뿌려요. 저는 꿀벌을 기르는 양봉장 주인들이 이 약을 제대로 사용하도록 지도하죠. 바이러스 등의 전염병에 걸리면, 아픈 벌들을 무리에서 격리시켜 다른 벌들이 전염되는 것을 최대한 막습니다.

 

 Q. 꿀벌의 집단 실종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나요?

 

우선 기후 변화로 인해 기존에 질병을 일으키던 바이러스의 돌연변이가 생기면서 꿀벌들이 많이 죽기 시작했다고 추측할 수 있어요. 도시 개발을 하면서 꿀벌에 먹이를 제공하는 아카시아 등의 나무를 많이 밀어버려 꿀벌이 살기 어려워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진드기를 없애기 위해 농약을 과하게 뿌리다 보니 꿀벌까지 함께 많이 죽어버렸어요. 이러한 이유로 저는 꿀벌을 기르는 사람들이 꿀벌에 대해 잘 이해를 하는 것뿐만 아니라, 변화하는 환경에 맞춰 꿀벌을 키우는 방식도 바꿔나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이 사람들에게 꿀벌을 잘 키우는 방법을 알려주는 꿀벌 수의사의 역할도 정말 중요하죠.

 

 Q. 꿀벌의 건강을 위해서 어떤 환경이 필요할까요?

 

대부분의 사람이 꿀을 생산하기 위해 꿀벌을 키웁니다. 하지만 꿀벌의 주식 역시 꿀이라는 점을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꿀벌이 꿀을 제대로 먹지 못하면 면역력이 약해져 질병에 걸리는 경우가 많지요. 꿀벌에게 충분한 꿀을 주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합니다.

 

 Q. 꿀벌 수의사는 어떻게 되나요?

 

꿀벌 수의사가 되려면, 꿀벌에 쏘여도 괜찮은 체질인지 먼저 확인이 필요합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꿀벌에 쏘여도 금방 치료하면 괜찮아지지만, 꿀벌에 쏘이면 과민 반응을 일으키는 사람도 있어요. 이런 사람은 꿀벌을 다루는 일을 하면 위험할 수 있습니다. 

 

체질을 확인했다면, 꿀벌과 친해져야 합니다. 꿀벌을 무서운 존재가 아니라 친하게 지낼 수 있는 곤충으로 생각해줬으면 좋겠어요. 꿀벌의 생리 습성을 이해하면, 꿀벌을 잘 대하는 법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꽃 위에 앉아 있는 꿀벌을 재빠르게 잡으면 쏘일 수 있지만, 손으로 천천히 감싸면 꿀벌은 우리를 쏘지 않아요.

 

 Q. 어린이 독자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모든 생명은 다 소중합니다. 세상에 모든 존재는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기 때문에 필요 없는 존재는 없답니다. 꿀벌이 작은 생물이라는 이유로 경시하지 않고 사람의 생명만큼 소중하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어요. 

2023년 09호 어린이과학동아 정보

  • 장효빈 기자
  • 사진

    어린이과학동아
  • 디자인

    정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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